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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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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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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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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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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날개를 펼쳐야 할 때

안녕하세요.




DUMMY

백수와 무명, 그리고 몸을 숨겼던 허성을 찾아 데리고 온 천명은 청성파의 제자들이 난장판이 된 상청궁을 정리하는 틈을 타서 조용히 산을 빠져 나왔다.

산의 초입에는 청사령의 밀정이 진 가민의 자식들을 데리고 있었다.

백수는 아이를 보내주고 무사에게 조용히 물었다.


"좌두곤은?"


"청성산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폐가에 있습니다. 하얀 복면을 쓴 자 둘이 함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마 혼자 있을 거야. 무림맹에서 들이닥치기 전에 빨리 가보자."


백수 일행이 폐가에 도착했을 때, 좌두곤은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찰나였다.

간발의 차로 그의 검을 빼앗은 무명이 좌두곤을 붙잡았으나 그는 그것을 뿌리치고 주저앉은 채로 소리를 질렀다.


"왜, 이제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려고 하느냐! 내게 얼마나 더 치욕을 줘야 속이 시원한 것이냐!"


"치욕을 받았으면 갚아줘야지, 이렇게 혼자 죽으면 누가 그걸 알아주겠나."


백수의말에는 자신의 경험까지 함축돼 있어서 이유 모를 설득력이 있었다. 좌두곤은 가만히 백수를 올려다 보더니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성파나 무림맹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구요?"


"무림맹과 싸워서 정의를 다시 세우려는 사람이지.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무림맹이 병사를 몰고 오면 청성파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고 진 가민과는 마찰이 있을 거야.

지금은 진 가민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무림맹의 간섭을 떨쳐내고 문파 운영의 전권을 장악하기 전까진 당신이 진 게 아니라는 말이지."


좌두곤은 백수의 이야기에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지금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뒤에서 밀어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내가 살면서 얻은 단 하나의 진리는 사람을 쉽게 믿어선 안 된다는 거지.

지금의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이지 않나?"


"일어서서 문파를 되찾는 건 스스로 하도록 하고 내가 말하려는 건 내가 몸 담고 있는 의협단에 들어오라는 제안이야."


"의협단? 그건 또 무슨 하찮은 도적단 이름인가."


생각지도 못한 비아냥에 백수를 포함한 단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의협단을 비웃는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비난보다는 살짝 비꼬는 농담처럼 들렸다.


"어찌 보면 도적이 맞지. 우리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쌓은 정파 쓰레기들의 재산을 빼앗아서 백성들에게 돌려줄 생각이니까.

정의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아. 사람들이 배부르고 행복해야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게 내 지론이야."


좌두곤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백수의 말은 좌두곤 자신이 항상 주장하는 '자급 우선주의'와 맞닿아 있었다.

명예나 과거의 영광이 문파를 먹여 살려주지 않는다. 무사들이 과거의 영광만 빨면서 술상 앞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 문파의 힘은 빠지고 세력은 기울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좌두곤은 무사들이 싸움이나 훈련이 없을 땐 농기구를 들고 백성들을 돕게 했다.

같이 사냥을 하고 고기잡이 배를 타며 쌀보리를 베는 걸 도우면 결국 백성들도 무사를 돕게 된다.

그리고 함께 일을 하는 것 뿐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지내게 했더니 무사들이 머무는 마을엔 도둑이 줄고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짐승의 습격이나 마을 사람들 간의 크고 작은 다툼도 사라졌다.

명문 정파가 그 본연의 탄생 목적으로 돌아간 것이다.

무를 통해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자신의 득도를 추구하는 것, 어울려 사는 삶을 통해

더 건강해지고 더 높은 경지로 자연스럽게 이르는 것이 좌두곤이 추구하는 명문 정파 무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은 모두 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비겁한 기습으로 하나 뿐인 노모까지 잃었는데도 그는 도망이나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죽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눈 앞의 청년은 처음 들어보는 도적단에 들어오라는 회유를 하고 있었다.


"댁의 이론은 좋지만 지금 세상이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박수 치면서 환영해주는 곳이 아니라네. 산 증인이 여기 있지 않나."


"알고 있어. 그래서 힘을 모으는 중이지. 문파 운영의 경험이 있고 인재를 운용할 줄도 아는 사람이 필요해. 한 마디로 당신이 우리 의협단에 들어와 주었으면 한다는 말이야."


"제안은 고맙지만 이제 난 모든 걸 잃었다. 명예나 재산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이제 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어..."


백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진 가민에 대한 복수심은 불타오르지만 수 년을 노력해서 일구어낸 청성파의 안정에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모용 선화를 당장이라도 쓰러뜨리고 싶지만, 형과 부친에게 해가 될까 봐 행동에 못 나서고 있는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는 좌두곤의 상황이었다.


"우리는 당신을 억지로 데려갈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

하지만 가는 길 선물로 정보는 알려줄게.

사실 당신의 가족을 기습한 건 진 가민이 아니야. 그의 심복 몇이 과한 충성심으로 저지른 악행이지.

복수를 하고 싶겠지만 제자들의 신망을 얻어야 하는 진 가민은 그들을 감싸주려 할 테니 내가 보기엔 어려울 거야. 당신 혼자서는 말이야."


좌두곤의 눈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자신이 분노와 복수심으로 평정심을 잃지만 않았으면, 그래서 신중하게 진상을 파악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불리해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제길,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다 틀렸어... 이젠."


"아직은 기회가 있다. 의협단에서 힘을 기르면 돼. 우리는 중원의 명문 정파를 싹 다 갈아엎고 재정비를 할 생각이야.

거기엔 청성파도 포함이 되는 거지. 당신이 다시 청성파로 돌아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면 되잖아."


백수의 말에는 조리가 있었다. 하지만 백수가 여러 번 언급한 의협단이 뭔지 좌두곤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그 의협단이라는 게 뭔데? 의적단을 차릴 생각이라면 녹림채로 가면 된다."


"아까 말한 건 농을 섞은 것이고 우린 남의 것을 훔치겠다는 게 아니야. 오히려 훔친 것을 주인에게 돌려주겠다는 거지.

의협단은 무림에서 가장 강력한 문파가 될 거야. 정확히 말하면 초고수들이 모인 결사단 같은 거라고 보면 돼."


"그래서 지금 너희들이 그 초고수들이란 말인가?"


"난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원한다면 너도 그렇게 해줄 수 있어."


좌두곤은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번 웃음은 다분히 비웃음이 섞여있는 지라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지금이야 못 믿어도 할 수 없는데, 결국 당신은 또 후회하게 될 거야. 순간의 좌절감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멍청이로 남겠지."


"그럼 내게 뭘 해줄 수 있는 지 있는 지 한 번 물어보자.

대체 날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줄 텐가?"


백수는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청성파의 진정한 후계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진룡보전과 표풍보록의 전승자가 되게 해 주겠다는 말이야."


"... 그게 무슨 말인가? 두 비급 모두 장문인의 급사로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나?"


"진룡보전과 표풍보록은 글이나 책으로 남아있지 않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

난 두 비급을 모두 직접 전수받았어.

궁금하다면 보여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군.

당신이 진정으로 자신을 버린 청성파에 정의의 철퇴를 내리고 다시 문파의 토대를 바르게 세우고 싶다면 나를 찾아오도록 해.

청해의 도성에 있는 아무 객잔에나 들어가서 이걸 보여주면 될 거야."


백수는 청사령의 증표를 좌두곤에게 던져주고 바로 폐가를 나왔다.

무명이 못 미더운 얼굴로 백수에게 물었다.


"저런 자에게 증표를 주셔도 되겠습니까? 그냥 다 내려놓은 사람 같던데."


"학사 출신으로 문파의 공동 장문인의 자리까지 올랐다면 주변의 수많은 천대와 무시를 견뎌냈을 거야. 이 정도로 포기할 인물은 아닌 것 같았어.

그리고 증표 같은 건 또 받으면 그만이니 상관없어.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하루 빨리 인재를 모으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 무명은 진짜로 묻고 싶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유세 표국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소단주와 단주님을 구하기에는 지금이 적기라 생각되긴 합니다만..."


청성파에 오기 전부터 백수를 괴롭히던 고민이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 유세 표국엔 모용 선화가 없다. 상당한 고수들을 데려다 놓았겠지만, 모용 선화가 있고 없고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호기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백수를 짓눌렀다.

의협단에는 아직 사람이 부족하다.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긴 했지만 병력의 절대적인 숫자 또한 싸움에서는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였다.


'내 욕심으로 집에 쳐들어갔다가 단원을 잃기라도 하면 의협단에 너무나 큰 손실이 된다. 이들에게 내가 아는 무공 비급을 몇 개만 가르쳐줘도 이들은 몇 갑절 성장할 텐데 그 시간을 못 기다려서 사람을 잃게 된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무명은 백수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무명이 의협단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였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생각도 많아지고 원래 가졌던 선명했던 목표가 다른 이들의 꿈, 소망, 원한 등에 뒤섞여 점차 흐려지게 되는 것이다.

고민에 빠져 있던 무명이 백수에게 다가와 조용히 귓속말을 전했다.


"주공, 그렇다면 저와 둘이서 유세 표국을 습격하면 어떻겠습니까?"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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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1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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