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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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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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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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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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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후회는 한이 된다

안녕하세요.




DUMMY

천명의 상태가 걱정된 무명은 걸음을 재촉했다. 모용 세가의 병사들이 숲에 이미 깔려 있어서 몸을 숨긴 채 이동해야 했기에 더 답답한 도주였다.

무명의 뇌리에 얼굴이 반 쯤 사라진 채로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던 천명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비밀 통로에 대해 잘 모르는 두 사람만 보낸 것이 큰 실수였다. 내가 갔어야 했는데...'


무명보다 더 큰 후회와 자책에 빠져 있던 백수는 말 한 마디 없이 숨겨둔 말을 몰아 청해 근처의 의원을 향해 쉼 없이 말을 달렸다.

자신도 타골에게 배운 침술과 의술이 있지만, 지금 천명의 상태를 보면 침보다는 약과 소독이 필요했다.

사천에서 조그만 약방을 운영중인 조 이생은 아침 댓바람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급히 문을 열었다.

과거엔 질 좋은 약초를 주던 똑똑한 청년으로 유 지령을 알고 있던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백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환자의 상태를 보고 일단 안으로 들였다.

녹아내린 얼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으로 인해 피부가 녹아내릴 정도의 타격을 입었고 그 독은 피부를 파고 들어가 뼈에까지 독성이 가득 담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먼저 독 기운을 빼내기 위해 여러 약초를 달여서 그 물을 묻힌 천으로 상처 부위를 닦아내고 소독을 실시했다.

이미 누군가 혈도를 눌러 머리로 가는 혈류를 차단해 놓은 탓에 출혈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뼈에 뿌리를 내린 독성을 제거하지 않으면 결국 골이 썩어 들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요. 일단 계속 독기를 빼내야 하는데 약초도 부족하고 녹아내린 살갗이 썩지 않도록 보호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필요한 재료를 말씀해 주시면 바로 준비해 오겠습니다. 피가 썩지 않도록 혈도를 막아 놓았는데 시간이 더 지체되면 머리로 피가 통하지 않아 죽게 될 테니 그 전에 시급한 치료를 끝내야 합니다."


"그럼 필요한 약초와 재료를 적어드릴 테니 빨리 구해주십시오. 저는 최대한 독기를 빼내 보겠습니다.


백수가 급히 약방을 나선 후 조 이생은 심상치 않은 상태의 환자와 그를 데려온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이 마음 한 구석을 계속 찔러댔지만 모르는 척 하고 치료를 계속 했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중인 범죄자들인가? 인상을 보면 악인들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사람이 모두 팔자대로 사는 것은 아니니...'


취미삼아 사주와 관상을 공부한 조 이생은 백수와 허 성의 얼굴을 슬쩍 슬쩍 살펴보았다.

여인이라 해도 믿을 법한 미인상을 가진 청년은 흔히 말하는 강호를 주유하는 영걸의 상이었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절에서 도를 닦는 수도승에 어울리는 관상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눈 앞의 환자가 혹여 사망이라도 한다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이런 상처는 무인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면 생기기 힘든 상처였다.

원치 않게 이런 일에 얽힌 이상 자신은 최대한의 응급 처치를 해 주고 이들이 조용히 떠나주면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용태가 심상치 않았다. 얼마나 강한 독인지 아무리 닦아내도 독버섯처럼 다시 피어올라 뼈에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이제는 허 성도 팔을 걷어붙이고 이생을 도와 천명의 얼굴에 생기는 독기를 닦아냈다. 그래도 환자의 체력이 강해서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이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벗겨내고 생을 마감할 정도의 최악의 상태였다.


'내 목숨도 걸려 있으니 제발 버텨 주시오.'


이생은 간절함을 담아 천명의 얼굴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한바탕 난리가 난 유세 표국에서는 새벽 꿀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와 피칠갑이 된 유 환명 처소의 뒷 정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니 뭔 피가 이렇게 바닥에 깔려 있대?


"그러게 막 시끄럽지도 않았는데 전란이라도 난 것 같구먼."


길게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 걸레질을 하던 몇 사람은 비밀 통로가 있는 창고 앞에 섰다. 사용하지 않는 곳으로 알려진 창고의 잠긴 입구 안쪽으로 보라색으로 변한 핏덩어리가 아직까지도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역겨운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긴 몇 년 째 안 쓰는 창고 아녀? 문도 안 열릴 텐데 왜 이 안으로 핏자국이 나 있남?"


그 때 처음 보는 장포를 걸친 사람들이 나타나 걸레를 든 사람들을 둘러쌌다. 장포 안에는 검으로 보이는 길다란 물건이 튀어나와 있어 무사라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쯤 하면 됐으니 돌아가시오."


"아 네. 그런데 바닥에 이거는 피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역병이라도 일으킬 수 있는 거면 깨끗하게 치워야 하는데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가보시오."


길다란 장포로 얼굴까지 교묘하게 가린 남자들의 험악한 눈빛에 더 이상의 반항은 의미 없다 느낀 사람들은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흘깃 뒤를 돌아본 그들의 눈에는 처음 보는 누런 보자기 같은 것으로 보라색 액체를 덮어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장포인들의 뒷정리는 비밀 통로 안에서도 이어졌다. 보자기가 덮인 곳에 있던 구 숙정의 피는 스물스물 녹아내려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핏자국을 되짚어가던 남자들은 결국 말라 비틀어진 구 숙정의 시체 앞에 섰다.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소매에서 작은 구슬을 하나 꺼냈다.

그 안에는 정체 모를 보라색 액체가 잠겨 있었는데, 그것을 구 숙정에 입 속에 밀어넣으니, 얼마 안 되어 구 숙정의 얼굴이 슬슬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어 구 숙정의 얼굴은 죽기 전 모습을 되찾았고 눈을 뜬 숙정은 한 낮에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슬며시 일어나 손가락을 움직여 보고 있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의 쉰 목소리에는 건조하지만 단호한 책망이 담겨 있었다.


"방심이 일을 그르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오래 전부터 말해온 것으로 안다.

지금의 사태는 무엇이 원인이냐?"


구 숙정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분노와 살기만이 가득했다.


"제 방심입니다. 일검대와 혈사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네 실수는 우리에게 보고하지 않고 너 혼자 해결할 수 있다 본 것이지.

이게 네가 만만하게 보았고 우리가 가볍게 봤던 강호의 세계다.

우리와는 가는 방향이 달랐을 뿐, 이 놈들 또한 바닥을 기어다니면서도 상대의 발목을 물어 뜯으며 한 발씩 올라선 자들이다.

네가 같잖은 실력을 믿고 일을 그르친 덕에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인원과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바로 추격대를 조직해 녀석들을 잡고 유 환명을 되찾아오겠습니다."


"네게는 그럴 기량이 없다."


구 숙정이 상대의 도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구 숙정의 눈 앞에 있는 자들은 몸을 떠는 행위만으로 숙정의 목숨을 거둘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숙정의 무례한 행동에 그다지 반응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저들은 전력을 다해 이 곳을 습격한 것이 아니다.

다른 일을 마치고 오는 길에 잠시 들른 정도의 전력에 네가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

이후로는 우리가 그들을 쫓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싸움을 벌이기엔 우리의 행동 범위가 넓지 않으니 상대의 상세한 전력과 위치를 확인하기 전까진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 알고 섣불리 나서지 마라."


"제가 그 놈을 알고 있으니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더 이상의 무례를 봐주지 않겠다. 이 곳을 수습하고 유 관평의 행적을 빈틈없이 쫓아라. 감시는 하되 행동을 막지는 말라는 뜻이다.

그 놈이 상대의 정체를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역시 장로들도 그 호위 무사 놈의 정체를 알고 있군. 관평이 그 놈과 내통하고 있다 생각하는 건가? 내가 자는 시간까지 그 놈을 감시 했지만 누군가와 내통하는 증거는 찾지 못했는데...'


장로들은 숙정의 발 밑까지 이어진 독혈을 모두 제거한 후, 비밀 통로를 빠져 나갔다.

구 숙정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녀에게 그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들이 구 숙정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마공의 공급을 끊는다면 구 숙정은 열흘도 안 되어 조금 전의 번데기 같은 몰골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의 구 숙정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 비밀은 그들 외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구 숙정은 비밀 통로에서 나오며 주변부터 살폈다.

이 곳을 보거나 자신의 피를 본 자는 살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세 표국에는 눈과 귀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 정도의 난장이 펼쳐진 상황에서 모두의 입을 막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숙정에겐 얼마 후 돌아올 모용 선화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난제가 남아 있었다.


"이럴 거면 나한테 모용 선화한테 내밀 만한 뭐라도 정보를 줘야지. 망할 장로들..."


구 숙정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백수는 근처의 약재상을 싹 뒤진 끝에 이생이 적어준 약초와 탕약 재료를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유세 표국의 부단주를 맡았던 시절에 주변의 약재상 위치를 모두 알아둔 덕에 헛걸음 없이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약방에 도착하니 비릿한 피냄새와 나무 뿌리 냄새가 진동을 했다.

허 성이 이생 대신 천명의 얼굴을 닦아내고 있었고, 이 생은 여러 개의 나뭇 가지를 넣은 탕약을 달이는 중이었다.

백수가 재료를 보여주자 이생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천만다행이군요. 시간이 촉박하여 모자란 대로 약을 달이는 중이었습니다.

이걸 다 넣으면 효과를 좀 볼 수 있을 겁니다."


"차도가 있습니까?"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고비는 넘긴 듯 싶습니다."


백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숱한 위기를 넘겨 온 그였지만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누군가 생명을 잃는 상황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제야 그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마음의 짐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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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1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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