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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악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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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53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6.21 20:16
조회
1,224
추천
48
글자
7쪽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DUMMY

"뭐, 어쨌건, 그건 그렇다 치고."


사내는 코 밑을 다시 한 번 훔쳤다. 콧수염 끝에 매달려있던 술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내는 허리춤에 얹었던 손으로 저보다 한참 높은 데르옌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것을 신호로 이 작고 황량한 마을은 원래대로의 나른한 활기를 되찾았다. 이 사내가 이들의 우두머리 격인가? 데르옌은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피오니는 데르옌의 뒤에서 조심스레 걸어나와 데르옌의 옆에 섰다. 본능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나보다. 사내는 그들의 앞에서 걸어가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 마을엔 볼 거 없어. 거기 계집은 알려나 모르겠는데, 이런 마을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한물 간 매춘부들하고, 각다귀같은 애새끼들하고. 이런 곳에서 출세하는 게 벼락맞는 것보다 어려울걸?"


사내는 그들을 제 집으로 인도했다. 사내가 문으로 다가서자 문틈으로 그들을 엿보던 계집아이가 안쪽으로 도망갔다. 생각보다는 꽤 넓은 집이었다. 방도 두 개나 있고, 화장실도 따로 있다. 블라인드를 쳐놓은데다 잔뜩 어질러놓아서 그렇지 잘만 꾸미면 꽤 좋은 집이 될 것 같았다. 피오니는 새삼스레 집을 둘러보았다. 그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없었다.


"거 참, 더럽게 말 없네. 거기 아무데나 앉아 계쇼. 나무꾼이라는 놈들은 죄 맛이 간 녀석들밖에 없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못 듣고 있거든... 차, 괜찮겠소? 요새 마녀 얘기로 떠들썩하던데, 알고 있는 건 좀 털어보지..."

"글쎄, 나도 그닥 관심은 없어서 잘 몰라. 그러고보니 이 근처에도 싹쓸이당한 마을이 하나 있다지 않았나?"

"아, 요 옆동네였지. 광산 촌이었는데 말이야..."


피오니가 본능적으로 데르옌의 팔을 꼭 움켜쥐었다. 데르옌은 안심하라는 듯 그 손 위에 제 손을 덮었다. 피오니는 자신이 없앤 도시와 마을이 어느 곳에 위치해있는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마녀를 잡기 위해 쫓아다니던 데르옌이 더욱 상세하게 알고 있다. 피오니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두운 실내에서도 피오니의 얼굴이 새하얘진 것이 확연히 보였다.

새까만 계집아이가 그들에게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데르옌은 계집아이를 똑바로 응시했다. 계집아이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과만 살아왔던 피오니는 어린 여자아이라는 존재가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그것도, 저를 무서워하지 않는 여자아이는 더더욱.


"이름이 뭐예요? 나는 라클카."


계집아이는 저를 라클카라 칭하며 속삭이듯 물어왔다. 주방으로 들어간 사내의 귀에 제 목소리가 들어가면 큰일이라도 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데르옌은 라클카와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피오니는 라클카와 같이 속삭이며 대답을 했다.


"라클카? 독특한 이름이구나. 피오니, 나는 피오니라고 해."

"언니 이름이 더 신기해요. 라클카, 우리 엄마 말로는 눈꽃이라는 뜻이래요."

"그래? 어머니는 어디 계신데?"


피오니의 응답에 용기를 얻은 듯 라클카는 피오니와 데르옌에게로 조금 더 다가왔다. 그러나 손이 닿을 범위로는 결코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라클카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주방을 흘긋거리고 있었다. 라클카는 피오니가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을 뱉었다.


"언니, 오빠, 도망가요."

"응?"

"도망가요. 여기 있으면 안 돼. 아저씨가 주는 차는 절대로 마시지 마요. 이 마을은 미쳤어. 나무꾼이 안 온 지 한 달은 넘었어요. 상단도 오지 않아. 애들은 벌써 잡아먹혔어요."


라클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한 피오니와 달리 데르옌은 인상을 찌푸렸다. 현판이 잔뜩 낡은 채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건 그래서인가.


"넌 어쩌다 여기로 왔지?"

"엄마가 날 데려왔어요."


라클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빠가 도망가고 엄마랑 나는 쫄쫄 굶었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몸을 팔기 시작했는데, 옆골목 창녀들이랑 아줌마들이 싫어했어요. 그래서 엄마는 여기로 왔어요. 우리가 여기로 왔을 땐 애들 반절은 벌써 없어져 있었어요. 우리는 외지인이라 해서 이 집에서 묵게 됐었죠. 이 집도 처음에는 깨끗했어요. 아저씨는 우리 엄마를 자기 아내로 취급했어요. 아저씨가 뒤뜰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엄포를 놨었는데, 몰래 들어가보고나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았죠. 이 동네 정육점 고기가 왜 그렇게 잘고 맛이 독특했는지도."

"좋아, 네 말이 사실이라 쳐. 우리가 널 믿을 이유는 있나?"

"믿어요. 믿어야 돼요."


라클카의 눈이 주방을 향했다. 사내는 아직도 주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나, 라클카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오빠를 설득할 시간이 없어요."

"그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뭐지?"

"난 설득이 아니라 설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저씨는 날 죽이지 않아요. 아니, 죽일 수 없어요. 내가 없으면 아저씨는 완전히 혼자거든요. 밤이 괴롭긴 하지만 괜찮아요. 난 아직 처녀예요. 이 마을 사람들은 처녀는 죽이지 못해요. 왠진 모르겠어. 그래서 계집아이들은 아직 마을에 남아있던 나무꾼들에게 넘겼어요. 눈물 콧물 쏙 빼고 울고 있던 애들을 산채로 썰었어요."

"저... 라클카? 우리가 도망갈 길은 있니?"


피오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데르옌이 그런 피오니를 말리듯 어깨를 잡았지만 피오니는 고개를 저었다. 라클카가 눈을 빛내며 웃었다.


"없긴요, 왜 없겠어요? 난 살려주고 싶어요. 난 이 마을을 나가고 싶어요. 날 데려가줘요. 그러면 여길 나가게 해줄게요. 아니, 데려가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요. 나가기만 해요. 사실 날 데리고 나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난 나가선 안 돼요."


이 아이는 마치 도깨비같다. 잔뜩 때가 끼고 기름진 짙은 갈색 머리에 야수의 안광같은 새파란 빛을 내는 푸른 눈. 데르옌은 어릴 적 들었던 동화 속의 저주받은 요정을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마을은 온통 눈에 거슬리는 것 투성이다.

솔직히, 마을의 분위기가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마을이 정상적으로 보인다면야 그거야말로 사람이 아니겠지. 마을 한 구석, 잘 보이는 자리에 있던 펌프는 안 쓴지 한참은 된 듯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작가의말

선작을 해주시다니.

누구신진 알 수 없지만 복받으세요.

요새 업로드가 늦는 건 시험 때문입니다. 공부는 안 하는데 스트레스는 제대로 받아서 요 며칠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고생했어요.

여름방학이 된다고 해도 맘놓고는 놀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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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3 30 8쪽
11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78 62 7쪽
»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5 48 7쪽
9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2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6 9 7쪽
7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3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2 26 8쪽
5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18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7 28 7쪽
3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3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59 35 7쪽
1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5 4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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