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나의 스승은 고양이
* * *
"철민아! 이 거 어디서 온 거라고?" pc모니터와 각 종 자료와 논문집으로 쌓여진 책상에서 머리가 희끗한 한 중년이 머리를 빼꼼히 들고 말했다.
"거기 맨 앞장에 메모지를 클립으로 꽂아 놨는데... 어딘지도 없고 그냥 이름하고 호출번호만 적혀 있더라고요." 회의 테이블에서 학부생들에게 나눠 줄 프린트물을 정리하던 조교 육철민이 교수를 보고 말했다.
"교수님! 특이하죠!? 교수님이 보셔야 할 것 같아서 따로 책상에 올려놨습니다. 저도 언뜻 내용을 살펴봤는데... 정말 이게 이론적으로 가능 할까요!?" 어느새 메모지를 살피는 교수 옆으로 다가온 육철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글세......!"
"호출번호를 남기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혹시 강철묵 씨?"
"예. 맞습니다."
"저는 KIST 인지공학부 교수 윤웅렬입니다. 저에게 논문을 보내신 분 맞으신가요?"
"예. 제가 보냈습니다. 어떻게 잘 읽어보셨는지......?"
"예. 일단은... 그런데 왜 제게 이런 논문을 보내셨는지 궁금하더군요? 직접 학계에 발표하시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으로 봤습니다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에 소속되어 계신지 여쭤도 될 까요?"
"그 보다 제가 직접 찾아 뵙고 설명을 드렸으면 합니다. 부탁을 드릴 일도 있고요."
"제게요!?...... 그러시죠. 언제가 좋겠습니까?"
"교수님이 정하시죠. 제가 거기에 맞춰보겠습니다."
"저는 내일 당장이라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도착하기 전에 이 전화번호로 전화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 * *
제로는 철묵이 내민 프린트물을 보고 있었다. 제로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철묵이 한 장 한장을 넘겨주면서.
철묵은 생각보다 매우 습득이 빨랐다. 역시 박사님의 과거인 답게, 본인 자신이 과학에 매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 철묵이 내민 것은 내가 제시한 '브레인 디코딩'이라는 기술을 논문 형태로 기술한 것이다.
내용은 빈틈없이 꼼꼼히 잘 기술되었다. 이제 이것을 윤웅렬 교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었다.
브레인 디코딩은 뇌신경세포의 활성 패턴과 분석을 통해, 뇌에 생각과 그것에 의한 신체의 움직임을 알아내려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만 확보한다면 나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길이 만들어지므로 이후 연구는 더욱 가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난관이 있었다.
첫 째, 슈퍼컴퓨터를 넘어서는 대용량의 처리 속도를 보장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필요했다.
둘 째, 각 실험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 즉, 뇌파 측정 기기와 근적외선 측정 기기, MRI와 영상화 기기 등의 수 많은 기기들이 필요했다.
셋 째, 이 모든 것들을 운용할 수 있는 숙련된 연구자들이 필요했고, 그 장소 또한 필요했다.
우선 이 실험에 맞는 양자컴퓨터의 기술을 접목한 슈퍼컴퓨터를 먼저 설계했다.
그리고 철묵을 통해 연구실도 마련하게 만들었다.
나머지 각종 실험기기와 연구진들은 윤웅렬 교수를 어떻게 포섭하느냐 이었다.
나의 데이터에 의하면 윤웅렬 교수는 아직 뇌과학이 뿌리 내리지 못한 이 시점에 인지공학과 관련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사람이었다.
이 논문 정도면 분명 교수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 연구에 동참할 것인지, 그것도 적극적인 개입을 해 줄지가 의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그의 주도하에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철묵이 교수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모든 게 달려있었다.
* * *
물어물어 교수실을 찾을 수 있었다.
긴장이 된다!
제로를 제외한 누구 앞에서 PPT를 해보는 건 처음이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젊은 목소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때마침 문을 열어주려던 젊은 남자와 마주쳤다.
"어떻게 오셨는지...?"
"예. 강철묵이라고 합니다. 오늘 교수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아! 예......" 젊은 남자가 상당히 놀란 눈치를 보였다.
들어선 내부가 온통 실험가재도구와 책들 그리고 프린트물로 성벽을 쌓듯 둘러싸여 있었다.
"교수님 강철묵 씨 오셨습니다." 젊은 남자가 아무도 없는 책상 쪽을 향해 말을 하자 교수가 불쑥 책과 프린트물이 쌓여진 책상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가오며 교수가 철묵을 반겼다.
한눈에 봐도 왜소한 신체였다. 키는 165센티 정도에, 걸친 카디건이 커서 하체까지 내려와 있어 더욱 작게 만들고 있었다.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던지 코끝에 돋보기안경을 걸친 채였다.
"이리로... 철민아 차 좀!? 아 저희가 커피밖에 없어 놔서... 미리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교수가 민망했던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궁색한 변명을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만나주시는 게 어딘데요."
"그런데... 나이가... 상당히 젊으신 분으로 보이는데!?" 교수가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돋보기 너머로 나를 살폈다.
"예. 열일곱 살입니다."
"예?......" 한쪽에서 커피를 타던 젊은 남자와 교수가 이구동성으로 놀라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먼저 이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제 스승님은 따로 계십니다."
"아하! 그렇지요!? 그런데 스승님 존함이......?"
"죄송합니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몸도 많이 안 좋으셔서 외부활동도 전혀 할 수 없으신 상태구요."
"음~!......" 교수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아마도 밝힐 수 없다는 단서에 뭔가 미심쩍은 느낌을 받는 듯 보였다.
'내 스승이 고양이라고 하면 당신들 반응이 어떨까? 아마도 미친놈 취급을 할 텐데, 그런 위험을 감수 할 수는 없잖아!?'
"홀로 연구를 하시다 지금은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고, 저에게 연구를 전수하신 것입니다. 스승님은 세상의 명예나 명성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살아계신 동안에 어느 정도라도 본인의 연구가 성과를 맺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교수님을 찾게 된 겁니다."
이건 순전히 임기응변이었다.
제로와 이런 내용을 상의한 적은 없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게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은가. 처음부터 못 믿을 일이 일어난 것을......
"아! 그렇군요! 뭐라 위로를...... 그런데 논문을 보면 워낙 탁월해서,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교수가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물었다.
"보내드린 논문에서는 브레인 디코딩에 관련된 것이었지만, 스승님이 바라시는 건 궁극적으로 뇌신경과 컴퓨터를 연결해 인간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음~! 물론 논문을 봤을 때, 브레인 디코딩이란 것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생각을 읽거나,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겠죠. 스승님의 논문의 이론은 내가 첨삭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스승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어느 한 이론이 완벽하다해서 그 기술이 현실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외 부가적 연구나 기술들이 밑받침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뇌신경과 컴퓨터를 연결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만한 컴퓨터의 기술 역량이 되지 않습니다. 그 외의 것들도 마찬가지고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그에 맞는 컴퓨터의 설계 및 ECOG(전극을 뇌에 꽂지 않고 올려놓고 측정하는 기술), EEG(뇌파 측정 기술 - 뇌 신경세표 사이에 전기적 흐름을 측정), NIRS(근적외선 분광법 - 근적외선을 이용하여 뇌의 혈액활동을 모니터링, 특정활동을 측정), fMRI(MRI의 업그레이드 방식 - 뇌의 활동을 영상화하여 지도화하는 데 사용) 등, 본 실험에 맞게 그 외의 기기들까지 모두 설계해 두셨습니다."
"허~ 거참!...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지금 그 모든 걸 스승님 혼자서 다 하셨다는 말인가?"
"교수님이 믿기 힘드신 거, 일정 부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말로서 교수님을 설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서 교수님의 협조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수님께 전체적인 방향성과 보내드린 논문에 대해서 부가적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온 것입니다. 교수님이 어느 정도 협조의사를 밝혀 주시면, 지금 말씀드린 설계도와 설명서를 첨부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승님이 이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 모방이 아닌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긴 역사로 보면 그저 모방에 지나지 않겠으나, 인류를 볼 때 큰 한 걸음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음~!... 허나 내 협조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군?"
"교수님이 이 실험을 주도하시길 바라십니다. 연구실과 그 외 재원의 확보는 되어 있습니다. 교수님은 이 실험에 맞는 연구진을 꾸려 진행하시면 됩니다. 여기... 저희 회사 고문변호사 명함입니다. 연락하셔서 연구실도 둘러보시고 필요한 시설이나 리모델링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거기에 맞춰서 진행할 겁니다."
"회사의 투자를 받는 것인가?"
"상업적인 의도는 없습니다. 제 어머니의 회사인데 재원 마련을 위해 형식상 존재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교수님과 연구진의 연봉형식의 계약에도 필요하고, 또한 모든 연구결과는 교수님과 연구진의 몫으로 돌아가겠지만, 일정기간 회사와 연구에 대한 비밀서약 계약은 해주셔야합니다."
"음~!......"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교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결단이 섰는지 말문을 꺼냈다.
"알겠네! 먼저 스승님의 의도는 알겠고, 언제 한번 내가 찾아뵐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고 전해 주시게. 그리고 자네가 말한 대로 나머지 설계도를 보내줬으면 하네. 그래야 연구진 구성도 고려할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학교를 설득시킬 만한 협약이 필요하네. 회사 차원에서 말일세.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나?"
"예. 업무협약(MOU)은 고려하고 있습니다."
교수와의 회견은 일단 이렇게 끝을 맺었다.
논문에 대한 부가 설명을 준비했지만, 그동안 준비한 게 무색하게 그 부분은 건너뛰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교수의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으니 반절의 성공인 셈이었다.
교수와 회견을 갖고 이틀 째가 되었다.
교수가 요구가 설계도와 부가된 설명서를 보냈다.
이제 교수의 가부 결정만 기다리면 되었다. 거기에 따라 차후 문제는 결정 여하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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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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