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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검우 님의 서재입니다.

대설 (大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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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제검우
작품등록일 :
2021.05.31 14:04
최근연재일 :
2021.05.31 14:06
연재수 :
1 회
조회수 :
128
추천수 :
3
글자수 :
5,271

작성
21.05.31 14:06
조회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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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대설

DUMMY

1943년 겨울, 그해는 어느 해 보다 많은 눈이 왔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10년 만에 보는 대설이라 입을 모아서 얘기했다.


식민지의 겨울은 추웠다. 미국과의 전쟁의 시작으로 전선은 태평양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로 넓어져만 갔고 군부는 넓어진 전선을 채울 사람과 물자의 징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징집되어 징용병으로 전선으로 보내졌고 남아있는 여자와 아이들은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되어 극심한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성은 그래도 반도의 수도여서 다른 지방보다는 사정이 낳았다. 한창때보다는 그래도 손님의 수가 줄었지만 요정등 술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고 전기 보급도 나쁘지 않았다.


인철은 술상을 놓고 마주 앉은 두 친구를 올려다보았다. 대학에 와서 처음 본 친구들이지만 본 첫날부터 셋은 10년 지기처럼 어울려 다녔다. 술집에 도서관에 자취방에 셋이서 같이 보낸 시간도 벌써 2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쉽게 친해졌던 친구들 이였다.


"그래 이번에 징용은 어찌할 셈인가?"


정섭이 물었다. 그는 이제 피할 길이 없는 일제의 징용에 대하여 어찌할 것인지 물어보고 있었다.


"방법이 없지 않나. 끌려가든 아님 도망가든 둘 중에 하나지!"


소훈이 술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는 이미 마신 서너 잔의 술에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일제의 징용은 벌써 수차례 진행되었고 이제는 그들 대학생까지도 징용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지랄맞은 세상!"


정섭이 술잔을 들이키며 세상을 한탄한다. 그는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가 싸워야 하는 세상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태평양 어디의 섬이나 동남아시아 어디의 정글에서의 전쟁은 더더욱이나 남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식민지의 청년들 그들은 그들이 충성해야 될 조국이 없었다. 일본이 국가였으나 엄연히 자신의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인 것이다. 일본에 충성을 다해 싸우다 죽기는 싫은 것이다.


"난 상해로 가겠네 가서 임시정부에 들어 광복을 위해 싸우겠네!"


정섭이 결심한 듯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제를 위해 싸우다 죽기는 너무 억울해!"


그 말에 인철은 정섭을 쳐다보았다. 그는 가세가 빈곤해 입주 가정교사를 하며 겨우 학비를 벌어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경남의 어느 몰락한 양반 가문의 후예로 본가에는 홀어머니와 여동생이 품앗이를 하면서 경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정섭은 학교를 빨리 졸업하고 몰락한 가세를 일으켜 세워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봉양할 책임이 있었다. 이렇게 쉽게 탈영과 임시정부를 얘기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본가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어찌할 셈인가?"


인철이 물어보자 정섭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마셔버린다. 그도 괴로운 것이다.


"방법이 없어, 이대로 징용에 끌려간다고 하더라도 살아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지. "

"하긴,"


인철이 말을 받았다. 그도 정섭이 그 모친과 여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징용은 결정된 것이고 그가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그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난 만주로 가볼까 해! 거기 팔로군 휘하에 조선의용군에 들어 나라를 위해 싸워볼까 하네!"


인철이 고심 끝에 얘기한다. 가끔 신문지상이나 인편을 통해 아름아름 중국의 홍군내에 조선군 조직이 있고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다. 란 얘기를 그도 듣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이었다. 그 끝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이었다.


"좋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소훈이 말을 받는다. 그는 꽤 유명한 고관 집 둘째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일제로 무슨 작위를 받은 귀족이었고 형은 동경 유학에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속칭 친일파 집안을 둘째 아들이었다.


"자네는?"


인철이 물어보자 소훈이 자조가 섞인 웃음으로 얘기를 했다.


"나야 수단이 있나. 아버지와 형과 집안이 온통 왜색이 가득한 집안인데. 독립운동, 탈영, 집안에서 쫓겨나고 집안 망가트린다고 가문에서 축출될 일이지! 얌전히 끌려갔다가 몸성히 돌아올 생각이나 해야 되지 않을까 하네. 다행히 가친이 손을 좀 쓰면 전선은 피하고 후방에 있을 수 있는 게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눈이 오는 식민지의 밤은 세 젊은이의 한탄과 술과 더불어 깊어가고 있었다. 이 잔인한 시대에 그들은 각기 다른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그리고 조국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 하고 있었다. 그날 밤 경성 일대는 한길이 넘게 눈이 왔고 사람들은 10년에 한번 보는 대설이다 입을 모아 말했다.


1953년 서울 휴전협정이 끝나고 남쪽에서는 무장공비 소탕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조국의 재건에 힘을 다하려 하고 있었다. 전쟁의 여파로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은 팍팍했고 하루 두 끼 혹은 한 끼의 죽으로 연명만 할 수 있으면 죽지 않음을 감사해 했다.


서대문 형무소.

그는 인천 상륙작전 이후 미쳐 퇴각하지 못한 인민군이었다. 지리산에 들어가 빨찌산 투쟁을 지속하다 최근의 토벌대의 작전에 포로가 되어 심문을 위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형무소에 수감되던 날 10년 만에 보는 친구가 형무소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10년을 그 자리에서 기다린 것처럼 그와 그 친구의 10년 만의 만남은 형무소의 한구석에서 예비 되었다.


"자네가 이리 올 것 같은 느낌이 있긴 했는데 정말 이리 볼지는 몰랐네."


그는 정섭이었다. 10년 전 그날 눈이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이 오던 그날 밤 술잔을 나누고 헤어졌던 그 상해에 가서 임시정부를 위해 일하겠다던 그 정섭이었다.


"나야말로 자네를 이런 데서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지."


정말이었다. 임정에서 일을 했으면 귀국하고 김구 선생과 함께 남한 어디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조국의 건설에 일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친구였다. 이리 서대문 형무소의 한구석에서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 어찌하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 오게 되었나? 마지막이 팔로군으로 가겠다로 기억하고 있네만"


정섭이 다리가 부러지고 알이 깨진 안경 너머로 인철에게 물었다.


"글쎄, 뭘 어찌했길래 여기까지 흘러들어 오게 되었을까?"


인철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그의 지난 10년을 생각해 본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뭘 잘못 살았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것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관동군으로 입대를 하고 전투가 벌어진 틈을 타 탈영을 했네! 그리고 홍군을 찾아 조선의용군에 지원입대를 했네! 그리고 일본군과의 전쟁.. 일본이 패망하고 나니 그 다음엔 백군과의 내전이 기다리고 있더군! 홍군은 백군과의 내전을 앞두고 조선의용군을 놔주려 하지 않았네! 또 남의 나라에서 남의 전쟁에 총칼과 피를 보탰지, 그러다가 장개석이 패퇴를 하자 그제서야 압록강을 통해 북조선에 들어 올 수 있었지. 그게 1949년 이였네! 이제 군복을 벗고 책을 보고 조국을 건설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네, 김일성은 조선의용군을 중심으로 군을 재편하더군! 그게 전쟁 준비였네! 그리고 6.25 한민족끼리의 전쟁이었지! 낙동강 전선에서 이제 이것만 무너트리면 전쟁은 끝이다 란 생각으로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서울이 점령당하고 퇴각을 위한 길이 끊겨 버렸네! 중앙에선 입산해 활동을 계속하라고 지령을 내렸지, 그다음은 지리산 입산 빨찌산이 되어서 3년간 산사람으로 살았네! 그러다 토벌작전에서 포로가 되어 이리 오게 되었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살기 위해 버텨온 잔인한 세월이었다. 정말로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버텨온 잔인한 세월이었다.


"그런 자네는? 내게 말한 대로 라면 남조선에서 뭐하고 하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 자리는 자네에게 더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닌가?"


인철이 정섭에게 물었다. 그가 왜 서대문 형무소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지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보자, 자네와 헤어지고 난 뒤 난 바로 상해로 가는 배를 탔지! 상해에 도착하니 임정이 남경으로 옮겼다고 하더군 그래서 남경으로 따라갔지 거기서 임정 사람들과 김구 선생님을 만날수 있었지! 다행히 임정에서 일을 할 수가 있었네! 물론 낮에는 임정일 밤에는 생업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내 지난 인생에 가장 보람된 가치 있었던 세월이 아녀였네 하네.. 그러다 일본이 패망하고 김구 선생을 따라 귀국을 하면서 김구 선생님의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네! 그분이 암살당하기 전까지, 그분이 안두희에게 어이없이 암살을 당하고 나자 눈에 보이는 것이 없더구만 미 군정과 이승만에게 뭐라도 해서 복수를 해야지, 미쳐버리겠더군! 그래서 미 군정과 이승만에게 여러 번 분탕질을 하다가 결국에 잡히고 이 신세가 되었지!"


후에 안 내용이지만 그는 임정에서 배운 요인 암살술로 이승만과 미 군정 요인을 여러 번 암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원래 사형이 집행되어야 하는데 전쟁통에 운 좋게 집행이 연기되어 살아있게 됐다고 조만간 집행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철은 아마 자신도 사형을 벗어나지 못할 운명인 것을 경험상 이미 알고 있었다. 인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철창 너머로 형무소 밖을 쳐다보았다.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는지 눈이 어느새 제법 쌓일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소훈 소식은 아나? 그 친구는 어찌 되었는지,"

"소훈이 말인가? 그 친구는 또 다른 식민지 청춘의 삶을 살아갔지! 아버지와 형 가족이 모두 독립군의 폭탄과 총탄에 한날한시에 죽었네! 유일하게 이 친구만 자리를 피해 살 수가 있었는데, 그 뒤로 사람이 미쳐버렸네! 만주 군관 학교에 자진 입대를 하고 졸업한 후 일본군 관동군 장교가 되어 만주에서 독립군 그리고 마적들을 잡으러 다녔지 특히 조선 사람들에게 가혹했다고 하더군! 그 뒤로 일본이 패망을 하고 한동안 주색잡기에 빠져 살다가 국군 정비 사업에 지원해 국군 장교가 되었네 그리고 그의 복수의 대상은 독립군에서 공산주의자 빨갱이로 바뀌었지! 여순 반란사건, 제주도 모두 큰 공을 세워 초특급으로 진급했다고 하더구먼! 그러다 6.25 전쟁 초기 남하하는 공산군에 부대와 함께 전사했다고 하더구먼!"

"그랬나?"


인철의 시선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쫓고 있었다. 전쟁 초기 춘천 인근에서 패퇴하는 국방군 사이로 독하게 버티고 있는 부대가 있어서 그 부대를 전멸 시키는데 이근 전력이 모두 동원, 귀중한 3일을 소모한 적이 있었다. 생존자, 포로 하나 남기지 않은, 말 그대로의 전멸이었다. 그때 그 부대가 소훈의 부대였는지 그때의 지휘관이 소훈이었는지는 그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의 시선이 내리는 눈을 따라 창살 사이로 보이는 조각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잿빛 눈으로 조각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잿빛 조각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도 그 잿빛 조각하늘이 걸려 있었다.


그날 서울은 한 길이 넘을 정도의 큰 눈이 왔다. 사람들은 10년 만의 대설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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