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태사령입니다.
50화가 지났으므로, 지금까지 등장한 인물들을 정리할 겸 소개하기에 적당한 시기인 듯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존인물들에 한해 사진자료를 첨부합니다.
물론 대체역사 특성상 소설 속 몰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사진은 가급적 작중 시간대인 1880년대에 가까운 시기로 구해서 넣으려 합니다.
조선인은 우리도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굳이 넣지 않고, 외국인들로 한정하겠습니다.
51화 이후 125화까지 새로운 등장인물이 많아 등장인물 소개를 추가합니다.
직책은 1884년 기준입니다.
청
이홍장(李鴻章). 1823년생. 안휘 출신. 직례총독 겸 북양대신. 양무운동 지도자. 1870년 이후 청 조정의 실권자로 청의 외교, 군사 문제를 전담. 1879년 조선에 서양 국가들과의 수교를 권유. 1882년 이후 조선 문제 전담.
정여창(丁汝昌). 1836년생. 안휘 출신. 북양수사제독 겸 천진 총병.
공친왕 혁흔. 1833년생. 1861년 의정섭정왕. 양무운동을 이끄는 총리아문 수장. 1884년 갑신역추로 실각.
증기택(曾紀澤). 1839년생. 호남 출신. 양무파. 주 영국, 프랑스, 러시아 겸임 공사. 18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국경조약을 체결. 1884년 청불전쟁 발발 당시 파리 주재 공사로 강경론을 주장.
오장경(吳長慶). 1833년생. 안휘 출신. 양무파. 해군 제독. 임오군란 당시 조선에 들어와 사건 조사. 광동수사 제독.
마건충(馬建忠). 1845년생. 강소 출신. 양무파. 프랑스 유학 후 이홍장의 특사로 조미수호조약 체결 동참. 임오군란 이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윤선초상국 회판.
오례당(吳禮堂). 1843년생. 강소 출신. 프랑스 유학 이후 스페인 주재 서기관으로 임명. 1883년 묄렌도르프의 추천으로 조선 주재 해관원이 되어 입국, 같은 해 보빙사절단의 통역으로 발탁. 귀국 후 인천 해관에서 근무.
원세개(袁世凱). 1859년생. 하남 출신. 과거 낙방 이후 오장경을 따라 조선에 들어와 관직을 받음. 이후 조선주둔 청군의 실질적인 지휘자. 총리아문 직속 회판조선방무.
일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1841년생. 조슈 번 출신. 1873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하야, 1878년 오쿠보 도시미치가 암살되고, 1881년 오쿠마 시게노부가 실각한 이후 일본 번벌 정부의 최고 권력자. 1883년 참의 겸 궁내경 겸 제도취재국 장관으로 헌법 초안을 작성.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 1836년생. 조슈 번 출신. 영국 유학 이후 신정부에서 내무경, 농상무경, 대장경 등을 역임. 1883년 외무경으로 로쿠메이칸(鹿鳴館)을 설립.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 1842년생. 오카야마 번 출신. 1880년 조선 주재 공사. 임오군란 이후 제물포조약을 체결. 1883년 러시아 주재 공사.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 : 군인. 공병 소위. 조선 주재 일본 무관으로 근무 중 별기군 교관이 됨. 임오군란 당시 구식 군인들의 표적이 되어 살해 됨.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 : 1842년생. 아마쿠사 번 출신. 1882년 조선 주재 공사. 1883년 조일해저전선부설조약 및 관세를 규정한 조일통상장정 체결.
시마무라 히사시(島村久) : 1850년생. 오카야마 번 출신. 1882년 일본 공사관 서기관. 1883년 다케조에의 일시 귀국 이후 대리공사. 1884년 조선 주재 부영사.
하라 다카시(原 敬) : 1856년생. 모리오카 번 출신. 1883년 천진 주재 영사.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 : 1837년생. 도사 번 출신. 신정부 참의였으나 1873년 메이지 6년의 정변으로 사이고가 실각할 당시 함께 사퇴. 1874년 입지사(立志社) 설립, 1881년 일본 최초의 정당인 자유당 설립.
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郎) : 1838년생. 도사 번 출신. 신정부 참의였으나 메이지 6년 정변으로 이타가키와 함께 하야, 자유당 설립에 동참.
미야오카 츠네지로(宮岡恒次郞) : 1865년생. 1883년 도쿄제국대학 법학과에 재학 중 미국 공사의 추천을 받아 보빙사절단 일행에 합류.
미국
체스터 아서. 1829년생. 버몬트 출생. 공화당 소속 변호사. 1880년 부통령으로 지명, 취임. 1881년 가필드 대통령이 암살됨에 따라 대통령 직 승계.
1882년 조선과 조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보빙사절단을 초청하여 맞이함.
로버트 슈펠트. 1822년생. 뉴욕 출신. 해군 제독. 미 해군 아시아 함대 사령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 1884년 조선의 외교 고문관으로 추천 받음.
루시우스 푸트. 1826년생. 뉴욕 출신. 초대 주 조선 미합중국 전권공사. 최초의 서양인 상주 외교관. 1883년 보빙사절단의 방미를 주선.
존 빙험. 1815년생. 오하이오 출신. 1855년 공화당 소속 하원 의원. 1873년 일본 주재 공사.
프레데릭 프렐링하이젠. 1817년생. 아서 행정부의 국무장관. 보빙사절단 방문 시 국서를 전달 받음.
조지 포크. 1856년생. 1876년 해군사관학교 졸업. 1877년 소위 임관, 아시아 함대 근무. 1882년 조선 방문. 1883년 보빙사절단의 방문 시 통역 및 안내를 맡음. 이후 함께 유럽을 돌아 조선으로 입국하여 공사관 주재 무관으로 임명.
퍼시벌 로웰. 1855년생.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1883년 동양에 대한 흥미를 느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일본 체류 중 미국 공사의 추천으로 보빙사절단의 참찬관이 되었으며, 함께 조선으로 귀국하여 최초로 고종의 어진을 찍었다. 188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편찬하였다.
영국
찰스 조지 고든. 1833년생. 영국군 대령. 청군 상승군 사령관. 이집트 군사고문관. 1884년 육군 소장. 조선으로 부임하여 최초의 서양인 군사고문관이 됨.
해리 파크스. 1828년생. 영국의 동아시아 통으로 1858년 제2차 중영전쟁을 주도. 1865년 일본 주재 공사로 18년간 재임하며 일본 정부의 막후에서 활동. 1883년 청국 주재 공사 겸 초대 조선 주재 공사로 조영수호조약 체결을 담당.
윌리엄 애스턴. 1841년생. 외교관 겸 동양학자. 1870년 일본 공사관 통역, 1882년 고베 주재 영사. 1884년 초대 조선 주재 총영사.
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 1818년생. 로마노프 왕조 15대 황제. 1855년 즉위. 크림전쟁의 패배로 충격을 받아 1861년 농노 해방과 더불어 사회개혁을 추진하여 이른바 ‘해방자 차르’로 불렸으나, 개혁의 미진함에 실망한 급진적 혁명가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판매했지만, 중앙아시아와 극동에서 영토가 대폭 늘어났다.
니콜라이 2세. 1868년생. 알렉산드르 2세의 손자.
알렉산드르 황태자와 마리아 표도로브나(덴마크의 다그마르) 부부.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 1827년생. 해군 총사령관.
니콜라이 보리소비치 유수포프 공작. 1827년생. 러시아 최고 갑부.
지나이다 니콜라예브나 유수포바. 1861년생. 유수포프 공작가의 후계자.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유수포바. 1866년생. 유수포프의 차녀.
루트비히 노벨. 1831년생. 스웨덴계 러시아인. 석유회사 브라노벨의 창립자.
알프레드 노벨. 1833년생.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 루트비히의 동생.
니콜라이 기르스. 1820년생. 1875년 외무차관 겸 아시아국 국장. 1882년 외무장관. 외교 문제에 있어 신중함을 유지, 강경파인 군부와 달리 친독정책을 유지했다.
카를 베베르. 1841년생. 외교관. 페테르부르크대학 중국학과 졸업. 1865년 외무부 임용. 1876년 청국 주재 러시아 공사관 서기관. 1880년 천진 주재 영사. 1882년 조선과의 수교조약을 체결할 담당자로 임명. 1884년 주 조선 공사.
알렉산드르 펠드가우젠. 1832년생. 태평양함대 사령관 겸 블라디보스토크 군정장관.
이오시프 바라노프. 1835년생. 연해주 군정장관 겸 육군 소장.
니콜라이 마튜닌. 1849년생. 1873년 남우수리 국경전권위원.
로만 로젠. 1847년생. 1875년 요코하마 주재 러시아 총영사. 1882년 일본 주재 대리공사. 1884년 뉴욕 주재 총영사.
알렉산드르 크로운. 1823년생. 해군 제독. 1870-75년 프리모르스키 군정지사 겸 태평양 함대 사령관. 재직 당시 고려인 이주민에게 관대한 정책을 취함. 1882년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콜라이 시네우르. 군인.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참전. 1879년 중령. 1884년 청국 주재 러시아 공사관 무관. 대령.
안드레이 코르프. 1831년생. 육군 중장. 1884년 동시베리아 총독부에서 분리 신설된 아무르 군정지사로 부임하여 러시아 극동지역의 전권을 발휘. 남작.
독일 제국
오토 폰 비스마르크. 1815년생. 독일제국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 독일의 실권자. 1870~80년대는 비스마르크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유럽 정세를 주도했다. 이른바 ‘철혈 재상’. 유럽 정세에만 집중하여 동아시아 문제에는 불개입을 원칙으로 했다.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 1847년생. 프로이센 출신. 할레 대학 동양학과 졸업. 1869년 청나라로 가 해관에 취직. 1879년 천진 주재 독일 대리영사. 1881년 사표를 내고 이홍장의 보좌관이 됨. 1882년 이홍장의 추천으로 조선에 부임하여 최초의 서양인 고문관이 되어 외교와 재정 분야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 종2품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협판 겸 해관 총세무관 겸 전환국 총판.
막스 폰 브란트. 1835년생. 프로이센 출신. 1861년 도쿄 주재 프로이센 영사, 1872년 일본 주재 공사, 1875년 청국 주재 공사. 1870년부터 조선과의 통상 수교에 관심을 보여 조선에 입항하였고, 마침내 1882년 조독수호조약을 체결하여 그 뜻을 이뤄냄.
오토 젬부쉬. 1841년생. 프로이센 출신. 해군 장교 겸 외교관. 1884년 초대 주 조선 총영사로 임명.
헤르만 부들러. 1884년 조선 주재 부영사. 1885년 조선중립국안을 제안.
카를 볼터. 1858년생. 독일의 아시아 상사인 마이어 상사(Meyer Co.)에 입사. 1883년 제물포에서 조선 최초의 서양인 회사 세창양행(世昌洋行)을 창립, 운영.
프랑스 공화국
쥘 페리. 1832년생. 정치가. 1880년 수상. 1883년 외무장관 겸직. 국내에서는 교육 개혁을 단행하여 국민교육을 이뤄냈으나,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정책을 펼쳐 인도차이나의 식민화를 추진하여 베트남을 놓고 청과 전쟁이 발발했다.
펠릭스 리델. 1830년생.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1861년 조선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도주, 프랑스 해군에 알려 병인양요의 원인이 됨. 제6대 조선교구장. 최초의 한국어 사전인 조불자전과 조불문전을 편찬.
장 블랑. 1844년생.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1876년 조선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 1884년 제7대 조선교구장. 조선명 백규삼.
J.A. 시엔키에비츠. 1883년 일본 주재 공사. 1884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 일본 자유당의 이타가키와 고토가 공사관을 방문하여 조선에 대한 차관교섭 및 고문관 파견을 제안 받아 이를 총리에게 보고함.
이번에도 등장인물 사진 첨부를 하려고 사진 자료 준비했는데...
하나의 글에 20개까지만 사진 첨부가 된다는군요. ㅠㅠ
그래서 부득이하게 텍스트만 올리겠습니다.
참고자료용으로 블로그를 만들어야하나 싶습니다.
앞으로 새 인물이 등장할때마다 틈틈이 업데이트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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