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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키나 님의 서재입니다.

TopET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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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린키나
작품등록일 :
2016.05.30 18:58
최근연재일 :
2016.08.08 06:03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11,991
추천수 :
126
글자수 :
185,729

작성
16.08.05 06:34
조회
343
추천
2
글자
11쪽

14. 최종장에 도달한 나는 내 친구를 믿었다.(2) + B.S

DUMMY

피가 묻어 있지도 않고, 내가 아는 그 모습에서 작은 변화조차 없었지만 그렇게 가까이에서 대치를 시작하자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전의는 오히려 점점 사그라들기만 했다. 불타는 듯한 악의를 넘어서 도달한 것은 근원이나 전해 따위를 모조리 떨쳐버린 순수.


그녀가 변심했건 원흉이건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은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아닌 자애의 따스함이었다.


"레나!!!"


뒤에서 들려오는 아벨 선배의 외침이, 어쩐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겨우 회복되어 가는 온몸을 꿰뚫은 뿌리의 연결 부위는 기절할 것 같은 자극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날아가 버리기 시작하는 기력의 끈을 억지로 붙잡아,


나는 그레이스를 안았다.


"뭐, 뭐 하자는 거야?"


"아... 글쎄..."


희미하게 웃는 내 입가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겁고 끈적한 것. 적어도 시력은 꽤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바로 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이 침침하게 보인다. 정신이 혼돈 속으로 점차 빠져들며 나를 이끌어 가는 것 같았다.


"날 미워하지 않아? 널 배신했는데, 공격하지 않아?"


항상 언니 같고 때로는 언니 같은 그녀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가면이 벗겨진 지금, 어째서인지 나는 사그라드는 내 이성의 빛 안에 들어차는 그것이 어쩌면 내가 아는 그레이스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남을 수 없다면."


나도 모르게 항변하듯 중얼거려 버렸다.




"최소한 지키고는 싶어. 너에 대한 우정을."




또박또박. 한 글자도 틀림없이 부서져가는 정신과 육체에 남은 최후의 기력을 나는 그렇게 사용하고는...


무너져 내렸다.




.




.




.




삑- 삑-.


일정한 주기를 반복하며 정적을 깨는 익숙한 기계음. 희미하지만 분명한 약품 냄새와 따스하지만 공허한 커튼 사이의 햇살. 눈을 뜬 나의 시야에 들어온 그것들은 내가 잊었다고 생각한 나의 진실이었다.


"어머! 선생님!! 레나 블론디아 환자, 의식이 돌아왔어요!"


반쯤 졸았는지 피곤한 기색으로 내 옆에 앉아있던 간호사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요란을 떨며 비상벨에 소리쳤다.


병원... 침대 위의 나... 환자복...


나도 모르게 발끝을 움직여 본다. 마르고 생기 없는, 내 보잘것없는 다리는 그 신호에 부흥하듯 미동하였다. 꿈? 아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들과 나의 머리에 놓인 VRLR2 하드웨어, 그리고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다리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맥박 체크해! 뇌파 확인하고!"


달려온 의사와 수행 간호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온몸을 맡긴 채,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기분 탓인가...




눈을 감기 직전, 정신없이 움직이는 의료진 뒤 쪽 병실의 문틈 사이로...


방금 루카스가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의원님께서는 그럼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게일 바이올렛 전 지사의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단정 짓기에 그 규모나 피해 수준이 상상을 초월하지요. 저는 이것을 단순한 테러나 범죄가 아닌 하나의 사회현상 중 하나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박사님께도 그렇게 보십니까?]


[에~ 우선 같은 과학을 연구하고 있던 하나의 학자로써 어떻게 말씀드려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게일과 그레이스, 바이올렛 집안의 두 부녀가 저지른 이 일은 감히 신의 영역을 넘어서려 했던 인간의 어리석음이 배경에 있다고 봅니다만...]


[하하, 과학자가 신을 들먹이며 말하니 조금 뉘앙스가 이상한데요?]


[뭐 일단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그들이 구현한 혁신적인 증강 현실의 기술이 결과적으로 신이 창조한 인간의 뇌를 대신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저도 비슷하게 생각되는군요. 어쩌면 우리 인간은 너무 커다란 것을 꿈꿨는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그저 뇌의 인식에 한 겹의 거짓된 현실을 덮었을 뿐인데 말이죠.]


[그렇군요. 현재 모든 병원과 의료 시설을 개방하고 정신과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하니,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 중 주위에 피해를 입은 분들이 있다면 치료 권고를 부탁드립니다.]




귀에 들려오는 어딘가의 TV 소리. 입에 달라붙어 있는 산소 호흡기에 맺히는 나의 힘겨운 호흡.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이 몽롱한 정신 체계를 다시 쌓아 올리는 나의 눈에는 왜인지...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의 가상 세계는, 그 끝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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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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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레이스는 수행원에게 외투를 건네며 조용히 물었다. 지극히 단순한 의문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말속에는 상당한 거부감이 동반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지사께서는 안에 계십니다."


"휴..."


공부하라고 연구원에 처박아 둘 땐 언제고, 난데없이 긴급 호출은 무엇이란 말인가. 외롭고 불투명한 삶의 그림... 오로지 아버지의 꼭두각시가 된 듯 움직이는 자신이 경멸스럽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꿈도 없는 미래가 아닌, 연구를 통한 성취가 와 닿는 현실과 비록 큰 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와 각종 후유증을 달고 사는 하나뿐인 친구... 레나의 존재.


아니, 어쩌면 후자의 무게가 더 크기에 자신이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이구나."


"직접 마주하는 것을 말하신다면, 그렇기는 하네요."


어쩐지 쌀쌀맞은 그의 태도에 한층 더 차갑게 반응해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눈도 마주치지 않겠다는 듯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듣자하니 쓸모 없는 의학에 전념하고 있다 하던데."


"사람을 살리는 게 쓸모없다면 굉장히 불쾌한 발언인데요."


"VRLR 버전 2의 개발에 성공하였단다."


대답도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아버지. 그녀는 그런 그의 태도가 무척이나 싫었다.


"어차피 그런 건 눈속임에 불과해요. 환자들이 원하는 건 실질적인 치료로..."


"네 친구 때문이냐?"


정곡을 찌른 그의 말에 그레이스는 수 초간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에 쫓기듯이 되받아친다.


"레나는, 반드시 제가 일상으로 되돌려 놓을 테니까!"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니 앞으로도... 그것의 다리로 향하는 모든 신경은 죽어 버렸어. 말 그대로 불수다."


크윽... 그녀는 주먹을 힘 있게 쥐며 아래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금세 피가 새어 나왔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 게일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견딜 수 없었으니까.


"하여 나는 너에게 제안을 하려 한다. 매번 이렇게 서먹한 사이로 있기도 싫고, 이 아버지는 이 높은 곳을 너에게 물려주고 싶으니까 말이지."


"필요 없어요."


"건방진 건 지 어미를 쏙 빼닮았군."


그는 느긋한 태도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사무용 책상 위에 서류 뭉치를 던져 올렸다.


"그럴 줄 알고 조건을 하나 달고 왔다."


"무슨 조건요?"


"네 친구의 몸을 정상으로 회복시켜주지. 의학으로는 안 되지만, 심층 과학으로 죽은 신경을 스스로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말도 안 돼! 그런 건 아직 입증되지 않은..."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증강 현실이다."


짜증이 난다. 그녀는 궤변을 늘어놓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온 사실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아마 과거로 돌아간 들 자신은 다시 이곳에 왔을 것이다. 분명히 화나고 답답하지만... 그녀의 모든 것에 칼자루를 쥔 쪽은 부친이었으니까.


"후... 그래도 안돼요. 레나에게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을, 그것도 보장되지 않은 결과 때문에 그럴 수는..."


"끝이 아니야. 고아가 된 그 아이에게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이건 틀림없이 약속하마."


"왜 그렇게까지..."


그는 차갑게 웃었다.


"이 아버지는 이 작은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미 정부의 요인들과도 이야기를 끝냈다. 널 데리고 우주로 가서, 우리 가문의 새로운 왕국을 세울 수 있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 VRLR2 의 테스터는 반드시 필요해."


"미쳤군요."


"막말을 하는 불효 자식이라 영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식은 너뿐이니 흘려듣도록 하마."


"아버지에게 그것이 이득이 된다고 쳐요. 하지만 전 왜 부른거죠? 제가 그 애의 보호자도 아닌데..."


그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차거움이, 어쩐지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지자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우리 딸에게도 조건이 있기 때문이지. 이 서류가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 이것을 읽고 숙지해야 하는 것이 그 첫째다."


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두 번째 조건은, 네가 내 시나리오의 악역을 맡아야 한다."


"뭐라고요?"


"재미 있지 않느냐? 누구보다 서로를 믿고 있던 인간의 관계가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차피 모든 것은 가상으로 이루어지는 거야. 현실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다, 단순한 악역이면 되는 건가요?"


레나의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그녀는, 결국 체념하고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게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말에 확신을 더했다.


말하자면 아버지와의 진검 승부. 어쩌면 난생처음 주어진 그 기회에 자기도 모르게 반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기술의 힘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의학조차 이길 수 있을지...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따른 행동 패턴이 어떻게 될지 여러 가지 것들을 얻을 수 있지. 네가 나에게 이기는 방법은..."


지금껏 그녀를 향한 시선을 거두며 그녀의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다.


"살아남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자신의 정체를 모든 이들에게 들킨 다음에도 말이지."


"..."


그녀는 천천히... 그리고 무거운 동작으로 그 서류를 받아 가슴에 안았다. 서류의 겉 봉투에 써 있는 글자가, 어째서인지 곧바로 뇌리 깊은 곳에 새겨진다.


- TopEt's -


작가의말

다음 편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완결까지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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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2. 크로우(2) 16.07.18 25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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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9. 작전결행(3) 16.06.30 25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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