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소방교 주권현(1)

49화. 소방교 주권현(1)
소방교 주권현은 랜터카의 차키를 받아 들고 조금 걱정이 앞섰다.
혼자 움직이는 상황이었다면 그냥 고속버스로 간편하게 갔을 텐데, 지금은 어린 소녀와 개까지 딸려 가야 하는 상황.
택시로 가야 할까도 생각했지만, 하루 풀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와 비용을 생각해보니 랜트가 오히려 저렴하다.
문제는 매일 구급차며 소방차 몰던 가닥으로 모닝에 앉아 있으니 왜인지 핸들이 너무 가벼워 운전이 낯설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시야가 좁아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룡 화련이 묻는다.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몰던 차에 비하면 이건 애들 장난이지. 두 시간은 가야 할 텐데 뭐 좀 살까?”
“전 물이면 돼요.”
“정말? 괜찮겠니?”
“정 입이 심심하면 중간에 휴게소라도 들리시죠?”
“그래. 타라.”
“그보다, 대로 입구에 동물병원 있어요. 거기 먼저 들러요.”
“왜?”
“오늘 병원 간다면서요? 강아지는 출입 금지일걸요?”
“그런가?”
“이동장 대신 백팩 같은 가방 있어요. 하나 사가요.”
“알았다.”
소방교 주권현이 차에 시동을 걸자 청룡 화련이 앞 좌석에 앉아 개똥이를 무릎에 앉힌다.
“벨트 매라.”
“꼭 매야 해요? 오늘 사주엔 무탈한 거로 나오는데.”
“그러다 사고 나면 개똥이가 네 에어백 역할이다.”
개똥이 차사 고 이 커진 눈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본다.
“아하하. 알았어요.”
청룡 화련이 안전띠를 당겨 맨다.
“왈왈”(나는?)
그를 내려다보는 청룡 화련의 얼굴에 ‘어쩌라고?’라고 쓰여 있는 듯.
“으르르”(에휴. 내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청룡 화련이 눈짓으로 뒤쪽을 가리키자 차사 고 이 슬쩍 보더니 아무 소리 없이 자리에 앉는다.
“그럼 출발합니다.”
그녀가 뒤를 보자 뒤 칸이 가관이다.
차사 다섯이 뒤 칸에 껴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상황.
네 명의 남자 차사는 좌, 우로 둘씩 겹쳐 앉았고 가운데 차사 김달래는 거의 만원 지하철에 낑겨 숨도 못 쉬는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다.
차가 골목의 코너를 돌 때마다 그들의 인상이 처절함으로 바뀐다.
청룡 화련이 시츄를 가슴까지 올리고 귀에다 속삭인다.
“아니, 차사들을 꼭 다 데리고 가야 하는 거야?”
차사 고 창이 뒤를 보며 말한다.
“왈왈”(지붕에 올라타는 것보다 저렇게 앉는 걸 선택한 건 저놈들이요)
“매정하시네.”
“뭐? 야! 물만 사달라고 한 건 너였잖아?”
소방교 주권현이 놀란 얼굴로 소녀를 바라본다.
“아. 아니에요. 아저씨한테 한 말.”
“야! 나 딱 들었다. 매정하단 단어에 나 트라우마 있거든?”
“왜요? 연애 끝날 때 한 소리 들으셨어요?”
“와. 진짜 무당이네.”
“저 진짜 무당이라니까요?”
“그나저나 야 너 이름이 뭐냐? 아직 난 너 이름도 모른다.”
“그걸 이제야 물어요? 왜 애인이 없는지 답이 딱 나오네.”
“아. 그게 그런 거냐?”
“진짜 매정하시네⋯⋯.”
“나한테 매정하다고 하는 여자론 네가 세 번째다.”
“어? 애인 말고 한 명은 또 누구예요? 전전여친?”
“아니”
“그럼요?”
“엄마.”
“헐. 진짜 매정 대마왕이시네요.”
“매정 대마왕은 또 뭐야?”
“킹왕짱이시라구요. 엄마한테 전화 언제 하셨어요?”
“한 6년?”
“헐.”
청룡 화련이 핸드폰을 꺼내며 말한다.
“엄마 전화번호 불러봐요. 당장 전화해야지 이거 원⋯⋯”
“전화 할 수 있으면 나도 진작 했지.”
“네?”
“6년 됐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가 기일이네.”
“아⋯⋯”
“무당이라면서?”
“그런 게 보일 리가 있어요? 생년월일 읊어봐야 자기 사주나 나오지 부모 사주가 나온답디까?”
“그런 건가?”
“그런 거죠.”
“⋯⋯.”
한참을 말없이 달리던 차가 올림픽대로로 들어서자 이내 막히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내리던 눈은 진눈깨비가 되어 이젠 부슬부슬 비처럼 쏟아진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와이퍼에 청룡 화련이 지금의 분위기가 답답한지 창문을 살짝 내리며 말한다.
“연화에요.”
“뭐?”
“이름이요.”
“아이쿠. 참 일찍도 말해준다.”
“뭔 말을 해줘도 궁시렁이에요?”
“연꽃이라. 이름 좋네.”
“연꽃 연(蓮) 자 아니고 잇닿을 연(聯) 자 거든요?”
“그럼 화자는?”
“빛날 화(華) 자에요.”
“잇닿은 빛이라⋯⋯, 연꽃보다 더 좋은 이름이네.”
“무당 같죠?”
소방교 주권현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꾹 닫은 입술로 ‘그렇군’이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청룡 화련(花輦)의 이름은 말 그대로 꽃(花) 가마(輦)였지만, 인간일 때의 이름은 연화(聯華)였다.
“내 이름은 알지?”
“가슴에 항상 쓰여 있네요.”
“알면 됐고.”
“그런데 꼭 제복을 입고 가야 해요?”
“소방관이 제복 입지 그럼 뭘 입니?”
“꼰대 소리 좀 안 들어요? 후임들에게?”
“뭐?”
“애인도 없지, 반 지층 원룸에, 모아둔 돈도 없지.”
“팩폭 하지 마라. 마이 아프다.”
“왜 그러고 살아요?”
“나라 지키다 보니 가족은 못 지켰어.”
“!”
“휴가 나왔더니 시골집 화목난로 청소 좀 해달라고했는데 내 안 하고 친구들이랑 술 먹고 놀았거든.”
“!!”
“부대 복귀하고 한 3주 정도 있었더니 부고가 오더라.”
“음.”
“매정하지?”
“에효.”
“너한테 왜 이런 이야길 하나 모르겠다.”
“사후(死後)를 믿게 됐으니까요.”
“어젯밤에 그 귀신 보기 전까지는 나도 긴가민가했거든.”
“그 귀신 지금 뒤에 타고 있어요.”
“끼에엑”
차가 갑자기 갈지자를 그리며 휘청한다.
“야야야! 왜 그래?”
“안 보이시죠? 난 보이는데.”
소방교 주권현이 백미러를 통해 뒷자리를 봤지만, 뒤는 공석이다.
하지만, 청룡 화련의 눈에는 낑낑 앓는 소리를 내며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다섯 차사의 힘겨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제발 농담 좀 가려서 해 줄래?”
“매정하시네!”
“아 진짜!”
“쉬 마려워요. 가다 휴게소 보이면 들어가요.”
“아. 알았다.”
뒷좌석의 다섯 차사는 차라리 차 지붕에 타고 갈 것을 왜 이리 껴서 가자고 했을까 후회막급이다.
그나마 눈치 빠른 청룡이 휴게소에 들른다고 하니 다들 안도한 표정.
다시 자릴 잡아야 하겠다.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고속도로 휴게소 안내판을 보며 소방교 주권현이 말한다.
“야 그래도 그 처녀 귀신 말인데⋯⋯,”
“왜요? 소개팅이라도 시켜드려요?”
“커흑! 넌 뭐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오니?”
“아니! 딱 지금 말하는 본새가 처녀 귀신이 얼굴이 참하더라 뭐 그런 소리 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와 귀신이네.”
“귀신 아니고 무당이라니까!”
“알았다. 내 닥치고 운전이나 할게.”
“그러세요. 주기사 오라이!”
“허허!”
막히던 길이 시원하게 뚫리며 속도가 붙는다.
이젠 정말로 운전에 집중해야 할 상황.
소방교 주권현은 옆에 앉아 있는 소녀가 왜인지 죽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 * *
차는 광주원주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다 휴게소로 빠져들어 간다.
고속도로 휴게소 치곤 작은 주차장.
평일 늦은 아침이어서인지 몇 대의 때늦은 김장배추를 실은 트럭들과 관광버스 말고는 차들이 없이 한적하다.
“아침 먹었니? 안 먹었으면 같이 뭐 먹을까?”
“알겠어요. 개똥이 좀 맡아 줘요.”
“그래. 저기 휴게소 가운데 보이지?”
“네.”
“거기 식당으로 와. 뭐 시켜 둘까?”
“메뉴는요?”
“고속도로 휴게소야 뻔하지. 김밥, 유부우동, 잔치국수, 곰탕, 육개장?”
“물냉 있으려나?”
“있으면 그걸로 시키고. 없으면?”
“잔치요.”
“알았다.”
소방교 주권현이 시츄를 안고 서둘러 식당으로 들어가자 청룡 화련이 가만히 기다리다 뒤를 돌아본다.
“고생이네.”
“아닙니다.”
상기된 얼굴로 겨우 차에서 빠져나온 차사 김달래가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차 지붕에 두 명 정도 붙어서 가는 게 세상 편하겠어.”
“그러네요.”
“몸 좀 풀고 있어. 한 이삼십 분은 걸릴 거야.”
“저희도 들어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음.”
“개똥이가 걱정되긴 하나 보네.”
“아닙니다. 보호 대상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명을 받아서요.”
“나 하나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리가요. 단지 명을 받았으니 저희는 따라야 하는 바라···.”
“좀 쉬어도 될 텐데, 어쩔 수 없지. 먼저들 들어가. 난 화장실 들렀다 갈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차사 다섯이 소방교가 열고 들어간 문을 향해 빠르게 움직인다.
청룡 화련이 씁쓸한 미소로 휴게소의 화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 * *
“어머. 여긴 애완동물 같이 들어오시면 안 돼요.”
“예?”
“그 강아지 안된다고요.”
“그럼 주문만 넣어놓을게요.”
“그러세요. 식사하시려면 강아지는 차에 두고 오세요. 아니면 케이지에 넣어서 오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메뉴판을 바라보며 뭘 먹을지 고민하는 소방대원의 주위로 급하게 들어온 다섯 차사가 거리를 벌리며 다섯 방향을 바라보며 선다.
“물냉 하나, 유부 하나요.”
“유부는 초밥이요?”
“아! 아뇨. 우동이요. 김밥도 하나 할게요.”
“원조요?”
“참치요.”
“만팔천오백 원입니다.”
노골적으로 짜증 난다는 표정의 카운터 직원이 카드를 받아 계산한다.
소방교 주권현은 동네 분식점에서 시켰다면 만원이면 떡을 쳤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수증과 배식권을 받아 식당 테이블로 이동한다.
그리고 저쪽 반대편 출입문으로 빠져나가는 일군의 사람들을 본다.
휠체어의 소녀와 흰머리, 그리고 키가 큰 청년과 꼬마.
그러고 보니 자신이 강원도 산속 피웅덩이 속에서 건져 낸 소녀의 모습과 휠체어의 소녀가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에이. 설마.”
자신이 알기에 그녀는 아직도 병원에 있을 것이다.
혹여 잃은 두 다리 때문에 구해준 자신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병문안도 피했던 상황.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던 그에게 카운터의 직원이 큰 소리로 말한다.
“아저씨!”
“네?”
“강아지는 안된다고요.”
“아. 예! 죄송합니다.”
그가 황급히 강아지를 안고 다시 식당 문을 나온다.
“야. 넌 차에서 얌전히 기다려! 알았지? 거기 시트에 오줌싸면 안된다. 내 차도 아니고⋯⋯.”
그가 고개를 들자 차 앞에 기대어 선 소녀 연화의 모습이 보인다.
“연화야. 왜 이러고 있어?”
“아!”
“야. 식당에 개는 출입 금지란다.”
“아. 그래요?”
“어?”
“?”
“너 얼굴이 왜 그래?”
“왜요?”
“무슨 일 있니? 왜 울어?”
“아! 운 거 아니에요. 누굴 좀 만났어요.”
“누굴?”
“매정한 사람이요!”
“?”
“그런 사람있어요.”
다시금 흩날리는 진눈깨비 사이로 그녀의 눈이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이제는 거의 점처럼 보이는 검은 벤 한 대를 따라 움직인다.
진눈깨비에 그녀의 검은 머리가 흩날린다.
“야! 아는 사람 만났으면 같이 들어오지 그랬어. 밥이나 같이 먹게.”
“그러게요.”
“왜? 그냥 가디?”
“급한 일이 있다네요.”
“엄청 서운했나 보구나.”
“네. 엄청 서운하네요.”
“⋯⋯.”
소방교 주권현이 시츄를 차에 넣고 문을 닫는다.
“가자. 음식 나왔겠다.”
“왈왈!(왜 나만⋯⋯!)”
차사 고 창은 처연한 표정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소녀의 눈을 바라보자 그가 먼저 조용히 의자 밑으로 숨는다.
주권현이 말한다.
“얌마. 조금만 기다려. 금방 먹고 나올게.”
그는 돌아서서 연화의 모습을 보더니 당연한 습관처럼 자킷을 벗어 소녀의 어깨를 감싸준다.
“뭐에요?”
“눈 오잖아. 난 매정하게 안 보이려고.”
“피~!”
“음식 나왔겠다. 어서 가자.”
그의 두툼한 손이 소녀의 어깨를 감싸자 소녀의 다리에 속도가 붙는다.
진눈깨비 속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소방대원과 소녀의 주위로 검은 옷의 차사 다섯이 그들을 지키며 걷는다.
흩날리는 눈 속으로 소녀는 자꾸만 고속도로를 뒤돌아본다.
(계속)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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