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지건의 막소설

무협 단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3.03.31 19:26
최근연재일 :
2014.11.12 15:53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0,156
추천수 :
105
글자수 :
161,631

작성
13.08.10 08:04
조회
1,960
추천
17
글자
11쪽

매우 좋지 않다 2

DUMMY

폐관수련이라는 게 있다.

며느리도 모르는 비동에 숨어 죽을 똥 살 똥 수련을 거듭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로 어지간한 청춘들이라면 들어가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기겁을 할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폐관수련을 위한 동기로 복수심, 경쟁심, 향상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또래 중에 널 당할 놈이 없고 네가 원한을 가진 녀석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

보통 폐관수련의 마수에 걸려드는 어리석은 청춘들을 홀리는 말들은 이렇게 정해져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영리하다 자부해 왔던 내가 폐관수련에 들어 갈 일은 없다고 방심해 왔던 것이다.

청춘은 짧다.

10대는 뭣도 모르고 놀러 다니느라 정신없이 흘러가고 20대는 뭘 알고 놀러 다니느라 더 정신이 없다.

20대를 넘기고 나서 30대가 되면 누구도 그 시기를 청춘이라 부르지 않는다.

청춘은 지극히 짧다.

한 번 지나가면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무림의 수많은 노땅들은 젊은 청춘들이 밀폐된 방에서 좋지 않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허송세월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나보면 내 말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분명히 나를 비동에 밀어 넣는 어르신들은 그렇게 말씀하실 게 분명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나도 그 말에 납득하고 있겠지.

아니 납득 할 수밖에 없다.

기껏 청춘을 투자 했는데 그게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라고 말할 넋 나간 인간이 몇이나 되겠나.

일단 한 번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흘러간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스스로 온갖 근거를 가져다 붙여서 납득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어땠는가는 둘째 치고 말이다.

그건 지옥의 수렁이다.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곳에 어른들의 말에 등 떠밀려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면 세상에 다시없을 후레자식이 되고 폐관수련지의 반대편으로 갈라 치면 세상에 다시없을 망종이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폐관에 들지 않을 줄 알았다.

나름 영리하다 자부했기에 어떻게든 어르신들을 설득 할 수 있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나는 너무 순진했던 것이다.

세상에는 합당한 논리 따위가 통하지 않는 영역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그 영역에 직면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들어가라.”

아버지는 그 말 한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났다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당연하게도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가는 말이었고 필연적으로 나는 항변했다.

“왜요? 저는 아직 사부님에게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전후반 10초식 중 후반 5초식은 배우지도 못했단 말입니다.”

아버지는 내 항변에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 시선은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 라고 묻고 있었다.

한마디로 깝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라는 무언의 대답이었다는 말이다.

그 무언의 대답에는 목소리만 크면 장땡이라는 철학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평생 동안 알아채지 못 할 위압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쉽사리 그 이상의 대항을 하지 못했다.

대항을 하기 어려웠다고는 하나 청춘의 반절을 무기력하게 날릴 수도 없는지라.

나는 정신력을 바닥까지 끌어 모아 혀를 젓고 입술을 달싹였다.

“아버지, 꼭 폐관이 답입니까? 꼭 무공을 달성하기 위해 인적 드문 곳에 홀로 처박혀서 수련을 해야만 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절대고수가 되어 구주를 종횡하지 못했던 겁니까? 그 선례가 폐관수련이 잘못된 관행 일 뿐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는 길고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입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했다.

그 시간 동안 아버지는 묵묵히 내 말을 듣고 계셨다.

한 시진 가량 주구장창 떠들고 나서 내 스스로 지쳐 나가 떨어졌을 무렵 아버지는 조용히 한마디 내뱉으셨다.

“들어가라.”

나는 바위를 향해 한 시진 동안 떠들어댔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 한마디와 함께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가셨다.

나는 뭐라 형용 할 수 없는 망연한 기분에 휩싸여 그저 땅을 내려다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수단은 단식 투쟁 뿐이었다.

나는 그 날로 방에 처박혀 모든 음식을 거절했다.

이틀 쯤 지났을 무렵 나는 주린 배를 움켜지고 이 정도면 아버지께서도 생각을 바꾸시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덧없는 희망이었다.

이틀이 지났을 때, 아버지는 나보다 한 술 더 떠 내 방에 물조차 들이지 말라고 하인들에게 명령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투쟁을 했다면 아버지 역시 내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하셨던 것이다.

이래저래 내 투쟁은 손해에 손해를 거듭해 가는 부도 채권이나 다름없는 형태가 되어 갔다.

굶주림은 15일 간 참을 수 있지만 갈증은 3일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투쟁 5일 만에 목에 먼지가 가득 찬 듯 한 꺼끌꺼끌함을 느끼며 방문을 필사적으로 두들 길 수밖에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인 김씨가 사발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미친 듯이 물을 들이켰고 그 순간 극락을 봤다.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까지 차올랐다.

아니 그건 자신감이 아니었다. 차오르는 고양감을 자신감으로 위장한 자포자기였다.

단식이 끝나고 십 일 후 나는 얄짤 없이 폐관수련을 위해 비동으로 끌려갔다.

그 시점에서 나는 발버둥 치는 건 더 이상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넋 나간 시체 마냥 축 늘어진 나를 가문의 호위무사들이 끌고 올라갔다.

장원에서 꽤 멀리 떨어진 비동은 가문에서도 아는 사람이 무척이나 적은 곳이었다.

괜히 비동이라 부르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동태 눈깔로 비동의 입구를 바라봤다.

옆에서 몇몇 어른들이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를 쉴새없이 하고 있었지만 그 말들은 한마디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잔소리가 끝났을 무렵 호위무사들은 나를 끌고 비동 입구로 걸어갔다.

나는 멀거니 눈을 돌려 가문의 어르신들을 바라봤다.

그 분들의 턱을 따라 자라난 빛바랜 새하얀 수염이 마치 내 미래 같았다.

빛바랜 미래 말이다.

내가 움직일 기색이 없어보이자 어르신들 중 한 분이 호위무사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그 신호와 함께 나는 비동 입구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세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나는 비동에서 할 일 없이 자빠져 있었다.

맥 빠진 신체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넋 나간 정신에 혼이 돌아 올 생각을 안 하는데 몸이 어찌 지 멋대로 움직일 수 있었겠냐마는...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 했던가.

나는 비동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갔다.

예를 들어 실처럼 가느다란 빛이 비춰드는 곳에 먼지들이 보이는데 그 먼지들의 수를 일일이 센다거나 아니면 비동의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벽곡단를 짓이겨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재료를 맞춘다거나.

할 수 있는 놀이는 많았다.

다만 보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지.

보람 없는 일에 정신을 위로하며 3개월 쯤 지났을 무렵 나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그 즈음부터 나는 보람 있는 놀이를 찾으려 노력했다.

비동 안은 공기도 좋지 않았고 햇빛도 잘 들이치지 않아 잘못하면 마음병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나보다 앞서 폐관수련에 들었던 친구 녀석은 폐관 반 년 만에 마음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녀석이 나왔다는 소식에 집에 찾아가 봤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축객령만이 돌아 올 뿐이었다.

들어가기 반 년 전만 해도 내가 집에 찾아가면 버선발로 뛰쳐나오던 녀석의 모습을 생각해 봤을 때, 그 마음병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었다.

나는 친구의 경우를 생각하며 나름의 대책을 강구했다.

그 대책 중 하나가 마음의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 인 자는 막대기 두 개가 서로 맞대어 있는 모양에서 왔다는 말도 있다.

그게 맞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중요한 건 인간이 혼자 있으면 미쳐 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얼른 얼굴만한 크기의 돌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 먹으로 눈 코 입을 그렸다.

그리고 말을 붙였다.

녀석은 꽤나 나를 잘 이해해줬다. 내 마음 속의 불만도 귀신처럼 알아 맞췄고 어떤 때는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잘 아는 것 같기도 했다.

왠지 눈물이 흐르네.

어찌되었든 나는 돌맹이를 벗 삼아 어르신들의 계획대로 보람된 놀이를 해나갔다.

무공 수련을 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세뇌했다.

그래 절세 무공을 깨우쳐서 밖으로 나가면 좋은 가문의 여식을 만날 수 있어.

쭉쭉빵빵에 얼굴은 엄청난 미녀인 여자를 말이야.

거기다 무림맹에서 출세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 무림맹! 얼마나 안정적인 직업인가?

그냥 자리 하나만 차지하고 있어도 매달 급여가 꾸역꾸역 내 주머니로 들어온다지?

나는 보람된 놀이를 하며 비동에서 나간 후를 끊임없이 꿈꿨다.

내가 이만큼 노력하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얻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폐관수련에서 얻은 일종의 특권의식이라고나 할까?

나는 꿈을 꾸며 그 꿈으로 끊임없이 내 자신을 세뇌했다.

어느새 나는 내가 그렇게 이 비동에 들어오기 싫어했다는 사실도 망각해 갔다.

그 망각이 남긴 구멍을 메꿔 간 것은 수많은 보상들에 대한 내 기대였다.

시간은 흘렀다.

내 마음의 친구도 눈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보람된 놀이를 반복하는 사이 내 무공은 어느새 경지에 이르렀고 어지간한 어르신들은 발아래 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자신감까지 차올랐다.

나는 검을 놓고 마음의 친구를 바라봤다.

그 녀석은 그런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친구여. 이제 중원에 나가 구주를 종횡 할 때네. 나가서 수많은 미녀들을 품 안에 놓고 출세를 하시게나.’

마음의 친구는 돌처럼 단단한 표정을 지으며 굳건한 어조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부도 당당하게 나는 열리지 않는 돌문을 검으로 때려부수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밝은 햇빛이 눈이 부셨다.

아니 눈을 부술 것 같았다.

너무 오랜 시간 밀폐된 공간에 있어서 인지 태양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눈을 적응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력이 회복되고 나는 비동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제나 저제나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그런 내 시선에 충격적인 풍경이 들어왔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작가의말

 그냥 웃어보자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협 단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수능이 온다. +2 14.11.12 334 2 7쪽
7 무사 14.09.19 365 4 4쪽
6 살귀록 1권 +2 14.08.04 665 13 271쪽
5 협행?(전) 13.11.01 586 11 9쪽
» 매우 좋지 않다 2 +2 13.08.10 1,961 17 11쪽
3 오크 스무 마리 째 +1 13.08.02 1,031 11 20쪽
2 매우 좋지 않다. +2 13.06.27 1,769 24 11쪽
1 환공오자(桓公惡紫) +1 13.03.31 3,446 23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