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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큨
작품등록일 :
2020.06.15 20:39
최근연재일 :
2021.04.13 22:39
연재수 :
3 회
조회수 :
179
추천수 :
2
글자수 :
7,174

작성
21.03.29 10:27
조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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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5쪽

눈 앞이 보이지 않는 눈길

많이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UMMY

나는 지금 벌을 받는 중이다. 길 끝에 있는 문을 향해 이 새하얀 눈길을 걸어야 한다. 이 길은 많이 차갑다. 이곳을 걸었는지 얼마나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만은 알 수 있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하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이 둔해진다는 것이다. 이 감각이 둔해지는 느낌은 긴장이 풀리거나 방심하여 둔해진 것이 아닌 너무 긴장하여 다른 감각들을 잊은 느낌이다.


눈앞은 깜깜했다. 앞에 날리는 동그란 눈발만이 나를 환영하는 중이었다. 그 환영에 나는 점점 위축되었고 그 눈발은 나의 모습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푹신푹신한 것 같았던 눈이었지만 매우 따갑고 상처를 입지 않으려 몸을 웅크려봐도 마음속 깊은 자리까지 차가움을 더해갔다.


까맣던 하늘에 비친 눈의 색은 점점 하얗게 보였고 색이 점점 밝아지며 더욱 나를 억눌렀다. 나는 지금 벌을 받는 중이다. 왜 받는지는 모른다. 그냥 어쩌다 보니 내가 걸렸다. 내가 살면서 했던 가장 나쁜 짓은 병아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벌은 내가 했던 행동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유로 나를 이곳에 잡아놓았다.


아, 이제 온몸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지만, 한가지는 알 수 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눈은 점점 나를 압박해왔다. 점점 나의 목을 옥죄어왔다.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방법은 없는듯하였고, 천천히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점점 눈앞에 흐릿해진다. 갈수록 없어지는 희망에 전진은 불가능했다. 그 누구도 나의 안전을 물어보는 이가 없었다. 아니, 그 누구도 나의 안전을 물어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이곳에는 나 혼자만 걸어 다니고 있다.


아무런 희망을 품지 않은 채 나무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봐 다리 사이에 무언가 떨어졌다. 기다란 네모형체 딱딱하고 얇은···. 그리고 버튼이 있는 내 휴대전화였다.


휴대전화를 바로 켰다. 시간과 날짜는 볼 수는 없었지만, 알림들은 볼 수 있었다. 아직 못 본 알림이 1000+에 달했다. 가장 많은 알림은 SNS에서의 DM이었다. 이것들을 다 읽으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를 걱정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하였다.


하지만 이 감동도 머지않아 다 사라졌다. 대부분을 차지한 그 DM들은 모두 나를 욕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주는 연락들은 보이지도 않았으며 이는 이미 상해있던 나의 마음을 더 시리고 썩어빠지게 만들었다.


엄청난 분노와 허탈함을 느껴버린 나는 길 끝에 있을 어느 문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달리기를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새빨갛고 익숙한 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문은 분명했다. 내방 문이었다. 끝이 보이자 점점 달리기에 속도를 붙였고 이곳에 온 뒤 가장 빠른 속도로 문 앞까지 다다랐다.


문을 열자 익숙한 나의 방의 모습이 보였다. 어질러진 옷가지, 널브러진 책과 노트, 방 한 쪽에 가장 잘 정리해둔 악기들이 나를 맞이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가장 어색한 두 가지가 있었다. 그건 나의 모습과 방 중앙에 걸려있는 두꺼운 밧줄로 매듭지어진 올가미였다.


거울로 본 나의 모습은 눈이 빨갛고 몸 전체가 부어있었다. 팔에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그은 상처와 뭉툭한 무언가에 맞은듯한 멍이 들어있었다. 미리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나는 밧줄을 향해 점점 다가갔다. 그리고 밑에 놓인 의자에 올라타 올가미에 살며시 목을 걸고 받침대로 쓴 의자를 발로 찼다. 지금부터는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 다시 방금 같은 눈길을 보기 싫었으며,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이별했다.


"현재 학교폭력 의혹을 받는 중인 가수 A씨가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매니저 C 씨는 A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자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데요. 자세한 소식 김주미 기자가 알려드립니다."


세상은 나를 기억해줬다. 단 3일 동안은···. 뉴스에서는 나의 소식을 3일간 다루고 끝이 났다. 나에게 DM으로 온갖 쓰레기 취급하던 사람은 그 3일 동안 나를 옹호하는 척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이상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나는 피해자다. 10년 전부터 지금 23살까지 나는 항상 피해자였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은 가해자로 끝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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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 21.04.13 9 0 5쪽
2 별이 빛나는 밤 21.04.12 18 0 7쪽
» 눈 앞이 보이지 않는 눈길 21.03.29 49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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