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괴한들과의 일전
수현은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누나!... 제발!... 정신차려!! 제발!......" 철묵이 두 손으로 지혈을 하며 수현의 이름을 부르 짖었지만, 수현은 별 반응이 없었다.
소연이 다가와 수현의 턱 아래 혈관에 손을 갖다 대고 수술실 벽에 붙은 시계의 초침을 노려보았다.
"아직 맥박이 많이 떨어지진 않았어! 그대로 손으로 지혈하는 걸 놓지 마!" 소연이 여전히 혈관에 손을 댄 채 초침을 노려보며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수술대 시트가 수현의 상체 아래로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허헉! 후~! 이게 무슨 일이죠!?" 당직의사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잠옷 바람으로 수술실로 들어섰다.
"김 박사님은요?" 소연이 다급하게 물었다.
"오늘 비번이시라......"
"빨리 연락하세요!"
"이미 연락이 갔을 겁니다." 의사의 말이었다.
의사 말과 함께 두 명의 여자가 급하게 수술실로 뛰어들었다. 당직 간호사로 보였다.
"가슴에 칼을 찔렸어요. 빨리 수술 준비를......"
소연이 말을 하는 도중에 젊은 의사는 이미 철묵을 밀쳐내고 수현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간호사는 ciculating (scrub 간호사보조) 서고, 김 간은 나와 같이 shock position (머리쪽을 낮추고 다리쪽을 들어올려 뇌와 심장 등 생명과 직결된 장기들로 피를 몰리게 하는 자세) 잡읍시다. 누가 이 환자 혈액형 알아요?" 의사가 철묵과 소연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었다.
둘 다 멍해져 있는데, 이 간호사라는 여자가 나섰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검진하면서 제가 보조를 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럼 subclavian (중심 정맥관)을 잡는 동안, 이 간이 일단 50cc syringe (주사기)을 3way로 연결해서 피 좀 짜줘요. 연결은 내가 할 테니... 두 사람은 일단 나가주세요. 김 박사님 올 때까지 최대한 현 상태라도 유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당장 수술도 못한다는 겁니까!?" 철묵이 언성이 높아졌다.
"지금 수술이 문제가 아니에요. 보면 모르겠어요!? 심정지 오지 않은 게 다행이란 말입니다. 최선을 다 할 테니 일단 나가세요." 의사도 맞받아 소리를 쳤다.
소연이 철묵의 팔을 잡아끌어 밖으로 나왔다.
"할아버지가 위험해! 나는 할아버지에게 가 봐야할 것 같아! 너도... 아니다." 소연이 뭔가를 주저하다 복도를 달려 나갔다.
소연의 그런 모습에 퍼뜩 철묵은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다고해서 수현의 상태가 호전되는 것도 아닐 터였다. 우선은 원주의 신병이 우선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기습한 자들의 목적은 원주의 목숨일 것이란 데에 철묵의 생각이 미쳤다.
아마도 소연 역시 그 말을 하고 싶었던 듯 했다.
철묵이 복도를 사라져가는 소연의 뒤를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1층으로 올라오자, 3층 건물의 모든 인원이 원주가 있는 장원으로 몰려간 듯 보였다.
이들은 평소에도 이미 이런 모의훈련을 한 경험이 있는 듯 신속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여전히 비상벨이 울리고 있는 건물을 벗어나 철묵은 원주가 머무는 곳을 향해 달렸다.
장원의 안에서는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기합소리까지 5일 장터를 방불케하는 소란이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었다.
철묵은 빠르게 원주가 머무는 가옥 쪽으로 몸을 옮겨갔다.
기습한 복면의 자들은 철묵이 처음 예상한 정도의 숫자가 아니었다. 처음 대여섯 정도로 여겼던 숲속에서의 움직임이, 막상 원주의 가옥의 작은 정원에만 그 만한 숫자가 장원의 인원들과 대립을 하고 있는 양상이었다.
철묵이 빠르게 그들을 피해 원주가 머무는 방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피해!" 짧은 단말마가 날카롭게 철묵의 귀를 파고들었다.
철묵이 흠칫 뒤로 시선을 가져가자 놈들 중 한 명의 칼날이 자신의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경공술이었다. 선 자리에서 5~6미터를 단숨에 날아 지쳐 들어오는 칼날인 것이었다. 가히 사람의 동작이라고 믿기 힘든 것이었다.
철묵이 마루를 구르며 간신히 칼날을 피하자 칼날 끝이 그대로 나무기둥에 깊숙이 박혔다.
복면을 쓴 놈이 자신의 칼을 버리고 다시 한 번 붕 떠오르며 철묵을 덮쳐왔다. 또 다시 3~4미터를 좁혀오는 놀라운 몸 동작이었다. 마치 다리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철묵이 옆에 있는 마루기둥을 손으로 잡고 방패 삼아 놈의 날아오는 주먹을 피했다. 그러자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콰직!-
놈이 휘두른 오른손 주먹에 젊은 여자 허리통만한 기둥의 삼분의 일이 꿰뚫어져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철묵이 두 손으로 기둥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기둥을 놓치고 말았을 상황이었다.
-퍽! 파작!-
"커억!"
그 순간에도 철묵은 반격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기둥을 빙글 돈 철묵이 그 반동으로 두 발을 놈의 옆구리에 찔러 넣었다. 놈이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정자살문을 뚫고 안으로 튕겨져 들어갔다.
원주가 머무는 안방에서는 더욱 살풍경이 벌어지고 잇었다.
기습용 짧은 일본도가 전등의 불빛을 받아 여기저기 빛을 반사시키며 어지럽게 날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짧은 죽비를 든 원주의 모습이 동분서주 벽면과 천장을 두 발로 내달리며 정신없이 놈들을 휘몰아쳐가고 있었다.
가히 입선(入禪) 경지라는 말이 달리 나온 게 아니었다.
철묵이 뛰어들며 그런 원주의 뒤를 노리는 무리 중 한 놈의 뒤통수를 날아오르며 선무도의 휘돌려차기로 그대로 적중시켰다. 놈의 고개가 맥없이 꺽이며 그대로 방구석으로 나가 떨어졌다.
철묵이 방바닥을 구르며 놈이 놓친 칼을 잡아챘다. 놈들 중 두 명의 칼날이 그런 철묵의 뒤를 덮쳐왔다.
-챙! 챙강!-
철묵이 검을 쥐고 채 일어서지 않은 채, 앉은 상태로 빠르게 돌아서며 그런 놈들의 칼날을 맞받아 쳐냄과 한 동작으로 바닥을 구르며 놈들의 하체를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그 중 한 놈의 오금에 칼날이 들어갔다.
"윽!"
그런데 그 뒤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쉭! 스겅!-
철묵이 칼을 휘둘러 놈들 중 한 명의 오금을 벰과 동시에 다시 구르기로 놈들의 칼날의 공격권에 벗어났다 생각한 순간, 오금에 칼이 베인 놈이 방심한 틈에 검도사범이 방안으로 미끄러지듯 뛰어들며 놈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린 것이었다.
놈의 머리가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놈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천장을 향해 뿜어졌다.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피를 뒤집어 쓰고 말았다.
마치 그 모습이 야차의 형상처럼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검도사범이 놈의 떨어진 머리를 집어 들고 밖으로 훽 던졌다.
"오늘 네 놈들의 사지를 모두 찢어발겨주마! 뿌드드득!" 사범의 우렁찬 목소리가 어금니를 맞물려 가는 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모두의 귀를 파고들었다.
"와아~! 모두 죽여주마! 죽여주마!......" 장원 여기저기서 사범의 목소리에 호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안에는 이제 놈들 중 다섯이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 중 한 놈이 갑자기 소름이 오소소 돋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놈들이 서로의 얼굴을 향해 눈빛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놈들이 일제히 칼을 떨어트리고 가슴으로 손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방안의 모든 사람이 놈들이 다른 수단을 동원하려는 낌새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놈들이 가슴에서 권총을 꺼내 일제히 원주를 향해 겨누려 했다.
사범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한 놈의 가슴에서 손을 빼내는 팔을 잘라냈다.
"크악!......"
동시에 철묵도 칼을 고쳐 쥐고는 그것을 다른 한 놈의 가슴팍을 향해 날렸다. 그러자 가슴에 손을 넣은 채로 칼이 그대로 손을 꿰뚫고 가슴에 꽂히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것과 별개로 세 명이 뽑아든 총이 일제히 원주를 향해 발사됐다.
-탕! 탕! 탕!-
원주가 순간적으로 죽비를 든 손과 팔로 가슴을 막았지만 세 발 중 두 발이 가슴과 복부에 적중하고 말았다.
-삐이익~!-
놈들의 경공술은 적이지만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만한 것이었다.
총이 발사됐다 싶은 순간 이미 놈들은 밖으로 뛰쳐나가 지붕 위로 쇄겸을 날리며 귀신처럼 긴 호각소리와 함께 사라져갔다.
"원주님!"
"할아버지!"
쓰러진 원주의 곁으로 영민과 소연이 달려와 붙들었다.
"빨리 수술실로......"
검도사범이 원주를 들쳐 업었다.
수술실로 모두가 원주를 업은 사범을 위시해 몰려들고 있었다. 그 가운데 막 들어오던 김 박사 일행과 건물 1층 로비에서 마주쳤다.
"아니 원주님! 어찌된 일입니까!?" 김 박사가 지하로 따라 붙으며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총상입니다. 박사님!" 언제 나타났는지 송유진 비서가 바싹 김 박사의 곁에 붙어 뛰며 말했다.
청바지에 하늘색 블라우스도 온통 피투성인 채였다.
"허! 이런! 갑자기 무슨......"
"습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장원에 많은 환자가......" 송유진의 말이었다.
"지금 수현 양도 위급하다고 하니, 김 선생이 당직 선생과 수현 양을 맡아요. 내가 다른 선생들과 원주님 상태부터 볼 테니, 그 뒤로 협의해 가면서 일을 진행시키자고요!? 그리고 나머지 환자는 더 이상 이곳에서 처리가 불가능하니, 내가 대학병원에 연락할 테니, 그리로 보내세요. 위급한 환자는 이곳에서 직접 이송하고, 그렇지 않으면 구급차로 이송하는 것으로." 김 박사의 송유진을 향한 다급한 말이었다.
철묵은 수현이 위급하다는 말에 다시 한 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송유진이 원주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선 채로 머리를 감싸고 있더니, 갑자기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 48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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