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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내 일상] 재미론 (2015년 1월 6일 강호정담)

호흡이 길거나, 새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거나,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등 즉각적으로 대중적인 관심을 얻기 어려운 글을 쓰는 작가들이 이런저런 하소연하는 걸 많이 봐왔습니다.

일리도 있고 공감도 가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런 한탄들은 흔히 “수준낮은 독자들에 대한 원망”이라는 형태로 귀결되기가 쉽습니다.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교묘하게 그런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장르소설에서는 저 아래 어떤 분이 댓글에서 하신 말씀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여기서 얻으려고 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일 뿐이라는.

장르 소설 독자들도 정치, 경제, 과학, 철학, 역사 등의 정보를 얻고 지적인 유희를 얻고 싶을 때는 다른 책을 읽는다는 거죠.

굳이 장르 소설에서까지 골치 아프고 싶지는 않을 뿐이라는 겁니다.


설득력 있는 얘기입니다.

문피아에서 소위 비주류 소설을 쓴다는 작가들의 한탄에 주로 달리는 어느 댓글 형태의 발전형이기도 하고요.

그건 바로 장르 소설은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얘기입니다.


재미 지상주의는 비주류 소설뿐만 아니라 대세 소설의 개연성 문제를 논할 때도 등장하는 단골 메뉴입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 상당히 공허한 얘기죠.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건 “맛있는 음식”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는 뭘 말하는지 알 수가 없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교양 과학서를 읽는 게 가장 재미있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이 드래곤라자보다 더 박진감 넘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죠.


이렇게 얘기하면 또 그럼 순수 문학 읽고, 순수 문학 쓰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건 아니죠.


장르 소설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직도 은하영웅전설처럼 세계관이 탄탄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중요하고 불편한 한 가지 현실적인 메시지가 관통하는 무게감 있는 소설을 그리워하는 독자들도 많습니다.

설정에 작은 구멍이라도 있다거나, 주인공이 이렇다 할 사상도 없이 자기 욕망을 충족시킬 생각뿐인 소설에서는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독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운 좋게 어떤 힘을 손에 넣은 주인공의 초갑질을 지켜보면서 함께 쾌감을 느끼기보다는 운 좋게 부잣집에 태어나서 아무 노력도 없이 모든 걸 손에 넣고 다른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조현아를 보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이 있을 겁니다.

똑같이 현실에서 도피하더라도 철저하게 말이 되는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다수는 아니겠죠.

어쩌면 아주 소수일지도 모릅니다.

아까 언급했던 댓글에서 어떤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사람들이라면 문피아를 비롯한 웹소설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원하는 컨텐츠를 찾으려고 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많이 볼 수 있는 반응이 “억울하면 이영도 작가처럼 이름을 날려라” 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보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찾아와서 볼 거라는 거죠.

비슷한 얘기로 자기 철학과 새로운 설정과 뭐 그런 거 다 집어 넣고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쓰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

이건 정말 아니죠.


인기없는 소설, 그중에서도 소설의 개념 자체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어려운 형태인 탓에 앞으로도 인기를 끌기가 어려울 것 같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한 독자들을 원망하는 건 확실히 부적절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작가들이 괜히 말도 안 되는 심통이나 질투에 눈일 멀어서 땡깡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인기가 없는 만큼 다른 인기 있는 작가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한 편 한 편에 더 공을 들이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쓰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런 한탄이나 넋두리가 나오는 거겠죠.


그런 사람들에게 저런 이야기는 조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실제로도 조롱의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을 거라고 느껴집니다.

제가 좀 지나치게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재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한번에 잡아끄는 재미 코드가 있겠고, 그런 코드에는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수가 자신이 다수가 아님을 한탄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그 소수가 도태되어 사라져버리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장르 소설이 원래 그런 거지 뭐, 진지해지고 싶으면 순문학을 해, 


이런 식의 반응은 고민을 드러내는 것마저 조롱거리로 삼아버리는 배타적인 태도일 뿐입니다.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사람들한테 “살 길을 모색할 길” 마저 막아버리는 거 아닐까요?

설사 비주류 소설에 대한 고민으로 게시판이 도배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소설들이 인기차트를 도배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어떤 돌파구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기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길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먼저 왕도 소설로 유명해지고 그 다음에 쓰고 싶은 소설을 쓰라는 조언, 또는 결심도 어쩌면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자기만의 의미를 담아서 뭔가 진지한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흔한 인기 코드를 짜집기해서 나열한 것 같은 인기소설들이 상대적으로 쓰기 쉬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9급 공무원 시험이 문제는 쉬워도 다 맞아야 합격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소설로 인기를 끄는 것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작정하고 양판소를 써야지, 마음먹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해도 어느 시점엔가는 자기도 모르게 또 자기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 쉽지요.


하지만 역시 그게 정답일 것 같습니다.

최대한 자기 생각을 줄이고, 복잡한 설정을 단순화하는 등 조금이라도 이쪽에서 먼저 다가갈 생각을 해야겠지요.

저도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번만은 내 생각 같은 거 배제하고 설정도 단순하게 하고 경쾌하게 쓰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또 이상해져 있더군요.

그러면서 이번 소설의 문제점들을 많이 깨닫게 됐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다른 소설을 쓰고 싶을 정도입니다.

다음 소설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재미’의 개념을 유지하면서도요.


이번에도 실패한 것 같지만 그래도 무의미한 실패 같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비결은 이번에는 소설을 쓰면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독자들의 피드백을 들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각자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이런 게시판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뭘 또 그런 뻔한 얘기를 꺼내느냐고, 장르소설은 원래 그런 거라고, 억울하면 성공하라고, 논의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은 장르소설에는 단 한 가지 종류의 재미밖에 없다고 강요하는 배타적인 폭력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논의가 원망이나 한탄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단순히 현실을 비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돌파구를 찾기 위한 대화가 더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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