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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64,354
추천수 :
2,936
글자수 :
2,335,429

작성
19.11.12 02:06
조회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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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0쪽

돌아온 김남일 3

DUMMY

이자견에게 이상이 생겼다.

그걸 알아채자마자 이자견의 저택으로 와 보았으나 그녀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다만, 어떤 기분 나쁜 기운은 남았다.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힘이었다.


"김남일..."



언젠가 돌아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가온은 초조한 심정으로 에메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에메라. 김남일이 왔어."


그녀가 무사함을 확인하고 안도함과 동시에 주의를 주는 가온.

잠시 침묵하던 에메라가 입을 열었다.


[저에게 바로 찾아오지 않은 것은, 지금 저보다는 당신에게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뭐?"

[당신을 먼저 치워버리려는 것 같은데, 혹시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


에메라의 말 그대로였다.


"사실은, 이자견 씨가..."

[그랬군요. 불행 중 다행이네요.]

"무슨 뜻이야?"

[후손이라 그런 걸까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어요.]

".....!!"


가온이 어서 위치를 알려달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가온씨. 그녀를 구할 생각인가요?]

"뭐?"

[나름 피해자라고는 하나, 결국 원수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었나요?]

"......!!"


가온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자견은 재무진의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온을 믿어주는 그녀를 배신하고 억지로 굴복시켜 계약까지 한 것 아니었던가.


[그녀를 이용해 당신을 유인하려는 걸 수도 있어요.]

"......"


가온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위치, 어디야."



에메라 또한 별다른 말 없이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그때까지 말없이 가온의 옆에 서 있던 사람.

이자견의 저택에 고용된 메이드가 안절부절 못하다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가 있는 곳을 알아내셨나요?"

"네. 걱정 마세요. 무사할겁니다."


진심으로 안도하는 표정의 고용인을 보며 가온은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가온이 저택에 왔을 때 맨 처음 나왔던 그녀는 순수하게 이자견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두 걱정할 거라는 말로 미루어보면, 저택의 모두가.

이자견은 누군가가 걱정해줄 만큼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씁쓸함을 느낀 가온은 이내 몸을 날려 에메라가 알려준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적한 곳의 폐공장.

귀신들이 살 곳이라 생각할 정도로 음산한 장소 깊숙한 곳에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목소리가 조용해 지나가는 사람이 들으면 귀신의 말인가 싶을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요. 제 아무리 능력이 약해져 반푼이 이하가 되었다지만, 계약의 힘에 저항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힘까지 발휘하다니?"

"어머. 자기자랑으로 들리는 건 착각인가요?"



그들은 바로 김남일과 이자견이었다.

김남일의 말대로 속수무책으로 납치당해 이곳까지 끌려온 이자견이었지만 순식간에 그의 힘을 파악해내 접촉 정도는 몰라도 직접적인 해는 끼치지 못하도록 방어하고 자신의 능력마저 발휘하고 있는 이자견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해도 그것만은 차단하고 있는지 불가능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현재 여기가 어디인지 파악하는 것 정도였다.



'아니, 염파를 보낼 수 있어도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은...'


"없지요?"

"......!!"


마음을 읽기라도 한 타이밍이다.

애써 태연하게 그를 바라보자 김남일이 씨익 웃었다.



"저나 당신이나 외톨이였으니까요. 부를만한 사람이 있을리 없지요."

"어머. 정부의 개랑 같은 취급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요."

"후후후후. 아, 생각해 보니 당신은 있긴 하군요?"



이자견이 침묵했고 김남일이 웃었다.



"기대하고 계십니까?"

"설마요."



이자견이 떠올리는 그는 자신을 구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사태를 파악하긴 했겠지만, 이런 수상한 유인에 올 만큼 위험을 감수할지는 알 수 없었다.


"기대하셔도 좋을거라 생각합니다만."

"글쎄요?"

"하하하. 겸손이 지나치시군요. 당연히 당신을 구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김남일이 초승달처럼 눈을 휘더니 말했다.


"커튼본부는요."

"......"

"어라? 혹시 다른 이를 상상하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저처럼 유능한 사람이라면 구하려 들겠지요."



대충 얼버무린 이자견은 시간을 끌겸 화제를 던지기로 했다.


"절 납치한 이유는 뭔가요?"

"이가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죠."

"...그가 올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지는 일단 내버려두고. 왜죠?"

"이가온을 몰락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왜 몰락시키려 하는 거죠?"

"제가 원하는 것의 방해물이기에."

"원하는 것이란?"

"마녀님이죠. 제 근원이자 전부인 백발의 마녀님."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사람다운 황홀한 표정을 짓는 김남일.

너무 순순히 말해주니 좀 의아했지만 이자견은 나쁠 것 없다며 말을 이었다.



"어머. 아쉽네요. 저에게 관심이 있으신 줄 알았는데."

"농담을."


그의 말에 이자견은 조금이지만 기가 죽었다.

자신에게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들으면 조금 비참해진다.



"당신은 제가 의도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밀어내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쉽다니요."

"글쎄요? 그렇지도 않았을 수도 있죠."



이자견은 다른 화제를 생각했다. 김남일의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이미 다 아시는 걸 굳이 물어보시다니, 짖궂으시군요."

"......!!"

"방어해도 뚫릴것은 굳이 방어하지 않았는데 제 의도에 대해 모르실리가 없죠."


김남일의 말대로였다.

그녀는 김남일의 마음속과 기억을 읽어 웬만한 정보는 다 알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머나먼 숲과 소년의 존재마저도.



"잔류사념을 읽어내 제 지나온 행적을 읽으셨을테지요. 뭐, 지금부터 뭘 하려는지는 모르시겠지만요."

"...뭘 하려는 거죠?"


김남일이 생긋 웃었다.


"우리 개인적인 이야기나 할까요?"

"개인적인 이야기?"

"네. 이를테면, 이현수 씨를 죽였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이자견의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

이내 그녀의 숨이 가빠지고 눈이 뒤흔들렸다.


"이런 이런. 트라우마가 될 정도였습니까. 이거 죄송하게 되었군요. 그럼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김남일의 입이 반달처럼 씨익 찢어졌다.


"이가온에게 배신당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닥쳐!!"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폐공장에 울려퍼졌다.


"그렇게 약하니 이가온 따위에게 당해 억지로 계약을 당한 거지요."

"......"

"자, 그럼 질문을 바꿔서, 그는 당신을 구하러 올까요? 오지 않을까요?"

"......"

"대답하기 싫으신가 보군요. 개인적으로는 와 주었으면 합니다. 당신을 구태여 살려둔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요. 제 능력은 몰라도 물리적인 공격은 막지 못하는 당신이니 말이죠."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셈이죠?"

"그럼 그렇게 될 뿐. 계획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요."


들을수록 절망적이었다.

이자견은 가온이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랬기에 느껴진 기척에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김남일과 이자견이 동시에 느낀 기척. 어느새 이자견의 곁으로 이동한 김남일이 웃었다.


"와주셨군요."


콰앙!


직후 천장이 부숴지더니 검은 인영이 쇄도해왔다. 그러자 김남일의 몸이 스르르 미끄러지더니 어느새 다른 곳으로 이동해있었고 목표를 잃은 검이 땅에 카앙 박혔다.

가온이 검을 들고 김남일을 노려보았다.



"에메라가 끈질긴 남자는 싫다든데."

"그건 당신이 지어낸 이야기겠지요."


가온을 상대할 때만큼은 격정적인 감정다운 감정을 보여주는 김남일이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잘 됐군요 공주님. 왕자님이 구하러 와 주셨습니다."


침묵하는 이자견의 양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는 김남일.

이자견은 멍하니 가온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궁금하군요. 왜 구하러 오신 겁니까? 원수 아니었나요?"

"너랑 대화할 마음 없어."


성큼성큼 걸어오며 불꽃을 뿜는 가온, 문답무용으로 베어버릴 기색인 가온을 보던 김남일이 품에서 칼을 꺼내더니 이자견의 목에 겨눴다. 가온이 멈칫했다.


"이런 결말은 저도 바라지 않습니다. 말해 주시죠?"

"...당연한 걸 뭘 물어? 아직 쓸모가 있으니까지."

"호오...쓸모."

"그래. 내 정체를 알려서 몰락시키려면 그 사람이 방해일테니까. 내 정체가 들켜봤자 잘난 퇴마 이씨 가문이 가만히 있을지도 의문인데다, 그 사람까지 있으면 사회적으로 날 매장시키는 건 불가능해."



후후후 웃은 김남일이 이자견에게 작게 속삭였다.



"잘 됐습니다. 아직 쓸모가 있는 모양이네요."

"......"


가온이 검을 겨누었다.


"말해두는데 네가 그 사람을 죽인 순간 넌 나한테 죽는다. 보아하니 힘도 약해진 모양이구만?"

"하하. 그렇게 간단할까요? 든든한 배후가 생겨서 말이죠."


김남일은 여기서 빠져나갈 자신이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래서는 재미가 없죠. 우리, 게임을 할까요?"

"게임?"

"당신은 절 죽이고 싶고, 저는 당신을 죽이고 싶습니다. 그걸 위한 게임이죠."


뭘 하려는 걸까? 노려보는 가온을 보면서 김남일이 말을 이어갔다.



"제겐 특수한 능력이 있습니다. 대상자와 접촉하면 그 대상의 모든 기억을 공유하는 기술이...이걸 이용해 정신을 파괴할 수도 있지요."

"하, 그 사람이랑 정신 계열 싸움을 해 보시겠다? 제정신이냐?"

"물론 정신계열만으로 2위의 자리에 오른 그녀에게 이길 순 없지요. 이게 멀리서 떨어진 채로 하는 정신 계열 싸움이었다면 말이죠. 이렇게 접촉한 순간, 이건 싸움이라기보다 유린이죠."

"......"

"이게 포인트죠. 그녀를 구하고 싶다면, 당신이 참전하면 됩니다. 간단해요. 당신도 저나 이자견 씨와 접촉하면 그걸로 끝, 물론 붉은 커튼의 힘이나 주술을 쓰면 안 됩니다. 행여나 베어버릴 생각도 마세요. 그랬다간 이자견씨도 죽으니까."

"그게 제일 좋겠군."


이자견은 절망했다.

어떻게 봐도 가온은 같이 베어버리는 것을 택할 것이다.

물론 베어지더라도 김남일은 스스로는 빠져나갈 방법이 있으니 이리 자신만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가온에게 알려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쓸모가 있어서 구하러 왔다는 말에 실망하고, 거기에 실망하는 자신에게 실망하여 이자견은 크게 절망하고 있었다.


"말해두지만 접촉했다간 당신은 죽을 겁니다. 이가온. 그래도 자신이 있다면, 어디 해 보시지요."


도발까지 한 김남일이 씨익 웃더니 이자견의 머리를 보더니 사랑스럽다는 듯 자신의 뺨을 붙였다.


"그럼, 게임 시작입니다."


쿠구구구.


검은 기운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이자견은 김남일의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저항할 기운도 없었지만 반항할 마음을 먹었더라도 이건 막을 수 없었다.

그의 기억은 물론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게 흘러들어왔다. 김남일이란 인간이 살아왔던 기억들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이자견의 기억도 그에게 흘러들어갔다.


고아원에서 실험실로 들어간 자신...결국 2위의 자리를 차지한 자신...그럼에도 재무진에게 벗어나지 못해 이현수를 죽이는 데에 일조한 자신...스스로도 잘 기억나지 않는 기억들의 자신...이윽고 가온의 기억에 이른 자신을 보고 김남일이 그걸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이자견은 수치심을 느꼈다.


재무진에게 학대당해 더는 느끼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수치심.

김남일이 실실 웃고 있다는 것까지 알자 수치심은 더욱 커져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 뇌를 터뜨릴까. 그럼 저 나쁜놈이 이 빌어먹을 김남일을 베어버릴 거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이런 굴욕을 맛볼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꿈도 꾸지 못했던 재무진에의 복수를 이루었으니 나쁘지 않은 삶 아니었는가?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이가온에게는 복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복수를 하면 됐을까?'


죽이고 싶을 정도로 가온이 미웠지만 딱히 그를 죽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자신이 느낀 비참함을 느꼈으면 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됐을까.

이젠 부질없다. 모든 게 끝난다.

현실 시간으로는 1초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1초를 넘긴 그 순간, 가온이 달려들었다.


이렇게 베여서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온은 이자견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접촉했다.


"어?"


이자견이 당황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낸 직후, 저 멀리서 기억의 해일이 밀려왔다.

가온의 것임이 틀림없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김남일이 광소했다.



[정말로 들어올 줄이야! 당신은 이제 끝입니다!]


그가 가온의 정신을 파괴하기 위해 가온의 기억에 접근했다. 그보다도 먼저 이자견은 가온의 기억을 맛보았다.

수많은 커튼에게 뜯어먹혀 죽인 이현수. 분노로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소리치던 어린 아이. 가문과 가족에 대한 실망감.

하나뿐인 친구마저 커튼에게 잃고, 자신마저 죽을 위기에 대한 분노. 붉은 커튼이란 힘을 손에 넣었을 때의 고양감...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정.

아니, 그녀가 보고 싶은 건 그런 기억들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보고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보고 싶다고 느끼는 모순되는 감정.

이자견이 강렬히 원한 탓일까. 그 기억이 보여졌다.

바로 가온이 이자견을 배신하고, 억지로 계약을 맺었던 그 날.

흐느끼며 살려달라고 비는 이자견을 내려다보던 가온, 그는...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녀는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복수심이, 아니, 이현수에 대한 측은감이 억지로 분노를 불태웠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가온은 이자견을 미워하지 못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


이자견은 말이 없었다.

그 뒤의 가온의 감정을, 자신에 대한 생각을 엿볼 뿐이었다.


자신을 의외로 허당이라고 생각하는 이가온.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번뇌하는 이가온.

그리고,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이가온.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자견은 울고 있었다.

응어리진 뭔가가 갑작스럽게 풀려 감정이 주체되질 않았다.


[끈질기군요. 쯧.]


그때 들려온 김남일의 당황섞인 목소리.

가온의 정신을 파괴하려는데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렇게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데 어떻게...! 대체 당신의 정신구조는 어떻게 되어먹은 겁니까?]



사방을 뒤덮은 검은 기운들 가운데에 활활 불타는 조그마한 불. 그게 가온이었다.

그는 굴하지 않고 점점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나아가는 방향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나는 뭘 하고 있지'



이제 고등학생 2학년인 아이도 저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자견의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응? 뭘 하는 거죠? 아무라 당신이 능력이 강하다 해도 이 세계에선...]


김남일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도 잠시, 검은 기운들이 빛의 장벽에 가로막히자 그가 크게 당황했다.


[뭐?! 말도 안 돼! 어떻게 내 세계에서...!!]


빛의 장벽이 검은 기운을 가로막는 사이 가온의 불은 점점 더 커져갔다.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애를 쓰는 김남일이었지만 무리였다.

빛의 장벽은 너무나 견고했다.


[이런...이럴수는...! 이런게 가능한 건 단 한명밖에...!!]


잠시 후, 김남일이 멍청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녀님?]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 불은 이내 이자견을 휘감았다.

따뜻함을 느낀 순간, 이자견의 현실 육체는 눈을 떴고 황급히 김남일에게서 떨어졌다.

가온은 아직도 김남일과 붙어 있었다.

정신 세계에서 그와 결판을 내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자견은 걱정하지 않았다.

가온의 모든 기억을 엿본 결과. 가온에게도 생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의 정신을 파괴하는데 급급하느라 기억을 제대로 보지 않은 김남일은 모르겠지만.



[하하하. 나와 해볼 만하다고 여기는 겁니까? 이제 성가신 방해물도 없으니 당신은 내 먹잇감...크윽!]



자신만만한 말과는 달리 검은 기운은 불꽃에 닿자마자 화륵 타버려 재가 되었다.

설마 자신의 세계에서 지는건가? 이가온에게? 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거의 평생을 무감정하게 살았던 김남일의 감정이 폭발했다.

자신의 몸을 형체화시켜 불꽃에 달려들어 흩어버리려는 김남일.


[웃기지 마라! 반드시 널 죽여서, 마녀님을 내 것으로...!]

[닿았군.]


가온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뭐?]

"에메라는 말이다. 네 것이 될 만큼 연약하지 않아. 잡아먹힐걸?"



그리고 김남일의 귓가에 들린 목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기괴한 목소리였다.

그건 제 3자가 그의 세계에 침입했다는 것을 뜻했다.


[대체 무슨...]


돌아보자. 그림자 인간이 거기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백발의 마녀 에메라의 것이었다.


[...계약자?]

"응 그렇지. 역시 집착남답게 한번에 알아보는구나? 안녕? 난 마우스라고 한다. 얌마. 결국 마녀님을 모시고 싶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결국 소유욕이었냐. 참나."

[아니, 아니야...]

"가온은 먼저 나가있어."


마우스가 손을 튕기자 불꽃이 응축되더니 위로 솟구치며 빛을 냈다.

이 세계를 탈출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김남일의 작전은 이미 완전히 망해버렸다.

하지만 그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존재는, 너무나 위험했다.


[단순한 계약자가 아니야...! 설마 당신은...그들 중 하나...!]


김남일이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한 순간, 마우스가 그의 턱을 붙잡았다.


"쉿."

[......!!]

"더는 스포일러라고."








"끄아아아아아아아아!!"


현실세계.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숨을 몰아쉬는 가온과 그를 부축하는 이자견.

그리고 검은 기운을 온몸에서 뿜으며 괴로워하는 김남일.

이내 정신을 차린 그가 핏발선 눈으로 가온을 노려보았다.


"정신이 나갔냐?!"

"......?"

"그딴 걸 심상안에 두고 있다고?! 제정신인 놈이 할 짓거리냐!"

"뭔 개소린지 모르겠지만...일단 네놈이 졌다는 건 알겠다."


김남일의 얼굴에 핏줄이 섰다.


"개소리! 이렇게 된 이상...! 물리적으로 죽여주마!"


품속에 칼을 꺼내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가온을 찌르려고 한다.

온몸에 힘이 빠진 가온이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김남일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귀찮았지만 제압하기 위해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가온을 지키듯 김남일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다.


"뭐냐! 이자견!"

"가온씨에게 손대지 마세요."

"장난하냐! 방해한다면 우선 네년부터...!!"


다음 순간, 가온의 앞에 섰던 이자견이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손으로 김남일의 턱을 갈겼다.

보는 가온도 입이 떡 벌어질만큼 깔끔한 장타였다.


"끄억..."


다리에 힘이 풀린 김남일을 내려다보던 이자견이 싸늘히 말했다.


"아까도 말하고 싶었어요. 물리적으로 싸우면 제가 이길 거란걸요."


더 이상 쓰러진 그에게는 관심두지 않고 가온을 쳐다본 이자견이 생긋 웃었다.


"괜찮아요?"

"아, 네..."


이자견의 손에 이끌려 가온이 일어나는 그 순간.


콰아아아


김남일의 몸이 기이한 구멍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가온이 그를 잡으려는 찰나, 김남일의 몸이 확 사라져버렸다.


어느새 김남일의 기운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또 놓쳤다고 분통을 터뜨리려는 가온은 문득 옆의 온기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이자견이 손을 꼬물거리고 있었다.


"저기...가온 씨."

"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온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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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파멸? (7) 20.08.15 167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3 3 16쪽
360 파멸? (5) 20.08.14 165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3 3 19쪽
358 파멸? (3) 20.08.11 172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5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67 3 17쪽
355 파멸의 징조 (3) +1 20.08.08 173 4 15쪽
354 파멸의 징조 (2) 20.08.07 16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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