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새벽 어스름이 밀려나는 동틀 무렵, 운해에 가려진 산봉우리들이 장엄한 모습을 속속들이 드러냈다.
사시사철 불어오는 바람줄기를 따라 운해가 끝없이 흐르고 새들이 물고기처럼 구름 속을 누비는 그곳에 마치 섬처럼 떠 있는 산봉우리가 있었다.
천도산(天島山).
사람들이 천도산이라 부르는 그곳에 백의를 입은 사내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사내의 손길에 따라 검이 흔들리고 바람이 함께했다.
때론 빠르고 때론 느린 그의 검법은 단순하면서도 변화무쌍했다. 그의 검 끝이 만들어 낸 무수한 선과 함께 상쾌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
검을 거둔 사내가 반개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허공을 응시하던 사내가 이내 두 눈을 감았다.
귓가에 맴도는 바람 소리처럼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질 않았다.
마치 가슴을 도려낸 것만 같은 기분······. 그것이 사내의 고요한 마음에 작은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뒤엉킨 생각처럼 수 많은 바람들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감고 있는 두 눈 넘어로 덧없이 흘려간 지난 나날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그려지기 시작했다.
-천명과 싸우고(千鬪) 백명과 겨루며(百比) 열번의 전투(十戰)와 함께 일살(一殺)을 달성하라.
그것은 사부님의 마지막 유언이자.
-그리하여, 진정한 쾌의(快意)의 검도(劍道)를 이루거라.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
-···하산하거라.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어두운 공동 안, 어디선가 새 나오는 미약한 빛줄기가 눈부시는지 노쇠한 목소리와 함께 노인의 두 눈이 서서히 감겨진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듣기 좋은 것일까, 주름살 가득한 노인의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가부좌를 한 노인의 앞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던 청년은 이내 아무런 말없이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스승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용히 일어선 청년은 천천히 뒤돌아 공동 밖으로 걸어갔다. 이내 청년의 모습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감춰져 갔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말거라.
멈칫, 멈춰진 발걸음이 다시 움직였다. 눈물 마른 자리를 뒤로 한채, 스승이 남긴 두 자루의 검을 가슴 속에 품고서.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살아가거라.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공동 안을 가득 채웠다.
-이제는 네가 쾌검문의 당대 문주이니라.
똑.
어두운 공동 안, 마지막 물방울 소리를 끝으로 발걸음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희미한 웃음으로 모든 것을 마친 이의 마지막 모습만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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