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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의 막소설

무협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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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3.03.31 19:26
최근연재일 :
2014.11.12 15:53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0,150
추천수 :
105
글자수 :
161,631

작성
13.06.27 20:29
조회
1,768
추천
24
글자
11쪽

매우 좋지 않다.

DUMMY

멀리 한 여자가 보인다.

그녀는 옷을 걸치지 않았다.

실오라기는커녕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다.

달빛을 받으며 요요히 서있는 그 여자가 내 눈에는 일견 요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는 요괴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평범한 여자도 아니다.

그녀는 내 마누라이고 또한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장강의 한 복판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지금이 매우 늦은 시각이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 일 것이다.

다행히 나 이외에 그녀를 보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아니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

아무개의 마누라가 달밤에 옷을 벗고 서있습니다 라는 소문이 돌 거란 걱정을 하기보다는 그냥 위안이 되는 믿음을 계속 믿는 게 더 좋으니 말이다.

그녀는 나의 이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장강 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벌써 두 시진 째 였다.

이 대치가 언제 끝날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달이 동쪽으로 완전히 기울기 전에 이 대치를 끝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기는 했다.

끝낼 수 있을지는 실로 미지수였지만...

나는 한 시진 전에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여보 미안해. 무슨 일인지 몰라도 결단코 아니야. 맹세컨대 내 본의는 아니라구.”

그녀는 달빛 아래서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침묵은 모든 여자의 권리지만 그녀는 그 권리를 심하게 남용하고 있었다.

대답 없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고민했다.

벌써 두 시진 째 고민이다.

사실 더 이상 고민 한다고 뭔가 뾰족한 수가 나올 리도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계책을 뽑아내고자 한다면 나는 한 시진 내에 모든 계책을 뽑아낸다.

그 이상의 시간을 고민해 보았자. 다른 계책이 나올리는 없다.

나는 내 자신의 한계와 시간의 한계 그리고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의 한계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 덕에 강호동도들에게는 절심권사라는 별호도 얻지 않았던가.

남들에게 그런 별호를 얻을 정도로 잘 알려진 성격인 만큼 십여년을 함께 부대끼고 살아 온 아내가 내 성격을 모를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장강의 수면에 발을 디딘 채 강짜를 부리고 있었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그 잘못이 뭔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사과는 했지 않은가?

여기 뭘 더 어떻게 해야 그녀의 용서를 받을 수 있지?

나는 달빛에 빛나는 나신을 보며 길게 한 숨을 뽑았다.

그녀는 내가 뽑아낼 수 있는 계책 그 이상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언제나 남자의 한계를 시험한다.

그게 좋을 때는 좋지만 나쁠 때는 더 없이 나빴다.

예를 들어 좋을 때는 사파 최고수라 불리던 절세무적 호청천과 대적 했을 때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한계 이상의 힘을 뽑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 다 죽어가던 내게 진공권 최후 절초를 깨닫게 해준 건 호청천의 뒤에 인질로 잡혀 떨고 있던 그녀였다.

그때 빽빽 비명을 질러대던 그녀가 임신을 했어요 라고 외치는 순간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져 최후 절초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주변 동료들의 말로는 그저 눈이 돌았을 뿐, 무념무상까지는 아니었다 라고 하지만...

뭐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그럼, 나쁠 때는 언제인가?

바로 지금 같은 경우다.

본래 나는 말솜씨가 썩 좋지 않고 여자 다루는 기술도 좋지 않다.

그건 일종의 내력 같은 것이라.

피를 타고 전해지는 계승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런 핏줄의 한계를 뒤집어엎기를 바라는 것이다.

차라리 주먹으로 산을 쪼개라는 게 더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여보, 정말 미안하오. 다 내 잘못이니까. 이제 그만하고 옷 좀 입읍시다. 아직 날씨도 차오. 애기 생각도 해야지.”

최대한 애절하게 부탁했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돌아선 여자는 이토록 잔인하다.

그녀는 결단코 내 입에서 나도 모르는 진실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 그녀의 뱃속에는 둘째가 있다.

그냥 이형환위로 그녀를 낚아 채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경공에 있어서는 그녀가 우위인 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그녀를 보며 다시 말했다.

“정말 진실을 알고 싶소?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겠어?”

내 말에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입을 열기 위해 옷까지 홀랑 벗어재낀 여자였으니 그 대답은 뻔한 것이었다.

저 독한 여자가 내 아내라는 사실이 미묘하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큼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북궁소저와 잔 적 없소. 내가 미쳤다고 아내 친구와 잠자리를 같이 하겠소? 당신도 알지 않소. 내가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동정이었다는 것 말이오.”

그녀와 혼인 할 때가 내 나이 서른 중반을 넘었을 때였다.

소림사의 충동과 무당의 허당이 불문과 도문에 귀의하지 않겠냐고 권 할 정도로 순결 하나는 자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도문 귀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허당이 앞으로 오년만 더 참으면 우화등선도 가능한 절대무적의 도력을 가질 수도 있다 했지만 말이다.

나는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있어 그 권유를 무시했다.

그런 만큼 내 자신의 정조에 한해서는 자신있었다.

“도대체 그런 헛소문을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결코 사실이 아니오! 여보 나 못 믿겠소?”

그녀는 주먹을 으스러지도록 말아 쥐며 몸을 떨었다. 아마도 내 이야기를 못 믿겠다는 것 같았다.

“헛소문이라구요!? 끝까지 거짓말이로군요!”

나는 그녀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결코 그녀의 말대로 내가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었다.

“연이가 다 말해줬어요! 취중에 당신과 그만 자버렸다고!”

연은 북궁소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현재 서른이 넘은 노처녀였다.

미색이 출중하고 재주가 많은 재녀라 모두가 그녀가 노처녀라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아니...무슨. 정말 그런 적 없소. 북궁소저가 뭔가 잘못 안 걸 거요.”

나는 어이가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남편보다 친구의 말을 더 믿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망감이 차올랐다.

지난 십 년 간 내가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보살폈단 말인가.

밥하고 빨래하고 밖에서 돈 벌어오고...

다른 남자들이라면 질색 팔색 할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온 사람이 나였다.

세상에 나 같은 남편이 또 어딨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순간 억하심정이 들어 나는 설득을 포기하고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이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소! 젠장! 내가 그 동안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지 잊었소? 한 번이라도 내가 당신 먹을 것보다 내가 먹을 것을 우선 한 적이 있었소? 아기 기저귀는 누가 갈았는데! 내가 처가댁이 위험에 처했을 때 달려가 구해줬을 때도 당신이 언제 고맙다는 말 한마디 했소? 그때 피투성이로 집에 돌아온 날보고 말이오! 이런 니미랄! 내가 뭘 잘못했어! 뭘 잘못했냐고! 내가 북궁소저와 잤다고? 이제까지 나 좋다고 따라다닌 여자가 수십명이오! 하지만 그 여자들이 언제 나와 잤다고 말한 적이 있소! 시발 못해먹겠네! 이게 뭐야 도대체! 당신도 그렇지만 처가댁도 그래 집도 절도 없는 놈이라고 개무시하고! 부려 먹을 건 다부려 먹고! 그래도 난 좋았어! 당신이 좋았다고 그런데 그 결과가 이거야!? 고작 친구가 한 말 한마디 때문에 내 말을 못 믿겠다고? 그래, 좋다 좋아! 그래 북궁소저와 잤다. 잤다고 쳐! 니미럴! 이혼 하고 싶소? 그래 하자 해! 에라이 이런 젠장!”

나는 폭풍처럼 감정을 쏟아냈다.

장강 위에 옷을 벗고 서있는 아내는 내 말에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괜히 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더 말하기도 싫고 그녀를 대면하고 싶지도 않아 몸을 돌렸다.

어느새 달은 동쪽 끄트머리에 다다라 있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향했다.

짐을 챙기고 떠날 생각이었다.

이건 더 이상 못해먹겠다.

정사대전 때, 호청천과 홀로 대면했을 때도 이보다는 덜 서러웠다.

찌질한 정파 새끼들.

생각해보니 이 자식들도 마누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매번 고맙다 고맙다 말만 하지.

한 번도 뭐 선물을 주거나 살면서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에라이 이 거지 같은 삶.

그래, 그냥 자유롭게 살자.

세상에 남는 건 가족뿐이라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등 뒤에서 ‘여보.’를 찾는 마누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외면했다.

용천혈에 내공을 쏟아 부어 더 빨리 다리를 옮겼다.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에 눈물이 흩어지고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시원했다.

십여년간 호구로 지냈던 세월이 다 거짓말 같았다.

나는 그렇게 달렸다.



북경 북궁가의 심처.

그 자리에는 북궁연이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은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녀는 순간 서책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었지?”

그림자가 대답했다.

“성공했습니다.”

북궁연은 그 대답에 한 가닥 미소를 매달며 말했다.

“그 옹졸한 년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군.”

그림자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 그 분은 어디에 계시지?”

“지금 항주 청향루라는 기루에 머물고 있습니다.”

“호오? 어지간히도 울화가 치미셨나 보구나.”

“그런 듯합니다.”

그림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잘했다. 너는 이만 물러나가거라.”

“예.”

은밀하게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사라졌다. 방 안에는 다시 북궁연만이 홀로 남았다.

서책을 쥔 북궁연은 그림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쭉 펴올렸다.

“가가! 기다리세요. 그 악마 같은 년의 손아귀에서 가가를 구해드리겠어요.”

북궁연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환호를 내질렀다.

가슴 벅찬 북궁연의 환호는 그 후로도 얼마간 계속 되었다.



작가의말


  심심풀이 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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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매우 좋지 않다 2 +2 13.08.10 1,960 17 11쪽
3 오크 스무 마리 째 +1 13.08.02 1,031 11 20쪽
» 매우 좋지 않다. +2 13.06.27 1,769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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