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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키나 님의 서재입니다.

TopET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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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린키나
작품등록일 :
2016.05.30 18:58
최근연재일 :
2016.08.08 06:03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12,006
추천수 :
126
글자수 :
185,729

작성
16.07.21 01:46
조회
200
추천
2
글자
10쪽

12. 크로우(3)

DUMMY

두 번째 새빨간 커튼이 겨우 색을 찾아가는 내 세상에 펼쳐졌다. 얇게 몸을 감싼 바람의 갑옷을 간단히 파고든 총탄의 흔적은 뜨거워지는 옆구리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나의 바람은 마침내 그에게 닿았다.


"과연..."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물체... [그림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추측에 걸맞게 움직인 그것은, 더 이상 그림자라 부르기 애매한 위치에서 내 세검의 찌르기를 받았다.


"스커트의 저격이라면 틀림없이 타격이 있을 텐데, 그런 상처를 입고 돌진이라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의 검은 나에게 닿지 않아."


기분 나쁜 기운에 붙잡혀 있는 나의 검날을 따분하다는 듯이 보는 그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쿨럭!"


지면에서 솟아오른 또 다른 그림자가 송곳과도 같은 형태로 변해 내 허벅지를 꿰뚫었다. 어째서... 냉정을 잃어서? 상대와의 힘의 차이가 커서? 뭐가 랭킹 1위야... 허공에서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 같은 꼴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의지가 사라졌나? 아니면 단순한 폭주인 거였나... 아직 체력 게이지는 남아 있으니 죽지는 않았겠지만."


"..."


"어차피 결정타는 엘의 몫이라 남겨둘 수밖에 없지만, 이 정도로 싱거울 줄이야."


푸념하듯 말하는 그.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도달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거지?


단순한 게임 클리어... 아니 어쭙잖은 정의 실현? 모든 것이 머릿속을 맴돌며 슬라이드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하더니, 결국 마지막에까지 와서도 나는 또다시 고민에 사로잡히는 한심한 애구나.


"전의를 상실했다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조금 있으면 엘이 올 테니까."


"그 녀석은... 어디?"


"뭐 마지막 난제를 해결하고 있겠지."


난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군. 죽기 전 선물로 알려주는 것도 괜찮으려나..."


남자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는 막아야 하지 않겠나, 지구 멸망이라는 걸 말이야."


"왜지? 당신들이 저지르는 학살에... 그 말은 굉장히...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차갑고 검은 기운에 결박당해 있는 팔과 쇼크로 기절할 것만 같은 상처들이 미칠 것 같은 통증을 동반하며 나를 자극한다. 당장에라도 놓아 버릴 것만 같은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혜성 충돌? 운석 낙하?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현실에 구현된 환상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향해 비웃는 자들을 부숴버릴 뿐이다."


"그것이, 조작된 계략이라고 한다면... 당신들이 죽인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은?"


말을 읊는 것조차 점점 힘겨워진다. 대전 모드 상태인 내 육체는, 결코 쉽게 회복되지 않겠지. 이대로 무의미한 궤변을 들어주다 사라지게 되는 걸까.


"우리들은... 큿!"


태연하게 지껄이던 그는 순간 당황하며 몸을 뒤로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를 지나가는 불덩이가, 측면의 벽에 도달해 폭발했다.


"후우."


메... 멜리사? 아니, 멜리사 언니?


"네 녀석, 어떻게 살아있지. 분명히 체력 게이지는 모조리 깎였었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어느새 일어나 이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그녀. 틀림없이 내가 아는 멜리사의 모습이다.


"시끄럽게 떠드니까 잠을 잘 수 없잖아, 빌어먹을 놈들아."


이마에 고인 피를 닦아내며 토하듯이 말한다. 당황한 남자는 나를 결박하고 있는 그림자를 거두어 자신 앞에 세우더니, 뒤쪽을 향해 외쳤다.


"저 여자를 없애! 어차피 엘은 브리즈 윙만을 원할 뿐이니까."


타앙!!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총격. 하지만 불기둥이 솟구치며 그것을 단번에 저지한다.


"레나~ 괜찮니?"


뭘 그렇게... 묻는 거야. 적어도 지금 내 상태에 비교해도 가벼운 상처도 아니면서!




강하게 몸부림쳐보고 싶지만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혀가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고, 신체는 마취약을 맞아 마비된 것처럼 묵직한 느낌만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아..."


그녀는 나에게 눈길을 거두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술... 마시고 싶다..."


"다시 한 번 죽여주마!"


남자는 고함을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보리스. 아니, 여기는 게임 속이지."


촤아아악! 그녀의 시야를 전부 봉쇄할 기세로 날아가는 그림자의 송곳들... 모든 사각을 노리고 멜리사의 엉망이 된 몸에 파고드는 그의 공격에도, 그녀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미소 지었다.


"블랙 헌터라고 하는 편이 좋으려나."


뜨거운 불길이 화르륵 치솟으며 단번에 그 공격을 무력화 시킨다. 하지만... 알 수 있다... 평상시와 같은 화력과 여유, 그럼에도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손짓.


멜리사는... 이미...




찰나의 순간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 보리스라 불렸던 남자가, 그녀의 발아래에서 솟아오르며 칠흑과도 같은 그림자의 검을 팔에 두른 채 달려들었다.


"레나."


"메, 멜리사... 언니..."


"내가 말했지? 가장 강한 것은 너..."


이미 굳어버린 혈흔 위로 흐르는 새빨간 액상의 조직. 하지만 그 위로 덮어씌워지는 남자의 각혈.


"자신을 믿으라고."


무너지는 보리스의 몸을 억지로 떠받친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한 화염을 끌어냈다.


"크... 크아아아악!"


절규와 함께 나자빠져 타오르는 그의 모습은 희미한 멜리사의 미소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총알이 날아온 어둠을 향해 수 십 발의 바람의 화살을 날리는 나. 보이지 않는 스커트라는 자의 생존이 단 1퍼센트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쏟아부은 바람을 등지고 나는 멜리사에게 뛰어갔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을까. 그녀는 어떻게 체력 바를 전부 소모한 상태로 일어나 싸운 것일까. 앞뒤 판단할 겨를도 없이 이미 나는 그 쓰러진 신체를 끌어안았다.


"너희에게... 할 말이... 많은데..."


"..."


왜인지 아까와는 다르게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얼마간에 든 정으로도 이렇게 슬픈 기분이 나를 지배해 버리는데도, 그 감정의 체제에 저항하기라도 하듯 몸은 반응하지 않았다. 모르는 이들의 떼죽음에 격분했던 조금 전의 모습은 상처투성이가 된 몸에서 흐르는 피에 따라 나에게서 떨어진 것일까?


"나는 너희를 이용했어... 속였지..."


"더, 더 이상 말하지 마요!"


"결국 루카스 그 바보는 못 보겠군..."


안녕.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귓전을 때린 마지막 그녀의 말.


이쪽이야말로... 묻고 싶은 게 산더미같이 많았는데... 나야말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하아."


애도의 시간조차 소비할 수 없었다. 폭주는 끝난 듯하다. 그저 고요한 바람만이, 내 안에서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항상 내가 끌어내던 외부의 바람이 아니라, 마음속을 흔드는 바람 말이다.


예전에도 몇 번이고 이럴 때마다 생각했지. 이제는 동료들을 위해 싸우고, 나 자신을 위해 싸우고, 이 게임의 진위를 밝혀내기 위해 싸울 거라고. 하지만 나는 또 방금 그 결심을 흩트려뜨렸다. 최강의 자리에 있으면서 최약의 마음을 가진...


이른 바 유리 같은 영혼.




단순한 끝없는 액션 게임이지만, 어쩐지 탑엣츠의 엔딩이 눈앞에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 엔딩을 목전에 둔 지금 나는 왜 이들만큼 강하지 못할까라는 자문이 계속된다.


"키에에에엑!"


내가 돌입했던 입구에서 나타난 검은 괴물. 분명히 우리들이 몸을 씻은 직후 싸웠던 그 녀석과 동질의 몬스터다.


스스로를 향한 자문이 계속될수록 마음에 불어오는 바람은 조금씩 그 형태의 윤곽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피가 흐르고 꿰뚫려 아팠던 상처는, 마치 대전에 돌입하기 전처럼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다.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닌... 아니, 게임을 초월?


나는 나를 공격하는 놈의 몸을, 우스울 정도로 쉽게 반으로 갈라 버렸다.


"굳이 우리들에게 설명할 필요 없어요, 언니."


왜 이렇게 마음이 뜨거울까. 마치 그녀의 불길이 내 속에 자리 잡은 것 같은 느낌... 평온해졌지만 어딘가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이 기분은...


허무?




"내가 좀 늦었나."


놈을 추격해 온 듯한 루카스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제법 몸이 상했지만 멀쩡히 서 있는 그 녀석은, 무사히 적을 쓰러뜨린 모양이었다.


"이 누나는 참 급하다니까."


태연한 듯 나지막이 말하지만 어쩐지 떨리는 그의 목소리.


"그렇게 난리 치더니 혼자 이게 뭐냐."


후우.


"루카스."


"어."


"이 굉장한 게임, 오늘부로 마지막이 될 것 같아."


그는 공허한 나의 음성에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너도냐? 나도 아마 곧 엔딩을 볼 것 같은데 말이지."


그래... 이 바보는 그대로구나... 맨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니, 내 안에서 자리 잡았을 때처럼 인가.


"뭐 그럼 보스몹을 잡으러 가 볼까?"


그의 장난기 어린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망설이고 놀라고 덤벙대고 우왕좌왕... 그래도 역시 끝은 보고 싶어."


그때였을 것이다. 내 안에서 자리 잡고 있던 싸움의 의미가, 탑엣츠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__) 최근 공모전에 비주얼노벨건에 다른 일까지 여러가지가 겹쳐 정신이 없었네요.


새벽에 업로드 하고 쉬러 갑니다 ㅠㅠ 또다시 폭염 주의보가 온다는데 다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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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2. 크로우(2) 16.07.18 25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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