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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

테시스의 삼엽충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걓디
작품등록일 :
2019.06.18 21:56
최근연재일 :
2019.09.16 01:23
연재수 :
5 회
조회수 :
354
추천수 :
11
글자수 :
16,934

작성
19.08.03 22:47
조회
65
추천
2
글자
8쪽

삼엽충 회의, 그리고 의지의 삼엽충.

DUMMY

"젠장!"


앞으로 뻗은 상당히 괴기한 느낌의 뿔이 달린 삼엽충 하나가 가장 앞다리로 모래 바닥을 치자 모래가 폴폴 날리고 물방울이 꼬르륵 올라왔다.


"결국 우리들은 그 괴물 같은 아노말로카리스에게 당해야만 하는 운명이란 말인가?"


좋아, 넌 앞으로 「진지충」이다. 사자가 코끼리한테 지고 나면 가젤 궁뎅이 물어뜯는 게 일상이거늘. 어디 감히 생태계의 지배자님께?


"진정하시게. 우리가 진정 바라봐야 할 것은 앞으로 그 무서운 아노말로카리스에게 대항해서 어떻게 대처할까야."


등에 뿔이 잔뜩 솟은 삼엽충이 말했다. 제법 똑똑한 삼엽충인 것 같다. 대충 저 친구는 앞으로 「안킬로(사우루스)(트릴로)바이트」라고 해야겠다. 음 멋진 이름이야.


"아무리 거대하고 재빠른 아노말로카리스라고 할지언정 분명 약점은 있을 것입니다."


역시 안킬로바이트는 생각 이상으로 침착하고 신사적인 말을 이어갔다.


"그럼 대책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밋밋이가 앞으로 나서자 삼엽충들이 수근수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머, 저 밋밋한 녀석은 뭐야?'

'어디 감히 멋쟁이 뿔 달린 삼엽충들 얘기하시는데 끼어드는 거지?'

'저, 저. 저 교육 못 받은 놈 보게.'


하층민의 신세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돌턴과 긔뤼삭의 언쟁에 끼어들었던 아보가드로의 입장이지. 결국 밋밋이의 발언은 후대에 널리 기억될 것이다.


물론 밋밋이가 삼엽충이라 기록도 뭐도 안 남지만. 나는 기억해줄게.


"에헴, 제가 아무리 뿔이 없는 삼엽충이라 해도 이것 하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노말로카리스라 해도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을 것입니다. 지금은 뿔의 유무를 볼 때가 아닙니다. 아노말로카리스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터전을 잃게 하고, 우리의 동지들을 살육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뭉치고, 손 잡을 시기는 지금입니다. 늦으면 기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연합은 곧 삼엽충의, 삼엽충에 의한, 삼엽충을 위한 역사적 연합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게 미쳤나 왜 삼엽충이 게티즈버그 비슷한 걸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갑자기 밋밋이의 지능이 상당히 상승한 모양이다.


웅성웅성.

뿔 달린, 혹은 뿔 없는 삼엽충들도 그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효과는 있었다. 세상에, 밋밋이가 이렇게 멋진 연설을 할 수 있다니.


근데 게티즈버그도 그렇지만 뭔가 어디서 들어본 말인 것 같은데. 역사를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


"근데 연합이 뭐야?"

"몰라."


역시 삼엽충이구나 후후.

밋밋이는 멋있었지만 결국 삼엽충은 삼엽충이었다.


"멋진 말이었어, 밋밋이."

"어? 무슨 말?"

"방금 일장연설을 늘어놓았잖아? 정말 멋졌어. 대부분 알아듣지는 못 한 것 같지만."

"음,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이래서야 아노말로카리스의 위협을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


"아노말로카리스다! 대형을 갖춰라!"


다행히 밋밋이는 기억을 잃었지만 몇몇 삼엽충들이 모두 힘을 합쳐 아노말로카리스에게 대항하는 것에 찬성의 의견을 냈다. 그 괴수에게 대항할 방법은 역시 크기. 크기가 곧 힘이다. 자연, 곧 생태계에서의 권력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삼엽충들이 안킬로바이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준비해라! 우리는 할 수 있다!"


기억 안 나는 삼엽충들은 어쩔 수 없고 기억이 그나마 난 삼엽충들만이 안킬로바이트의 신호에 맞춰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높고 높은 삼엽충의 벽을 쌓았다.


"버텨라! 분명 적도 우리의 의지에 겁을 먹을 것이다!"


멋지도다 안킬로바이트.


점점 다가오는 아노말로카리스. 엄습하는 공포에 몇 삼엽충들은 대열을 이탈했다. 하지만 용기가 넘치는 더욱 많은 삼엽충들이 달려들어 빠진 자리를 채우고, 오히려 더 높이 벽을 쌓아나갔다.

삼엽충벽.png

"버텨낸다! 물러나면 죽을 것이다!"


안킬로바이트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좌우의 삼엽충들을 독려했다. 조금 시끄럽고 열정적인 친구긴 했지만 가히 저 용기는 높이 사줄 수 있었다.


"으아아 무서워!"

"난 잡아먹지마!"

"난 아직 죽기엔 너무 어려!"


두려움에 가득찬 괴성이 울려퍼지며 불안감을 조성했지만 의도를 알 수 없는 삼엽충들이 더욱 가세하며 벽은 더욱 더 높아졌다.


그리고 눈 앞까지 다가온 아노말로카리스가 안킬로바이트와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째서? 그는 그렇게 용감하게 버틸 수 있을까?


결국 잡아 먹히면 이대로 끝인 것인데.


하지만 그는 결코 돌아서지 않는다.


피에라브라스. 두려움을 모르는 자. 옛날 옛적 읽었던 겔론의 기욤의 별명이었다지. 그에게 이 별명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날 치려 한다면 쳐도 좋다! 하지만 네놈의 목숨도 내놓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할 것이다!"


안킬로바이트가 고레고레 소리쳤다. 아노말로카리스는 앞에서 그 거대한 두 눈을 부라리며 앞발 같은 촉수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 손도 없고, 땀도 안 나지만 아무튼 비유를 하자면 그러하다.


정말이지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서로 눈만 맹하니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정말이지 이 시대의 가장 격렬한 승부일 것이다. 그깟 삼엽충 간의 전투에 비하면 말이다.


"안킬로바이트! 이제 그만 물러나! 그러다 너도 죽는다고!"


절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멋진 친구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는 삼엽충 계의 왕이 될 수도 있는 자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고맙지만 이런 진정한 승부를 흘려보낼 수는 없지."


안킬로바이트가 멋진 미소를 지은 것 같은 느낌으로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노말로카리스의 그 거대한 둥근 눈을 노려보는 안킬로바이트. 그도 역시 크게 긴장될 것이다. 단 한순간의 긴장조차 놓치면 그대로 당하게 될 것이다.


분명 그런 생각이 든다.


"으아아아아 아노말로카리스으으!"


고무줄을 당기듯 팽팽한 긴장감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 안킬로바이트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뽀글뽀글 거품이 일더니 아노말로카리스가 흠칫하고 뒤로 물러섰다.


안킬로바이트의 모습이 순간 거대하게 보였다. 마치 왕관을 쓴 왕. 그의 등의 뿔은, 그렇다. 왕관의 모양이다.


그대가 진정한 삼엽충들의 왕이다.



"꺼져라! 너와의 승부는 이미 끝났다!"


안킬로바이트가 다시 소리치자 아노말로카리스가 휘릭 돌더니 물거품을 일으키며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기염의 승리. 과연 왕의 풍채. 왕의 왕관을 업은 삼엽충. 그는 최초의 승리자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삼엽충이라 다들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


"정말 그때는 큰 일 나는 줄 알았어."


언제 나타난 것인지 돈까스가 옆에 있었다. 안킬로바이트가 모래를 쓸면서 몸을 비틀었다.


"정말 멋졌어. 그 아노말로카리스를 쫓아내다니."


힘을 합칠 것을 제안했던 밋밋이. 그도 역시 크게 긴장했던 모양이다. 아, 정말 멋진 승부였지. 숙명을 나눈 사이에서 나타나는 그 짜릿한 감각. 그 승부를 본 자는 누구나 감격할 것이다.


"안킬로바이트, 넌 충분히 삼엽충들의 왕이 될 자질이 있어."

"안킬로바이트? 아까도 날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내가 생각하기에 넌 그런 멋진 모습이었으니까.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존재의 이름을 조합한 것이지."

"이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네 말에서 날 존중하고 경외하는 느낌이 들어."


이름은 모르면서 경외는 왜 아는데?


"네가 날 그렇게 부른다면 난 너를 어떻게 부르면 되지?"

"난 선호야. 그리고 이 옆의 녀석은 밋밋이. 이 쪽은 돈까스."

"그래, 선호. 너도 역시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었어. 밋밋이, 이런 멋진 작전을 구상한 것에 크게 감사한다."

"아니 뭘, 너의 그 용감함이 없었다면 작전이라 한들 쓸모 없었을 거야."

"하하. 부끄러운 이야기군."


안킬로바이트가 밋밋이와 앞발을 서로 뻗어 악수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삼엽충도 악수가 있었나?


§


작가의말

연참이 끝나서 속풀이 하는 느낌으로 한 편 추가해보았습니다.


가급적 이 쪽은 주 1회 연재로 나가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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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삼엽충 이야기는 더 진행되기 어려울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19.11.25 34 0 -
공지 일하다 생각났습니다. 19.06.19 60 0 -
5 위기가 지나면 폭풍이 오는 법 19.09.16 38 3 9쪽
» 삼엽충 회의, 그리고 의지의 삼엽충. 19.08.03 66 2 8쪽
3 진정한 지배자의 등장 +2 19.06.28 56 2 8쪽
2 삼엽충이 되었다, 짠! 19.06.19 68 2 8쪽
1 시베리아로 간 고생물학자 +1 19.06.19 122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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