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광기는 표리일체다(1)
초보 글쟁이의 여러모로 부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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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감은 이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수많은 사람들을 패배로 몰아 넣었다.
공포는 무기보다 훨씬 더 강하다.
─아니스큐로스
탕!
250m 떨어진 곳의 사격판이 뒤로 넘어간다.
탕!
이번엔 100m
탕!
200m
탕!
100m
탕!
200m
타앙!
250m…….
귀가 찢어질 듯한 폭음과 마주하며 총을 쏜다. 지급된 소총은 K-2. 거리조절나사를 2.5로 나둔 소총은 유효한 실사거리가 400m이며 최대사거리가 3,300m에 달하도록 설계된 구식 소총이었다.
1982년도에 제작된 한국제 자동소총…….
5.56mm의 탄을 사용하는 3.26kg의 구식 병기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시원스럽게 타깃이 넘어가면 이건 이것대로 쾌감을 느낀다.
자동화사격장에 들어서며 느껴졌던 거리의 압박감이 조금 무뎌졌다. 들고 있던 소총을 옆에 내려두며 귀에 꽂아두었던 이어플러그. 작고 말랑말랑한 귀마개를 뺀 나루는 가볍게 목을 풀었다. 같은 자세로 있으며 굳어있던 근육이 뚜두둑 소리를 거렸다.
귀마개를 만지작거리며 나루는 땡볕아래서 하루종일 사격을 한 탓에 그을린 손을 살펴보았다. 전투복이 가려주지 못해 까무잡잡해진 손이 어색했다.
"사격은 합격점입니다."
"하루 종일 했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이것도 못하면 안 되지."
뒤쪽에서 담당조교들이 떠들고 있었다. 귀를 막고 있던 이어플러그를 빼니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열 발 중에 여덞입니다. 괜찮은 성적이라 생각합니다."
"열 발 중에 아홉발 내지는 만 발을 맞출 수 있는 녀석이다. 도중부터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보이는군…."
보살펴주려는 것은 마른 체구의 한상수 병장.
엄한 것은 듬직한 체구의 강 진 병장.
평소와 다르게 오후임에도 군대온라인에 접속하진 않았지만 현실에서 총을 다루어보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루는 뒤를 돌아보았다.
"뭐, 네 말대로 합격점이군, 그럭저럭이지만…."
"강진 병장님은 너무 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전 안보교육을 듣는 저 녀석의 태도를 보니 너 역시 몰아붙인 것 같은데 피차 남말 할 처지는 아니지 않나?"
"……."
한상수 병장이 고개를 돌렸다.
찔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만큼은 강진 병장의 말이 옳았기 때문에 고개를 돌렸으리라….
나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한상수 병장의 안보교육은 정신이 붕괴될 정도로 강압적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면을 본 것만 같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느낌이라면 과장이겠지만 그가 과격해진 것을 아까 전 처음 보았다.
북한은 언제나 남한을 노리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 안보교육은 그동안의 역사를 토대로 북한이 불법 남침을 한 횟수부터 그들이 자행한 만행들을 역사스페셜을 보듯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신없는 한 편의 삼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은 것도 없을 뿐더러 정신만 쏙 빠졌으니까….
다만 확실하게 기억된 것도 있었다.
현재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기억되었다.
한상수 병장은 현재 대한민국은 안보에 너무 안일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요즘 세대, 한상수 병장도 나이차이는 세 살밖에 없지만 내 또래의 대부분은 북한을 위험하게 보고 있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저 분단되어 넘어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휴전 중이라는 것.
그런 것밖에 모른다.
그들을 주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전문용어까지 섞어가며 울분을 토하는 그의 모습에서 북한의 실체를 조금은 알게된 느낌이다. 과격하고 빠르게, 도중에 강진 병장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마 저 조용한 한상수 병장이 화이트 보드를 부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교육은 과열되어 있었다.
역시 사람은 여러가지 면을 지니고 있어….
나루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앞에 있는 돌계단을 걸어올라왔다. 계단은 모두 네 층이었고 그 위로는 강진 병장과 한상수 병장이 서 있는, 그리고 매일 걷던 높이의 길이 있었다.
"방금 전 네가 있던 곳은 일종의 '호'라고 생각하면 된다. 진짜 전쟁시에는 적으로부터 너를 지켜주는 방어막이 되어줄 것이고, 네가 공격할 수 있게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장소이다. 그것을 명심하고 이번에는 엎드려 쏘는 자세를 배우지…."
강진 병장은 오후 교육때부터 더 이상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격장에서는 어떤 사고가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나 주의해야하며 너무 긴장해서는 안되지만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통제하는 사람은 강압적일 수밖에 없다. 강진 병장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총이라는 무기는 위험한 맹수와 같은 것이라고….
"66번 훈련병 단나루! 예 알겠습니다!"
"엎드려 쏘는 자세는 어떻게 하는가하면 한상수 병장 시범을 부탁하지."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조교들끼리는 관등성명을 대지 않나?
나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상수 병장이 취하는 자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것이 오늘 할당된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입사 후 쏘는 자세부터 엎드려 쏘는 자세, 무릎 쏴 자세, 서서 쏘는 자세 등 소총을 이용한 사격 자세들을 배우며 오후 교육이 끝났다. 몸이 쑤실 지경이다.
현실과 가상세계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만약 어제 저녁 군대온라인에서 미리 총을 쏴보지 못했다면 오늘 잔뜩 고생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늘도 무사히 끝났군….
나루는 서서히 노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상수 병장과 강진 병장을 향해 경례했다.
"충성! 오늘도 감사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의 끝에 하는 구호와도 같았다.
두 병장은 절도 있는 경례자세로 답한 뒤 등을 돌려 걸어갔다.
어쩐지 두 조교의 등이 조금은 커 보였다.
그렇게 두 조교가 사라진 후에야 나루는 경례자세를 풀었다. 생각보다 운동량이 많았던 덕분인지 팔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체력을 키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만약 매일매일이 이런 훈련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저녁시간인가?
나루는 두 조교가 걸어간 길을 따라 사격장을 벗어났다. 어깨에는 K-2소총을 맨 채 탄입대가 걸려있는 탄띠와 머리에는 무겁기 그지없는 방탄을 눌러쓴 채 식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병사식당은 여전히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우글거렸지만 조용했다.
자신처럼 훈련병의 이름표를 단 사람들이 바글거렸지만 그들 모두 안면이 없었는지 이렇다할 대화가 꽃피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평소처럼 철제 식판을 들었다. 고등학교때까지 식당에서 밥을 받을 때 쓰던 식판과 흡사한 철제 식판을 든 채 밥을 타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의 맨 뒤로 걸어갔다.
줄….
군대에서는 질서, 정연이 가장 중요했다.
나루는 한상수 병장의 팁을 기억해내며 줄의 맨 끝에 섰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 벌써 소총을 지급받은 거야?"
"분명 우리 조교들이 소총을 지급 받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 주어졌을 때라고 했는데…. 저녀석이 그러면 현재의 톱인가?"
"젠장, 벌써부터 격차가 벌어지면 어떻게 따라잡으라는 거야……."
지극히 작은 목소리.
하지만 주변이 조용했기에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나루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곳은 조용했다.
자격?
나루는 그들이 떠들었던 말을 생각했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같은 훈련병끼리 무슨 자격이 있고 격차가 있겠는가?
그저 사람마다 적응이 빠르고 느릴 뿐인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배우는 속도가 빠르더라도 금세 자신을 추월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루로서는 성적 같은 것에 욕심이 없었다.
그저 지금 있는 욕심이라고 하면 저녁식사가 맛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또 나물에 똥국인가?'
하지만 점점 앞으로 나아가며 메뉴가 보이자 실망감이 서렸다. 이 식당의 주 메뉴는 언제나 나물들에 된장국, 그리고 조금 설익은 밥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
나루는 평소처럼 밥판위에 놓인 주걱을 쥐려고 했다.
그 순간 상병의 계급장을 달고 배식하던 취사병이 손을 내밀며 만류했다.
"호오, 벌써 소총을 매고 있군. 저기에서 기다려."
취사병이 가리킨 곳은 아무도 앉지 않은 테이블이었다. 테이블은 기본적으로 네 명이 하나씩 쓰도록 되어 있었고 빈자리가 없도록 안에서부터 꽉꽉 채워 앉아야했다. 하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테이블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나루는 그 테이블을 바라본 뒤 다시 취사병을 보았다.
취사병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이번에는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저기에서 기다리라는 건가?
나루는 사라진 상병 취사병을 떠올리며 빈 테이블의 구석진 자리를 차지했다.
와아!
앉는 동시에 함성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앞을 가리던 훈련병들이 서서히 갈라지며 조금 전 사라졌던 상병 취사병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붉은 양념이 식욕을 당기는 음식이 담긴 식판이 들려 있었다.
닭고기 찜과 김치, 나물, 김치찌게, 그리고 새하얀 밥.
그것을 가득 담은 철제식판을 취사병은 히쭉 웃으면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자네는 이것을 먹을 자격이 있지."
마무리는 포크숟가락….
서서히 멀어져가는 상병 취사병을 바라보며 나루는 침을 꼴깍 넘겼다. 주변에서도 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자신도 고기가 그리웠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그 날 나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하다고 느꼈다.
붉은 광선이 망막을 이리저리 살핀다. 새끼 손가락 끝에서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간단한 망막 인식 센서와 처음보는 혈액 감정 센서를 통과하자 조금은 익숙해지는 흐린 회색빛 하늘이 펼쳐졌다.
─군대온라인에 어서오십시오.
이름 단나루.
계급 훈련병.
소속 훈련소.
현재 위치 낙동강 방어기지.
군대온라인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예."
굵직한 목소리에 대답했다.
전장의 포화속으로 이동합니다.
회색빛 하늘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접속되었다.
마지막으로 종료했던 회색빛 하늘 아래의 전장으로…….
복귀했다.
"이봐, 서둘러! 적이 다가온다는 말이 들리지 않나?"
언제 보아도 실제같은 모습.
무거워보이는 짐을 등에 매고 빠르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고함치는 소리도 들렸다. 그 사이로 비슷한 복장을 한 남자들이 소총을 메고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소총의 종류는 M-1소총.
오후 사격시간 때 강진 병장이 말했던 미군과 연합들이 사용했다는 반자동식 소총이다. 그리고 지금 내 어깨에 매어진 것과 같은 종의….
단나루는 어제 저녁 이곳에서 쏘았던 총알의 수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520발….
적을 꿰뚫은 것은 모두 519발….
한 발은 적이 여자였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망설여서 빗나갔다.
이곳은 전장이다.
6.25전쟁 중 일부를 재현한 전장…….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목을 조이로 오는 것은 적이다.
단나루는 숨을 가볍게 골랐다.
어차피 저들은 적이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적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
어차피, 나는 죽지 않는다!
최면을 걸듯 자기암시를 건다.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어 어제 마주했던 광기를 이끌어낸다.
이곳은 전장이다.
단나루는 매고 있던 M1 소총을 스르르 풀어 사격 자세를 취해본 뒤 개머리판에 가볍게 볼을 대었다. 가늠자와 가늠쇠가 서서히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후 고개를 들었다. 오후에 사용했던 K-2보다 조금 무거웠지만 이 묵직한 느낌이 좋다.
그 사이 반투명한 창 위로 M1 소총의 제원이 떠올랐다.
무기의 옵션….
길이 : 110cm
무게 : 4.2kg(장전전)
Cartridges : eight-round clips.
구경 : 7.62mm
강선 : 4조우선
유효사거리 : 460m
최대사거리 : 3200m
이것을 보며 나루는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한번 더 깨달았다.
이곳은 과거의 전장이다.
그리고 과거의 잔재다.
그리고 자신은 한 명의 병사일 뿐이다.
M1 소총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을 느끼며 나루는 숨을 골랐다.
"적이 온다!"
광기가 깨어날 시간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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