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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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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탈혼명부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19.10.12 01:47
최근연재일 :
2020.01.18 00:02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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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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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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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화. 무녀.

DUMMY

2화. 무녀.


도심 한복판 빌딩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한옥.

은은한 향이 배어 나오는 이곳은 흰 머리 무녀의 신당이었다.

좁은 소매통의 소맷부리부터 팔꿈치까지가 홍색인 동 다리, 길고 흰 머리를 늘어뜨리고 이마에 금색 호건을 썼다. 조선 시대에서나 볼 듯한 군복 모양의 무복을 입은 소녀.

깊고 큰 눈의 앳된, 차분하지만 조금은 심각한 얼굴.

그녀의 작은 손에 질그릇으로 만든 투박한 신줏단지를 들었다.

그녀의 앞에는 40대로 보이는 두 부부가 앉아 있었다.


무녀가 사분합 문을 열고 신줏단지에서 볍씨를 한 움큼 집어 석양빛에 물든 마당 바닥에 흩뿌렸다.


“훠이~”


/짹짹짹/


하얗고 조막만 한 박새들이 날아와 뿌려진 볍씨를 쪼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여섯, 일곱이나 될까싶은 새들의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무녀가 남은 볍씨를 새들의 머리 위로 다시금 던졌다.


“훠이~”


놀란 박새가 날아올랐다가 이내 다시 내려와 볍씨를 이리저리 쪼아 먹는다.


“쯧쯧쯧”


의뢰인 부부는 무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무녀가 물었다.


“따님이 올해 나이가 일곱이라 하셨지요?”

“예. 그러합니다.”


무녀는 남은 볍씨의 모습을 살피더니 열었던 마당의 사분합 문을 딱 닫았다.


“따님은 백호살(白虎煞)이 들었으니 숙살지기(肅殺之氣) 경금(庚金)의 기운이 강하여 흉사(凶死)할 상입니다.”

“예?”

“올해 안에 혈광지사(血洸之死)로 죽을 팔자이니 가을을 넘기기 쉽지 않겠습니다.”

“······!”


황망한 얼굴로 두 부부는 무녀를 바라봤다.


“전번 봄에 액막이를 잘했다면 3년을 더 살았겠으나 이미 사기(死氣)가 중궁(中宮)에 들었으니 지금은 늦어 액막이와 살풀이를 아무리 잘하여도 따님이 살 확률이 2할을 넘지 못하겠소.”

“아니.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명운은 이미 정해진 것이니 그냥 돌아가시지요.”


사색이 된 남편이 무녀의 앞으로 나섰다.


“무녀님! 제발 제가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 할 것이니 제 딸아이 목숨만 살려주세요. 방법이 없겠습니까?”


남편은 넙죽 엎드려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데 뒤의 아내는 무녀의 말을 믿지 못하여 삐죽삐죽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그녀는 차라리 동네 앞 교회의 사이비 목사에게 십일조를 내며 은총을 바라면 바랬지, 저 사기꾼 같은 여자아이, 그것도 초등학교나 나왔을까 할 어린 소녀에게 눈이 돌아 절을 하고 있는 남편만 모자라 보였다.


‘한심하긴! 뻔~한 속을 왜 몰라? 저리 얼러서 제사를 지낸다 치성을 드린다하며 돈이나 왕창 뜯어낼 속셈인걸!’


그녀는 어서 이곳을 벗어나면 남편 마음부터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돌아가면 남편과 제대로 한 판 붙어야 하겠구나 싶었다.

무녀가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뒤의 부인은 마음이 다른 듯하니 여기까지만 합시다.”


무녀가 더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휙 돌아서 나가려 하자 남편이 대경하며 뛰어와 무녀의 발을 잡았다.


“무녀님! 저라도 제 명줄을 대신 내어줄 수 있으니 제발 딸 아이 좀 살려주십시오. 네?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여보!”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믿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한다고 따라 나와서 일을 망치나?”

“멀쩡히 학교 잘 다니는 아이가 내달에 죽는다는 소릴 하는 여자애 말을 어찌 믿고⋯⋯.”

“하!”


대경한 무녀가 혀를 차며 재차 나가려 하자 의뢰인이 발을 꽉 잡고 눈물로 읍소했다.


“무녀님! 아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제발 저를 봐서라도 딸아이 명줄 좀 잡아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명계의 순리대로 저승에서 차사가 잡아가는 것을 내가 어찌 막느냐? 네 딸과 함께 저 뒤에서 인상 붉히고 있는 네 마누라도 당일 함께 차사가 잡아갈 것이니 너는 그냥 맘 편하게 새로 장가갈 궁리나 하거라.”

“예?”


뒤에서 남편 하는 꼴을 비웃으며 지켜보던 아내는 뒤통수에 망치라도 맞은 듯 멍한 표정으로 무녀를 바라봤다.


“무슨 헛소릴⋯⋯”


그때 무녀의 안광이 여인의 눈을 찌르듯 온몸을 관통했다.

섬뜩한 전율.

한순간 소름이 쫙하고 전신을 훑었다.

퍼뜩 머릿속에선 자신이 커다란 트럭에 받혀 구겨지는 차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딸아이를 감싸며 목이 터져라 비명을 내지르는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슴에 대못이 쑥 들어와 박히는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커허억!”


차 유리의 파편들이 천천히 공중을 돌며 별빛처럼 반짝이는 상황에서 마주친 딸아이의 커다랗게 눈.

앞 좌석이 구겨져 들어오며 터져 나오는 비명.

허벅지부터 밀려 들어오는 앞좌석과 함께

곧바로 비틀려 터지는 살과 뼈.

꾸드드득 뚝! 뼈 부러지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너무도 생생했다.


“아아아아아악!”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쥔 손, 막혀버린 숨.

여인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인은 전신이 벌벌 떨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아아!”


여인은 가슴에 담은 숨 한 조각을 다시 뱉어내려고 꽉 쥔 주먹으로 덜덜 떨며 연신 가슴을 두드렸다.

조금 전 부러진 것처럼 무릎과 팔꿈치에서 전기가 오른 듯 찌르르 뼈가 울렸다.

손발의 뼈마디가 이미 부러진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허억, 허억”

“여보! 여보오!”


다급한 남편의 목소리. 여인은 다른 것은 다 믿기지 않지만, 자신의 귀에서 들렸던 자신의 다리 뼈 부러지는 소리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보았느냐?”


차가운 표정의 무녀.


“⋯⋯.”


그녀는 방금 본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진 않았지만, 그것이 차마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피할 수 없을 것이니 마음이나 편하게 먹거라. 자신의 명은 모르는 것이 약이나 네 남편은 그래도 어찌 살아야 하겠으니 내 네 남편을 위하는 마음에 살짝 보여준 것이다.”


“어⋯ 어떻게⋯.”


여인이 펄쩍 뛰어나와선 무녀의 다릴 잡고 울며 말했다.


“저는 상관없으니 제발! 제발 제 딸아이만은 살려주십시오!”

“하! 바로 전까지는 사기꾼 보듯 하던 분이 왜 이러실까?”

“제가⋯ 제가 몰랐습니다. 몰라뵀어요⋯. 제발 제 딸아이만이라도 꼭 좀 지켜주세요⋯.”


양쪽 다리 모두를 붙잡힌 무녀가 가만히 둘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집에 큰 개를 키우지?”


남편이 땅에 박았던 머리를 들며 말했다.


“개요⋯⋯? 예! 그러합니다.”

“명계의 율법엔 예외가 없다. 하지만 변통을 행하고자 하면 멍청한 차사 하나 정도는 속일 방도가 있지.”

“예?”

“내 명대로 하겠느냐?”


* * *


바짝 날이 선 새하얀 소복으로 환복한 무녀가 동쪽으로 정수(淨水)를 올린 후 입을 크게 벌리고 이를 딱딱딱 세 번 마주쳤다.

조용히 읊조리는 주문에 그녀의 머리가 사방으로 기를 온몸에 받은 양 천천히 일어섰다. 무녀는 작은 손으로 붓을 들었다.


“합!”


괴황지(槐黃紙)에 경면주사(鏡面朱砂)로 단번에 써 내려간 부적.

수호부.

무녀는 같은 부적을 여러 장 만들어 하늘 위로 훨훨 태웠다.

그리고 그 재를 정수에 타 의뢰자의 아내에게 내밀며 말했다.


“숨 쉬지 말고 단번에 마시거라.”


무녀가 내민 정수는 분명 조금 전까지 까만 재들이 둥둥 떠다니는 듯하였는데 어느새 다 녹아 없어지고 청아한 빛만을 은은하게 발하고 있었다.

여인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물을 받아 마신다.

무녀는 같은 방법으로 수호부를 하나 더 써서 태운 후 남편에게도 마시게 했다.

남편은 허겁지겁 한 방울도 남기면 안 되는 것처럼 큰 대접의 정수를 깨끗하게 비웠다.


지켜보던 무녀는 새로 정수를 받아와 이번에도 이를 동쪽을 보며 딱딱딱 세 번 마주친 후 수호부 일곱 장을 단숨에 써냈다.

일곱의 부적을 쓰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숨을 들이지도 내쉬지도 않았다.


“후우우~”


부적을 다 쓰자 무녀가 긴 숨을 뱉어내고는 써놓은 부적 일곱 장을 남편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여섯 장의 오귀살제거부(五鬼殺除去符)를 차에 붙이시오.”

“예!”

“네 장은 앞뒤 좌우 사방에 붙이고 하나는 차 천장에, 다른 하나는 따님 앉는 의자 바로 아래 붙이시오.”

“예. 알겠습니다.”


무녀가 전혀 다르게 생긴 부적 하나를 다시 남편에게 건넸다.


“이 마지막 부적은 당신 집에 있는 그 개의 목걸이 안에 넣으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당신 집 개를 신주 모시듯 모시세요. 제일 큰 방을 내어주고 아랫목에 자릴 잡고 예를 다 하시오. 아침저녁으로 정화수를 받아 동쪽에 올리고 아이 나이만큼 절을 하세요. 그리고 부인께선 매일 큰 수탉을 한 마리씩 삶아 그 개에게 먹이시오.”


“예. 그러겠습니다.”

“그 개가 댁의 집에 사는 것이 천운입니다.”

“예⋯⋯.”


괴황지와 주사를 다시 오색 함에 넣은 무녀가 돌아서 부부를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개는 항상 따님과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하세요. 따님을 재울 때는 개와 함께 큰방에서 재우시고. 특히 차에 탈 때는 항상 따님 옆에 개가 같이 있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차에서는 전부터 따님이 앉던 자리엔 그 개를 앉히고, 반대로 따님은 이제껏 개가 타고 가던 그 자리에 앉히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개 이름이 무엇입니까?”

“허쉬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차사가 찾아올 때까지 그 개를 따님 이름으로 부르세요. 단 딸아이는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개가 댁의 따님을 지켜줄 것이오. 내 역할은 다 했으니 이제 가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녀가 가만히 지켜보니 의뢰인의 아내가 일어날 생각은 없고 하염없이 눈물만 쏟고 있었다.

딸아이는 어찌 구하게 되었다지만 자기 죽을 날을 받아 놓은 것이니 막막함과 함께 두려운 마음에 눈물부터 나오는 것이다.

남편이 그런 아내를 부축해 겨우 마당으로 나섰다.

아내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흐렀다.


“흠⋯ 조금은 강한 줄 알았더니⋯ 꼭 어디 산에 내놓은 염소처럼 울고 있소?”


마당을 나서려던 부부는 계단을 힘겹게 내려가다 등 뒤에서 들리는 무녀의 말에 급하게 다시 돌아서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아이 이름이 뭐라 했지요?”

“은주입니다.”

“차사를 만나면 그 차사가 ‘은주’가 누구냐고 물을 것이오. 그럼 차사에게 ‘저 개가 은주입니다.’하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 역할을 어미가 해야 따님을 지킬 수 있으니 너무 서운해 마시오. 그 개와 함께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이고, 지금껏 다른 이에게 해 없이 착하게 살아왔으니 금방 환생하여 따님 얼굴도 곧 보게 될 겁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의 사례는 어찌해야⋯⋯.”

“하!”


화난 표정의 무녀를 보고 둘은 어쩔 줄 모랐다.


“당신 딸아이 목숨을 돈으로 사려 했소?”

“죄⋯⋯ 죄송합니다. 무녀님.”

“잘 들으시오. 명계로 간 저승차사가 따님을 못 데리고 가 자신의 실수로 망혼 된 줄 알면 필히 다시 딸아이를 찾으러 올 것입니다. 남편분은 사고가 있고 난 뒤에는 딸아이와 그 개의 죽은 몸을 가지고 바로 이리로 와야 합니다. 팔다리 한둘 부러진 것으로 병원부터 들릴 생각일랑 말고 즉시 이리로 데리고 오세요. 명부가 새로 발급되기 전에 딸아이의 이름과 적을 지우지 않으면 부인이 목숨 걸고 한 모든 일이 전부 헛일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만 된다면 딸아이는 부인 몫까지 천수를 넘어서도 살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보내세요.”


부부는 무녀에게 깊게 절을 한 후 문을 나섰다.

남편은 비틀거리며 잘 걷지 못하는 아내를 부축하여 천천히 신당 앞마당을 걸어 내려갔다.

무녀는 떠나는 두 부부를 바라보다가 따로 생각이 난 듯 문 뒤의 검은 발 너머 멀찍이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안경의 처녀에게 말했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새 식구가 생기겠구나.”


안경을 쓴 처녀가 무녀의 말을 받았다.


“그건 차사가 멍청했을 때의 이야기지요.”

“그 집 개가 가택신의 기를 받았고, 축생으로는 마지막 생인지라 차순위에는 인간으로 환생을 할 것이니, 차사가 보기에도 아이의 혼과는 그 정(精)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미가 똘똘하니 잘 대처할 게다.”

“그 여자 탈은 딱 자기 밥그릇만 중한 상이던데요.”

“오. 탈도 좀 볼 줄 알게 되었구나. 그래도 그 어미는 네 말 따라 자기 밥그릇에 가족도 포함되어있으니, 누구보다도 딸만큼은 잘 지킬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하지.”

“남편이 안 됐네요. 혼자 남게 되어서⋯⋯.”

“아니. 남편 명부도 당일 차사가 같이 들고 올 게다.”

“네? 그럼⋯⋯왜?”

“딸아이 혼자 세상에 남는다 생각하면 혹 일을 망칠 것이라 걱정하여 내 그 사실은 숨겼다.”

“헐. 그럼 어쩌시게요?”

“네가 가서 저 가족 뒤를 봐주거라. 아마 사고 당일에는 차사가 분명 딸아이는 남기고 갈 것이니⋯⋯ 네 동생이라 생각하고 데려와 돌봐야 한다.”

“아! 알겠어요. 우선은⋯⋯.”

“너랑 말이 통할만큼 똘똘한 아이란다.”

“오호! 그럼 좋죠. 그나마 다행이네요.”

“내 경험상 똘똘한 아이일수록 말은 더 안 듣던데? 누구처럼 말이야.”


무녀의 눈 흘김에 안경의 처녀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어? 서운한 거 있으셨어요? 방금 치킨 시켜 놨는데.”

“똘똘하니 내 참은 게지.”


무녀가 돌아서서 웃었다.

방긋 웃는 모습이 이제야 어린 소녀 같다.


“에이~ 멍청해도 참으시면서⋯⋯.”

“어서 가자. 그 멍청한 놈들에게 치킨 다 뺏기기 전에⋯⋯.”






* * *






TV 화면에서는 오늘의 사건·사고를 다루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도로 위에 전복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SUV 차량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서해안 고속도로 목포 방향 서해대교 위에서 덤프트럭이 차량 5대를 잇달아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가을 나들이를 즐기러 떠났던 일가족을 포함하여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인근 병원으로 긴급히 호송되었습니다. 사고의 여파로 서해안 고속도로 목포 방향 하행선은 1시간 30분가량 극심한 정체가 있었는데요.]


화면이 바뀌며 나오는 아나운서들.


[사고 소식에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사고를 당한 5대의 차량 중에는 초등학생 한 명과 만삭의 산모가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하였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경상을 입은 사고 트럭 운전자는 졸음운전을 주장하였으나 경찰 조사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면허 정지 수준을 초과한 0.05%였습니다. 경찰은 트럭 운전자를 병원 치료를 마치는 대로 음주운전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입니다.]


TV를 보던 무녀가 문을 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안경을 낀 처녀가 일곱 살 정도의 작은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치료는?”

“아직이요.”

“개는?”

“죽었어요. 차 트렁크에 있어요.”

“아이는 여기 눕히고 개부터 어서 가져오거라.”


무녀는 품에서 치료에 쓰려고 미리 만들어둔 병부(病符) 부적 여러 장을 꺼냈다.

반듯하게 누워 자고 있는 듯 의식이 없는 여아의 옷을 벗긴 후 몸 이곳저곳을 살피고 생채기마다 부적들을 붙였다.

꼼꼼하게 부적을 다 붙인 무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사혈침을 찍어 피를 냈다.


“잠시 죽어 있거라.”


무녀는 손가락의 피로 아이의 이마에 커다랗게 사(死)자를 그려 넣었다.

그런 후 이미 죽은 사람에게나 씌우는 것처럼 하얀 무명 천으로 여아를 머리까지 덮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누운 양옆에 향을 켰다.


안경의 처녀가 개를 가져오자 이번에는 죽은 개의 몸에 벗겨두었던 여아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개의 이마에 생(生)자를 쓰고 아이의 옆에 가지런히 눕혔다.


“내일 아침이면 걱정 없이 깨어날 것이니 넌 가서 쉬어라. 고생했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기억할까요?”

“왜?”


무슨 생각일까 싶은지 무녀는 안경의 소녀를 지긋하게 지켜봤다.


“저도 가끔 궁금해요. 어떤 분들이셨을까⋯하고.”

“알려주랴?”

“⋯⋯.”


안경 속, 깊이 잠긴 눈.

가만히 생각에 빠진 안경의 처녀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모르는 편이 좋겠네요.”

“그렇지! 잘 알고 있구나! 인연의 궤에서 벗어나야만 명부도 탈(脫) 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도울 일이 있을까요?”

“이젠 됐다.”

“그럼 전 늦게까지 잘 거 같으니까 일 있으시면 저 대신 승냥이들한테 시키셔요.”

“그래! 알겠다. 그리하마. 고생했다. 쉬어라.”


안경의 처녀가 나가자 무녀는 가만히 아이의 머리맡에 앉아서 아이의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고 그것들을 모아서 작은 세필 붓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천으로 덮인 소녀의 머리 위에 가지런하게 방금 만든 붓을 올렸다.

소녀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작은 세필 붓은 점차 은은한 기광을 보이더니 검었던 초가리(붓촉)가 차츰 하얗게 변했다.

다 변했음을 확인한 무녀가 벽조목(霹棗木; 벼락을 맞은 대추나무)으로 된 작은 목함를 열어 붓을 넣었다.

상자 안에는 같은 모양의 작은 붓이 여러 개가 들어있었다.


“기억을 갈무리 했으니 보고 싶다 할 때 내어주마.”


무녀는 그 붓 모두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 막 만든 새 붓을 가장 오른편에 위치하게 자릴 잡아 주었다.

초가리에서 보이던 옅은 기광도 붓이 상자에 들어가자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이제 너도 백지가 되었으니 다시 새 그림을 그리자꾸나.”


무녀가 아이를 덮고 있던 천을 걷어 올리자 아이의 이마에 그려 넣었던 사(死)란 핏빛 글씨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무녀는 피곤한 듯 목덜미를 주무르며 여아를 지켜봤다.

여아는 무슨 꿈을 꾸는지 평온한 표정의 얼굴에 갑자기 그늘이 지며 또로록 한 방울 눈물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어미 꿈을 꾸느냐?”


“그 꿈도 이제 다시는 기억나지 않을 게다. 네 기억은 따로 잘 갈무리 해 두었으니 네가 필요할 때 내어주마⋯.”


무녀의 손가락이 여아의 이마에 그 흐른 눈물을 찍어 무(無)자를 쓰자 아이는 찡그렸던 미간이 펴지며 다시 평온한 얼굴로 잠에 빠져들었다.


“죽고 사는 것이 항상 돌고 도는 것이지만 우리는 살짝 옆으로 비켜서서 지켜보자꾸나.

앞으로는 새 가족도 생길 것이니⋯너무 슬퍼 말아라⋯.”


평온히 잠든 소녀를 지키며 무녀가 하늘을 바라봤다.

덩그러니 보름달이 그녀의 하얗고 긴 머리와 큰 눈을 더욱 빛나게 비췄다.






(계속)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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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화. 염라명부 차사(3) 19.12.13 18 0 17쪽
42 42화. 염라명부 차사(2) 19.12.12 18 0 19쪽
41 41화. 염라명부 차사 (1) 19.12.11 23 0 17쪽
40 40화. 징계소왕과 허깨비(4) 19.12.10 24 0 14쪽
39 39화. 징계소왕과 허깨비(3) 19.12.09 20 0 16쪽
38 38화. 징계소왕과 허깨비(2) 19.12.06 22 0 19쪽
37 37화. 징계소왕과 허깨비(1) 19.12.05 22 0 12쪽
36 36화. 이야기의 시작 (5) 19.12.04 27 0 16쪽
35 35화. 이야기의 시작 (4) 19.12.03 26 0 17쪽
34 34화. 이야기의 시작 (3) 19.12.02 22 0 19쪽
33 33화. 이야기의 시작 (2) 19.12.01 21 0 18쪽
32 32화. 이야기의 시작 (1) 19.11.30 30 0 15쪽
31 31화. 사고 (6) 19.11.29 25 0 14쪽
30 30화. 사고 (5) 19.11.28 21 0 17쪽
29 29화. 사고 (4) 19.11.27 27 0 19쪽
28 28화. 사고 (3) 19.11.26 23 0 18쪽
27 27화. 사고 (2) 19.11.25 22 0 16쪽
26 26화. 사고 (1) 19.11.24 28 0 21쪽
25 25화. 특무대 (5) 19.11.23 30 0 19쪽
24 24화. 특무대 (4) 19.11.22 27 0 18쪽
23 23화. 특무대 (3) 19.11.21 28 0 20쪽
22 22화. 특무대 (2) 19.11.20 28 0 16쪽
21 21화. 특무대 (1) 19.11.19 34 0 15쪽
20 20화. 탈명자(3) - 새 이름 19.11.18 30 0 13쪽
19 19화. 탈명자(2) - 추격전 19.11.17 34 0 18쪽
18 18화. 탈명자(1) - 소녀 정제수 19.11.16 37 0 11쪽
17 17화. 프로그래머 방만희(4) 19.11.15 38 0 16쪽
16 16화. 프로그래머 방만희(3) 19.11.14 46 0 18쪽
15 15화. 프로그래머 방만희(2) 19.11.13 38 0 16쪽
14 14화. 프로그래머 방만희(1) 19.11.12 40 1 19쪽
13 13화. 택배원 김 씨(3) 19.11.11 41 1 13쪽
12 12화. 택배원 김 씨(2) 19.11.10 84 0 15쪽
11 11화. 택배원 김 씨(1) +2 19.11.09 50 2 13쪽
10 10화. 차사 신태웅(8) 탈명특무대 +2 19.11.08 53 2 18쪽
9 9화. 차사 신태웅 (7) 차출(2) +2 19.11.07 74 2 13쪽
8 8화. 차사 신태웅(6) 차출 +2 19.11.06 66 2 19쪽
7 7화. 차사 신태웅(5) 재교육(2) +2 19.11.05 71 2 16쪽
6 6화. 차사 신태웅(4) 재교육 +2 19.11.04 83 2 13쪽
5 5화. 차사 신태웅(3) 징계 +2 19.11.03 92 2 15쪽
4 4화. 차사 신태웅(2) 미로진 +2 19.11.02 99 3 13쪽
3 3화. 차사 신태웅(1) 망혼 +3 19.11.02 126 3 17쪽
» 2화. 무녀. +3 19.11.01 183 4 19쪽
1 프롤로그 & 1화. 무명(無名) +4 19.11.01 440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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