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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을 전부 봉화백(奉化伯)으로 수정 하셔야 합니다 정도전은 태조5년인 1396년에 봉화군에서 봉화백으로 작위가 올라갔습니다 정안군도 정안공으로 수정하셔야 합니다 태조 7년 1398년에 공후의 작위를 부활시켜 왕자는 공작 종친은 후작으로 봉했습니다
태조실록 10권, 태조 5년 7월 27일 임오 1번째기사 1396년
정도전(鄭道傳)으로 봉화백(奉化伯)을 봉하고, 설장수(偰長壽)로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임명하였다.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507027_001
태조실록 15권, 태조 7년 9월 1일 계유 5번째기사 1398년
비로소 친왕자(親王子)를 공(公)으로 삼고, 여러 종친을 후(侯)로 삼고, 정1품(正一品)을 백(伯)으로 삼았다. 익안공(益安公)을 중군 절제사(中軍節制使)로, 회안공(懷安公이방간)을 좌군 절제사(左軍節制使)로, 지금 전하 이방원) 를 우군 절제사(右軍節制使)로, 복근(福根)을 봉녕후(奉寧侯)로, 양우(良祐)를 영안후(寧安侯)로, 이백경(李伯卿)을 상당후(上黨候)로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709001_005
나이런일이//
처음에 정도전과 남은이 임금을 날마다 뵈옵고 요동을 공격하기를 권고한 까닭으로 진도를 익히게 한 것이 이같이 급하게 하였다. 이보다 먼저 좌정승 조준이 휴가를 청하여 집에 돌아가 있으니, 정도전과 남은이 조준의 집에 나아가서 말하였다.
“요동을 공격하는 일은 지금 이미 결정되었으니 공(公)은 다시 말하지 마십시오.”
네.. 조선의 숙원은 아닐지라도 정도전은 꾸준히 요동정벌을 요청한 인물입니다. 즉,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런 상태이죠.. 즉, 역사 왜곡이라 말하기도 그렇습니다..
소설상에 왕이 요동정벌을 원했다는 부분은 없으니까요.
아마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원했겠는가?라는 것과 별개로 그 밑에 정도전,남은 등은 요동정벌에 사활을 건것처럼 행동한 것은 사실입니다..
나이런일이// 이성계 싫어하시는군요.. ㅇㅇㅋ
뭐... 솔까 저시대 조선으로는 왜구에서의 피해를 줄이기에도 어려웠을 시점이라 뭐라 하기도 힘들군요.. ㅇㅇㅋ 아마도 이성계는 반대입장이었을테고 정도전은 안가도돼.. 그냥 사병혁파만이라도 하고 이거 끝내놓고 나중에.. 라는 생각이었을겁니다.
위에 숙원처럼 해놓은것도 아마 속으로는 사병혁파를 위해 요동정벌론이 조선의 주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겁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런 의미에서 정도전도 참...ㅡ.ㅡㅋ 돼단한 양반이긴 하죠... 참고로 1차 2차 원정에서 고려군의 병력수는 대략 10만 가량으로 예상만 하고 있어요. 기록이 없어서...ㅡ.ㅡ;
명에서 예상한 20만은 어림도.... 공민왕때 잘 아시잖아요 국내 사정 어땠는지 우왕때 어땠는지 조선 초기도 마찬가지고 그때와 달리 명나라가 들어선 상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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