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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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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로즈988
작품등록일 :
2018.06.01 22:23
최근연재일 :
2018.07.03 11:36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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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7
추천수 :
29
글자수 :
170,468

작성
18.06.0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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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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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움직임

DUMMY

저택의 높은 탑 위로 빙색조가 길게 소릴 질렀다. 기네비어가 공터에 내려서자 시종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미끈한 비늘을 가진 빙색조는 거대했고 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을것 같은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빙색조가 기다란 몸을 뒤틀자 보석같은 비늘이 우수수 쏟아지며 그 안에서 나신의 남성이 나타났다. 시종들이 기다렸단듯 달려들어 잽싸게 그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남자는 시종들을 매달고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홀을 가로질렀다. 주인은 움직이건만 분주히 그 뒤를 따르는 시종들의 손은 빠르고 견고했다. 홀이 끝나기도 전 기네비어는 어느새 완벽하고 아름다운 마법사의 모습을 갖췄다.


쯧. 가장자리가 호박과 금으로 장식된 거울 앞에서 기네비어가 옷차림새를 훑으며 내뱉은 소리다. 고된 여정에 지쳤지만 그는 짜증이 날대로 난 상태였다.


'멍청한 꼰대들!'


친족들이 살갑게 그를 맞았을 때 기네비어는 경계를 풀어선 안됐었다. 50년 만에 들린 고향이었고 앞 뒤 꽉 막힌 링곤들도 조금은 변했을 것이라 믿은게 그의 실수였다.


휘장을 열고 고대의 의식장같은 대회장으로 들어섰을 때, 기네비어는 느껴지는 공기로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높은 연단 위에 앉은 링곤의 수장인 아브네얀은 여전히 뻣뻣한 얼굴이었고, 그 아래의 20인단은 과거와 같이 못마땅한 얼굴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기네비어는 일족의 명예를 하락시킨 종자이기 때문이었다. 기네비어는 링곤의 유일한 혼혈이었다. 성공한 혼혈.


'마학모의 수장이 됐다지.'


아브네얀이 한 손으로 수염을 쓸며 지나가듯 말했고, 기네비어는 그 순간 그의 속내를 간파했다. 결국 아브네얀이 그를 부른건, 그를 인정하고 그간의 세월에 사죄하기 위해서가 아닌, 결국 그를 통해 마학모를 자기 멋대로 주무르기 위함이었다.


'뻔뻔한 노인네!'


장장 두시간에 걸친 그의 말을 기네비어는 대충 흘려들었다. 고역의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빙색조로 변모해 저택으로 날아왔다. 다른 생물의 모습을 뒤집어쓰는건 마기 소모가 심한 일이므로 되도록 자제하는게 좋았지만, 더이상 링곤에 있다간 머리가 어떻게 될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에 올라가기 무섭게 그는 잔에 술을 채워 단숨에 마셨다. 속이 뜨거워지자 분노 또한 조금은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술이 든 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어머니인 아도라는 아브네얀의 스무명의 증손자들 중 하나였다. 아브네얀은 마법계의 산증인이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욕심많고 허영심많은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다. 아도라는 그걸 잘 알기에, 하나뿐인 자식인 기네비어를 아브네얀의 눈에서 숨기기 위해 무던 노력했었다. 이렇게 간섭이 심할 줄 알았다면 기네비어는 아예 외척과 연을 끊을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의자에 몸을 기대 숨을 생각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였다. 집사가 문을 두드렸다. 젊었을 때부터 기네비어를 보필한 노집사는 자신이 나타날 때를 잘 맞추는 편이었다.


"들어와."


"마학회에서 전언이한통, 그 외 아론 시장과 몇몇의 의원들로부터 축사가 몇 통, 호루스 경과 네드 도련님께 각각 편지가 한통씩 왔습니다."


앞의 머저리들이야 신경쓸 가치도 없는 이들이었고 주의를 기울일 만한건 뒤의 두명이었다. 네드야 제자로써 그렇다치지만 나머지 하나의 이름이 심히 거슬렸다. 호루스. 그와 비슷한 이종족이자 야만인들의 정령술이나 사술에 통달한 여자는 여우같은 생김새 만큼이나 하는 짓도 교활한 여자였다. 마학회의 일곱 장로중 하나였고 어쩔 수 없이 대면하고 있다지만 기네비어는 속내는 숨긴 채 친한척 지분거리는 그 여자가 무척이나 싫었다.


일전 그의 개인적인 실험에서 한번 도움을 받은 뒤로 호루스는 가까워질 빌미를 얻은양 멋대로 행동했다. 여자는 별 시답잖은 소리를 편지로 써 보냈는데 아마 이번에도 그런것 같았다. 일전 다가오는 마학모에 파트너가 없다고 온데간데 떠들고 다니는걸 봤었다. 아마 그 문제겠지.


"호루스의 편지는 알아서 처리하도록. 그외 나머지 것들도 말야."


"네드 도련님의 편지는 어떻게 할까요?"


원래 사사로운 일들은 전부 집사의 몫이었다. 지금까지 그 나이든 살림꾼은 보고 외 잡다한 업무들을 모두 기네비어의 이름으로 수행해왔다. 편지들 또한 마찬가지다. 집사가 구태여 묻는다는건, 그가 봐야 할 사안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고보니 네드의 편지에 직접 답장을 안한지도 벌써 몇년이 지났다.


"그건 놓고 가도록 해."


기네비어는 안락의자에 깊숙히 등을 묻었다. 겉봉투부터 느끼는건데 네드의 편지는 예나 지금이나 쓸데없이 극도로 격식을 차리고 있었다. 편지는 총 두장이다. 기네비어는 발 받침대에 기다란 두 다리를 교차해 올린 뒤 네드의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한장은 쓸데없는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그는 본론으로 넘어가기 위해 빙빙 돌리는 말들을 무척 싫어했다. 슬슬 네드가 그 점을 인지하면 좋겠는데. 편지가 두번째 장으로 넘어갔을 때, 기네비어는 술이 확 깼다.


네드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카데미에왔고 트래비스와 대화를 나눈것, 연인이라는 남자를 데려온 것까지 어린아이가 이르는 투로 오펜하이머의 일거수 일투족이 세세히 적혀있었다. 네드는 오펜하이머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을 꺼려한다. 그런 그의 편지에 오펜하이머의 이름을 보게 되다니 조금은 색다른 기분이었다. 기네비어가 주목한 점은 따로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 기네비어는 천천히 그 이름을 곱씹었다. 그녀는 기네비어가 원치 않게 받아들인 또 다른 제자였다. 네드의 뒤에 있는 숲사슴 가문은 명망이 높은 마법가문들 중 하나였고, 기네비어는 한때 네드의 아버지인 로난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개인주의인 그가 네드를 제자로 삼은건 그 빚을 갚기 위한 처사였지 다른 마음이 있었던건 아니다.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는 로난이 무능한 아들을기네비어의 제자로 들이기 위해 만든 일종의 가림막이었다.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 어느 멍청한 부모가 희대의 악당과 영웅의 이름을 동시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기네비어는 조소를 금치 못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가 여자란걸 알았을때 기네비어의 마음은 한편으론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거의 멸문하다시피한 가문이지만 리자드는 내마법에 무궁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네드에겐 유감이지만 기네비어는 오펜하이머를 다시보게 됐다. 덜렁대지만 할말은 하는 성격에 괴랄한 패션 센스또한 이목을 끄는 것 중 하나였다.


기네비어는 오년간을 오펜하이머와 네드를 끼고 가르쳤다. 기네비어라는 인간의 인생 역사상 자진해 누군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옆에둔건 그 시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사제 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오펜하이머가 그를 배신하기 전까진 말이다. 그녀는 용서를 빌고 그대로 떠났다. 염치가 있다면 돌아올 것이다. 돌아오겠지. 기네비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했다. 마학모의 초대장을 보낸것도, 그녀에게 사과할 빌미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결국 숨어버리고 말았다. 기네비어는 분노했다. 그녀가 먼저 오지 않은 이상 두번 다신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아주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네드의 편지를 구겼다.


아브네얀과 호루스, 멍청한 아첨꾼들의 문제는 놀랍게도 이제 아무렇지 않아졌다. 그는 이성을 되찾았다. 오펜하이머가 나가고 오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여지를 주기 위해 마학모의 초대장까지 보냈건만,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지나 무엇이 우선인지 잊은건 아닐까. 아무래도 그가 직접 가서 일깨워 줘야할것 같았다.


*


"대체··· 어떻게 그 사람을 아는거예요?"


리자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스퍼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감정의 고저가 별로 없는 편이었다. 남들이 다 느끼는 통상적인 즐거움이나 슬픔, 그는 그런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 '그 사건'과 연관됐기 때문이리라, 그는 짐작해볼 수 있었다. 분노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자신의 상태가 얼어붙은 호수의 수면과 같다고 생각했다. 기네비어 링어는 제스퍼의 얼어붙은 수면아래 유일하게 물보라를 일게 만든 사람이었다.


기네비어 링어. 많은 마법사들의 우상이자 존경받아 마지않은 이. 그러나 세간에 통하는 극찬과는 달리, 그는 소위 어딘가 엇나가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를 처음 보는 순간 제스퍼는 알 수 있었다.


기네비어를 만난건 40여년 전 눈 내리는 마학모의 한적한 정원에서였다. 당시 엘레멘탈의 가르침을 받고싶어하던 그는 엘레멘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고, 결국 엘레멘탈은 못이기는 척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헐벗은 산사나무가 가득한 그 곳에서 엘레멘탈은 달에 한번 몇시간씩 그를 가르쳤다. 당시 어렸던 제스퍼는 기네비어의 분위기에 호기심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제스퍼의 곱절이 넘는 시간을 살아온 그는 어느것에도 흥미를 느끼는 법이 없었고, 감정의 변화 또한 미미했다. 무미건조하다. 자신과 같다. 제스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다른게 있다면 제스퍼의 내면이 잔잔한 수면이라면, 기네비어의 안엔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엘레멘탈은 명맥이 끊어져가는 변이 마법의 유일한 계승자였고, 기네비어는 어찌 된 일인지 그 초라한 마법에 관심을 갖고있었다.


변이 마법이란 내마법, 외마법과는 그 성질이 다른 것이다. 내마법이 타차원의 생물인 이주생물과 그들의 마기를 연구, 외마법이 현세계의 힘을 운용해 그 힘을 실체화, 화려하게 폭발시키는 것이라면 변이 마법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 국한된 마법이었다. 몸 속 마기의 흐름을 조율하고 운용해 모습을 바꾸거나, 더 나아가 바꾼 모습에 따라 마기의 운용법 또한 달리할 수 있는 마도의 잊혀진 정수나 다름없는게 바로 변이 마법이었다.


옛날엔 스승과 같은 부류가 많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세상이 넓어지고 마법사라는 은밀한 존재가 밖으로 드러나며 마법계의 선호도 또한 바뀌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현란한 외마법을 더 선호했다. 자연스레 마법사의 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변이 마법사들은 도태됐다. 그런 와중 현 마법계의 혜성과도 같은 존재가 변이 마법을 배우겠다니 겉으론 티를 안내도 엘레멘탈은 꽤나 기뻐했었다. 기네비어 링어의 진짜 속내도 모르고 말이다.


변이 마법에는 금기가 몇가지 존재한다. 다른 마법군과 비교하면 명백히 적은 편이었지만 한번 어기면 돌이킬 수 없는 금기가 다수를 차지했다. 대표적인게 '변이마법사는 자신의 힘을 뛰어넘는 존재의 모습을 뒤집어쓰려하면 안된다'였다. 변이 마법이 자신에게 국한된 마법인 이유는 온전히 자신의 실력에 따라 뒤집어 쓸 수 있는 모습에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10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기네비어와 엘레멘탈 사이에 균열이 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기네비어가 금기를 어긴 것이다. 이 일로 두 사람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만큼 틀어졌다. 변이 마법을 배우려던 목적이 애초 금기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니 엘레멘탈은 그에게 큰 실망을 느꼈다. 그러나 기네비어는 신경쓰지 않았다.


머잖아 그는 본성을 드러냈다. 1급 이주 생물인 용의 모습을 뒤집어쓰고서 엘레멘탈을 죽이러 나타난 것이다. 자신 외에 변이 마법의 달인이 있다는것이 거슬린다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기네비어는 불안정했고 이내 자아를 잃고 날뛰었다. 엘레멘탈은 그를 되돌리려다가 육체를 잃었다. 간신히 살아남긴 했으나 수정에 갇혀 기계기사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제스퍼는 그 때 처음으로 깊은 분노를 느꼈다. 화가 난다는게 무엇인지, 어떤건지, 기네비어로 인해 깨닫게 됐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제스퍼는 짧게 답했다.


"기네비어가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내 스승을 죽이려 했거든요."


리자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릎 위에 얹은 두 손이 잘게 경련했다. 그녀가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기네비어는 내 스승이었어요.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사람이었는데, 많은걸 가르쳐줬죠. 어느 날 스승님의 실험에 투입되게 됐는데, 이주 생물을 마기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었어요. 나는 그게 사람이 해선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리자드가 숨을 들이켰다.


"어느 날 2급의 이주생물이 잡혀 들어왔고-"


떠올리기도 힘든지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난 몰래 그 이주 생물을 풀어줘버렸어요."


리자드의 바람과는 달리 잔뜩 화가 난 이주 생물은 얌전히 돌아가지 않았다. 연구실이 무너졌고 다수의 마법사가 이주생물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리자드가 떨리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스승님은 엄청 화가 났어요. 나는 고스란히 책임을 지게 됐고요.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그것도 생각하고 저지른 일이니까요. 어느 누구든 최악을 염두해두지 않겠어요? 저택을 팔고 가보를 팔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건 다 했어요. 스승님과의 관계도 단절됐고요. 거기까진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 후로도 스승님이, 아니 기네비어가 날 가만두지 않는다는거예요."


제스퍼는 눈 앞의 여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리자드는 계속해서 그 날의 일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기네비어는 어지간해서 뭔가에, 특히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법이 없었다. 그가 신경쓰는건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의 명예를 위한 일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괴상한 내마법사에게? 그가?


리자드는 모르고 있었지만, 기네비어는 필요없다고 생각되는건 진작 쳐버리는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리자드가 이주생물을 풀어준 그 시점에서 그녀는 진작 없는 사람 취급 됐어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네비어가 리자드를 못잡아먹어 안달인 것은··· 아직까지 그가 리자드에게 흥미가 남아있단 뜻이었다.


음식은 다 식었고 이제 남은건 정적 뿐이다. 제스퍼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고 리자드 또한 그를 말리지 않았다. 아마 맥이 빠져버린 걸테지.


제스퍼는 어쩐지 대단한 발견을 한것같은 기분이었다. 반의무적으로 하고있던 일에 서서히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리자드를 통해 기네비어의 얼굴이 일그러지는걸 볼 수만 있다면··· 생각만으로토 통쾌한 기분이다. 제스퍼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나서는게 좋을것 같았다.


*


고용한 사람이 기네비어와 척을 지고있을 사람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기네비어에게 제 뜻을 알리기 위해 고용한 제스퍼이지만 오히려 스승의 화만 더 돋우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자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제스퍼에겐 괜한 싸움을 붙인게 아닐지 리자드는 걱정이됐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리자드는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이라곤 없는 외진 길에 제스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숨가쁘게 외길을 달린 끝에 그녀는 저 멀리 걸어가고있는 제스퍼를 발견했다. 리자드가 소리를 지르려는 차였다. 발소리를 들은걸까? 제스퍼가 자리에서 멈칫했다. 다음 순간 리자드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손을 들자 푸르게 빛나는 선이 그의 앞에 만들어지더니 문의 형태를 띄었다. 제스퍼가 밀치자 그 너머로 암흑의 공간이 나타났다.


제스퍼는 그 공간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제스퍼가 안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선 또한 창에 어린 증기처럼 순식간에 증발했다. 이내 길 위엔 정적과 바람에 소용돌이치는 나무밖에 남지 않았다. 리자드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공간이동 마법. 마도에 도가 튼 자들만 구사할 수 있다는 마법이란건 둘째치더라도 방금 전의 통로에선 심계의 기운과 아주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수한 이주생물을 심계로 돌려보내고 내마법을 전공화한 그녀는 닿는 피부로 내쉬는 숨으로도 그 기운을 알 수 있었다.


잘못 본거겠지. 집으로 돌아오며 그녀는 생각했다.


'맞아. 제스퍼는 마법을 못 쓴다고 했는걸.'


지금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게 문제야? 마음 속에 작은 목소리가 되물었다. 결국 생각이 하나로 통합됐다.


'사람이 어떻게 심계의 문을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는거지?'


'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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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느린 밤 3 18.06.27 66 1 10쪽
17 느린 밤 2 18.06.26 92 1 10쪽
16 느린 밤 1 18.06.24 123 1 23쪽
15 느린 밤 18.06.23 82 1 19쪽
14 마학모 18.06.20 95 1 25쪽
13 전야 18.06.19 101 1 17쪽
12 일렁임 18.06.18 67 1 13쪽
11 불쾌한 만남 18.06.17 103 1 15쪽
10 정체성 18.06.16 80 1 14쪽
9 역류 18.06.16 210 1 13쪽
8 움틈 18.06.13 93 1 16쪽
7 교수의 제안 18.06.12 118 1 11쪽
» 움직임 18.06.09 130 2 17쪽
5 어떤 사실 18.06.08 95 2 17쪽
4 첫걸음 18.06.06 90 2 22쪽
3 진의 18.06.03 114 2 19쪽
2 만남 18.06.02 84 2 9쪽
1 방문 18.06.01 15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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