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5)

71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5)
“고속도로 휴게소!”
차사 고창의 말에 신태웅과 차고은 그리고 다른 차사들 모두가 그의 얼굴로 시선을 집중했다.
특히 가장 놀란 것은 청룡 화련.
그녀가 묻는다.
“고속도로 휴게소?”
“네. 그 있잖아요. 그때! 원주에 있는 병원에 그 귀신 들린 소방장 셋방살이하는 귀신들 잡아 빼주러 갔을 때.”
“앗!”
화련의 눈에 비친 얼굴
‘천화공주’
이젠 백발의 무녀, 천 년 전에도 아니 그보다도 더 이른 시간부터 살아온 탈명자.
자신의 어릴 적 사부이자 가장 동경했던 인물.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리자 자신의 오빠가 했던 말 또한 기억이 났다.
‘그녀라면 뭐든 한번은 세상을 뒤집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만났던 첫 눈 오는 휴게소 주차장에서의 대화.
백발의 그녀는 자신을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이리 말했었다.
‘또 볼 일 없었으면 좋겠네. 네가 저 휴게소 안의 것들과 같이 움직이는 상황이라면 말이야.’
화련은 생각한다.
지금 자신의 앞에 천화 공주, 천오백 년을 가까이 살아온 탈명자이자 반 신선인 무녀를 잡으려는 차사들이 있다.
그들을 도와줘야 하나?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동해의 용신, 이곳 이승 인간의 삶을 관장하는 영수이다.
차사 고창이 그녀를 보며 묻는다.
“기억나죠? 그때 식당에서. 거 맛 드럽게 없는 돈가스 먹었잖아요?”
“어어··· 음··· 글쎄.”
“분명히 기억나요. 그때 식당에서, 분명 이 냄새 맡았었어.”
“너 그때 식당에서 쫓겨나서 주차장 차에 있지 않았어?”
“에이. 주문할 때 있었죠.”
“그랬나?”
“맞는다니까.”
그때 신태웅이 대화에 끼어든다.
“그러니까 어느 날 방문한 고속도로 휴게소의 식당에서 이 여자아이의 냄새를 맡았다는 말씀이시죠?”
“맞아.”
“거기가 어딥니까?”
“광주원주고속도로지? 아마? 거기가?”
“언제쯤?”
“아··· 그러니까··· 첫눈 오던 날? 일기예보 검색해봐요. 진눈깨비가 그날 겨울 들어 처음으로 많이 내렸으니까···”
옆에서 차고은이 말한다.
“날짜도 특정할 수 있겠군요. 혹시 차는... ”
“그때 차 랜트한 걸로 아는데?”
“그 차의 블랙박스나 뭐 그런 게 있었을까요?”
“랜트한 차는 아래층 소방대원이 했으니, 물어보면 알거요.”
고창이 청룡 화련을 쳐다본다.
“뭐? 내가 왜?”
“아. 거 좀 도와주면 안 돼요?”
“내가?”
“네. 이 친구들 사정 좀 봐주세요. 차사가 대놓고 생사람에게 말 걸고 차 어디서 빌렸습니까? 하고 물을수도 없는 거 아니오.”
“흥. 싫어.”
“어허. 거참 성질머리하고는.”
“니들 일은 니들이 알아서 해. 나는 동해 용왕님께 저 소방대원만 지키라는 명을 받았을 뿐이야. 네놈들 도우라는 소리는 내 명에 없거든?”
“허. 거참.”
“그리고! 난 네놈들이 잡겠다는 탈명자? 그들을 지키면 지켰지, 네놈들에게 잡아보라고 도울 일은 없을 것이고. 나는 사방신이지 차사가 아니야.”
“!”
“이승, 이곳 반도에서 숨 쉬는 모든 이들이 내 권속(眷屬)이다. 그들 또한 숨을 쉬고 있다면 당연히 내 지켜야 하는 것이 내 명이고 역할이야.”
그녀의 침잠한 눈에서 불이 튀긴다.
아니 형광등 조명으로는 막을 수 없는 형형한 안광이 앞의 차사들 뇌리를 섬뜩하게 만든다.
차사들은 그녀가 이제껏 같이 족발을 먹으며 농담을 하곤 있었지만, 자신들과 다른 차원의 생물, 용족임을 새삼 깨닫는다.
“뭐··· 그렇다면야···”
고창이 팔짱을 끼고는 딱히 할 말이 떨어졌는지 묵묵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신태웅을 보며 말한다.
“대충, 날짜와 위치는 특정했으니 거기 휴게소 한번 직접 가서 살펴보시오. 혹 CCTV라도 있다면 답이 나올 테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는 이곳에서 저 서슬 퍼런 용과 함께 자릴 차지하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게 된 신태웅과 차고은이 자릴 일어난다.
“덕분에 길을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창이 마지막으로 말한다.
“냄새는 기억하고 있으니 또 맡게 되면 알려드리리다.”
고개를 끄덕인 특무대의 두 차사가 문을 나선다.
이제 할 일이 생겼다.
탈명자의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부지런히 찾아봐야 할 것이다.
서슬 퍼런 눈으로 둘을 주시하던 용이 짧게 배웅의 인사를 남긴다.
“잡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들이 뭘 하려는지 안다면!”
“?!”
차고은이 문을 나서려다 말고 돌아서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며 말을 받는다.
“차사는 명에 따를 뿐입니다.”
“흥.”
“그럼.”
차고은의 보일 듯 말 듯 한 묵례에 눈을 가늘게 뜬 청룡 화련이 짜증난 얼굴로 주먹에 쥐고 있던 벼락을 던져버릴까 말까 잠시 고민하더니 차사 고창을 바라본다.
“왜에에에. 화 푸셔. 화. 어허허. 그러다 이 집 날아가오.”
“나도 알거든.”
“그런데 진짜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그 탈명자라는 족속들이 하려는 일이 뭐요?”
“뭐긴. 뻔하잖아!”
“뻔?”
“어. 뻔하지. 뭐긴 뭐야.”
“그러니까. 뭐에요?”
“명부탈출은 이미 했고, 숨어 사는 것도 성공했어.”
“그랬죠. 천 년도 더 된 이야기라 들었소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거는 뭘까?”
“......”
“그러니까 그들이 모여서 뭘 하긴 하려는 거요?”
“에효. 말을 말자. 관심 꺼.”
“허.”
“나 잘 거야. 모두 나가!”
“에헤이 또 왜···”
“꺼지라고!”
반 강제로 빌라 밖으로 튕겨 나온 차사 넷은 잠시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아래층의 소방관 주권현의 빌라로 들어간다.
그가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는 사이 방안에서 차사 여섯이 허망한 얼굴로 서로를 주시하며 머릴 굴리고 있다.
‘탈명자들은 정말로 뭘 하려는 걸까?’
* * *
귀문을 방금 통과한 신태웅은 핸드폰으로 연신 뭐라 뭐라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다니까요.”
핸드폰 너머에서 오수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두 모으겠으니 어서 오기나 하셔. 그래봤자 셋밖에 더 있겠나? 차고은이는 옆에 있지?]
“예. 금방 갑니다. 십분?”
[알았어. 어서 와. 올 때 메로나.]
“이미 귀문 넘었거든요?”
[넌 눈치가 없냐. 이승엘 갔으면 당연히...]
“됐어요. 끊어요.”
“뭐래?”
“우리 도착 전에 모여있겠다네.”
그녀가 입만 삐죽하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 모양.
신태웅은 지금 자신도 머리가 복잡한 마당에 그녀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앞전의 빌라에서 만난 청룡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난 네놈들이 잡겠다는 탈명자? 그들을 지키면 지켰지, 네놈들에게 잡아보라고 도울 일은 없을 것이고. 나는 사방신이지 차사가 아니야.]
자칫 잘못 말려들게 한다면 탈명자 잡자고 용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영수 중에서도 백호가 죽은자를 다스리는데 비하면 청룡은 생명의 탄생을 주관한다.
즉, 죽으나 사나 청룡은 산자를 위하는 영수, 생명의 신수, 물의 정화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생각보다는 일이 수월치가 않겠다.
만약 같은 생각이라면 이미 한번 청룡의 번개를 직격으로 맞아본 차고은의 상념이 더 크리라.
“어차피 다 모이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니 좀 천천히 가지?”
신태웅의 말에 잠깐 다리를 멈칫한 차고은이 그를 돌아보며 묻는다.
“이승에 근무하면 돈이 얼마나 들지?”
“안 들어도 달에 백은 들지?”
“그 돈은 어디서 나와?”
“총무과에서 절반 정도는 나오는데 많이 부족하지.”
“그럼?”
“무당집을 도는 놈들도 있고, 장례식장에서 몰래 챙기는 놈도 있고.”
“헐.”
“그리고 대부분은 연고 없이 죽은 객사자의 주머니에서?”
“뭐야. 그지가 따로 없네?”
“차사의 능력으로 이승의 생사람 주머니에 손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뭐. 대충 알겠어.”
“왜? 이승으로 근무지 숙소 옮기게?”
“할 수 있다면.”
“흐음. 그렇군. 뭐 도울 일 있으면 말하고.”
“......”
“아마도 없겠지만.”
신태웅이 씁쓸하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자 차고은이 괜한 생색에 부담이 갔는지 휙 돌아서 걸어 나간다.
그래. 어제 먹은 족발과 떡볶이는 맛나긴 맛났지.
‘에효. 앞으로 내 고생길도 훤하구나. 잠자던 먹신을 깨운 격이니.’
그가 부지런히 걸어 나가는 차고은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 * *
“좋아. 그럼 우선 고속도로 휴게소 CCTV부터 확인해보도록.”
설무용의 건조한 명령에 강태강이 손을 들고 말한다.
“대장. 그런데, 우리는 차사잖아요.”
“그런데?”
“임시명부도 없이 걍 맨몸으로 ‘CCTV 좀 봅시다!’하면 이승의 생사람들이 그걸 내보여줄까요?”
“그렇군. 그럼 우선 총무과에서 바로 수령 가능하게 임시명부 발급부터 처리하겠네. 현혹과 투과, 또? 어떤 권능이 필요하겠나?”
“방뇌격(防雷擊)이요.”
차고은이 뭔가 결심한 듯 설무용을 보며 말한다.
“방뇌격?”
“네. 필요합니다.”
신태웅이 말을 받는다.
“벼락 맞을 일이 뭐가 있다고 방뇌격 권능이 있는 명부를 찾는 거야?”
신태웅이 빠르게 설명을 시작한다.
“아. 그것이, 염라명부차사 만날 때 옆에 청룡 용신이 한 분 계셨거든요.”
“용신?”
“네. 그 영수가 그러더라고요. 만약 차사와 탈명자가 겨룬다면 자신은 탈명자의 편에서 지켜보겠다 뭐 그런 뜻으로...”
“청룡이라면 사방신격이니 당연히 생사람을 위하여 움직이겠지. 그래서 용과 싸우시겠다?”
“뭐 싸운다기보다 우리가 최소한 막을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방뇌격 한두 방 막아낸다고 뭐 다를 것 같은가?”
설무용이 가소롭다는 듯 신태웅과 차고은을 내려본다.
“그럼요?”
“괜히 화만 돋우게 될 거야. 그런 거 한두 방 맞아주고 떡하니 기절한 척 하는 편이 청룡의 화를 피하는 데에는 더 좋다네. 알겠나?”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다.
신태웅과 차고은은 입이 딱 벌어져서 설무용만 바라본다.
“만약 정말 청룡이 차사와 싸우고자 한다면 그냥 멸혼되었다고 봐야지.”
“멸혼이요? 그렇게 강해요?”
강태강이 놀란 듯 되묻는다.
그를 보며 설무용이 조금은 풀린 얼굴로 웃으며 말한다.
“예전에 한번 청룡에게 까분 차사가 하나 있었지.”
“......”
“그 친구 머리 위로 화살 같은 우박이 30톤이 떨어졌어.”
“캑.”
“그렇게 곤죽이 된 반시를 회오리로 걸레 짜듯 짜서는 바다에 물고기 밥으로 줬다더군.”
“우박이 끝이 아니고요?”
“드드드”
재미있다는 오수관과 강태강의 표정과는 다르게 신태웅과 차고은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용이 화를 내면 무조건 선방 맞고 죽은 척하게나. 괜히 고집부리다가는 뼈가 문제가 아니네.”
“아··· 알겠습니다.”
“30분쯤 후에 총무과에서 임시명부 발급 알아보게. 내 그때까지는 조치해보지. 아. 참 그리고.”
“?”
“둘은 고생했네.”
“아닙니다.”
회의를 끝내고 설무용이 나가자 오수관과 강태강이 후다닥 신태웅과 차고은의 앞으로 달려와 앉는다.
그리고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묻는다.
“진짜 요··· 용이랑 한판 떴다며?”
“네?”
“야. 너희 소문 다 났어. 귀문에서 용 막다가 벼락 맞았다고.”
“누··· 누가···”
“문지기 하던 사신 둘 지금 새로 뼈 맞추고 있잖아. 몰라?”
“아. 그놈들이요?”
“어째 벼락 맞았다며 멀쩡하네?”
오수관이 신태웅에게 묻자 신태웅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한다.
“벼락은 제가 아니고 이쪽이···”
차고은은 예의 그 차가운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며 말한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 할 거 없잖아요? 전 차부터 수배할게요. 어차피 우리 팀에서 운전할 사람은 나뿐인 거 같으니···”
“알겠네···”
차고은이 나가다 말고 돌아서서 신태웅을 보며 말한다.
“뭐해?”
“나..? 아.. 알았어. 가자.”
차고은의 서슬 퍼런 표정에 엉겹결에 따라나서는 신태웅을 보며 오수관이 말한다.
“뭐야? 저놈.”
강태강도 뭔가 눈치를 챈듯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이상하죠?”
“그러게··· 설마”
“에이 설마요.”
“진짜 둘이 사귀나?”
“......”
(계속)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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