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표지

독점 탈혼명부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19.10.12 01:47
최근연재일 :
2020.01.18 00:02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2,917
추천수 :
32
글자수 :
502,487

작성
19.12.02 11:30
조회
22
추천
0
글자
19쪽

34화. 이야기의 시작 (3)

DUMMY

34화. 이야기의 시작 (3)



원주의 한 종합병원.


병원 앞 잔디는 임시로 만들어진 추모비와 함께 다양한 시민들이 찾아와 안타깝게 사망한 아프리카의 선수들을 기리고 있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국화꽃과 드문드문 보이는 운동화 같은 선물들, 흑인 선수들의 사진과 편지들이 추모공간 가득 쌓여있었다.


오늘도 강원도에서 수습된 시신들이 운구되어 이곳 병원의 시체안치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243명, 시신들의 DNA를 검사하고 비행기 밖으로 튕겨 부서지고 찢긴 시신들의 조각을 최대한 맞춰 안치하는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리고 그 시신들 사이에 유일하게 생존한 소녀가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카통고.

취재기자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4층의 중환자실에 검은 옷의 차사와 청의의 소녀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소녀를 살피고 있었다.

그 둘의 뒤에 서 있는 거대한 체구의 토신은 키가 3m 정도로 줄어 그 둘을 따라 소녀를 비어있는 동공으로 조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토신이 가만히 손을 들어 손가락에서 누워있는 아이의 이마 위로 진흙으로 된 물방울을 떨구곤 나직한 소리로 짧게 노래했다.


멀뚱한 표정으로 노래를 듣고 있던 차사 고 창은 가슴에 손을 넣어 자신에게 발급되었던 명부를 꺼내 살폈다. 명부는 앞뒤로 전체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미 까맣게 타버린 명부. 글씨도 알아볼 수가 없다.

망혼부.

이 명부는 소방대원 주권현의 사고명부였다.

명부의 명을 받들지 못하고 혼을 인도하지 못하였으니 명부는 이렇게 까맣게 타 폐기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자신은 이 명부와 함께 망혼 된 이유를 사유서에 열심히 작성해서 감찰부에 제출하러 들러야 한다.


‘제길.’


지금이라도 가서 그 소방대원의 혼을 빼 오면 안되냐고?

당연히 안된다.

차사는 명을 받들어 혼을 인도할 뿐, 이승의 상황엔 관여하지 않는다. 이미 그는 살았고, 다음 죽음은 차후에 명부를 새로 발급받은 다음 차사 몫이다.


물론, 어제의 기절해있던 소방관에게 날린 죽빵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어야 한다. 설령 누가 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한 것은 아니라고 죽어라 발뺌을 해야 할 상황. 이미 옆에 있는 청룡과는 입을 맞춰 그리 사유서를 쓰겠다는 확답을 얻은 터이니 감찰부에 들키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아이의 혼은 어디 있었고, 어떻게 돌아온 걸까?

토신들은 뭔가 알고 있는 눈치이지만, 나 같은 하급 차사에게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설명해 줄 리 만무했다.


토신이 고개를 돌리고 ‘아이의 건강함을 확인하였으니 이제는 사고자들에게 가겠다’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하. 차사 생활 350년 만에 졸지에 가이드 신세라니⋯⋯’


“돌아가자!”


청룡의 말에 고 창은 그녀에게 부탁했다.


“10분, 아니 5분만 시간을 주시죠.”

“왜?”

“그 소방대원을 보고 와야겠습니다.”

“데려가려고?”


차사 고창이 망혼부를 꺼내 보이자 명부가 부스스 흩날려 먼지가 되었다.


“보시다시피 명부는 이 꼴이요.”

“망혼이군.”

“그 덕에 전 징계를 먹게 됐고요.”

“알겠어. 5분이야.”

“징계를 먹게 됐다고요.”

“3분 줄까?”

“쳇!”


차사 고 창은 허겁지겁 발을 놀려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


고 창은 응급실에서 나오고 있는 소방교 주권현. 머리에 냉찜질 팩을 붙이고 붕대를 감은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망혼자! 아니지, 망혼하지 못한 자.’


한번 명부가 발부되었다가 죽지 않아 명부가 타버린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그리고 다시 그에게 명부가 재발급 된다고 하면 또 얼마나 빠르게 올 것이냐? 죽음을 관장하는 저승사자의 죽빵을 맞고 자신이 살아났다고 하면 또 누가 믿겠는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은 것이냐.’


차사 고창은 다시 응급차를 타고 나가는 소방대원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잘 사시게.’


예전 룰에 따르면 망혼자의 명부 재발급은 49일 안이다.

두 번째 명부에도 죽지 않는다면 499일, 그리고 세 번째 명부에도 죽지 않았다 하면 이후엔 늙어 더는 살기 싫을 때까지 명부는 재발급되지 않는다.




주차장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차사들이 보였다.

이곳이 종합병원이니 당연히 사고부 차사들이 상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살짝 손만 들어 보였다. 아마도 사유서를 제출하고 차후 징계를 받으면 저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그들에게 인사를 새로 하고 안면을 터야 할까 고민을 하다 다 부질없다 싶었은지 한숨부터 나왔다.


“하아.”

“뭔 한숨이야?”

“차사 맘을 누가 알겠소?”

“용인 내가 알아줘야 하는 거야?”

“아닙니다.”

“그럼 됐네. 5분 됐어. 가지?”

“아하하. 옙”


청룡의 경쾌한 발걸음을 따라 차사 고창은 무거운 걸음으로 소녀의 뒤를 따랐다.


‘이제 저 귀여운 청룡은 대놓고 하대를 하는군.’


괜히 350년 됐다고 드랍을 쳐서 천오백 살 먹은 청룡이라고 짬 인증까지 하게 만들었으니⋯⋯ 그 전 서로 존대를 할 때의 귀여운 맛은 없어지고, 이젠 어디 신병교육대 조교 같은 느낌.


“에효. 어? 저 아직 준비가 안됐⋯⋯ 어어어어”

“시끄러워! 가만히 있어.”


청룡이 가볍게 그의 허리를 감고 사고기가 있던 강원도 홍천으로 날아올랐다. 이 용은 친절하게도 한 손엔 자기를 다른 손에는 아까의 그 아프리카의 산디웨족의 토신을 데리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용이 하늘을 나는 속도야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고, 채 2분이 지나지 않아 화마가 할퀸 강원도의 울창한 숲,

하부 동체 앞, 혼령들이 둥글게 모여 기다리고 있는 곳에 다다랐다.


아프리카에서 온 거대한 토신들이 다리 아래에 망자의 혼들을 가득 품고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고 창은 그 모습이 꼭 엄마 닭이 병아리들을 품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모두 정리해야 할 시간.

삼삼오오 모여있는 혼령들은 각자 자신의 토신들을 따라 숲속 어딘가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대지모신의 힘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커다란 나무를 찾아 그 나무의 정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 그들의 명계로 돌아가리라.


아마도 저들의 지옥은 우리 염라께서 관장하는 우리의 명계와는 체계나 모습이 전혀 다를 것이다.


지금 마지막으로 병원에 같이 다녀왔던 산다웨족의 토신이 함께 가야 할 혼령 십여 명과 걸음을 옮기다 말고 조용히 이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토신이 손을 움직여 청룡을 불렀다.

청룡과는 얼추 대화가 통하는가?

짧은 이야기를 마친 청룡이 날듯 땅을 디디며 차사 고 창에게 다가왔다.


“자, 선물.”

“네?”


청룡이 던진 물건을 받아든 차사는 깜짝 놀랐다.

그의 손바닥에는 돌을 갈아 만든 작은 화살촉이 들려있었다.


“토신이 너 주래”

“이걸⋯⋯ 왜 제게⋯⋯.”

“나야 모르지.”

“⋯⋯.”

“선물도 받았는데 손이나 흔들어 주자고.”


청룡은 뭐가 기쁜지 숲속으로 사라지려는 산다웨족 선수들의 혼과 토신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뭐야? 아프리카 놀러 오라고 초대장이라도 받은 거?

허⋯⋯ 그는 자신의 징계와 맞바꾼 화살촉을 꼬옥 쥐고 청룡에게 말했다.


“이제 정리가 다 된 듯하니 저는 차사들과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네?”

“동해청룡왕(東海青龍王)께서 염라대왕께 드리는 전언이야.”

“예?”


청룡의 소녀는 자신의 소매에서 두루마리로 말린 서신 하나를 쑥 내밀었다.


“도⋯⋯ 동해 청룡 왕께서요?”

“에? 만난 적 있지 않나?”

“아!”


그는 생각났다.

화수분을 이용해서 그 게으른 방만희라는 프로그래머의 허깨비 백 개를 만들 때! 깐깐하게 감독을 하던 사방신 중 용이 바로 동해청룡왕일 것이었다. 자신에겐 그 허깨비들 없앨 때마다 보고하라고 시켰던⋯⋯


“기억나네요.”

“동해청룡왕께서 이번 사고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신 것 같아.”

“네?”

“기억나? 시니가미(しにがみ)가 일본인 혼들 잡아갈 때?”

“아.. 예.”

“우선은 그 일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셨어. 감히 우리 땅에 들어와서 말이야.”


당연히 예측 가능한 상황.

동해청룡왕께서는 화수분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동쪽에서 오는 우환은 모두 그의 소관.

그는 이 땅의 동쪽 방위를 맡은 수호신이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빨리 가야 할걸?”

“아. 네. 그렇군요.”


그가 차사들을 모아 차를 부르려 할 때 가만히 보고 있던 용이 한심하다는 듯 다시 그를 불렀다.


“어이. 아저씨.”

“??”

“왜요?”

“아저씨. 빨리 가셔야 한다고. 그거 전하시려면.”

“최대한 빨리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참. 답답한 양반이네. 귀문(鬼門)이 어디 있지?”

“강원도에는 없죠. 이천이나 양평으로 가야⋯⋯.”

“흥. 알겠어.”


그녀의 콧방귀와 함께 차사 고 창은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하늘로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차사 고창은 청룡의 행동에 기겁했다. 그는 벌써 구름을 뚫고 아찔한 높이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청룡을 따라 올라와 있었다.


“크허어어어억”


청룡은 밤하늘을 한 바퀴 휘릭 돌더니 서울 양양 간 동서고속도로를 따라 빠르게 날기 시작했다. 그는 이 미칠듯한 속도에 한쪽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 서신을 가슴팍으로 옮겨 꼬옥 끌어 앉았다. 지금 이걸 놓치는 날에는 이 용에게 아니 염라대왕께 갈가리 찢겨 죽으리라.


“어디쯤?”

“여기가 어딘데요?”

“춘천 지났지!”

“예?”


그녀는 이미 북한강을 따라 서울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강 위에 팔당댐이 보이는 듯⋯⋯ 지금 이 속도라면 눈 깜짝하면 서울이다.


“구⋯⋯ 구리시 아무 곳에나 내려주세요.”

“구리? 오케이”


아찔한 높이에서 땅에 꺼지듯 떨어진 그는 아무도 없는 밤 어느 아파트 뒤의 후미진 건물 옥상에 그를 내렸다.


“또 보자고.”

“아⋯⋯ 예.”


왠지 다시 보기 싫지만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청룡.

어정쩡하게 인사를 나누자, 용은 예의 그 용다운 위상으로 하늘 꼭대기까지 쑥 하고 솟아 사라졌다.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던 그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온종일 산속에 있어서인지 배터리가 방전된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아. 진짜로. 이럴 때⋯⋯.”


그는 최대한 빠르게 근처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지금 다른 저승사자를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병원 장례식장뿐이다.


***


응급실 한쪽에서 피곤한 얼굴의 응급의가 소방교 주권현에게 말했다.


“뇌진탕이 의심되긴 하지만 엑스레이 소견상으로는 크게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하하⋯⋯ 제가 돌머리이긴 하죠.”

“그래도 좀 부어올라 있으니 얼음찜질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소염제와 진통제도 처방해 드릴 거고요. 박 간호사. 이분 얼음찜질 좀 해드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의사에게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고 나온 주권현은 능숙하게 얼음찜질팩으로 찜질을 해주는 간호사를 살펴봤다.


“저 주시죠.”

“아니에요. 가만히 계셔요.”


그는 간호사가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찜질을 굳이 직접 하려고 침대에 붙어있는 것에 약간의 연민이 느껴졌다.

이렇게 해서라도 쉬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노동 강도.

그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진료실이 바로 보이는 쪽 커튼 막을 당겨 쳐줬다.


“소방관님. 어떻게 바로 또 출동이세요?”

“아마도요.”

“영안실 쪽 담당하는 간호사한테 건너 들었어요. 사고 상황이 말이 아니라고⋯⋯.”

“그러네요.”

“트라우마 치료 같은 것도 정기적으로 받으시죠?”

“네. 요즘은 정기적으로 받도록 규정이 정해져서요.”

“바로 또 나가실 거면 붕대로 감아드릴까요? 팩 얼음 녹으면 그때 푸셔도 돼요.”

“아. 감사합니다. 그래 주세요.”

“잠시만 이 상태로 계세요. 금방 올게요.”


머리 위에 얼음팩을 얹고 엎드려 있던 주권현은 간호사가 붕대를 가지러 간 사이, 머릿속으로 다시 자신의 사고 상황을 복기하지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지금 혹까지 날 정도로 충격을 받은 후두골보다 턱 왼쪽 아귀가 더 아프다는 것.

누군가한테 스트레이트로 죽빵을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는 동체에서 선배 소방장이 하는 그 이상한 소리가 다시 생각났다.


[야. 너 뒤에 서 있는 저 사람⋯⋯ 누구지?]

[다⋯⋯ 당신들 누구야! 왜 여기 있어?]

[누구냐! 귀신이냐?]


귀신을 본듯한 그 선배의 목소리.

실성한 듯 외치던 비명.


‘아! 맞다. 마약!’


낙뢰에 실신한 선배를 후송하고, 생존한 아이를 압좌된 상태에서 치료와 구조를 병행해야 하는 험한 상황이어서 그가 더는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한쪽으로 치워버린 주제였지만, 지금 침대에 가만히 누워 보니 다시금 하나하나 상세하게 기억이 났다.


‘다시 가봐야겠는데?’


그때 간호사가 돌아와서 말했다.


“자. 일어나 보세요.”


간호사는 능숙한 솜씨로 혹이 나 있던 후두골 위에 단단하게 새 얼음팩을 얹고 붕대로 감았다.


“저. 혹시⋯⋯.”

“네?”

“저 낙뢰 맞아서 부상한 소방대원이 있었는데 이 병원에 왔나요?”

“네. 그분이요? 화상 병동이니까⋯⋯ 아마도 E동 입원실에 입원해 계실 거예요.”

“부상이 심하던가요?”

“그건 저도 잘⋯⋯.”

“아. 예.”

“다 됐습니다. 한 층 내려가시면 에스컬레이터 앞에 바로 약 수령하시는 곳 있어요. 조금 기다리시면 처방전 나올 거예요. 그거 가지고 가셔서 거기서 소염제랑 진통제 받아서 가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세요. 그럼”


간호사는 살짝 그의 어깨를 터치하고는 또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걱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그를 미소 짓게 했다. 봉사직 사람만이 아는 동료애 같은⋯⋯


그는 약을 받은 후 복도 벽에 붙어있는 병원 위치도부터 살폈다.


‘화상 병동, 입원실⋯⋯, 여기군.’


그는 E 병동을 향해 곧바로 올라갔다.

그리고 취재기자들이 복도에 몇 명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을 통해 이곳에 선배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한번은 봐야지?’


그가 2인실의 병동의 창문을 슬쩍 보려고 할 때 복도의 취재 기자들이 그에게 우르르 다가와 물었다.


“저 바쁘시지 않으면 인터뷰 조금 따도 될까요?”

“아니요. 바쁩니다.”

“진짜 잠시만, 한 5분이면 됩니다.”

“바빠요. 비켜주시죠.”

“1분도 안 될까요?”

“비켜주시죠.”

“⋯⋯.”

“어이. 한번 해 주지는. 거참.”


예의도 뭣도 없는 걸 보니 딱 봐도 기레기.

사람 죽고, 아프고, 병든 이야기로 벌어 먹고살려고 여기서 바쁜 소방관 붙잡고 인터뷰나 따겠다고?

가치 있고 세상에 남겨야 할 이야기가 넘치는 세상에서 이자는 자극적이고 흥미만 따라다니다 소설 소재로나 쓰려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리라.


만약 이 자가 화재 현장에서 사고자로 구조를 요청한다면 목숨을 걸고 구하겠지만, 지금 같이 예의 없이 군다면 절대 굽히고 싶진 않았다.


“비켜주시죠.”


지금 이곳에서는 이 나라 최고의 신뢰를 받는 직업인이 최악의 신뢰를 받는 직업인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비키라고요!”

“어이쿠, 조금만 더 하면 치겠소? 뭐 같으면 한 대 치시던가.”


저 뒤에 선 카메라 기자는 지금 내 행동을 찍지 않는 척하고 있지만, 열심히 영상으로 담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놈들은 딱 봐도 각이 나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기자의 뒤편에서 들리는 수간호사의 날카로운 목소리.

우군이다.


“취재 중입니다.”

“면회 시간 외에는 여긴 출입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나가세요.”

“아니 그럼 이분은⋯⋯.”

“보면 모르세요? 이분 여기 환자시잖아요. 가뜩이나 사고 때문에 정신없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나가세요. 당장.”


그녀가 벽에 붙은 인터폰을 누르며 말했다.


“여기 E동 화상입원실, 면회 외 시간인데 기자들이 들어와서 행패 부리며 치료 방해하고 있어요. 보안요원들 좀 올려주세요.”


쭈뼛거리던 기자들이 짜증을 내며 짐을 챙겼다. 그들이 다 나갈 때까지 문 앞에서 도끼 눈을 뜨고 있던 수간호사가 그들이 모두 나가자 복도에 서 있던 자신을 보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를 따라간 곳은 특실이 있는 복도 앞.

문 앞의 명찰에는 아무 이름도 붙어있지 않았다.


“기자들이 극성이라 이쪽으로 옮겼어요. 문에서만 살짝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동료분이 걱정되시겠지만, 지금 면회는 안 돼요. 막 잠드셨거든요.”

“아. 예. 상태는 어떠신가요?”

“낙뢰가 왼쪽 측두를 타고 들어가서 어깨 통해서 왼팔로 이렇게 타고 나갔어요.”


그녀의 손이 훑고 지나가는 곳을 따져보니 상태가 꽤 심할 듯 보였다.


“지금은 왼편 눈 쪽이 화상과 백내장으로 좀 심하게 상한 상태고요, 어깨부터 손도 화상 치료 중이에요. 근데. 걱정인 게 뇌 쪽이거든요.”

“⋯⋯.”

“지금은 기억상실증 같은 증상이 복합으로 와서 의식이 있어도 말씀도 잘 못 하시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좀 회복 더 되시면 그때 면회 다시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아. 아닙니다. 설명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 또 들르겠습니다.”

“네. 그럼. 고생하세요.”

“그럼.”


돌아서서 가려던 주권현을 수간호사가 다시 잡았다.


“아. 이쪽. 직원 엘리베이터로 내려가세요. 그쪽으로 내려가면 기자들 아직 있을 거예요. 2층에서 내리셔서 에스컬레이터로 나가시면 돼요.”

“아. 예. 감사합니다.”


간호사들은 항상 소방대원에게 친절하다.

아까와 같은 비슷한 연대 의식 같은 것이 동료애를 만든다.


소방대원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부류는 딱 세 종류뿐.

길에서 만나는 난폭 운전자. 술 취한 주취자. 그리고 정치인. 그는 거기에 일부 기자를 포함했다.


***


엘리베이터를 내려와 주차장으로 가자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 일어났다.


“갈까? 뭐 좀 먹었어?”

“아니요.”

“가면서 먹을 거 좀 사자.”

“일단 타세요!”


다시 찢긴 시체를 찾아 산을 뒤지러 올라가는 길이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마약’


그는 확인해봐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아마도 동체 하부의 그곳엔 타다 만 마약이 아직 남아있으리라.


(계속)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탈혼명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 21.05.26 160 0 -
71 71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5) 20.01.18 35 0 12쪽
70 70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4) 20.01.16 22 0 13쪽
69 69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3) 20.01.15 20 0 13쪽
68 68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2) 20.01.14 20 0 13쪽
67 67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1) 20.01.13 19 0 14쪽
66 66화. 방만희와 허깨비들(9) +2 20.01.11 41 1 13쪽
65 65화. 방만희와 허깨비들(8) 20.01.10 21 0 13쪽
64 64화. 방만희와 허깨비들(7) 20.01.09 23 0 14쪽
63 63화. 방만희와 허깨비들(6) 20.01.08 18 0 14쪽
62 62화. 방만희와 허깨비들(5) 20.01.07 16 0 11쪽
61 61화. 방만희와 허깨비들(4) 20.01.06 18 0 14쪽
60 60화. 방만희와 허깨비들(3) 20.01.04 22 0 11쪽
59 59화. 방만희와 허깨비들(2) 20.01.03 21 0 14쪽
58 58화. 방만희와 허깨비들(1) 20.01.02 23 0 17쪽
57 57화 . 쌍둥이 아빠 주광진 (2) 19.12.31 20 0 17쪽
56 56화. 쌍둥이 아빠 주광진(1) 19.12.30 23 0 16쪽
55 55화. 택배원 김씨와 방만희(2) 19.12.28 20 0 12쪽
54 54화. 택배원 김 씨와 방만희(1) 19.12.27 27 0 18쪽
53 53화. 소방교 주권현 (5) 19.12.26 21 0 14쪽
52 52화. 소방교 주권현 (4) 19.12.24 25 0 13쪽
51 51화. 소방교 주권현 (3) 19.12.23 18 0 12쪽
50 50화. 소방교 주권현(2) 19.12.21 24 0 22쪽
49 49화. 소방교 주권현(1) 19.12.20 17 0 12쪽
48 48화. 카통고(2) 19.12.19 21 0 14쪽
47 47화. 카통고(1) 19.12.18 21 0 18쪽
46 46화. 염라명부 차사(6) 19.12.17 19 0 14쪽
45 45화. 염라명부 차사(5) 19.12.16 20 0 17쪽
44 44화. 염라명부 차사(4) 19.12.14 20 0 17쪽
43 43화. 염라명부 차사(3) 19.12.13 18 0 17쪽
42 42화. 염라명부 차사(2) 19.12.12 18 0 19쪽
41 41화. 염라명부 차사 (1) 19.12.11 23 0 17쪽
40 40화. 징계소왕과 허깨비(4) 19.12.10 24 0 14쪽
39 39화. 징계소왕과 허깨비(3) 19.12.09 20 0 16쪽
38 38화. 징계소왕과 허깨비(2) 19.12.06 22 0 19쪽
37 37화. 징계소왕과 허깨비(1) 19.12.05 22 0 12쪽
36 36화. 이야기의 시작 (5) 19.12.04 28 0 16쪽
35 35화. 이야기의 시작 (4) 19.12.03 26 0 17쪽
» 34화. 이야기의 시작 (3) 19.12.02 23 0 19쪽
33 33화. 이야기의 시작 (2) 19.12.01 21 0 18쪽
32 32화. 이야기의 시작 (1) 19.11.30 30 0 15쪽
31 31화. 사고 (6) 19.11.29 25 0 14쪽
30 30화. 사고 (5) 19.11.28 21 0 17쪽
29 29화. 사고 (4) 19.11.27 27 0 19쪽
28 28화. 사고 (3) 19.11.26 23 0 18쪽
27 27화. 사고 (2) 19.11.25 22 0 16쪽
26 26화. 사고 (1) 19.11.24 28 0 21쪽
25 25화. 특무대 (5) 19.11.23 30 0 19쪽
24 24화. 특무대 (4) 19.11.22 27 0 18쪽
23 23화. 특무대 (3) 19.11.21 28 0 20쪽
22 22화. 특무대 (2) 19.11.20 28 0 16쪽
21 21화. 특무대 (1) 19.11.19 34 0 15쪽
20 20화. 탈명자(3) - 새 이름 19.11.18 30 0 13쪽
19 19화. 탈명자(2) - 추격전 19.11.17 34 0 18쪽
18 18화. 탈명자(1) - 소녀 정제수 19.11.16 37 0 11쪽
17 17화. 프로그래머 방만희(4) 19.11.15 38 0 16쪽
16 16화. 프로그래머 방만희(3) 19.11.14 46 0 18쪽
15 15화. 프로그래머 방만희(2) 19.11.13 38 0 16쪽
14 14화. 프로그래머 방만희(1) 19.11.12 40 1 19쪽
13 13화. 택배원 김 씨(3) 19.11.11 41 1 13쪽
12 12화. 택배원 김 씨(2) 19.11.10 84 0 15쪽
11 11화. 택배원 김 씨(1) +2 19.11.09 50 2 13쪽
10 10화. 차사 신태웅(8) 탈명특무대 +2 19.11.08 53 2 18쪽
9 9화. 차사 신태웅 (7) 차출(2) +2 19.11.07 74 2 13쪽
8 8화. 차사 신태웅(6) 차출 +2 19.11.06 66 2 19쪽
7 7화. 차사 신태웅(5) 재교육(2) +2 19.11.05 71 2 16쪽
6 6화. 차사 신태웅(4) 재교육 +2 19.11.04 83 2 13쪽
5 5화. 차사 신태웅(3) 징계 +2 19.11.03 92 2 15쪽
4 4화. 차사 신태웅(2) 미로진 +2 19.11.02 99 3 13쪽
3 3화. 차사 신태웅(1) 망혼 +3 19.11.02 126 3 17쪽
2 2화. 무녀. +3 19.11.01 183 4 19쪽
1 프롤로그 & 1화. 무명(無名) +4 19.11.01 440 5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