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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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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3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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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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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6
글자수 :
2,335,429

작성
19.05.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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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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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21쪽

세계대회편 41

DUMMY

"즐거움은 이제부터라?! 건방진...끄악?!"



발작하려던 재무진이 가온에게 뺨을 얻어맞고 말이 끊겼다.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이지 못하던 재무진이 입을 벌린 순간, 가온의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사정없이 뺨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짝!짝! 짝!


"커윽! 컥! 아악!'

"......"

"......"


헬렌은, 그리고 이자견은 멍하니 재무진이 얻어맞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광경이다.

어렸을 때부터, 절대적으로까지 여겨지던 주인이 이토록 무참하게, 짐승같은 비명을 내면서 얻어맞는 광경은.


쫘악! 쫙!


"오오. 영감. 때리는 맛이 있는걸."

"아악! 아아아아악!"


코피가 터지며 얼굴이 부어오른다. 그런 광경을 보았으니 가슴이 후련해져야 하는데, 가온은 오히려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이런 하찮은 놈 때문에.

이런 것 때문에.


우리 삼촌이...죽은 건가?

퍼억! 투콱!


"크웁! 으악! 카악!!"


얼굴이 부을대로 부어올랐다.

발길질에 이빨이 툭 튀어나가 바닥에 튀겼다.

재무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잊었다.

그저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엄청난 권력을 가졌던 그가 살면서 이런 고통을 언제 당해봤겠는가?


"그, 그마안...!!"


급기야 그의 입에서 애걸의 목소리가 나오자 헬렌이 더는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을 걷어차 똑바로 보게 한 것은, 루이스였다.


"자 봐라 암퇘지년아."


평소와 같은 차갑고 침착한 목소리로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네가 케인을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넣게 만들었던 존재가, 영락하는 모습을 똑바로 보란 말이다."

"으, 으으..."


뒤통수를 겨누는 총에서 느껴지는 차디참에 헬렌은 꿀꺽 침을 삼켰다.

죽음보다 재무진이 무섭다는 생각은, 지금 재무진이 보이는 추태로 인해 옅어져갔다.

대신 죽음의 공포가 그녀의 머리를 지배해가고 있었다.


"가온아."


말없이 구타를 지속하던 가온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것은 바로 익환이었다.


"익환이 형."


말없이 고개를 젓는 익환. 그걸 본 재무진의 마음에 안도가 들어찼다.


'그래. 나는 놈들에게 있어 중요한 인물일 터...아직 듣고싶은 걸 듣지도 못했는데 날 해코지할 리가 없다.'


게다가 가온은 복수심보다 익환을 더 존중하는지 그의 제지에 곧바로 분노를 거두고 물러났다.


"크, 크크크크 익환...네놈은 상황파악을 좀 할줄 아는..."


서걱.


"어? 아?"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촉. 손가락 한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재무진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끄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끄럽소."


땅바닥을 구르는 재무진의 어깨를 발로 짓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익환이 혹한처럼 차가운 눈동자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뱉으시오."

"무, 무얼 말이냐?!"

"아는 것 전부. 현수의 죽음에 관계된 모두와 당신에게 연결된 조직 그 전부를!"

"흥...그걸 순순히 말할 것 같...아악!!"


허벅지를 깊숙히 찌른뒤 뺀 익환은 이번엔 주술의 빛을 재무진에게 쬐었다.

그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그게 호의가 아닌, 악의에서 나왔다는 것을 느낀 재무진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이해하지? 우린 당신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오."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가온이 재무진의 팔을 잡더니 손가락으로 손을 뻗었다.


우드득.


"끄악?! 우우아아아아아!!"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발을 버둥거리는 재무진, 하지만 그것도 익환이 발로 눌러 여의치 않았다.


"으아아아아!!"


발악하던 재무진의 눈에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는 이자견이 눈에 들어왔다.



"이 개같은 년!! 어서 날 도와라!! 돕지 못하겠느냐! 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정신을 잃을 뻔 하면서도 재무진은 이자견만 있다면 이 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가온과 계약을 한 것을 모르고 그녀의 자의로 배신했다고 생각한 재무진은 이자견의 힘으로 이것들을 전부 무릎 꿇린 뒤에 이 굴욕을 되갚아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온은 여유롭게 웃었다.


"이자견 씨."


움찔. 이자견이 흠칫 몸을 떠는것을 보고 가온이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은, 하고싶은 게 없으신가요?"

"하고...싶은거요?"

"저처럼, 아니 저보다 더 재무진에게 하고 싶은 게 많으실 거라 생각하는데."

"무슨 개소리냐?! 이년! 어서 날 돕지 못할까!!"

"......"


침묵하던 이자견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두 분. 비켜주세요."

"......"


잠시 서로를 바라본 익환과 가온은 재무진에게서 떨어졌다.


"으, 으흐하하하하! 그래! 날 도와라 이자견! 그럼 내 큰 포상을 내리겠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자견만이 구원의 줄이라는 듯 엉금엉금기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고통으로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던 재무진을 물끄러미 보던 이자견은, 기어오는 재무진의 얼굴을 걷어찼다.


퍼억!


"으걱?"


지금까지와의 고통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미약한 공격이었으나, 그 공격을 한 주체가 이자견이라는 점에 재무진은 멍해졌다.


"...자, 자견?"

"아아."


두 손으로 가렸던 입을 풀자 그녀의 표정이 드러났다.

그녀는 가학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벌레 같을까요? 주인, 아니. 재무진 씨."

"네...네년이 감...!!"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자견의 정신지배가 재무진의 머릿속을 헤집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자견은 장첸을 구속했던 정신지배도 풀었다.


"어?"


당황하는 장첸에게 지금까지의 정황을 머릿속에 입력하는 이자견.

시시각각 표정이 변화하던 장첸은 이내 낯빛이 시커멓게 죽었다.


"무, 무슨..."

"장첸 씨?"


이자견이 부드럽게 그를 불렀다.


"지금까지 재무진 씨의 명령대로, 몇 명이나 고문했죠?"

"......"

"하세요. 똑같이."


이자견이 보낸 명령과 현재 상황을 이해한 장첸은, 서슴이 없었다.


"뭐, 뭣? 장첸 네놈 뭐하는...끄우아아아아아아아?!"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살려면 이것밖에 없잖아요? 공포에 눈을 떤 장첸이 기계적으로 재무진을 고문했다. 지금까지 몇명이나 고문한 프로답게, 가온과 익환이 가한 것보다 힘을 덜 쓰며 더욱 고통스럽게 고문을 가하는 장첸.


"아아아아아! 아악!! 장첸! 네놈이이이이이!!"

"시끄러워 이 무능한 영감탱이야!! 아직도 네가 최고 권력자인줄 아냐!! 다 망했다고!!"

"네. 다 망했죠."


그때. 이자견의 장첸의 뒷통수에 살며시 손을댔다.


"어..."

"우리 메이드 영미씨의 원한에 대한 보답. 지금 갚아드릴게요."

"자, 잠깐...난 시키는 대로...!!"


다음 순간.

장첸은 두 눈을 하얗게 까뒤집으며 미친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 비명이 어찌나 소름 끼쳤던지 익환마저 눈을 찌푸릴 정도였다.


잠시 후.

장첸은 입에 게거품을 물며 털썩 쓰러졌다.


"뭘 한 건가요?"


가온의 물음에 이자견은 살며시 웃었다.


"지금까지 제가 당했던 고통들과, 제 하녀가 당했을 고통을 경험하게 해 드렸죠."



산채로 목을 잡아 뜯기는 고통은 애교죠. 이젠 재기할 수 없을 거에요.

음산하게 말한 그녀가 이번엔 재무진에게 걸어갔다.


"뭔가 알아내기 전에 망가지면 곤란한데요."

"그건 걱정마세요. 굳이 이 자가 불지 않더라도 제 힘이라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답니다."


잠깐 생각하던 가온이 부들부들 공포에 떠는 재무진을 내려다보았다.

애원하는 듯한 눈으로 가온을 올려다보는 눈빛을 본 가온에 희미하게 웃었다.


"뭐 그렇다면야."

"자, 잠깐! 말하겠다! 말할테니 기다..."

"어머나."


이자견의 손이 재무진의 머리에 툭. 올려졌다.


"아직도 반말이시네요? 무능한 늙은이?"

"기다...!!"


기다림은 없었다.

재무진의 정보를 순식간에 읽어낸 이자견은, 화사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제가 당했던 고통, 그리고 당신이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이들의 고통. 듬뿍 맛보세요!"

"......!!"


말은 없었다.

다만, 까뒤집은 눈과 그의 바지에서 새어나온 액체가 그의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완전히 망가뜨리면 곤란합니다. 아직 더 하고 싶거든요."

"걱정마세요. 그 점도 충분히 배려했답니다."


그저 자기 주제를 알게 해 준 것 뿐이랍니다.


이자견이 머리에서 손을 뗐다. 털썩.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부르르 떨고있는 재무진은 고개를 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게 짜증났던 걸까. 익환이 검으로 그의 볼을 꿰뚫어 바닥에 처박았다가 검을 뺐다. 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고개 드시오."

"으아! 으아아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오!!"


발저둥치던 재무진이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제발 그만해달라고. 아프다고.


"교육좀 시켰답니다."

"으아아아아..."


고통에 겨워하는 재무진은 이제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고통스러워 하기 싫은, 패배자에 불과했다.



"잘못했습니다.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한 번만 용서를..."


그러던 그의 눈이 루이스에게 잡히던 헬렌에게 향했다.


"헤, 헬렌. 헬렌...내 소중한 부하...어서 날 구해다오...어서..."



충격받은 얼굴로 모든 일련의 광경을 보고 있던 헬렌. 루이스는 잠자코 그녀를 놔주었다.


"자. 해봐라 헬렌. 그때처럼."


루이스가 차갑게 말했다.


"저놈의 것을 위로해주면서. 케인을 욕했을 때처럼 충성심을 증명해야지?"

"헬레엔..."


헬렌의 선택은 빨랐다.


"웃기지 마 이 무능한 늙은이야!!"


헬렌의 발길질이 그의 턱을 걷어찼다.


"재기할 수 없는 무능하고 자신의 주제도 모르는 늙은이가 어딜 감히 손을 대!! 그렇죠? 새로운 주인님?"


그녀는 이내 무릎을 꿇고 가온에게 기어갔다.


"저, 저는 여기서 죽기엔 아까운 인재입니다! 정부공인 순위권자가 된 걸 보면 실력은 짐작이 가시죠? 헤헤헤."

"......"


하지만 가온은 싸늘했다. 다급해진 헬렌은 두 손을 싹싹 비며 애걸하다시피 말했다.



"그,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저 추잡한 늙은이가 가르쳐서 잠자리 기술도 끝내준답니다! 원하신다면 계약이라도 할까요?!"

"하."



가온의 뇌리에 그를 격려해주던 케인이 스치고 지나갔다.


"루이스씨."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헬렌의 눈이 뒤흔들렸다. 그녀는 갑자기 땅바닥을 기는 재무진을 걷어차더니 이내 고간을 터뜨릴 듯 걷어찼다.


"끄우아아아아아아! 그만! 그만!"

"어딜 반말이야!! 아직도 내가 네 부하로 보이냐?! 어엉?!"


추잡함. 그렇게 밖에 부를수 없는 광경에 가온의 시선은 스산하기만 할 뿐이었다.


"죽어! 죽어 이 늙은이!"

"그만...그만 때리세요 제발...제가 다 잘못했습니다...제발..."


철컥.


그런 헬렌의 뒤통수에 총구가 겨누어졌다.


"하, 하하. 농담이지? 루이스?"

"......"

"기,기다려 봐. 내가 죽으면 미헤유랑 루카스에겐 뭐라고 설명할 건데? 응?"

"글쎄. 아직 모르겠군. 진실을 감출지, 사실대로 설명할지."


다만, 루이스가 덧붙였다.


"넌 죽는다.

"기, 기다려봐 루이스!! 사실 나 예전부터 너에게 관심이 있었...!!"


타앙!!


헬렌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고 눈동자에서 빛을 잃었다.

털썩.

무릎을 꿇은 헬렌이었던 육체가 재무진의 옆에 털썩 쓰러졌다.


"히아아악!!"


화들짝 놀란 재무진이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두번 다시 그러지 않을게요...제 주제를 알겠습니다...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하 쓰레기같은 놈""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었다.


절대 권력자는 사라졌다.

남은 건 공포에 떠는 패배자뿐.


"이자견씨."

"네?"

"얻어낸 정보를 저와 익환이 형에게 전송해 주십시오."

"...괜찮을까요?"


그녀는 정보에 대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이 순간을 끝내도 되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네."


가온은 눈을 감았다.


"오히려 이 이상은. 눈뜨고 보기 힘들군요."


역겨워서요. 가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자견이 가온과 익환에게 전송했다.

모든 정보를 순식간에 읽은 가온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가온의 손이 허리춤에 검에 갔다.


"네놈은, 시작에 불과했어."

"으, 으아아아아아아."


가온이 익환을 바라보았다.


"하실래요?"

"아니, 네가 해야겠지."


익환의 말에 가온은 미소지었다.

자신에게 양보해준 그에게 감사를 느끼면서.



"기, 기다...아각...기다려..."


가온이 무슨 짓을 할지 안다는 듯 애원하는 재무진. 하지만 가온은 잠자코 검을 들어올리고, 순식간에 내리쳤다.


서걱.


푸슈웃.


목을 잃은 육체에서 피가 뿜어져나왔다.

데구르르.

재무진의 목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그는 죽은 것이다.


스르르르.


"......!!"


영혼을 잃은 몸뚱이에서 뭔가를 느낀 이자견이 황급히 가온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가온은 잠자코 손을 들어보였다.


"괜찮습니다."


가온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침착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짐작이 가니까요."




쿠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


기이한 비명.

그것을 듣는 순간, 시종일관 침착했던 가온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는 뻥 뚫린 벽으로 걸어가더니 어느 방향을 쳐다보았다.


"? 왜 그래?"


익환의 물음에 가온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이이협은 방금 전까지 자신과 싸우던 존재의 도주를 뒤쫒지 않았다.

싸우면서 점차적으로 강해졌던 적은 어느 순간부터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재무진은 정체모를 여왕의 기운을 내뿜는 적보다는 그 적이 느꼈던 무언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자 보인 광경은, 환성이었다.



"이가온!! 이가온!!"


경기장에 있던 이들이 높은 곳을 바라보며 환성을 쏟아내는 모습.

그곳엔 가온과 익환이 서서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저 곳은."


아까 그 기운이 느껴졌던 곳.

이이협의 얼굴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물들어갔다.









[허억...헉...]


푸른색의 빛으로 이루어진 영체. 이것도 조금 있으면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 남자는 서둘렀다.


[이자견...그 여자가 내 모든것을 없애기 전에 서둘러야 해...]


아직은 수복할 수 있다.

예전만큼 영향력을 끼치진 못해도, 아직 뒤의 절대자로 군림할 수 있다.

그는 재무진의 영체였다.

죽음을 두려워한 그는 자신이 죽더라도 예비 육체에 옮길 수 있는 주술까지 걸어놨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정신적인 공포에서 벗어난 그는 한시라도 빨리 힘을 수복하고자 했다.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모든 힘을 다해서, 소년에게 모든 걸 바칠지라도 반드시 놈에게...

하지만 가온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두려움이 들었다. 반대로 가온은 재무진을 우습게 여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가온과 연관된 모든 것이 두려웠다.


'일단 어서 예비육체로 들어가자...!!'



"...엇?"


하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예비 육체가 있는곳이 아닌, 이상한 곳에 이끌려 왔다는 것을, 도착하고 나서야 눈치챘다.


[이 곳은...]

"제 방이랍니다."


단아한 목소리, 기억에 있는, 간절히 원했던 목소리였다.


[이이나...?]

"네. 저랍니다."


퇴마 이씨 가문의 부당주가 환하게 웃으며 재무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아니,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재무진이 간절하게 말했다.


"날 도와주게. 시간이 없네."


간절한 말에도 이이나는 생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내 애가 탄 재무진이 고함을 질렀다.


[웃고만 있지 말게! 어서...날 좀 도와...]


재무진은 문득 이이나의 눈앞에 놓인 항아리를 눈치챘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재무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우,우린 정을 나눈 사이가 아닌가?! 그런 나에게 뭘 하려는...]

"아. 그거요."


이이나가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사라라락.


재무진은 두 눈을 의심했다. 이이나의 몸이 수십 수백, 수천의 벌레로 화래 흩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병풍 뒤에서 이이나가 걸어나왔다.


[......]

"후후후.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죠?"

[설마...그때도?]

"설마라니요."


이이나가 심통이 난듯 볼을 부풀렸다.


"고작 구울의 진화정도의 기술로 절 안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 게 이해가 가질 않는데요? 무능한 늙은이 씨? 우후후후."

[네, 네년...네년이...!!]


자신이 안았던 게 벌레였다고?

배신감과 치욕에 치를 떠는 재무진에게 이이나가 손을 내밀었다.


"쓸모없는 당신이, 그나마 쓸모있게 만들어 드리지요."


말끝에 재무진의 몸이 이이나 앞에 놓인 항아리에 빨려들기 시작했다.


[어? 우아...!! 우아아아아!]


재무진은 저게 뭔지 이해했다.

저기에 흡수되면 죽느니만 못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시, 싫어! 그만둬! 그만둬어어어어어어!!]

"주제를 몰랐던 자. 이제 편히 잠드시길."


쿠구구구구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항아리에 흡수된 그는 더 이상 말을 뱉지 못했다.

그저 이이나의 즐거운 웃음소리만 이 들릴뿐.


"자 가온아. 쓰레기를 없앤 내 사랑스러운 아들."


이이나의 얼굴이 고혹적으로 변했다.


"아니...양아들이라고 해야 하려나? 우후후후."


그녀의 표정이 어떤 기대로 물들었다.

재무진같은 쓰레기와 비교도 되지 않는 최고의 남자를.


"어쩌면, 네가 내 다음 상대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미지의 힘을 지닌,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이야."








또각 또각.


미국의 커튼본부.

널찍한 복도를 거니는 코트를 걸친 선글라스를 낀 여성. 그녀는 바로 켈렌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연구원같은 차림을 한 남자가 바짝 다가서 걷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일은?"

"난리가 났죠. 한국만 난리가 난게 아니라 전세계가 말이에요. 민간인이 대형으로 말려든 것도 모자라 전세계에서 테러가 날 뻔했다는 게 밝혀져서...요즘 TV를 틀면 어디서나 재무진 이야기죠."

"한국이 또 비난받겠군?"

"그렇지도 않은게. 그 재무진이란 놈이 각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정치에 개입된 게 들켜서요. 저번에 한국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도 대부분 그놈이 개입했고 밝혀졌으니..."


아닌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재무진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확한 기사가 있는가 하면 찌라시도 넘쳐났다.

그런데 말이에요 남자가 히죽 웃었다.


"당신은 어떻게 사건이 일어나지 전에 빠져나와 여기로 온 거죠? 켈렌?"

"......"

"아니, 레임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넌 날 그렇게 부를만큼 친하지 않아."


켈렌이, 레임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조금의 거래가 있었다고 해 두지."

"크흐흐. 음흉하시다니까? 그래서? 거래 내용은요?"


레임이 잠자코 품속에서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동양인 소년이었다.


"으음...애인?"

"농담이었으면. 안 웃겼다고 해 두지."

"장난이에요 장난."


남자가 히죽 웃었다.


"분명...이가온 이었죠?"










세계대회가 끝났다. 그리고, 재무진이 사라졌다.

실감나지 않는 사실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가온을 보며 멀리서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쟤가 모두를 구했다며?"

"우와...진짜 대단하다."


다만 그것은, 예전과는 달리 비웃음이 아닌 경외가 담겨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자랑스럽게 다가온 것은 동생 이가은이었다.


"야."

"......"

"오늘이야."

"그래."



그래. 오늘이다.

오늘이, 퇴마 이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가온은 일어섰다.


"다음 원수를 만나야지."

"응? 뭐?"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가온은 속으로 되뇌었다.











[크르르르]



지저분한 하수도 속.

어두운 그곳을 홀로 걷는 존재.


[키카...코...]


그는 이이협과 싸우다 도망친, 여왕의 기운을 가진 '신인류'였다.

정처없는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앞을 가로막은 존재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르르르.]


눈앞에 있는 존재는, 커튼이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혼비백산하겠지만, 신인류는 오히려 반갑다는 듯 상대를 보았다.

그 커튼은 검은색의 찬란한 피부를 갖고 있었다. 놈의 주위에 놈과 똑닮은 분신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날, 기다렸나?]


신인류는 놀랐다.

자신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튀어나온 것에 대해.


[그르르르.]

[내가 필요하다?]


큭큭큭 웃던 신인류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할게 있다.]

[그르르르?]


그게 뭐냐고 묻는 동포에게, 신인류는 말했다.


"죽이고 싶은 녀석이 있다."


이제 확실한 사람의 언어로, 그는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나의 적을 죽이고 싶다."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숙명이라 할만한 적의 얼굴, 그건 다름 아닌 가온이었다.


[그르르르...]


누구냐고 묻는 동포에게 그는 말했다.


"이가온을 죽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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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새로운 시작. (完?) +3 20.09.01 212 4 27쪽
378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20.09.01 152 3 30쪽
377 소(牛) 토끼(兎) 양(羊) 닭(鷄) 뱀(蛇) 돼지(豚) 말(馬) 호랑이(虎狼) 용(龍) 고양이(猫) 20.08.31 157 3 26쪽
376 쥐(誓) 바람의 결말. 20.08.30 156 3 19쪽
375 세계와 내면의 진실 (2) 20.08.29 157 2 16쪽
374 세계와 내면의 진실 (1) 20.08.28 160 3 24쪽
373 절대적인 신(神) 20.08.26 154 3 15쪽
372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3) 20.08.25 173 3 13쪽
371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2) 20.08.24 164 3 14쪽
370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1) 20.08.23 160 3 15쪽
369 소원권 (2) 20.08.22 161 3 20쪽
368 소원권 (1) 20.08.22 162 3 23쪽
367 동기부여 20.08.21 164 4 27쪽
366 에메라의 이야기 20.08.20 164 2 11쪽
365 파멸? (10) 20.08.18 171 4 28쪽
364 파멸? (9) 20.08.17 159 3 20쪽
363 파멸? (8) 20.08.16 157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69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5 3 16쪽
360 파멸? (5) 20.08.14 167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5 3 19쪽
358 파멸? (3) 20.08.11 174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7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69 3 17쪽
355 파멸의 징조 (3) +1 20.08.08 175 4 15쪽
354 파멸의 징조 (2) 20.08.07 171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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