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보면 학살은 서주 전체의 1/3 정도에 걸쳐 이뤄졌죠. 더 난감한 건 뭐냐하면 가장 피해가 적었던 광릉에서는 도겸의 고향(단양)사람이자 수하였던 착융이 광릉 태수 조욱을 살해하고 그 지역 재산을 전부 빼돌려 강남으로 (유요에게) 도망갔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서주는 그냥 다 박살이 나고 말았죠. 도겸은 자기 수하 두명 때문에 (조조의 부친 살해, 조욱 살해) 서주에서 완전히 인망을 잃어버리고, 시름시름 앓다 죽은 후, 객장이었던 유비에게 서주를 넘겨주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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