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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수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함영(含英)
작품등록일 :
2013.12.07 04:07
최근연재일 :
2014.05.05 10:57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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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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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4,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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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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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11장. 두번째 과제(1).

DUMMY

11장. 두 번째 과제.


“두고 봐라! 네 놈을 기필코 찢어 죽이고 말겠다!”

대규는 천월화가 더 이상의 마찰은 불허한다고 했음에도 혁진을 씹어 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머리 위로 김이 뿜어져 나올 듯이 열을 내고 발을 굴렀지만 뒷덜미를 잡아채는 정유의 손길을 이겨내지 못했다.

혁진은 학사풍의 외양을 가진 정유에게서 저런 건장한 사내인 대규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천통심법으로 기감을 확장해도 그 힘의 근원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저 정유를 외양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 뿐.

정유는 떠나가기 전 혁진의 뒤편에 서 있는 결천을 슬쩍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물러갔다. 덕분에 대규 앞에서 강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혁진도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자신들의 조원을 챙길 수 있었다.

“아현 소저! 결천아, 다들 괜찮아?”

혁진은 결천과 보련, 야호의 상태를 눈으로 대충 살핀 뒤,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는 아현에게 다가갔다.

지금 자신조차도 힘에 겨울 정도인데 그녀라면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다시 한 번 돌이켜봐도, 맘 같아선 자신부터 당장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이 드는 전투였으니까.

애초에 시작부터 문제였다.

놈들의 장난에 넘어가 밥도 거른 상태로 멀고 험한 통령각까지의 거리를 한 순간의 쉼도 없이 왕복했다. 게다가 손실 된 체력을 회복할 틈도 없이 적과 마주해 싸웠다.

여태까지의 모든 경험을 되돌아 봤을 때, 이 토록 힘에 겨웠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싶을 정도. 남들이 보기엔 별 무리 없이 대규와 홍선을 밀어붙이고 과제를 통과한 것 같겠지만, 사실 혁진은 거의 한계치까지 내공을 사용한 상태였다. 이 이상의 내공을 이용한 싸움은 불가능하달까.

그런 혁진의 좋지 않은 상태를 아현이 가진 능력으로선 파악할 수 없었을 텐데도, 그녀는 자신보다 혁진을 더 걱정했다.

“추 소협…하아, 하아. 괜찮으…세요?”

겉치레식의 말 뿐만이 아니었다. 물기에 젖은 듯 한 아현의 다정다감한 목소리에 혁진은 무언가 울컥 하고 차오르는 것을 간신히 눌러야만 했다.

“네, 그럼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전 어떻게라도 되실까봐. 아….”

“누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는 아현의 모습에 놀란 야호가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결천이 만약을 대비해 아현의 맥을 짚으며 상태를 살폈다. 혁진은 그런 결천에게 부탁한다며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새치름하게 서 있는 보련에게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보련 소저 덕분에 모두 무사히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아뇨. 딱히 제가 한건…다 한 소협께서….”

“물론 결천이도 고생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허나 보련 소저께서 뒤를 막아주시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허사였겠지요.”

“보셨…나요?”

보련은 혹시나 결천이 약조를 어기고 말한 건가 싶어 슬쩍 바라보았지만 결천은 어깨를 으쓱 해보일 뿐이었다. 혁진은 그런 그녀의 기색을 눈치 채고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그저 제가 익힌 무공의 특성상, 그 정도는 모를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소저께서도 숨기셨던 이유가 있으셨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려우실 거란 것, 알고 있고요. 나중에 저를 신뢰하실 수 있게 된다면, 그 때 말씀해주셔도 괜찮아요. 저는 소저를 믿고 있으니까요.”

“아….”

할 말을 찾지 못한 보련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혁진은 천월화가 입을 여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첫 번째 과제를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다들 제법이더군. 패기 하나는 인정하지.”

그녀의 말에 여기저기서 안도하는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안도하는 이들의 대부분의 얼굴엔 이제 되었다는 희망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그러다 팔뚝에 흐르는 피를 막기 위해 손으로 붙잡고 있는 사내 하나가 무언가 생각난 게 있는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첫 번째라니. 혹 두 번째도 있습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잠시 뒤면 의관(醫官)들이 도착할 것이다. 그들에게 급한 치료를 받고 휴식을 약간 취한 뒤, 두 번째 과제로 넘어가겠다.”

“맙소사!”

“빌어먹을, 이제 서고에 들어가서 비급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앞마당에서 뭐가 또 있을 줄이야.”

“오늘 이게 끝이 아니라니!”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기재들 중 대부분의 몰골이 말해주듯이, 사실상 혁진만이 힘겨운 싸움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모두들 각자 나름대로 방금 전에 치르고 온 치열한 전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들로서는 이와 같은 전투를 한 번 더 치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테다. 지금의 상태로 또 다시 아까와 같은 전투를 치르게 된다면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통과하지 못할 것은 당연 할 테니까.

기재들 사이에서 일어난 웅성거림은 쉬이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곧 천월화의 말 대로 의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치열한 싸움 끝에 과제를 통과한 기재들 사이로 스며들어가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끄, 끄으으!”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각양각색의 부상자가 즐비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응급조치를 비롯해 중상을 입은 자 같은 경우 활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처리해두는 것 까지. 조금의 막힘도 없는 것을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관들이 치료를 모두 끝내고 물러났음에도 웅성거림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천월화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발을 쿵 하고 굴렀다. 그녀의 발밑으로 허연 서리가 끼는 것과 동시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천월화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너희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된다. 또한 너희들이 걱정하는 바는 알고 있으니 안심해라. 아니, 오히려 아까와 같은 것을 치르게 해달라고 애원할 테지만.”

그녀의 말에 이게 무슨 뜻인가 하고, 생각에 잠긴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천월화는 뒤에 서있는 조교 무사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조교가 작은 목합 하나를 가져왔다. 천월화는 뚜껑을 열고 비스듬히 기울여 보였다.

“보이나? 이번 관문은 아주 간단하다. 이걸 들고, 열을 셀 동안 버티는 것 뿐 이지. 자신 있는 사람?”

혁진이 목을 빼고 보니 목합 안에는 깨어진 보라색 돌멩이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저게 뭐지?’

혁진은 자신이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싶어서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대부분의 기재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혁진은 보았다. 진일과 신란 등의 표정이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참혹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그 때 한 사내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정말 들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시겠습니까?”

“아, 물론이지. 두 말하지 않겠다. 도전해보겠나?”

“예.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나선 이는 잘 단련된 육체는 물론이요, 굳게 다문 입술이 제법 강단 있는 자 같았다. 목표한 바에 흔들림 없는 눈빛하며, 절도 있는 몸동작은 얼마나 고된 수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해왔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어이. 저 자 혹시, 가동성의 일권무적(一拳無敵)이라 불리는 장무현 아닌가?”

“이제 보니 그렇군. 어쩐지 아까 서고로 올라올 때 보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뚫고 오더니만. 정말 대단한 실력이더군.”

“저 돌이 뭐건 간에, 저 자라면 통과할 수 있지 않겠나?”

장무현의 커다란 등을 바라보며 혁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지방의 한 성에서 일권무적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들었지만, 자신의 천통심법으로 파악한 그의 실력은 분명 상당한 수준. 설령 저 돌이 어마어마한 고통을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저 자라면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장무현은 천월화의 앞에 똑바로 멈춰 섰다. 천월화가 피식 웃으며 상자를 그의 앞에 들이밀자 장무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손을 뻗었다.

그의 사내답고 굳은살이 가득 박인 오른 손이 보라색의 돌멩이를 집어 든 순간,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하나, 둘, 셋….”

사방엔 천월화의 차가운 목소리가 가르고 지나가는 것 외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산들바람도 불지 않았고, 저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도 그 뜨거운 열기를 잠시 식히는 듯 했다.

“넷….”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들 그 어떤 이변 없이 천월화가 무사히 열을 셀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천월화가 다섯을 세기가 무섭게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보라색 돌멩이를 응시했다.

혁진도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하고 궁금증과 함께 불안한 감각이 몸을 엄습한 순간.

“으, 으으으. 으아아아악!!”

몇 발자국 뒷걸음질 치던 장무현은 이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기재들을 거칠게 밀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얼마나 겁에 질린 것인지 그 자신이 익힌 최대의 경공으로 순식간에 서고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장무현은 새하얗게 변한 얼굴로 서고의 굳게 닫힌 문고리를 붙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대었다.

“여, 열어줘! 열어!! 어서 열란 말이야!! 빌어먹을!!”

중요한 비급을 보관하고 있는 서고의 정문이라 그런지, 이 곳의 문도 무위관의 정문 못지않은 크기와 튼튼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장무현은 그 문을 흔들다 못해 때려 부술 기세로 주먹을 치켜들고 내뻗었다. 일권무적이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니었는지, 제 아무리 튼튼한 문이라도 단번에 박살날 게 분명했다.

만약 천월화가 나타나 그의 주먹을 붙잡지 않았다면 필시 그리 되었을 터인데, 장무현의 주먹은 어이가 없다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붙잡혀버렸다. 그의 주먹에서 휘몰아치던 권풍은 천월화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잠식되었다. 장무현의 팔을 타고 얼굴에까지 하얀 서리가 끼었다.

“얼마든지 나가도 좋다. 하지만 다시는 들어 올 수 없지. 그래도 나가겠는가?”

누가 봐도 천월화의 질문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혁진과 다른 기재들은 당연히 그가 나가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장무현은 천월화의 손을 당연하다는 듯이 뿌리치고 문고리를 다시 붙잡으며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그의 눈엔 눈물 까지 고여 있었다.

“으아아! 열어!!!!”

천월화는 장무현을 지나치며 손을 내저었다.

“열어줘라.”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두터운 문이 열렸다.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서고의 정문 앞에 멍하니 앉아있던 예희와 초미 등의 얼굴이 혁진의 눈에 들어왔다. 허나 그런 그녀들도 도망치듯이 빠져나오는 장무현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그녀들의 시선이 장무현의 뒤를 좇는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문이 쿵 하고 닫혔다.

천월화는 기재들의 사이를 걸어 앞으로 나와 땅에 떨어진 보라색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있는 것 같았지만 혁진은 그녀의 손이 아주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사람?”

그녀는 기재들을 둘러보며 목합에 다시 돌을 넣었다.

후우 하고 한 숨을 내쉬며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 된 그녀에게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그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 말인가? 흐음…말해줘 봐야 알지 못할 이름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자는 들을 자격도 없고.”

다들 불만과 궁금증이 가득 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궁금증을 풀고자 나서기엔, 장무현이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재능과 실력이 제법 있다 하는 기재들 중에서도 일차 관문을 통과한 자가 쉰 명이나 모여 있었지만 장무현에 비하면 실력이 모자라는 자들이 많았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조금 시간이 흘렀음에도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천월화는 싱겁다는 듯이 웃었다.

“아무도 없나?”

“혁진 형님, 어떻게 해요….”

야호가 혁진에게 다가와 그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끙끙 앓았다. 혁진이 보니 다른 조원들도 내색은 안하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 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조원들에게 힘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결심을 굳힌 혁진이 앞으로 나서려던 순간.

아무 말 없이 곡진일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까지 뒤쪽 줄에서 도를 땅에 짚고 묵묵히 있던 그가 앞으로 나서자 모두의 눈에 놀란 빛이 가득 어렸다.

그런 진일의 뒤로 대규가 따라 나오며 툴툴 거렸다.

“아, 이 엿 같은 과정은 없어지질 않네.”

“어쩔 수 없지요.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과정이니까요.”

“기분 나쁘단 말엔 동감해. 보기만 해도 짜증나.”

대규와 신란의 사이에서 정유가 둘을 달랬고, 그 뒤에 호관이 묵묵히 따라 붙고 있었다.

진일을 비롯한 대규, 신란, 정유, 호관이 앞으로 나섰다. 지켜보던 기재들은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 중에는 진일 들이 장무현처럼 무섭다고 소리 지르며 도망치는 모습을 상상해봤는지 피식 웃는 자들도 있었다.

천월화는 진일의 눈을 마주보며 웃었다.

“몇 번 겪어봤다 이거지?”

“어느 때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입니다.”

진일의 무뚝뚝한 말에 천월화는 고개를 살짝 끄떡이며 목합을 내밀었다. 진일이 천천히 손을 뻗자 서있던 자들도 목을 빼고, 부상을 당해 앉아있던 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혁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진일의 손끝을 바라본 순간.

진일은 보라색 돌멩이를 조약돌 쥐듯이 가볍게 움켜잡았다.

장무현 때처럼 천월화의 목소리는 외엔 들리지 않았지만, 모두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누군가는 진일이 성공함으로서 장무현의 모습만이 특별한 것이길 바랐을 테고, 또 어떤 자는 칠대세가의 차기 우두머리 격인 진일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기를 원했을 것이었다.

허나 열을 세고, 스물을 세도 진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교관님, 이미 열을 훨씬 지났습니다.”

“알고 있다.”

천월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일은 목합에 돌멩이를 던져놓고 그녀를 지나쳐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천월화는 진일의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아무나 집으란 식으로 눈짓을 해보였지만 신란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교관님, 하나씩 해서 언제 끝나겠습니까. 여분 있는 것 알고 있는데, 한꺼번에 주시지요.”

“후후, 좋다. 가져와라.”

천월화가 손가락을 튕기자 다른 조교 무사들이 그녀의 손에 들린 목합과 똑같은 것을 네 개나 더 가져왔다. 조교들이 뚜껑을 열자 신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을 낚아챘다. 정유와 호관이 묵묵히 손에 들고, 대규 역시 투덜거릴 뿐 돌을 집어 드는 것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하나, 둘….”

그 때, 누군가 입으로 소리 내어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우후죽순으로 셈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혁진이 보니 옆에서 야호도 따라하고 있는지라, 저도 모르게 속으로 따라하고 말았다.

“아홉, 열….”

“저도 올라가겠습니다.”

열을 세기가 무섭게 신란이 목합에 돌을 던져 넣고 진일의 뒤를 따라갔다. 대규도 눈살을 찌푸리며 던져 넣었고, 정유는 눈웃음을 지으며 천월화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지막으로 호관이 넣고 지나가자 정적이 감돌았다. 천월화는 그제야 고개를 살짝 돌려 안으로 들어가는 진일들의 모습을 한번 보고 입을 열었다.

“다음 사람?”

“제, 제가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저에요!”

“무슨 소리야. 내가!”

와아아-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의 반응과는 판이하게 서로 돌을 집겠다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진일이 잡았던 처음의 돌 쪽에 신경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 모두들 신란의 말에 조교 무사들이 뒤늦게 가져온 돌을 집어 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형님, 어떻게 해요. 저희도 저걸….”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뺏기는 것 같았는지, 야호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던 차.

“으, 으아악!!”

누군가의 비명을 시작으로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얼음물을 한꺼번에 뒤집어 쓴 것처럼 착 가라앉았다.

몇몇 이들이 미친 듯이 사람들을 헤치고 서고 쪽으로 나아갔고 장무현과 똑같이 문을 열어달라고 울부짖었다.

산발적으로 대여섯의 희생자가 생겨나자 그 누구도 돌을 집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제 달려들었냐는 듯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서로의 눈치를 볼 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목합을 들고 있던 조교 무사만이 피폐해진 꼴로 어렵사리 돌을 회수하려 노력할 뿐이었다.

“하, 멍청한 것들. 우리가 집은 건 가짜인 줄 알았나보지?”

“기분 나쁘네.”

대규의 말에 신란의 분명한 감정 섞인 한 마디가 모든 사람의 귀에 쑤시듯 박혀들었다.

혁진이 보니 모두의 표정이 양심에 찔리는 행동을 한 사람처럼 일변해 있었다. 저 대열에 끼지 못해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던 야호도 질린 얼굴로 혁진의 뒤에 숨어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더 말해 무엇 할까.

대부분의 기재들이 물러나서 주변 눈치만 살폈다.

천월화는 보라색 돌멩이들을 목합에 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교들을 도와주며 말했다.

“뭐, 당연하지만 강요하는 건 아니다. 할 수 없는 자는 포기해도 좋겠지. 일차 관문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너희는 저 밖에 있는 이들 보다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포기…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그래, 너희들 머릿속을 내가 모를 것 같나? 솔직히 말하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너희는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어. 적당한 무공을 배워서라도 군부에 들어가면 십인 장이나 백인 장 따위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 진급하는 것은 자기하기 나름 일 테고.”

대부분의 눈에 갈등의 빛이 서렸다. 무위관의 초청장을 받고 기뻐하며 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혁진이 보기에 이들 중 대부분은 부귀영화와 명성을 얻기 위해서 온 자들이 많은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월화의 한마디에 이렇게 흔들리는 눈빛들을 보이진 않을 테니까.

혁진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자신은 절대로 수긍할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온 무위관이 아니었다.

이를 악 문 혁진은 당당히 앞으로 한 발 나섰다.

“형님!”

“추 소협….”

야호와 아현이 놀란 눈으로 다가서려 했지만 혁진은 손을 들어 막으며 천월화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교관님.”

“첫 포기자인가?”

“제가 해보겠습니다.”

“그래, 나가…아니, 해보겠다고?”

“예.”

“후후, 좋다. 얼마든지 해보도록.”

천월화가 혁진에게 다가와 목합을 내밀자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일 등은 턱을 괴고 태연한 척 있었지만 그들도 혁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바로 그 때, 혁진의 옆으로 아현이 뛰쳐나오며 손을 뻗었다.

“잠깐만요. 저도, 하겠어요.”

“…저도 지고 싶지 않네요.”

“형이 하시는데, 아우가 안할 수는 없겠죠.”

“으아아, 다 하시는데 저만 안할 수는 없잖아요.”

아현이 나섬으로서 보련과 결천이, 야호까지 결국 자리를 잡자 혁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어차피 함께 빠져나가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결연한 마음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혁진이 손을 뻗어 보라색 돌멩이를 집자 아현, 결천, 야호, 보련 역시 돌을 집어 들었다.

“버텨내기를 기대해보지.”

천월화의 말이 들렸다고 생각한 순간.

화아악-

혁진은 주변이 삽시간에 빛 하나 들지 않는 검은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많이 읽으시고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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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2장. 천보서고(天寶書庫)(1) +8 14.03.30 3,834 131 11쪽
27 11장. 두번째 과제(2) +10 14.03.29 3,623 123 15쪽
» 11장. 두번째 과제(1). +10 14.03.28 3,416 123 20쪽
25 10장. 첫번째 과제(4). +14 14.03.27 3,738 133 13쪽
24 10장. 첫번째 과제(3) +12 14.03.26 4,330 146 17쪽
23 10장. 첫번째 과제(2) +8 14.03.25 3,946 131 13쪽
22 10장. 첫번째 과제(1) +10 14.03.24 3,840 131 11쪽
21 9장. 결성, 그리고 견제(2) +12 14.03.23 4,049 120 11쪽
20 9장. 결성, 그리고 견제(1) +10 14.03.22 4,293 136 20쪽
19 8장. 조별편성(組別編成)(2) +12 14.03.21 3,981 134 20쪽
18 8장. 조별편성(組別編成)(1) +12 14.03.20 4,143 145 19쪽
17 7장. 천하수호관(天下守護官)(4) +11 14.03.19 3,788 129 14쪽
16 7장. 천하수호관(天下守護官)(3) +10 14.03.18 4,147 115 14쪽
15 7장. 천하수호관(天下守護官)(2) +6 14.03.17 5,267 184 14쪽
14 7장. 천하수호관(天下守護官)(1) +6 14.03.16 3,985 119 11쪽
13 6장. 진망성(塵網城)(2) +13 14.03.15 5,285 121 14쪽
12 6장. 진망성(塵網城)(1) +6 14.03.14 4,435 127 12쪽
11 5장. 아현(娥賢)(2) +14 14.03.13 4,941 135 11쪽
10 5장. 아현(娥賢)(1) +10 14.03.12 4,655 135 17쪽
9 4장. 사부(師父)(2) +12 14.03.11 4,812 136 20쪽
8 4장. 사부(師父)(1) +4 14.03.10 5,591 136 18쪽
7 3장. 장권박투(掌拳搏鬪)(2) +4 14.03.09 5,359 148 18쪽
6 3장. 장권박투(掌拳搏鬪)(1) +5 14.03.08 5,262 143 18쪽
5 2장. 하령민가(河靈閔家)(2) +4 14.03.07 5,921 160 19쪽
4 2장. 하령민가(河靈閔家)(1) +7 14.03.06 6,141 174 10쪽
3 1장. 하령성의 약초꾼(2) +5 14.03.05 6,296 179 15쪽
2 1장. 하령성의 약초꾼(1) +12 14.03.04 7,725 186 12쪽
1 서장. 놈. +9 14.03.03 7,770 20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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