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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리뷰] 나만이 없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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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없는 거리.

정발판에선 이렇게 번역한 것 같은데, 사실 거리로 번역된 마치는 마을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본작에서는 거리보다는 마을이 더 맞지 않을까?


들어가며.

한국에서 아직 이 작품이 제대로 알려지기 전.

이렇게 말하면 홍대병 환자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작품이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이유로 말하자면 작가의 감이다. 이 작품은 흥행할 수 있는 요소가 상당히 집약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미 검증된 코드인 ‘회귀’ 혹은 ‘루프’를 다루고 있다. 혹자는 이 작품을 보며 나비효과를 떠올리는데, 작가인 산베 케이가 직접 언급했을지 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도 나비효과의 영향력이 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선은 거칠고, 그림 역시 투박하여 소위 말하는 ‘모에계’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서스펜스이자 추리,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중후한 스토리 라인에 힘이 실린다.

무엇보다도 컷 배분과 연출 면에서도 굉장한 탁월함을 1권부터 폭발시키는데, 이런 작품이 뜨지 않는다면 그 문화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탁월한가.

우선 스토리가 명쾌하다. 주동적이지는 못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사건을 되풀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과거 후회할 수밖에 없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어라? 익숙하다고?

그럴 수밖에. 이런 플롯 자체는 2000년 초반부터 굉장히 유행했다. 그뿐이랴. 고전을 뒤져보면 이미 80년대에도 컬트적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회귀, 루프, 과오의 개찬은 한국이고 일본이고 할 것 없이 근원에 가까운 욕망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거기에 원작이라면 컷 배분을 통한 연출이, 애니메이션이라면 뛰어난 작화와 영화적 연출이 내용을 충분하게 보강해준다.

여기서도 작가와 감독의 탁월한 역량이 빛이 난다.

본래 연출이 과도하면 피로한 법. 그리고 감정은 마치 매그니튜드 규모와 같아서, 처음엔 작은 자극만으로도 흥미를 느끼지만, 그 다음엔 몇 배나 되는 자극이 없어서는 밋밋함밖에 남지 않는다. 초반부터 임팩트를 강하게 가져가는 것의 한계는 여기에 있다.

(이 부분은 내가 자기 반성을 해야할 부분이다)

나만이 없는 거리는 이 부분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건의 흐름이 단 한 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물흐르듯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차 스케일이 커지며 연출의 강도도 강약 조절을 한다. ‘쓰르라미 울적에’라는 작품도 이러한 라인을 따르는데, 개인적으로 루프물에서 쓸 수 있는 최적의 연출법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딱 하나다. 특히 애니메이션 판은 더 그렇다. 애니메이션판은 12화로 압축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후반 분량을 대거 삭제하고, 중간 중간의 에피소드도 개편했는데 덕분에 주인공의 신념이자 행동의 근원인 아이리의 존재가 퇴색했다는 점이다.

사실 원작인 만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카요를 구하려는 시점에서 독자들은 필연적으로 카요에게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다. 흔들다리 이펙트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작중 선생님의 말대로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는 루프물의 한계이기도 하다.

루프를 선택하면 루프 이전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가?

그곳에서 나눴던 감정은 어떻게 되는가?

그곳에서 맺었던 인연은 어떻게 되는가?

모두 무가 되는가?

그렇다면 그 세계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작가가 이것을 어떻게 봉합할지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완전히 충족되지는 못했다.

원작은 그나마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애니메이션은 분량 조절로 인해 그 이해마저도 쉽지 않았다.

내가 원작의 팬이 아니라, 애니메이션만 보았다면 굉장히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마치며.

작가는 신인 작가가 아니다.  무려 20년 가까이 그려온 중견 작가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나만이 없는 거리 이전 작품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이것이야말로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에 대한 상응하는 보상’이 아닐런지.

하지만 작가 스스로가 작품의 전개와 결말을 통해 그 말을 부정한 것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작가 스스로는 이것을 보상이라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묵묵히 작품 활동을 해왔고, 할 것이라는 점만을 내게 남겨준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지 올해로 딱 10년이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팔리지 않는 기간도 많았고, 팔린다 해도 인기 작가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그래도 묵묵히 계속 글을 쓰는 것은, 글쎄. 나만 해도 대박을 꿈꾸며 글을 쓰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가 담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만 생각한다.

글이 팔리고 팔리지 않고는 그 다음 문제다.

내게는 내가, 내 가족이 나의 글로 먹고 마실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한다는 자족이 있다.

산베 케이 작가도 그랬던 것은 아닌지.

그 결과가 이렇듯 훌륭한 작품이라면 내게도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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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리뷰 | 나만이 없는 거리 16-11-18
1 이런저런 리뷰 | 파스텔 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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