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표지

독점 탈혼명부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19.10.12 01:47
최근연재일 :
2020.01.18 00:02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2,920
추천수 :
32
글자수 :
502,487

작성
19.11.21 11:30
조회
28
추천
0
글자
20쪽

23화. 특무대 (3)

DUMMY

23화. 특무대 (3)


원귀를 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람이야 차사를 볼 수 없도록 조치를 하므로 죽어 망자가 되기 전까지는 옆에 차사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귀신이 되어 뻔하게 차사가 접근하는 것을 원귀의 두 눈으로 보는 상황에서라면 원귀 쪽에서 마음만 먹으면 작심만 하면 피하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원귀를 잡기 위해 개발된 권능이 바로 귀막(鬼膜)이다.

차사 차고은이 발동한 귀막의 권능은 거의 차사 중에선 최상급. 차사 중에는 보기 드물게 강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차고은이 처음 차사로 임관했을 당시 배속된 곳이 귀환부(鬼還府)였고, 그 부서에서 발급하는 검은색의 귀감명부(鬼勘名簿)는 원귀를 잡는데 특화된 명부였기 때문이었다.


차사 차고은은 이 귀환부 근무 시절 항상 이 귀막의 권능을 뿌리는 역할을 담당해야 했었다.

팀 단위로 움직이는 이 부서에서 그녀는 홍일점. 어여쁜 용모에 거친 사내들 사이에서 귀환부 임무를 수행하려 했다면 으레 다른 차사들이 그녀를 항상 제일 뒤 줄, 가장 안전한 자리, 곧 귀막이나 치는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귀가 수월하게 차사의 명을 고분고분 따르는 경우가 거진 없기에 차사와 원귀가 치고받는 박투는 예사였고 오히려 차사들은 팔 하나, 다리 하나쯤은 날려가며 싸워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에 이 부서의 차사들은 예쁜 용모의 홍일점을 무슨 부대의 마스코트처럼 보호하고 싶었다.

항상 팀장으로 자릴 잡은 귀화부장은 그녀가 다칠까 싶어 항상 제일 뒷줄에서 귀막을 치는 임무만 할당시켰고, 그래서 그녀는 항상 원귀는 보지도 못하고 작전을 끝내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진급’에서 항상 누락되었다.


차사는 원귀와 싸우다가 팔, 다리 하나쯤 날아간다고 하여도 차사 본부의 활신부(活身府)에서 치료를 조금만 받으면 금방 재생하여 다시 달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귀환부 차사들은 거칠었고, 그들이 거칠수록 그녀는 더 공을 세울 수 있는 자리에서 멀어졌다.

원귀를 직접 잡은 차사들은 평점을 높게 받아 금방금방 진급하여 올라갔지만, 그녀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한동안 진급도 없이 귀막을 치는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녀는 언제나 공을 세울 수 있는 자리에서 가장 멀리 있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지긋지긋한 귀막을 더 강력하게,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더욱 강력하게 쳐 자신의 역량을 돋보이게 발현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귀환부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가장 귀환부다운 차사가 되었다.


‘쳇. 여기서도 이 꼴이라니.’


귀막을 치고 있던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진료가 끝나는 시간. 중앙 홀의 한 가운데, 이제 이곳의 앞, 뒷문도 보안요원들에 의해 닫혔다. 폐원 시간이 가까워지자 수납을 담당하던 직원들도 하나둘 자릴 정리하고 빠져나갔다. 본관 문이 잠기자 넓은 홀도 썰물 빠지듯 사람들이 사라졌다. 중앙 홀의 천장 불도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조용해진 홀.

병원은 짧은 정적을 뒤로하고 다시금 내일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청소용의 전기 차량을 몰고 온 아줌마가 핸드폰으로 연속극을 틀어두곤 청소를 시작했다.

차고은의 시선이 자신 쪽으로 청소차가 오지 않길 바라며 가만히 그녀를 주시했다.


저승차사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는 큰 액(厄)이 든다.

왜 저승사자이겠는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저승사자의 액(厄)은 생혼에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아니, 멀쩡하던 기계가 왜 이래?”


차고은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건물의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몇 개 남지 않았던 천장의 조명이 팍하며 꺼졌다. 어두워진 중앙 홀에 덩그러니 남은 청소부는 생각보다 이른 시간임에도 칠흑처럼 어두워진 홀의 프런트를 보며 갑자기 으스스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이상하네. 어째 자판기까지 다 꺼졌데······.”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서 관리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려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꺼내어 전화 모드를 켜보려 하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훅 올라왔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누··· 누구?”


그녀가 바라보는 중앙 홀의 가운데 쪽은 아무도 없음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이상하게······,

다시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서늘한 전율.


“으흐흐어어어! 뭐야, 뭐야! 나 그런 거 안 믿는단 말이야!”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떨어졌다.

당황한 그녀는 청소용의 전기차에서 엉거주춤 내려와서는 천천히 직원용의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정적 속에 들리는 자신의 삐직 거리는 발소리.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음을 직감한 그녀가 그쪽을 향해 달렸다.


“으아아아아!!”


그녀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다다닥 누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뭐야! 뭐야! 제발! 제발! 제발! 왜 이래! 진짜!”


차고은의 원력(願力)이 그리 깊지는 않을 텐데, 단지 저승사자의 시선이 주는 액(厄)만으로도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본능으로 차사를 느끼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띵’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다른 청소부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야! 순자야! 너 왜 그래?”

“빨리! 빨리! 문 닫아!”

“얘가 무슨 땀을 이렇게 흘려!”

“어휴! 나도 몰라! 어서 문 닫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두 청소부가 사라지자 이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차고은이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다.

이제야 좀 편한 상황. 그녀는 귀막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 천장에서 그녀의 앞으로 원귀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음?”


신태웅에게 설명 들었던 예의 그 여자 원귀였다.


꽃무늬 원피스에 긴 생머리.

까무잡잡한 피부에 넓은 이마, 커다란 눈, 그리고 도톰한 입술, 생전에는 예쁘다는 소리를 주위에서 들었을 작고 예쁜 얼굴.

원귀는 마치 고양이처럼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그녀를 주의 깊게 바라봤다.


차사 차고은은 잠깐 고민했다.

지금은 무방비. 그녀가 만약 작정하고 자신에게 달려든다면 귀막의 결계를 풀고 공격에 대응하여 손을 써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 원귀는 자신을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만약에라도 공격하려 결심했다면 진즉 했어야 맞다. 그랬다면 원귀의 기운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터였다.


지금 보니 앞의 귀신은 원귀라기보다는 망귀 혹은 지박령 정도의 귀기만을 뿜어내고 있을 뿐, 누굴 해할 정도로 독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망자의 혼령에서나 보일 귀기였다.


망설임이 끝나고 무슨 결심이 섰는지 원귀가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언니야!”


‘언니? 언니라니?’


“언니야! 귀신 잡는 언니야.”


원귀의 목소리가 조금은 겁을 먹은 듯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힘 있고 분명한 목소리였다. 차고은은 원귀의 억양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귀신 잡아! 언니야, 나 귀신, 나 잡아라.”


‘뭔 소리야? 자수인가?’


차고은은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어보고자 했다. 특별하게 위험해 보이지도 않고, 어디로 툭 튀어 도망가려는 몸짓도 아니니 이렇게 귀막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귀막을 깨뜨리기보다는 그냥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한 것. 윈귀의 염원을 들어주는 정도야 쉽지 않은가!


“언니야! 내 말 들려?”


차고은이 물끄러미 원귀를 바라보고 있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야. 나 잡아. 나 집에 가고 싶다. 나 집에 보내줘.”


후웅!

귀막이 사라졌다.

아니 더는 귀막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차고은은 귀막을 바로 풀어버리고 곧바로 다시 새로운 귀막을 전개했다. 바로 앞에 웅크리고 있는 원귀가 들어올 만큼의 작은 넓이로, 이 정도 넓이라면 귀막을 유지하면서도 약하게 움직이는 정도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가벼운 박투도 가능했다.


“다시 말해 봐!”

“집에 보내주라. 언니야. 귀신 잡는 언니야. 나 너무 무섭다.”


차고은이 가만히 원귀에게 다가가 원귀의 손을 잡았다.

원래부터 까무잡잡한 피부, 원귀인 줄 알았더니 원래 피부색이 이런 것이다. 원피스라고 생각했던 옷은 한쪽 어깨에 있는 재봉선으로 미루어 치파오나 베트남의 아오자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치파오라고 하기엔 너무 길다. 이건 분명 아오자이.


“왜 무서워? 무슨 일이지?”

“난 길 잘 몰라. 나 무서워. 남편 안 죽어서 여기 나 혼자 있어야 해.”

“남편이 안 죽어? 왜 죽어야 하는데?”

“나만 죽어서 남편이 내 말 못 들어. 나 혼자라 무서운데.”

“남편이 안 죽어서?”

“남편이랑 가다가 사고 났어. 나만 죽었어. 나 길 몰라.”


이게 무슨 상황인가?

원귀인 줄 알고 잡으러 왔더니 남편이라는 생사람에 붙어 있던 지박령이었다.


남편에게 원한이 있다면 살(殺)기가 끼어 원귀가 되었을 것이 자명하지만, 지금 이 혼은 그래 보이지도 않았다. 원귀도 아니면서 사람에게 붙다니······.


“남편이 안 죽었으면, 죽이려고?”


차고은이 원귀라 불린 이 망자에게 차갑게 말하자 망자가 답했다.


“우리 남편 친절해. 우리 남편 착하다. 우리 남편 일 열심히 한다. 나 남편 좋아. 난 남편 안 죽여.”


원귀로 불렸던 망자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내 말 몰라. 나 말 계속하는데. 나 옆에 있는데······.”


이 이국의 망자는 이제 참았던 눈물이 터졌는지 그녀를 보며 엉엉 울고 있었다.


“잠깐만!”


그녀는 더는 들어볼 것 없다고 생각하고 바로 작게 친 귀막마저 풀어버리더니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돌렸다.


“네. 귀막은 지웠어요. 1층이에요. 내려오세요.”


오수관의 또 다른 질문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듯했지만, 그녀는 못 들은 척 전화를 끊고 말했다.


“저기에 좀 앉을까?”


망자는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을 훔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관 홀 중앙의 수납 창구.

앞에 늘어선 파란색 대기 의자로 망자를 데려온 차고은은 그곳에 그녀를 앉혔다.


‘망자가 베트남인이라니······.’


* * *


“넌 원귀랑 지박령도 구분 못 하냐?”


오수관의 질문에 신태웅이 멋쩍은 얼굴로 답했다.


“피부가 까맣잖아요. 딱 봐도······.”

“허이구, 그러셨어요? 뭐 내가 무슨 상관이냐. 고은이가 널 못 잡아먹어 안달 난 눈빛이니 그게 문제지.”

“전들 알았겠어요? 잠깐 힐끗 본 정도로······.”

“그나마 조금이라도 말은 통하니 다행이지. 쯧쯧.”

“원래 원귀 피부가 까매요?”


신태웅과 오수관이 강태강의 얼굴을 보며 ‘어이쿠야!’란 표정을 지었다.


“넌 사신일 때 뭘 배운 거야?”

“전 간수 직을 잘해서······.”

“아. 좀 조용히 해봐요. 잘 안 들리잖아요.”


신태웅은 홀 맞은편 병원 인포메이션 부스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차고은과 베트남 망자와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차고은은 이 망자의 사연을 들어주고 그녀를 어서 가야 할 곳으로 보내고자 했다. 물론 증인으로 들어야 할 진술도 함께.


“야!”


차고은이 이쪽을 보며 신태웅을 손가락으로 불렀다. 신태웅이 그녀의 호출에 몇 발 나서려고 하자 더는 오지 못하게 손바닥을 펼쳐 막았다. 차고은이 물었다.


“맞아?”


신태웅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찌그러져 있어.”


발끈.


‘뭐 찌그러져?’


신태웅이 올라온 화를 어찌 풀어보려 하는데 뒤에서 오수관이 옆구리 살을 꽉 잡는다.


“가만히 있자. 잘하고 있잖니.”

“아아아 알았어요! 이거 좀 놔요.”


셋은 가만히 차고은과 베트남 망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 * *


그녀는 친구를 따라 놀러 왔다는 한국인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의 절친이었던 동창은 한국인과 결혼하여서 이미 젊은 나이임에도 애가 둘이었고, 설날을 맞이하여 남편과 함께 4년 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방문한 것이었다.

동행으로 남편의 친구와 함께.


처음 보는 자리, 즉석에서 친구에게 이 남자를 소개받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조금 나이가 있는 남자였지만, 그렇다고 딱히 싫지도 않았다. 평범한 얼굴임에도 매력은 있었다.


친구는 남편 친구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작은 자동차 수리점포를 가지고 있다는 남자는 엄마가 아파서 늦게까지 병시중하느라 장가를 못 갔단다.

참 보기 드문 효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 엄마는 암으로 석 달 전에 돌아가셨단다.

남편이 친구 마음 풀어주려고 이곳 관광을 함께 가자 제안해 같이 왔단다.

친구의 아기 둘은 포동포동 살이 올라 이제 뛰어놀기 좋아하는 사내아이와 귀여운 공주님. 더 부러운 것은 이곳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하얗고 뽀얀 피부였다. 친구 남편이 희고 고운 얼굴도 아닌데 아이의 피부가 어찌나 하얀지 그녀는 그것이 마냥 부러웠다.


하루는 그 남자가 친구 남편이랑 같이 찾아와서 집을 둘러보더니 자신의 낡은 스쿠터에 관심을 가졌다.


중학교 때부터 타던 자신의 스쿠터는 이젠 낡을 대로 낡아 고물과 같았다. 그는 연장 몇 개를 빌려오더니 온종일 뚝딱뚝딱 자신의 낡은 스쿠터에 매달려있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될 때쯤 자신에게 타보라고 했다.


그때 그녀는 이 남자의 웃는 얼굴이 참 잘생겨 보였다.


매일 타던 스쿠터였는데.

뒷자리에 타서 듬직한 남자의 등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스쿠터답지 않게 힘차게 울리는 엔진음에 그녀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 남자는 한국에서도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착하고, 친절하고, 효자다.

그렇게 그녀는 ‘이 남자면 괜찮겠다’라고 결정을 봤다.

한국에서 작은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한다는 이 남자라면 나와 내 아래로 여섯의 동생들까지 좋아해 줄 것만 같았다.


일사천리로 결혼을 하고 친구를 따라 한국으로 왔다.

만약 친구가 없었다면 용기도 나지 않았을 타국으로.


남편은 친절했고, 다정했고, 푸근했다.

시간이 쌓이고 정이 들자 남편의 좋은 점이 계속 보였다.

결혼을 하고 6개월이 지나서야 그녀는 남편을 정말 사랑하게 되었다.


남편은 딱 세 가지만 바랬다.


한국어를 배울 것.

아이를 둘 낳을 것.

한국에서는 스쿠터를 타지 말 것.


친구를 따라서 온 한국.

남편의 집이자 직장이자 공장인 수리센터에서 둘은 마냥 행복했다.


남편은 계단으로 한층 내려가 1층인 수리센터로 출근하면서도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정갈하게 머리와 면도를 했다.

2층인 자신의 집에서 그녀는 공주처럼 편하게 생활했다.

다문화 지원센터란 곳에서 친구와 한글도 배우고, 매일 쇼핑도 하고 걱정할 것 없이 마냥 즐겁게 생활했다. 남편의 돈으로 여섯 동생 공부도 다시 시켰다.

행복했고 그 행복은 곧 아기를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가 커가고 배가 불러오자 집에만 있던 그녀는 점점 답답증이 커졌다. 산후 우울증처럼 찾아온 향수병에 고향도 점점 그리워졌다.


한국의 여름은 이상했다.

베트남과 다르게 더 덥고 더 답답하다.

그래서 남편에게 휴가를 가자고 했다.

사장인 남편은 언제나 오케이였다.


“그래서 바다 가자고 했는데······.”

“사고가 났군.”

“트럭 나쁘다. 뒤에서 우리 쳤다.”


부른 배 때문에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는 사고 시 즉사했다.

아이와 함께.

그 사고로 자신과 함께 여덟 명이 죽었다.


“남편 많이 아파. 그래도 안 죽어. 한국 병원 좋아. 다 고쳐.”

“그래. 남편을 우리가 데려가진 않을 거야.”

“나. 집에 갈래. 나 무서워.”

“남편은?”

“남편은 이제 내 말 못 들어. 나는 죽어. 남편은 살아.”

“그래. 알았어. 고향으로 간다고?”

“응. 고향 보내줘, 나 거기 가족 있어.”

“좋아. 나도 최대한 맞춰서 보내줄 수 있도록 해볼게. 하지만 한 가지. 뭘 좀 물어볼 것이 있어.”

“?”

“저기 저 친구 보이지? 키 큰 친구 옆에, 가운데 있는”


차고은이 가리키는 방향에 신태웅이 이쪽을 보고 서 있었다.


“저 남자, 나 알아.”

“······.”

“저 친구 본 날 있잖아?”

“저 남자 뱅뱅 돌았어. 바보처럼.”

“아. 맞아. 바보. 그랬어.”


차고은이 씁쓸하게 웃었다.


“계속 돌았어. 계속 돌고 또 돌고.”

“그랬지. 그래서 말인데.”

“?”

“흰 머리의 여자아이가 그랬니?”

“!”

“알고 있구나? 길게 흰 머리를 기른 아이야. 혹시 봤니?”

“난 몰라요.”

“몰라?”

“말 안 해.”

“알고는 있구나?”


베트남의 망자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 흰머리의 여자아이가 저 친구를 건물을 뱅뱅 돌게 한 거지?”

“······.”

“우릴 도와줘야 우리도 널 도울 수 있어.”

“······.”

“그 흰 머리의 아이를······,”

“여자아이 아니다. 할머니다.”

“뭐?”

“할머니다. 나한테 머리도 쓰다듬어줬다. ”

“그리고 또?”

“검은 옷 입은 여자가 오면 나 집에 간다고 말했다.”

“!”

“그래서 나 용기 냈다.”

“조······좋아. 그럼 본 거 대로 말 해줘. 괜찮지?”

“할머니 좋은 사람이다.”

“그래. 좋은 사람이야.”

“할머니가 내 아기, 하늘로 보내줬다.”

“어?”

“아기 안고 있었다. 내 아기. 눈도 못 뜨고 태어나기도 못하고. 작은 아기. 아직 이름도 없어.”

“!”

“아기 안고 나 엉엉 울었는데 할머니가 나 봤다.”

“그······ 그랬구나.”

“할머니가 나 보고 아기는 하늘로 보내자 했다.”

“하늘로?”

“그래야 다시 태어난다고.”

“!”

“그래서 나 울었는데 이제 웃게 됐다. 아기가······.”


베트남 망자의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올라왔다.

차고은은 그녀를 품에 꼬옥 안아주었다.

그녀가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그녀가 아기를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보냈다는 생각에 차고은의 가슴에도 찌릿한 울림이 전해졌다. 한참을 가만히 기다리자 진정이 되었는지 그녀가 말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늘을 향해 합장하는 두 손.

차고은은 눈에 가득 든 눈물을 삼키고 있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 할머니란 사람은 어떻게 됐어?”

“할머니는 갔어, 친구 있어.”

“친구?”

“응. 뚱뚱해. 머리 노란색이야.”

“아. 그래. 좋아. 마지막으로 물을게.”

“?”

“혹시 그 할머니 이름을 아니?”

“응!”


됐다.


“이름이 뭐야?”

“그거. 요리할 때 넣는 거. 달아.”

“슈가?”


베트남의 망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청? 설탕?”

“설탕!”

“이름이 설탕이야?”

“할머니가 그랬어. 당신이 이름을 물어볼 거라고.”

“!”

“그리고 알려줘도 모를 거라고 했어.”

“!”


‘뭐지? 저승차사를? 명부를? 안다고?’


“그······, 그랬구나······.”


차고은은 이것으로 확신이 들었다.


‘예지력.’


‘최소한 산신급.’


‘부적술.’


‘그리고 기억을 갖고 태어난 환생자?’


우리가 쫓는 탈명자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차고은이 신태웅을 가리키며 망자에게 물었다.


“저 친구 봤을 때 왜 피했어?”


망자는 가만히 신태웅을 보며 말했다.


“여기, 이 병원, 남자 귀신 무서워, 나한테 장난쳐.”

“그랬어?”

“장난치다가 검은 옷이 오면 다 잡아가. 나만 두고.”

“나처럼?”


망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는 안 무서워?”

“할머니가 말했어. 여자 검은 옷을 따라가라고.”

“아. 그랬었지.”


차고은은 한국 남자들이란것들은 죽어서도 그 모양인가 싶은 생각에··· 입에서 쓴맛이 났다.


“좋아. 올라가자. 남편한테 인사해. 그럼 내가 고향으로 보내줄게.”


이번엔 그녀가 차고은을 꼬옥 안아준다.

엉겁결에 안긴 차사는 그녀의 등을 가만히 토닥토닥 다독여 주었다.


“이젠 괜찮아. 내가 꼭 고향으로 보내 줄 테니까.”


차고은이 눈에 가득 고였던 눈물을 삼키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기쁜 마음과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 안쓰러운 마음 모두의 감정을 담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차고은이 그녀를 다시 꼭 안았다.


“괜찮아. 집에 가자.”


(계속)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탈혼명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 21.05.26 160 0 -
71 71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5) 20.01.18 35 0 12쪽
70 70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4) 20.01.16 22 0 13쪽
69 69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3) 20.01.15 20 0 13쪽
68 68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2) 20.01.14 21 0 13쪽
67 67화. 특무대와 염라명부차사(1) 20.01.13 19 0 14쪽
66 66화. 방만희와 허깨비들(9) +2 20.01.11 41 1 13쪽
65 65화. 방만희와 허깨비들(8) 20.01.10 21 0 13쪽
64 64화. 방만희와 허깨비들(7) 20.01.09 23 0 14쪽
63 63화. 방만희와 허깨비들(6) 20.01.08 18 0 14쪽
62 62화. 방만희와 허깨비들(5) 20.01.07 16 0 11쪽
61 61화. 방만희와 허깨비들(4) 20.01.06 18 0 14쪽
60 60화. 방만희와 허깨비들(3) 20.01.04 22 0 11쪽
59 59화. 방만희와 허깨비들(2) 20.01.03 21 0 14쪽
58 58화. 방만희와 허깨비들(1) 20.01.02 23 0 17쪽
57 57화 . 쌍둥이 아빠 주광진 (2) 19.12.31 20 0 17쪽
56 56화. 쌍둥이 아빠 주광진(1) 19.12.30 23 0 16쪽
55 55화. 택배원 김씨와 방만희(2) 19.12.28 20 0 12쪽
54 54화. 택배원 김 씨와 방만희(1) 19.12.27 27 0 18쪽
53 53화. 소방교 주권현 (5) 19.12.26 21 0 14쪽
52 52화. 소방교 주권현 (4) 19.12.24 25 0 13쪽
51 51화. 소방교 주권현 (3) 19.12.23 18 0 12쪽
50 50화. 소방교 주권현(2) 19.12.21 24 0 22쪽
49 49화. 소방교 주권현(1) 19.12.20 17 0 12쪽
48 48화. 카통고(2) 19.12.19 21 0 14쪽
47 47화. 카통고(1) 19.12.18 21 0 18쪽
46 46화. 염라명부 차사(6) 19.12.17 19 0 14쪽
45 45화. 염라명부 차사(5) 19.12.16 21 0 17쪽
44 44화. 염라명부 차사(4) 19.12.14 20 0 17쪽
43 43화. 염라명부 차사(3) 19.12.13 18 0 17쪽
42 42화. 염라명부 차사(2) 19.12.12 18 0 19쪽
41 41화. 염라명부 차사 (1) 19.12.11 23 0 17쪽
40 40화. 징계소왕과 허깨비(4) 19.12.10 24 0 14쪽
39 39화. 징계소왕과 허깨비(3) 19.12.09 20 0 16쪽
38 38화. 징계소왕과 허깨비(2) 19.12.06 22 0 19쪽
37 37화. 징계소왕과 허깨비(1) 19.12.05 22 0 12쪽
36 36화. 이야기의 시작 (5) 19.12.04 28 0 16쪽
35 35화. 이야기의 시작 (4) 19.12.03 26 0 17쪽
34 34화. 이야기의 시작 (3) 19.12.02 23 0 19쪽
33 33화. 이야기의 시작 (2) 19.12.01 21 0 18쪽
32 32화. 이야기의 시작 (1) 19.11.30 30 0 15쪽
31 31화. 사고 (6) 19.11.29 25 0 14쪽
30 30화. 사고 (5) 19.11.28 21 0 17쪽
29 29화. 사고 (4) 19.11.27 27 0 19쪽
28 28화. 사고 (3) 19.11.26 23 0 18쪽
27 27화. 사고 (2) 19.11.25 22 0 16쪽
26 26화. 사고 (1) 19.11.24 28 0 21쪽
25 25화. 특무대 (5) 19.11.23 30 0 19쪽
24 24화. 특무대 (4) 19.11.22 27 0 18쪽
» 23화. 특무대 (3) 19.11.21 29 0 20쪽
22 22화. 특무대 (2) 19.11.20 28 0 16쪽
21 21화. 특무대 (1) 19.11.19 34 0 15쪽
20 20화. 탈명자(3) - 새 이름 19.11.18 30 0 13쪽
19 19화. 탈명자(2) - 추격전 19.11.17 34 0 18쪽
18 18화. 탈명자(1) - 소녀 정제수 19.11.16 37 0 11쪽
17 17화. 프로그래머 방만희(4) 19.11.15 38 0 16쪽
16 16화. 프로그래머 방만희(3) 19.11.14 46 0 18쪽
15 15화. 프로그래머 방만희(2) 19.11.13 38 0 16쪽
14 14화. 프로그래머 방만희(1) 19.11.12 40 1 19쪽
13 13화. 택배원 김 씨(3) 19.11.11 41 1 13쪽
12 12화. 택배원 김 씨(2) 19.11.10 84 0 15쪽
11 11화. 택배원 김 씨(1) +2 19.11.09 50 2 13쪽
10 10화. 차사 신태웅(8) 탈명특무대 +2 19.11.08 53 2 18쪽
9 9화. 차사 신태웅 (7) 차출(2) +2 19.11.07 74 2 13쪽
8 8화. 차사 신태웅(6) 차출 +2 19.11.06 66 2 19쪽
7 7화. 차사 신태웅(5) 재교육(2) +2 19.11.05 71 2 16쪽
6 6화. 차사 신태웅(4) 재교육 +2 19.11.04 83 2 13쪽
5 5화. 차사 신태웅(3) 징계 +2 19.11.03 92 2 15쪽
4 4화. 차사 신태웅(2) 미로진 +2 19.11.02 99 3 13쪽
3 3화. 차사 신태웅(1) 망혼 +3 19.11.02 126 3 17쪽
2 2화. 무녀. +3 19.11.01 183 4 19쪽
1 프롤로그 & 1화. 무명(無名) +4 19.11.01 440 5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