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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의 막소설

무협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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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3.03.31 19:26
최근연재일 :
2014.11.12 15:53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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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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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31

작성
13.03.3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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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환공오자(桓公惡紫)

DUMMY

환공오자(桓公惡紫)




무림에는 여느 때보다도 격렬한 비무 열풍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새로이 무림맹 맹주로 등극한 철검 방만이 낭인출신으로 굉장한 비무광이었기 때문이었다.

철검 방만은 이십여년전 사천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고수였다. 낭인 출신임에도 본신의 무공은 능히 천하를 오시 할만 했고 그 고강함에 무릎 꿇지 않은 구파의 고수가 없었다.

비무광이라는 소문은 이미 그 시절부터 흘러 나와 하루 삼시 세끼 밥을 먹듯 비무를 한다하여 일각에서는 삼시삼투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저 유명한 비무광 일뿐 무림맹의 맹주로 뽑힐 만한 인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미 무림에서 자리를 공고히 한 구파의 입지가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방만에게는 권력이나 명성에 대한 욕망이 없기도 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키고 무림의 판도를 변화시킨 게 십여년전 등장한 환심 오유였다.

환심 오유의 고향이 어디이고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만 그가 그동안 비무 외에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던 방만을 변화시켰다는 사실만이 널리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오유의 등장으로 방만이 변화하고 무림의 판도가 변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그가 등장하기 전과 후의 무림의 세력 구도를 비교해 본다면 그의 능력이 어떠한지 쉬이 짐작 할 수 있었다.

불과 십년 전까지는 무림은 구파로 대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구파 역시 아직 이름은 남아 있었지만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절대의 권좌는 현재 단 한 사람의 이름으로 대변되고 있었다.

무림은 곧 용방이요. 용방은 곧 철검이다.

그게 현 무림을 지배하고 있는 유일의 법칙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유일의 법칙을 만들어낸 자를 만나려 한다.

환심 오유... 현재 최초의 낭인 출신 맹주로 들끓고 있는 무림의 화제에서 한 발 물러난 그 신비의 존재를 말이다.



환심 오유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의외라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무림 명인록>을 만들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일개 무명소졸인 나를 이토록 쉽게 만나겠다고 하다니.

현 무림에서 그의 얼굴을 아는 자는 몇 없다. 떠도는 소문은 많았지만 대부분 몇몇 떠들기 좋아 하는 사람들의 상상 일뿐 정확한 사실은 아니었다.

일설에는 그의 얼굴을 아는 이가 철검을 포함 다섯이 안 될 정도라고 하니 그 정도가 어떤지는 능히 짐작 가능하리라.

무림맹에 들어서서 나는 시비의 안내를 받아 한 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들어가는 길에 점차 줄어드는 빛을 보며 나는 내가 얼마나 깊은 심처로 향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장장 반 시진(1시간)을 걸어서야 나는 환심 오유의 거처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등을 켠 시비는 이내 물러갔다.

방에 홀로 남은 나는 환심 오유에 대해 조금이라도 많이 알고자 그의 거처를 살폈다. 방 안은 살풍경 했다.

가재도구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침상과 서탁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의자가 방 안을 구성하고 있는 전부였다. 나는 세필을 꺼내 그 사실을 기록했다.

기록을 하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무료한 상태로 얼마나 기다렸을까? 방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나는 여타의 사람들처럼 환심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첫 대면 했을 때, 느낀 그 느낌...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 설명 할 수 없는 그 느낌에 나는 그가 환심이라 짐작했다.

자리에서 일어 선 나를 보며 그는 가볍게 포권을 해보이곤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엉거주춤 다시 자리에 앉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의 외모는 지극히 평범했다.

아니 오히려 평균보다 못한 추남이었다.

외견으로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나는 그 순간 가볍게 실망감을 느꼈다. 그때 그가 가벼운 미소를 매달았다. 생각이 들킨 듯 하여 등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얼빠진 대답을 하곤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여전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적잖이 안심하며 입을 열었다. 그에 대한 신상과 이제까지의 행보에 대해서 였다.

그는 의외다 싶을 정도로 순순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심 밀고 당기는 긴장감을 예상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고향이 사천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그의 대답을 나는 세필붓으로 적어 나갔다.

사천 출신...

“정확히 어디 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물론입니다. 오유촌이라고 아십니까?”

오유촌?

“죄송하지만 처음 들어봅니다.”

내 대답에 환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렇겠지요. 벽촌이었으니까요. 마을이 있을 때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요.”

“있을 때도 말입니까?”

환심은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리며 나를 바라봤다. 기이한 느낌이 드는 미소였다.

“그렇지요. 지금은 없어 졌으니 말입니다.”

“아... 이주라도 한 겁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살던 사람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죠.”

스산하게 울려 나오는 환심의 목소리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그런 내 시선이 재촉이라 느낀 건지 환심은 조용히 말을 계속했다.

“일필 선생은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쉬이 변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환심의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나를 보며 환심은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단 한 번의 칼질입니다. 그 한 번의 칼질로 수많은 사람의 인생이 변합니다. 제 고향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죠.”

“그 말씀은...?”

환심은 계속해서 기록을 해나가는 세필붓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십년전 사천의 한 벽촌에 한 명의 무인이 들어섭니다. 작은 마을이지만 정이 넘치는 이들이라. 배가 고프다는 그 사람에게 마을 사람들은 밥을 먹여주었죠. 그는 그 밥을 먹고 배가 부르자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마을에도 무관이 있냐고 말이지요.”

천천히 이어지는 그의 말을 나는 정신없이 받아 적었다.

“마을 사람들은 밥을 줄 때의 친절함으로 그에게 무관을 알려줍니다. 그 마을 유일의 무관을 말이죠.”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짙어지는 불길함에 나는 정신없이 움직이던 붓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흔들리는 등불을 보며 그는 내 시선에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말했다.

“무인은 무관에 쉬이 당도하죠. 작은 마을이니까요.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는 무관에 들어서서 연무장을 가로질러 걸어갑니다. 그 와중에 한 아이를 스쳐지나가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죠.”

그는 미소를 비틀어 올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흔들리는 등불을 받아 그 미소는 더 없이 불길한 잔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침을 삼키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아이와 놀고 있던 무관 관주에게 다가가 비무를 신청하죠. 비무를 말입니다. 무관의 관주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죠. 생사결이 아니니까요. 시골의 정이란 참... 타인을 쉽게 믿는단 말이죠. 자기 주변 사람들이 내게 친절하듯 타지 사람들도 그럴 거라는 착각을 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비무를 하게 됩니다. 아이의 눈앞에서 말이죠. 일초지적이라... 그 무관의 관주는 무인의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단 한 칼. 그 한 칼에 관주는 목숨을 잃었죠. 멍하니 쓰러진 관주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무인이 말을 하더군요. 목숨 줄을 건드리지 않는 비무는 비무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칼끝으로 관주의 시체를 가리켰죠.”

나는 환심을 바라봤다.

남의 이야기였던 환심의 이야기는 어느새 그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 서글픈 예감을 느끼며 나는 멈춰있던 세필붓을 빠르게 움직였다.

“무인이 떠나고 마을 사람들이 무관을 찾았습니다. 관주의 시체를 묻고 마을 사람들이 상의를 했죠. 아이를 누가 맡을지 말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아이를 맡겠다고 하더군요. 하나의 악의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밝은 선의를 만난다면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있죠. 그때 그 아이가 그랬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선의가 그 아이의 안에서 꿈틀대던 악의를 희석시킨 거죠.”

“좋은 이야기군요.”

내 대답에 환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이야기의 결말이라면 그렇겠지요.”

환심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방의 한 구석으로 걸어가 다기를 꺼내들었다. 다관에 물을 놓고 손에 올린 그는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다관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내 시선에 아랑곳없이 뚜껑을 열어 찻잎을 털어 넣었다.

그는 내 쪽으로 걸어와 찻잔을 놓고 차를 따랐다.

새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드시지요.”

그의 권유에 나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따뜻한 찻물이 몸 안에 들어차자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나는 찻잔을 내려두고 환심을 바라봤다.

내 시선에 환심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 마을은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주변 마을이 항상 산적 패거리에게 시달릴 때도 오유촌 만큼은 항상 안전했죠. 마을 사람들 모두 왜 그런지는 몰랐습니다. 그냥 너무 작은 마을이니. 먹을 것도 없겠다 싶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무인이 떠난 후 며칠 있지 않아 그 비밀을 알게 되었죠.”

“그 비밀이 무엇이었습니까?”

“죽은 무관의 관주가 그 비밀이었지요.”

그 말과 함께 환심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나는 그가 찻잔을 내려두길 조급하게 기다렸다.

그는 곧 찻잔을 내려두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주 간단한 비밀이었습니다. 비록 그 무인에게는 일초지적이었지만 인근의 산적들에게는 천하무쌍의 무인이었던 거지요. 산적들은 관주의 존재 때문에 그 마을을 습격하지 못했던 겁니다.”

환심의 말에 나는 앞서 그가 말했던 한 칼에 대해 떠올렸다.

단 한 칼에 운명이 바뀌었다는 그 말...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그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산적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 할 때의 서늘한 분위기가 거짓말 같았다.

“그 이후야.. 일필 선생께서도 쉽게 상상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 궁금한 부분을 계속 떠올렸다.

그건 환심의 이야기에서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아이에 관해서였다.

그 궁금증이 입 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끝내 나는 그 아이에 대해 묻지 못했다.

환심의 면전에 대고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관주도 죽고 마을 사람들도 죽었다는.. 그런 흔해빠진 결말 말입니다.”

나는 종이에 마침표를 찍었다.

본인이 결말이라고 하니 마침표를 찍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등의 불빛이 흔들렸다.

나는 붓을 따라 일렁이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순간 마침표가 몇 개나 늘어난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렇게 느낀 내 손은 어느새 움직여 마침표 뒤에 몇 개의 점을 더 찍어나갔다.

...

왠지 이야기가 말하는 듯 했다. 아직 결말이 아니라고...

멍하니 그 점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환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일필 선생께서는 제나라 환공의 고사에 대해 아십니까?”

갑작스런 말에 나는 불쑥 고개를 쳐들어 그를 바라봤다.

“환공오자를 말하시는 겁니까?”

내 대답에 환심은 빙긋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 이야기를...?”

환심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그리며 말했다.

“기억해 두시면 차후 이해하기 편할 듯하여 해본 말입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머리를 숙여 서책의 공백에 몇 자 이야기를 더 보충하고 세필붓을 품에 넣었다. 그런 후 말없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서있는 그를 보다 밖으로 나왔다.

말이 아닌 그의 분위기에서 침묵의 축객령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반시진을 걸어 무림맹 건물을 나선 나는 우연히 널따란 연무장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 연무장에서 수많은 용방의 무사들이 그들의 수장인 철검을 따라 비무를 벌이고 있었다.

비무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양상을 띄고 있었다. 보통 비무라 하면 서로가 예를 올리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초식을 교환하게 마련이었다. 헌데 용방의 비무는 달랐다. 마치 생사결을 벌이는 처절함이 뿜어져 나오는 비무였다. 그건 더 이상 비무가 아니었다. 전투라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그런 처절한 비무도 내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환심의 마지막 말만이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고민을 꼬리처럼 매달고 나는 무림맹을 나섰다.



철검 방만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천하제일이라 불리던 용방도 그 주인을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사이 용방의 기세에 눌려있던 구파가 다시 용트림을 하며 자신들의 자리를 되찾아 갔다.

용방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무림맹의 맹주였지만 철검 방만은 더 이상 반년 간 이어오던 절대무쌍의 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다.

아무리 천하무적의 무공을 가졌다 한들 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철검은 점차 이름뿐인 맹주가 되어 뒷방으로 밀려났다.

소문으로는 몇 번인가 다시 권력을 찾기 위해 암투를 벌였다고 하는데... 그 싸움의 결말은 아마도 좋지 않았으리라.

이후 강호상에 철검의 이름이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게 되었으니까. 철검의 명성이 하늘에 닿아 있을 때는 그를 따라 비무를 벌이던 무림인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거친 비무를 접고 예전과 같은 시절로 돌아갔다.

그렇기도 할 것이... 거침없던 용방의 기세가 꺾인 이유 중 하나가 그 생사결에 진배 없는 비무 때문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 후 환심의 이름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다. 풍문에는 암투를 주도하는 와중에 구파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말도 있었고 혹자는 잘 도망쳐서 어디 먼 곳에서 유유자적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철검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리라.

환심을 만나기 전 나는 철검을 먼저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실로 풍운아의 전형이라 할만 했다.

평생을 비무 속에 살고 죽음도 비무 중에 맞고 싶다고 했던가?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마치 비무만이 그의 생명을 이어주는 생명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뒷방 늙은이 신세라니...

목숨이야 이어져 있지만 어떻게 보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나는 그런 내 감상을 <중원 명인록>의 한켠에 기술해 갔다.

마침표를 찍고 나서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기대했던 찻물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는 비어버린 찻잔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손을 들어 차를 한 잔 주문하며 나는 무심결에 창밖을 내다봤다.

그 창밖으로 삿갓을 쓴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멈춰서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살짝 들어 올린 삿갓 속에 기억에 남아있는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나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미소를 보며 나는 그가 마지막 날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나라 환공의 고사를 아십니까?’

‘환공오자를 말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기억해 두시면 차후 이해하기 편할 듯하여 해본 말입니다.’

대화를 따라 환공의 고사가 따라 이어졌다.

제나라 환공이 자주색 옷을 좋아하자 온 백성이 그를 흉내 냈다. 환공이 이를 막으려 하자. 관중은 내일 아침 조회 때 여러 군신들에게 자주색 옷이 보기 싫다고 말씀하시라 일러주었다. 백성들은 환공이 자주색 옷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자주색 옷을 입지 않았다.

군주가 부하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고사를 왜 그는 그때 언급했던 걸까...

그건 너무도 명약관화했다.

괴멸된 용방과 용방의 괴멸 이유..

나는 망연히 환심을 바라봤다.

그는 삿갓을 고쳐 쓰고는 미소와 함께 길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오랜 세월 이어진 복수의 잔향을 느끼며 탁자 위에 놓인 차를 바라봤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김을 따라 나는 목숨보다 귀중한 <중원 명인록>을 접었다.



작가의말

 그냥 심심해서 한 번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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