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끝났다. (완결)
086. 게임은 끝났다.
가상현실게임 ‘더 카오스’에서 세계의 틈새를 공략했기 때문인지, 밀너스 조합장의 말대로 강원도 홍천에 난 대형 산불은 더 확장되지 않고, 소방대와 군에 의해 진압되는 것은 물론, 그날 저녁부터 내린 비로 불씨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천운인지 다행히 진우 부모님이 사시던 집은 화마에서 무사할 수 있었고, 아무 일 없었으니 내려오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진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 * *
‘모두 각자 맡은 세계의 틈새 공략을 끝내고, 집에서 봅시다.’
- ‘예, 지뉴님!’
- ‘지뉴 대왕님도 무탈하시길.’
- ‘알겠습니다. 지뉴왕님!’
- ‘넵! 케헤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권속에게 명할 수 있는 ‘권속 명령’으로 말하자, 변강쇠나 고달프, 고일 등등 정신 대화가 가능한 이들이 답해왔다.
지뉴와 고블린들은 현재 모험가 조합에서 진행하는 ‘베르헬’ 대밀림 몬스터 토벌 작전 중이다.
토벌이 진행된 지 판게아 대륙의 시간으로 50일.
전 세계에서 접속한 탓에 토벌 작전은 순조로웠다.
벌써 절반에 가까운 지역에서 많은 몬스터를 죽이고, 방치되었던 세계의 틈새를 닫았다.
그렇다고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거목 위에서 지뉴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의 틈새처럼.
- 크라라라라!
- 크라라라!
지금껏 봐왔던 세계의 틈새보다 큰 균열에서 나온 두 마리의 드래곤. 아니, 몬스터.
[어트로셔스 드래곤]
드래곤 파프니르와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몸체지만, 생김새는 분명 드래곤이었다.
붉은 눈과 머리 위 표기된 이름만 뺀다면.
모험가 조합에선 이렇게 일반 플레이어가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와 세계의 틈새를 지뉴에게 맡겼다.
“좋은 장비 재료가 되겠어. 녀석들이 좋아하겠는걸.”
미소를 지으며 몸에 축적된 다량의 마기를 움직이는 지뉴.
백옥같이 하얗던 피부는 머리카락 색처럼 검푸르게 변하고, 등에는 날개가, 손에는 길쭉한 손톱이 자라났다. 그것 역시 검푸른 색이었다.
마치 검푸른 그림자가 형상을 이룬 듯 공중에 떠오른 지뉴가 발산한 마기를 느낀 어트로셔스 드래곤 두 마리가 주변 파괴를 멈추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 크라라라라!
- 크라라라!
파프니르의 덩치와 비교해 작다뿐이지, 날개를 펼친 지뉴와 비교하면 적어도 10배는 차이가 났다.
그러나 크기가 그보다 크다고, 강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커다란 입을 벌리며 겁 없이 날아온 용종형 몬스터.
지뉴는 놈이 공격 범위까지 오길 기다렸다가, 휘어진 칼처럼 늘어난 검푸른 손톱을 휘둘렀다.
휘익-, 츠가가각!
“드래곤은 드래곤이라 이건가? 반발력이 강하네.”
엄살피우는 것과는 달리 마기로 이루어진 손톱에 베인 드래곤은 머리에서 목까지 길게 다섯 등분으로 나뉘어 붉은 피를 흘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 크라라라라!
동종이 한 방에 죽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드래곤.
지뉴의 눈에는 그 모습이 한없이 느려 보였다.
쩍 벌어진 입이 지뉴를 물었지만, 그곳엔 잔상으로 이루어진 마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 크라라라!
잔상을 이루는 것도 마기는 마기, 드래곤의 입이 갈라지고 터져 붉은 피를 쏟아냈다.
“드래곤 고기는 무슨 맛일까?”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선 지뉴가 거목 같은 놈의 목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휘익- 츠가가가각!
[대상에게 210,823의 피해를 줬습니다.]
[대상을 죽였습니다.]
[마기 흡수로 대상의 마기 1,450을 흡수합니다.]
“첫 몬스터들이 이 정도 마기량이면 오늘 마기 백만 찍을 수도이겠는데. 좋아. 단숨에 공략한다!”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커다란 드래곤의 사채를 통째로 아공간에 넣는 지뉴가 마기 수치 100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전생 시스템이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
거대한 동공.
어두운 밤하늘이라 해도 믿어질 만큼, 동공의 벽면은 검은 바탕에 별처럼 반짝이는 수정들이 간간이 박혀 있었다.
“하아, 하아······.”
동공의 중앙에서 숨을 헐떡이며 검푸른 마기로 몸을 감싸고 있는 지뉴. 그의 발아래엔 붉은 피가 발목까지 차 있었다.
바로 동공을 꽉 채운 수많은 어트로셔스 드래곤의 것이었다.
- ‘지뉴님 이쪽은 끝났습니다.’
지뉴의 머릿속으로 이제는 권속이 된 변강쇠의 정신 대화가 들려왔다.
‘저도 코어만 파괴하면 돼요.’
지뉴도 정신 대화로 자신의 상황을 간단히 알렸다.
어느새 머리카락 색을 제외하고 그의 몸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달프! 그쪽은 어때요?’
지뉴는 고달프에게 정신 대화로 물었다.
- ‘부상자가 다수 있기는 하지만, 무리 없이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던전을 공략 중인 고달프의 그룹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 다른 고블린 그룹은 모두 공략을 마친 상태였다.
“그럼 챙길 건 챙겨야지.”
지뉴는 왼손을 들어 그곳에 마기를 집중했다.
스르륵···
허공에 큼지막한 마기의 아공간이 열렸다.
휙! 스르륵- 휙! 스르륵······
자신보다 수십 배 커다란 어트로셔스 드래곤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 허공의 아공간 입구로 집어 던지는 지뉴는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치 넝마를 소쿠리에 주워 담듯 몬스터 사체를 챙기는 지뉴의 시야에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1분 후 강제 로그아웃합니다.]
[00 : 00 : 59]
[00 : 00 : 58]
[00 : 00 : 57]
[······.]
“엥? 뭐라고?”
지금껏 게임을 하면서 보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에 지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 ‘지, 지뉴님! 지뉴님도 강제 로그아웃 메시지 떴어요?’
변강쇠가 급히 지뉴에게 정신 대화로 물었다.
‘예, 저도 시스템 메시지 떴어요. 이게 뭔 일인지······.’
지뉴는 변강쇠에게 정신 대화로 말하며 동공 중앙을 봤다. 그곳엔 아직 파괴되지 않은 테니스공 크기의 검은 코어가 허공에 떠 있었다.
“코어는 파괴해야 로그아웃해도 몸이 멀쩡하겠지?”
지뉴는 아공간을 닫고, 코어를 향해 뛰었다.
허공에 뜬 코어에 다다른 지뉴는 그대로 주먹을 쥐고 후려쳤다.
쩌저적! 파아앙!
아무런 기술도, 스킬도 쓰지 않은 단순한 주먹 공격에 코어를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깨졌다. 그 안에 있던 코어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코어가 파괴되었습니다.]
[세계의 틈새가 1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125,769 모험가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코어가 파괴되자 시야 한쪽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그리고···
[00 : 00 : 45]
[00 : 00 : 44]
강제 로그아웃을 알리는 카운트 시스템 메시지가 뒤를 이었다.
코어를 파괴했으니 강제 로그아웃돼도 게임 시간으로 한 시간 후면 세계의 틈새는 사라진다. 지뉴의 몸은 균열이 발생한 밖으로 튕기어 나올 것이다.
“그동안 부산물을 챙기자.”
지뉴는 다시 아공간을 열어 용종 몬스터의 사체들을 담기 시작했다.
용종 몬스터는 드래곤의 신체와 비슷해서 뛰어난 재료다. 챙길 수 있을 때 챙기는 것이 이득이었다.
.
.
[00 : 00 : 02]
[00 : 00 : 01]
[00 : 00 : 00]
드디어 시스템 메시지의 카운트가 0이 되었다.
[강제 로그아웃합니다.]
[캐릭터가 수면 모드에 들어갑니다.]
‘수면 모드’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지뉴의 시야가 동공의 어두운 벽면처럼 새까매졌다.
지뉴는 이제 현실의 진우로 돌아간 것이다.
*
푸쉬이이이-
타원형의 잘빠진 캡슐의 덮개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뭐가 이리 어두워?”
진우는 캡슐에서 나오며 투덜거렸다.
분명 환한 낮이어야 할 시간인데 방은 마치 새벽 시간처럼 느껴졌다.
어두워도 자신의 방이기에 전등 스위치의 위치는 눈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탁, 탁, 탁!
그러나, 아무리 스위치를 켰다 끄고, 다시 켜봐도 방안의 전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뭐지? 정전인가? 그래서 강제 로그아웃된 건가? 이상하네··· 지난번엔 정전됐어도 1시간은 유지되던데······.”
진우는 벽면에 붙은 스위치에서 손을 떼며 중얼거렸다.
‘더 카오스’에 접속할 수 있는 신형 캡슐은 정전으로 전기가 끊겨도, 비상 배터리를 이용해 1시간 정도는 충분히 유지됐었다.
생각에 빠진 진우의 귓가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쏴아아···
투두둑··· 투툭······
빗소리였다.
“먹구름 때문에 어두워진 건가? 아니 그래도··· 이 정도 어둠이라니······.”
진우는 방에서 나와 거실로 나왔다.
큰 창문이 있는 거실 역시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끼이익! 쿠웅! 쿵!
끼이익!
빗소리를 뚫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차량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 뭐, 뭐지?”
밖을 살피기 위해 창가로 다가선 지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통사고 때문이 아니었다.
창문을 때린 후 흘러내리고 있는 빗물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기오염··· 아니, 전반적으로 환경오염이 심각한 지구라지만 검푸른 빗물이 말이 되나?
분명했다.
창문 유리를 타고 흐르는 빗물뿐만 아니라, 창밖의 어두운 도시 전경이 검푸른 빗방울로 뒤덮여 마치 비 내리는 새벽의 모습 같았다.
“설마··· 이것 때문에 요즘 세계의 틈새 발생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건가?”
진우는 뜬금없이 조금 전까지 했던 가상현실게임 ‘더 카오스’의 던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전생(轉生)이 테마인 게임 ‘더 카오스’ 그곳은 여러 국가와 종족 간에 끝없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끝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세계의 틈새’였다.
왜 진우가 현실의 이상 현상에 게임 속 현상을 떠올린 것일까?
그것은 대부분 사람이 게임 속 세상이라 생각하는 ‘더 카오스’의 판게아 대륙이 실존하는 이세계(異世界)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오래전, 지구와 연결이 끊어진 이면 세계.
그리고, 세계의 틈새는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
판게아 대륙에 세계의 틈새가 발생하면 지구에 이변이 생겼다. 대부분은 자연재해였다.
지진, 산불, 해일, 산사태, 집중호우, 허리케인, 태풍 등등··· 마치 나비효과처럼 지구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 어, 어떻게?”
얼굴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겨있던 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었다.
‘마나(Mana)’와 ‘마기(魔氣)’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기운··· 그것이 주변 공기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분명해. 이건 마나와 마기다.”
진우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창밖의 검푸른 빗줄기를 바라봤다.
게임 속 캐릭터로 수없이 느끼고, 사용했던 기운. 그것이 눈앞에 그리고, 주변 공기에 퍼지고 있었다.
* *
분명 지뉴를 움직이던 진우는 현실에 있었고, 정전으로 인해 게임시스템 작동에 문제가 발생했어야 했다.
[······.]
[캐릭터와 동기화합니다.]
[수면 모드가 해제됩니다.]
[수면 버프가 해제됩니다.]
그러나, 강제 로그아웃으로 세계의 틈새 속에서 쓰러졌던 지뉴가 멀쩡히 일어서고 있었다.
눈에 초점을 잃은 채···
[캐릭터의 기억을 읽습니다.]
[······]
[······]
[······]
[행동 패턴과 행적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움직입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진 후, 흐릿했던 지뉴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스르륵···
손을 들어 올리자 그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아공간이 열렸다. 검은 아공간 너머 바삐 움직이는 고블린들이 보였다.
“아! 시간도 넉넉하니 몬스터 부산물을 챙기자. 무려 용종 몬스터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지뉴는 아공간을 닫고, 등 뒤로 마기로 이루어진 날개를 만들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빠르게 공략하느라 챙기지 못한 어트로셔스 드래곤의 사체가 즐비했으니까.
마치 진우가 다시 접속한 것처럼 움직이는 지뉴.
지금 그를 움직이는 것은 판게아 대륙에 남겨진. 슈퍼컴퓨터 메르데네스였다.
현실의 물건을 이곳 판게아 대륙에서 마나와 마기로 접목하려 했던 밀너스 조합장, 양영일 대표가 가장 성공적으로 이룩한 업적 중 하나였다.
그 메르데네스에 의해 움직여지는 수많은 생명체 중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지뉴가 이제 판게아 대륙에 파란을 일으킬 것이다.
<전생전쟁: 시작은 마왕부터>
<END>
- 작가의말
완결!!!
그러나 2부 격 소설인 <세계는 게임 중>으로 이어지는 건 아시죠?
후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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