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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988 님의 서재입니다

제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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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로즈988
작품등록일 :
2018.06.01 22:23
최근연재일 :
2018.07.03 11:36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2,293
추천수 :
29
글자수 :
170,468

작성
18.06.02 22:17
조회
83
추천
2
글자
9쪽

만남

DUMMY

간밤 내린 비 때문에 땅은 질척했고 공기중엔 희미하게 안개가 껴있었다. 번화가인 시드거리에서 외곽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나오는 곳이 의뢰인의 집이었다.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 경의 집은 미로거리와 1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상 전차 안에서 리자드 경이 어떤 사람일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할지에 대한 궁금증도 들었으나 잠깐 뿐이었다. 구름이 하늘을 덮으며 도시가 어두워졌고 제스퍼가 리자드 경의 집에 도착했을 즈음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계십니까."


리자드경의 집은 저택이라기 보단 그냥 평범한 주택에 가까웠다. 들꽃들이 옹기종기 자란 귀여운 작은 정원과 연못, 그 너머로는 나무 막대를 얼기설기 엮어만든 울타리가 보였다. '경'이란 호칭이 붙은 바와 달리 리자드 경의 집은 대저택보다 그냥 평범한 집에 더 가까웠다.


쿠르릉. 하늘이 나직이 소릴 냈고 제스퍼는 떨어진 빗줄기에 연못이 일렁이는걸 가만히 지켜봤다. 얼마 쯤 지나자 그는 조금 더 힘을 실어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소개로 왔는데요!"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는 시간개념이 없는 사람인것 같았다. 체념하고 돌아가려는 차, 갑자기 집안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쿵쿵쿵 달려왔다. 곧 벌어질 상황에 제스퍼가 한걸음 물러나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며 여자 하나가 그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스퍼는 차분히 응대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제가 방금 전까지 정리를 좀 하느라 소리를 못들었어요."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보조할 사람이 필요하시다고요."


아. 여자가 그제사 납득한듯 고갤 끄덕였다. 제스퍼는 곧 여자아 함께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동그란 모양으로 높게 틀어올린 머리는 여기저기 잔머리가 삐져나와 지저분했고, 이층, 혹은 지하실에서 단숨에 뛰어왔는지 얼굴엔 식은땀이 송글송글 어려있었다.


"신문외판원인줄 알았어요. 저번에도 한번 신문외판원을 집에 들인적 있었거든요. 안본다고 했는데 가질 않아서 쫓아내는데 한참 걸렸지 뭐예요. 신문외판원은 아니죠?"


"소개로 왔습니다."


제스퍼가 한번 더 말하자 여자가 고갤 끄덕였다.


"앉아계세요. 음 지금 정리를 좀 해야하는데 그러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기꺼이 그러죠."


여자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제스퍼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집 안은 흡사 늪처럼 어두침침했고 방금 전까지 뭘 했는지 쌉싸레한 향이 감돌고 있었다. 탁자 위에 두꺼비 모양의 촛대가 그를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앞치마를 벗은 여자가 거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제스퍼와 눈이 마주치자 여자가 경직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스퍼는 의뢰인인 리사경에 대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엘레멘탈의 얘기 속에서 리사경은 잘 벼린 칼 끝처럼 날카롭고 냉철하다못해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여자는 허둥거리다못해 정신이 없지않은가. 리사경이 시종으로 저런 여자를 들인건 조금 의외의 면이었다. (같은 성씨로 제스퍼는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닌가 추측했다.)


"저 밖에 춥죠?"


"아뇨. 좀 습하기만 할 뿐 춥진 않았습니다."


"아 내가 말을 잘못했네요. 비를 맞진 않으셨죠?"


"네, 운 좋게도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비를 맞지는 않았습니다."


여자가 이내 찻잔 두개를 쟁반에 얹어 자리로 돌아왔다. 손을 떠는 바람에 쟁반이 흔들렸고, 그 때문에 그 위에 놓인 보라색의 찻잔이 더그럭거리며 흔들렸다. 뜨거운 찻물을 맞는건 사양하고 싶었기에 제스퍼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 찻잔을 받았다. 여자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과거엔 필시 고풍스러웠을, 그러나 이제는 헤지고 낡은 녹색의 소파는 여자가 앉자 깊은 신음처럼 앓는 소리를 냈다. 천둥이 쳤고 정적이 일다 못해 전운마저 감돌았다. 여자가 과하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제스퍼는 찻잔을 내려놨다. 먼저 이야길 꺼내지 않는한 언제까지고 이 순간이 지속될 것같았기에.


"그러면 고용에 대해서 말을 해보죠."


집주인은 아마 시종에게 미리 언질을 남겨두고 갔을 것이다. 제스퍼의 말에 여자가 자세를 바로했다.


"사람이 필요하시다 들었습니다. 고용비는 시간당 2만 카스트이고, 보조라는 말은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 네 그러니까 간단해요. 일단 고용기간은 길지 않을거예요. 그러니까 단기다 이거죠."


리사 경에게 그런 말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와 리사 율머 오펜하이머 사이 소통이 덜 됐나보군. 제스퍼는 일단 고갤 끄덕였다. 여자가 손가락을 꼽았다.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거예요. 그냥 말 그대로 옆에서 보조해 주시기만 하면 되는거예요. 그러니까 고용기간 동안 함께 있어주시기만하면 되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일이 몇번 있는데, 그 때 함께 있어주셨으면 하는거예요, 네."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녀는 약간 곤란한 눈치였다.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는 아무래도 몸이 안 좋은것 같다. 휠체어를 끌어주거나, 그가 연단에 설 때 받침이 돼주거나, 제스퍼는 자신이 할 일을 수월하게 그릴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몇시까지 오면될까요? 아, 제가 합격이 됐다면 말입니다."


"아, 합격이고 할것도 없어요. 그렇게 거창하게 면접을 본다던가 그럴 생각은 없었거든요. 어차피 먼저 오시는 분을 뽑으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지만 두달간 시간은 오전 열시에서 여섯시까지. 주말을 제외한 주중이 제스퍼가 일할 시간이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무렵 내리던 비가 그쳤고, 제스퍼는 다소 경쾌한 걸음으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여자가 배웅 나왔고, 제스퍼는 떠나기 전 그녀에게 인사 하는걸 잊지 않았다. 문득 궁금증이 스쳤다.


"그런데 주인 내외께선 언제 돌아오시는지요?"


"주인 내외라뇨?"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경 말입니다. 제가 보조할 분이요."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스퍼는 뭔가 잘못됐다는걸 직감했다. 음, 시종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착각하신것 같은데 흠, 제가 집주인 입니다만. 그러니까 제가-"


다음 말을 하기 까지 큰 결심이 필요한것 같았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여자가 빠르게 쏘아냈다.


"그러니까 제가요. 제가, 제가 리자드 아서 오펜하이머라고요."


펜드래곤 시써펀트 라이온하트, 엘레멘탈과 같은 이름들. 한때 마법사들 사이에서 그런 이름들이 유행한적이 있었다. 위대한 마법사들의 이름엔 거의 위대하고 불리기에 멋진 단어가 들어가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마법사들은 많으므로, 하지만 오래전의 얘기고 요즘의 마법사들은 그냥 부르기에 괜찮은 이름들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여자의 나이는 스물 대여섯살 쯤 제스퍼와 동갑, 혹은 그보다 한살 더 어려보였다. 그런데 리자드에 아서에 오펜하이머라니. 성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앞의 두 이름은 시대에 뒤떨어진 엄청난 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리자드와 아서는 앞의 펜드래곤 세대들도 꺼려하던 것이었다. 한때 리자드란 이름의 악명높은 마법사가 세상을 뒤집은 적 있었고, 아서란 이름의 범접할 수 없던 영웅이 있었기에, 그 이름들이 주는 격차가 너무 큰 나머지 그 이름들은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져 더욱 기피시하게 된 모양이었다.


"특이한 이름이죠? 제가 어, 음 마법사거든요."


제스퍼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실수를 만회하는게 좋을것 같았다.


"아뇨 조금 독특하다고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 스승님 이름도 엘레멘탈이거든요. 물론 전 마법사는 아니지만요."


*


"재밌는 사람이네. 그래서 엄마와 닮은것 같아?"


엘레멘탈의 관심사는 오직 리사 율머 오펜하이머 경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 리자드는 리사의 딸이 된지 오래다. 제스퍼는 고갤 저었다


"아뇨. 그냥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가진 흔히 볼법한 여자였어요."


"리사의 딸이 그렇게 흔할 리는 없지! 제스퍼 너는 너무 사람을 대충 보는 경향이 있어."


어느새 엘레멘탈에게 리사경은 내 사랑하는 리사가 돼있었다. 이미터 되는 기계기사가 신이 나 어깨춤을 추고 다니는 광경이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식겁할 노릇이었다. 어쨌든 제스퍼는 자신의 실수에 작은 한숨을 내쉴수 밖에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가 출근인데 서로 얼굴 보기가 퍽 껄끄럽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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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느린 밤 2 18.06.26 92 1 10쪽
16 느린 밤 1 18.06.24 123 1 23쪽
15 느린 밤 18.06.23 82 1 19쪽
14 마학모 18.06.20 95 1 25쪽
13 전야 18.06.19 101 1 17쪽
12 일렁임 18.06.18 67 1 13쪽
11 불쾌한 만남 18.06.17 102 1 15쪽
10 정체성 18.06.16 80 1 14쪽
9 역류 18.06.16 209 1 13쪽
8 움틈 18.06.13 92 1 16쪽
7 교수의 제안 18.06.12 118 1 11쪽
6 움직임 18.06.09 129 2 17쪽
5 어떤 사실 18.06.08 95 2 17쪽
4 첫걸음 18.06.06 90 2 22쪽
3 진의 18.06.03 114 2 19쪽
» 만남 18.06.02 84 2 9쪽
1 방문 18.06.01 15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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