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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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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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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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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득실을 따질 수 없다면 실패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DUMMY

아무리 미로와 같은 동굴이라도 도망치는 쪽이 눈에 훤히 보이는 발자취를 남겨 놓는다면 추격전이라고 보기 힘들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상태를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구 숙정이 남긴 혈흔은 선명하고 양도 많았다.

얼마 가지 못해 제 풀에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출혈이었다.


"서두르지 맙시다, 구 대협. 이대로 쫓아가기만 해도 곧 시체를 만날 것 같군요."


"하지만 아직 단주님의 부친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어디 숨겨 놓기라도 했다면 위치를 알아내야 합니다."


천명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단주의 부친을 찾기 위해 험로를 선택한 것인데 찾지도 못한다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함정에 빠지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허 성의 직감이 자꾸 알 수 없는 위험 신호를 보냈다.

사실 직감이 없더라도 두 사람이 지나기 힘든 좁은 동굴은 적을 추격하기에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병법의 기본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만한 기본이고 천명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와보는 동굴이고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해도 지금 구 숙정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동굴 안에서야 핏자국으로 쫓을 수 있겠지만 밖으로 나가서 물이라도 지나면 찾기 힘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수가 몇 안 되는 의협단이지만 무명을 비롯해 이 무빈과 허 성 등, 자신이 속한 문파에는 의외로 고수가 많았다.

천명은 왠지 자신이 의협단에서 말석이 될 것 같은 불안이 들 때가 있었다.

이번 원정에서 큰 공을 세운다면 그런 불안은 말끔히 해소될 것이다.

구도장파의 실력자 구 천명은 그렇게 믿었다.

동굴은 아무리 걸어도 도무지 끝이 나오지 않았다. 왠지 같은 곳을 빙빙 도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구 숙정의 핏자국이 자신들이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점점 핏방울이 선명해지는 것을 확인한 허 성은 구 숙정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고 구 천명을 부르려 했다. 그러나 이미 동굴 벽에 기댄 구 숙정의 처참한 몰골이 보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온 몸이 시퍼래진 구 숙정은 이미 숨이 끊긴 것처럼 보였다.

천명이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는데, 뒤에 있던 허 성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바닥에 있는 구 숙정의 혈흔이 이상한 색으로 변하면서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구 숙정이 이상한 술법을 쓰려는 걸 감지한 허 성이 소리를 쳐 천명을 잡으려 했으나 천명은 이미 구 숙정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구 대협!!! 조심...!"


케에에에에엑! "윽, 으아아아악!"


구 숙정의 온 몸에서 보라색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피를 흘린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양이었다.

천 명은 거의 한 장도 안 되는 거리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피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허 성의 외침을 듣는 순간 가지고 있는 대도를 집어올리긴 했지만, 한 쪽 얼굴에 구 숙정이 뿜어낸 독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사실 그 기술은 마교에서 오래전에 사용하다 사라졌다 알려진 혈화탄(血花彈)이었다.

자신의 피를 강력한 독액으로 만들어 불리한 상황에서 상대와 함께 산화하는 아주 악독한 술법이었다.

이 술법을 익히면 피가 탁해져 마공을 계속 주입받지 않으면 몸이 돌처럼 굳으며 죽게 된다.

자신이 가진 피를 모두 쏟아낸 구 숙정은 말라죽은 물고기 같은 끔찍한 몰골이 되어 동굴 바닥에 쓰러졌다.

허 성은 급히 달려와 바닥에 쓰러진 천명을 안아 올렸다. 한쪽 얼굴이 녹아내리고 눈 한 쪽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허 성은 일단 얼굴로 가는 혈도를 차단하고 피부를 재생시키는 효과가 있는 고약을 꺼냈다. 평생을 공동산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온 허 성은 산에서 위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구급약을 가지고 다녔다.

가지고 있는 고약을 전부 천명의 얼굴에 발랐지만 절반이 녹아내린 얼굴을 모두 치료하기엔 어려운 양이었다. 빨리 화상 치료 기술이 있는 의원을 찾아야 했다.

야속하게도 이제서야 핏 자국을 보고 따라온 무명과 백수가 도착했다.

두 사람 모두 천명의 끔직한 모습을 보고 침통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백수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의를 위해 한 몸 바치자 해 놓고 자기 아버지를 구하고자 단원들을 데려다 사지로 몰고 말았으니 이보다 부끄러운 일이 없었다.

백수는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고 한 손으로 천명을 집어 들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걸어서 동굴을 빠져나왔다. 백수의 체력이 떨어졌다는 걸 아는 무명은 천명을 대신 들려고 했지만 백수는 무명의 거듭된 요청에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숲에 나오자 백수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서 나가자. 가까운 도성에 솜씨 좋은 의원을 알고 있으니 일단 먼저 치료를 받게 해야 돼."


"알겠습니다. 하지만 부친을 먼저 찾고 가야..."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잖아!!"


백수는 무명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선 더욱 부끄러워졌다.

잘못은 자신이 하고서 아랫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부친 유 환명이 말했던 최고로 한심한 수장의 조건 중 하나였다.


"네 잘못이 아닌데 큰 소릴 내서 미안하구나. 내가 지금 너무 흥분을 한 것 같다.

그럼 너한테 아버님 추적을 맡길게. 나하고 허 도사는 구 대협을 의원으로 데리고 갈 거야."


"명을 따르겠습니다."


무명은 백수가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것에 안도했다. 만약 백수 자신이 유 환명을 찾으러 가겠다고 하면 막을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도 다행이었다.

극도의 흥분 상태인 백수는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좋았다.

필요 이상의 살육을 하거나 적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채 근처에서부터 이어진 횃불의 빛이 이미 비밀 통로의 근처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백수와 허 성은 천명을 어깨에 나누어 지고 사천쪽으로 향하고 무명은 땅바닥에 남은 사람의 흔적을 쫓아 동쪽으로 이동했다.

유 환명이 처소에 없었던 걸로 봐서 구 숙정은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 유 환명을 빼돌렸다. 수하 중 믿을 만한 놈을 시켰을 것이고 구 숙정이 쓰러진 동굴 근처의 출구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세가 불리해서 구 숙정이 신호를 보내면 유 환명을 데리고 모용 선화에게 갔을 것이고, 상황이 종료 됐다면 비밀 통로를 통해 다시 산채로 데리고 왔을 것이다.

통로에서 유 환명을 발견하지 못한 걸 보면 지금 쯤 구 숙정의 심복이 유 환명을 데리고 모용 세가로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무명은 근처의 계곡으로 달려가 산 아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말 두 마리가 산 아래 험로를 달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뒤에 있는 말은 속도가 느렸다.


'유 환명 단주님이다.'


무명은 깎아지른 듯한 계곡의 벽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을 한 번만 헛디뎌도 산짐승의 밥이 될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유 환명을 놓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무엇보다 구 천명의 희생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의욕만 가지고 절벽에서 뛰어내린 무명은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뎌 땅바닥에 내리 꽂힐 뻔 했으나 타고난 반사 신경과 독고구검의 검술로 절벽을 검으로 튕겨내듯 쳐 올리며 겨우 산 아래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미리 말들이 가는 길을 가로질러 내려갔기에 무명은 말들보다 조금이나마 앞선 위치에 있었다.

무명은 내려가는 속도에 독고구검의 초식 중 하나인 낙검세를 사용하여 선두에서 달리는 말에 기습 공격을 퍼부었다.


"뭐냐, 헉!!"


말에 타고 있던 상대도 급히 무기를 빼들었지만, 무명의 쾌검은 이미 말의 머리와 함께 말에 탄 자의 몸까지 두 동강을 내 버린 후였다.

평소 자신의 공격보다 몇 배나 강력한 위력을 실감한 무명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힘에 독고 구검의 검결을 합치면 더욱 강력한 공격력을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명만의 독고구검 초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명의 예상대로 뒤에서 따라오던 말에는 무사 한 명과 사람이 들어간 듯한 큰 자루가 있었다.

원래 계획은 앞선 무사가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뒤에 탄 말이 빠져나가는 것이었으나 무명의 무공을 본 무사는 그냥 빠져나가기 힘들다는 걸 알아챈 듯 말을 세웠다.

혈사 중 한 명인 곽 만열은 육 척 정도의 보통 키에 자신의 키 만한 언월도를 들고 있었다. 단단해 보이는 팔과 다리가 그의 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명은 언월도의 사정 거리 안으로 파고 들기 위해 만열과 탐색전을 벌였다. 아무래도 무거운 언월도를 들고 있다 보니 무명보다 움직임이 느릴 수 밖에 없었고 얼마 되지 않아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만열은 빠른 속도로 파고드는 무명을 보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 느린 상대는 무명의 빠른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뒤로 빠져서 거리를 두거나 암기로 접근을 방해하곤 했는데 만열은 아예 들어오라는 식으로 무명을 내버려두고 있었다.


'뭔가 비책을 가지고 있다.'


무명의 예상대로 돌진하던 무명이 순간 발을 멈추자 만열은 품에 있던 뭔가를 꺼내 무명의 앞에 확 뿌렸다.

그것은 갈색 빛이 나는 가루였는데, 공중에 퍼지기가 무섭게 요란한 폭음을 내며 작은 불덩이가 되었다.


"역시나 암수를 숨기고 있었구나. 하나같이 더러운 놈들."


비습이 실패했음에도 만열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공주에 생긴 불길에 자신의 언월도를 갖다댔다. 그러자 그의 언월도에서 시뻘건 불길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암기는 공격용일 뿐 아니라 자신의 무기를 강화시켜주는 보조제의 역할도 하는 셈이었다.

불길이 타오르는 언월도를 돌리며 접근하는 만열에게는 빈틈이 없어 보였다.

무명은 계속 뒷걸음질을 치며 상대의 전력을 유도했다.

아무리 힘이 좋은 자라 해도 저런 무거운 무기를 계속 돌리다 보면 체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속도가 느려지고 빈틈은 점점 커지게 된다.

무명이 예상한 상황은 얼마 되지 않아 나왔다. 만열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돌리는 언월도의 속도가 현격하게 느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명은 냉철하게 틈을 노리다 하체가 완전히 드러나 틈을 노려 검을 찔러왔다.

그러나 만열은 그런 상황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었다. 만열이 갑자기 다가오는 무명을 향해 발을 구르니 신발에 있던 가루들이 무명을 향해 뿌려지며 순식간에 커다란 불길이 되었다. 이런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무명은 그대로 불길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무명의 움직임이 멈춘 틈을 타서 만열의 언월도가 하늘 높이 치켜올려졌다.

그리고 한 방에 무명을 두 동강 낼 기세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혔다.

쾅 하는 파열음과 함께 언월도가 바닥에 꽂혔으나 그 곳에 무명은 없었다.

그리고 순간 당황한 만열의 측면에서 무명이 뛰쳐나와 만열의 목을 옆에서 깊게 찔렀다. 목이 거의 떨어져 나간 만열은 다시 언월도를 들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졌다.


"네 놈의 기습은 꽤 쓸만 했다만 한 번 쓴 기술을 또 사용할 때는 좀 더 신중해야지."


무명은 시끄러운 싸움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배짱 좋은 말을 쓰다듬으며 말 등에 얹힌 자루를 내려 매듭을 풀었다.

예상대로 자루 안에는 유 환명이 있었다. 다만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눈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돌고 입술도 새파래진 것이 얌전히 있게 하기 위해 독한 약을 쓴 것 같았다.

무명은 분노로 이를 악 물며 유 환명을 안아 올렸다.


"가시죠. 아드님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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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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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1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3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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