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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악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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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64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7.12 20:18
조회
494
추천
25
글자
7쪽

(012.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나요

DUMMY

"이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어. 눈을 뜨면 하루가 지나있고 눈을 감으면 또 하루가 지나가지. 정신을 차리고 날짜를 세어보려 해도 역부족이야. 매일 저녁 느껴야하는 굴욕감이 싫어 눈을 감았다 뜨면 또다시 시작되고 있어. 해는 늘 그 자리에 떠 있고, 달도 마찬가지. 가끔씩 긿을 잃은 여행자들은 뜯겼어. 뜯기고 또 뜯겼어. 아직도 뜯기고 있지."


라클카는 눈을 꾹 감았다 뜨며 그들에게로 오른손을 뻗었다. 그들에게로 뻗힌 팔에 잔뜩 힘이 들어가있다. 또다시 회색 연기가 나오진 않을까 긴장한 데르옌이 다리 근육을 움찔거렸다. 라클카는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펴며 긴장을 푼 뒤 손바닥을 위로 향하도록 손을 뒤집었고,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의 부분을 위로 살짝 튕겼다. 라클카의 팔은 마치 팔꿈치 아래로는 뼈가 없는 것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바로 뒤에 있는 결계에서부터 연한 초록빛과 분홍빛이 섞인 파문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둥그런 구체를 타고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결계가, 전체적으로 가볍게 진동했다. 바깥이 보이지 않도록 뿌옇게 변해버렸다. 피오니는 무심결에 결계로 고개를 돌렸다 결계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뒤가 비치는 결계로 저를 부르는 라클카를 본 피오니는 라클카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언니는 나가도, 오빠는 나가지 못하겠죠?"


피오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아무래도 데르옌은 무리다. 그가 자신에 비해 모자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결계를 나가기 위한 기준에 그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오빠도 나갈 수 있게 해줄게요. 대신,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할 거야."


라클카는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검지를 꼿꼿이 세웠다. 그 손끝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라클카는 제 아랫입술을 윗니로 꾸욱 눌렀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왼손의 엄지로 그것을 훔쳐낸 라클카는, 제 검지 끝에 시뻘건 피를 묻혔다. 분명 많은 양이 아니었을 텐데도 빨간 액체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 손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라클카가 손을 휘둘러 그것을 결계 쪽으로 뿌렸다.

피는 결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결계에 부딪혀 흘러내렸다. 피가 흘러내리며 닿는 부분마다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미친듯이 울렁였다. 계속해서 천천히, 느리게 흘러내리던 핏줄기는 땅에 닿기 직전 그 움직임을 멈췄다. 무언가가 막고 있는 것처럼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위의 것들은 계속해서 흘러내렸고, 라클카의 피는 땅 바로 윗부분의 결계에 맞닿은 경계면을 따라 옆으로 길게 가는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선에서부터 결계가 걷혀가기 시작했다. 늘어뜨린 천을 다시금 감아올리는 것처럼, 희뿌연 결계가 위로 말려올라가는 것은 실로 장관이었다. 피오니는 저도 모르게 데르옌의 팔을 붙들었다. 사라져가는 저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슬픈 기분이 들어 다른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그것은 데르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야 돼요."


라클카가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들이 빠져나왔던 동굴 안쪽에서 희미한 메아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정말 저들에게 잡힐 지도 모른다. 데르옌과 피오니는 굉장한 전력이었지만, 그 힘을 함부로 남발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혹시라도 누군가 그 기운을 감지한다면 그들은 곧장 포획되고 말 것이다.


"빨리, 가야 돼요. 그리고 저 사람들한텐 언니 힘도 안 통한단 말이야.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잡혀 죽기 싫으면 빨리 나가요."


데르옌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피오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피오니는 라클카를 보며 다급히 물었다.


"넌, 너는? 넌 안 나가?"

"뭘 들었어요? 못 나간다니까. 이곳으로 오기 전에 분명히 말했잖아요. 빨리 나가요. 오빠 혼자서라면 충분하지만, 언니를 지키기는 힘들어. 언니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할 테니까. 난 이 마을이 생길 때부터 있었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면 마을이 사라질 때 나도 사라지는 게 당연해요."


라클카는 피오니와 데르옌에게로 달려가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작은 동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였고, 잡으면 반드시 가만두지 않겠다며 벼르는 소리였다. 피오니는 라클카를 데리고 나가려 했으나 라클카는 오히려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서며 데르옌을 재촉했다. 데르옌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피오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피오니는 연신 뒤를 돌아보았지만 끌려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결계 밖으로 나왔다. 피오니는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데르옌의 손을 간신히 뿌리치고 외쳤다.


"라클카는, 라클카는...!"

"알지 않습니까.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한 것, 듣지 않았습니까."


피오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데르옌은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고 있는 피오니를 보다 눈을 감은 채 결계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피오니는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었다.


"있잖아요, 데르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도 단번에 아, 이 사람은 지쳐버렸구나, 하고 느낄 것 같이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데르옌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피오니는 데르옌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 터다. 서로를 보지 않은 채, 피오니는 말을 이어갔다.


"라클카는... 몇 년 동안이나 그곳에 갇혀 고통받고 있던 걸까요?"


알 수 없다. 애시당초 마녀가 등장한 것은 채 십 년도 되지 않은 일. 그러나 라클카는 분명 제가 오랜 시간 그곳에 갇혀있었다고 했다. 결계를 열기 전의 라클카는 분명 스물 중반의 여인으로 보였다. 데르옌은 제 감을 믿진 않지만 오래 된 마법은 간혹 짧은 시간 작은 부분이 순간적으로 풀어졌다 복구되는 일이 있다고들 했다. 그렇다면, 그 말대로라면 라클카는 마녀가 세상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 마을에 갇혀있었다는 것이 된다.

아무도 마을에 무언가 생겼다는 것을 모르고, 아무도 저들이 점점 미쳐간다는 것을 모른다. 아무도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것을 모르고, 아무도 본능에 이끌리는 저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라클카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데르옌,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작가의말

오늘따라 글 쓰기가 정말, 너무 어려웠습니다.

천 자 채우기가 힘들고, 천 오백 자 채우기가 힘들고. 정작 이천 자가 넘어간 시점에서는 쉽게 쭉쭉 잘 뽑혔습니다만, 어째서 그렇게 어려웠던 건지는 의문입니다.

마법을 쓰는 장면을 넣어보았습니다. 어떻게 보일 지 모르겠네요. 제가 생각하는 마법은 이런 겁니다.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굳이 무슨 의미를 찾으려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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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73 지나가는
    작성일
    13.07.14 12:49
    No. 1

    이제 또 도망치느라 바쁘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3.07.14 13:58
    No. 2

    이제는 도망칠 필요는 없고, 들키지만 않으면 되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오후
    작성일
    13.07.16 00:21
    No. 3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3.07.20 16:30
    No. 4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는 결국 펑크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덧글 보고 힘내서 썼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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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나요 +4 13.07.12 495 25 7쪽
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4 30 8쪽
11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78 62 7쪽
10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5 48 7쪽
9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2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6 9 7쪽
7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4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4 26 8쪽
5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20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7 28 7쪽
3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4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60 35 7쪽
1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5 4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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