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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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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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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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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폭격(Bombardment) (5-3)

DUMMY

공동체(커뮤니티)의 공식적인 작전 참여 요청이었다. 그간 절해 축출 이후 분기탱천한 볼리셔니스트들의 참여 요구가 많긴 했지만, 오히려 분위기나 대오를 흔들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해왔던 터였다. 하지만 나름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볼리셔니스트를 투입하고 싶다는 의견은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정은정 과장이 손을 들었다.


“훈련 수준은 어떤 정도라고 합니까?”

“수장 얘기대로라면... 실전 투입도 무리가 없을 거라고 했네. 다만, 경험을 좀 쌓아야 한다는 단서가 달리긴 했지만.”

“몇 명입니까?”

“네 명. 한 개 팀 규모라는군.”

“......”


정은정 과장이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볼리셔니스트간 전투에서, 어쩌면 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팀워크였다. 1인분도 하지 못하는 볼리셔니스트는 오히려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컸다. 한강진 국장이 말했다.


“정 과장 생각도 이해하네. 어쭙잖게 달려들다가 전투를 망칠 수도 있겠지.”

“네. 그것이 걱정입니다.”


그녀는 「마법사의 나무」 사태 당시 유럽 전역의 경험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실력 없이 열정만 가진 볼리셔니스트의 말로는 뻔했다. 적의 노련함에 놀라나며 진형을 흩트리고, 오히려 그런 아군을 구하고자 다른 실력 있는 볼리셔니스트들이 희생되곤 했다.


“오히려 발목 잡히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정은정 과장이 걱정을 더 실어 말했다. 특히 볼리셔니스트는 군대와 같이 병기나 시스템으로 개인 간 격차를 메우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병력수도 적기에 다수가 가지는 효과 - 실력이 평균에 수렴하는 - 역시 보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믿을 수 있는 건 실력 있는 동료와의 신뢰뿐이었다. 한강진 국장이 말했다.


“당장 일선 투입은 어렵겠지. 하지만 악마와의 싸움을 위해서라도 전력 보강은 반드시 필요하네. 그게 우리 손이든 남의 손이든.”

“......”

“내가 포도스트로마라면 정신없이 몰아칠 테니까. 어쩌면 내일 적들이 다시 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걸세.”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강진 국장의 말이 맞았다. 주력 세 명을 한꺼번에 잃은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한 명의 볼리셔니스트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한강진 국장이 정은정 과장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물론... 돈 주고도 못 살 실전 경험을 시켜주는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좀 받아야겠지. 여기가 사관학교도 아니고 말이야.”


농담에 가까운, 약간의 웃음 섞인 말이었다. 정은정 과장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오나요?”

“사흘 후. 일단은 이곳 방어부터 숙지시키도록 하지.”

“네. 팀장님.”

“좋아. 그럼 정리할까.”


한강진 국장이 칠판을 한 번 싹 지웠다. 분필가루가 건조한 냄새를 풍기며 회의실 안에 피어올랐다. 그는 깨끗해진 칠판 위에 다시 판서를 시작했다. 몇 개 항목을 내려쓴 그가 돌아섰다.


“놈들이 룰을 깼다. 사실 이건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했기에 피해가 컸어. 하지만 이걸로 적의 의도도 향후의 행동도 명확해졌다. 이는 우리가 해야 할 일도 확실해졌다는 뜻이지.”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한강진 국장이 분필을 만지작거리다가 칠판 아래 받침에 내려놓았다. 손을 한 번 턴 그가 말을 이어갔다.


“가장 시급한 건 이곳의 방어다. 커뮤니티의 볼리셔니스트를 지원받아 방어를 굳힌다. 그리고 동시에 적 보급선을 공격한다. 배라고 해도 항구에 시가지 근처니 마찰이 우려될 수도 있지만... 이번만은 신경 쓰지 말게. 좀 험하게 해도 상관없어. 모조리 날려버리도록.”

“알겠습니다.”


정은정 과장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한강진 국장이 모두를 둘러보면서 마지막 말을 던졌다.


“이번이 마지막 위기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어쩌면... 이 싸움에 볼리셔니스트 세계의 존망이 걸려 있을 지도 몰라. 물론 이 사건 이후 우리의 세상은 완전히 변하겠지. 어떻게 변할지 예상하기도 어려워. 하지만 우리는 최선이라고 생각한 길을, 의지를 담아 최선을 다해 따라갈 뿐이야.”


「변화」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지금까지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볼리셔니스트라면, 아니, 볼리셔니스트를 아는 사람들까지도 변화가 눈앞에 왔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결과는 아무도 몰랐다. 너무나도 큰 의지들이 충돌하고 겹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결국 필요한 건 방향이겠지. 그리고 우리는 이 방향이 옳다는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나아갈 수밖에 없어. 언젠가 뒤돌아섰을 때 길이 굽었다는 걸 알 수도 있겠지. 그러나 설령 결과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최선을 다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평소 추상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 한강진 국장이었다. 그러나 오늘만은 달랐다. 어쩌면 마지막에 가까워진 싸움을 앞두고, 이제 변화를 직면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은정 과장은 알고 있었다. 그가 내색하지는 않았어도 그가 내뿜는 초조감 - 좀 더 나은 미래를 원하는 진정성으로도 비친 - 은 조직 전체에 퍼진 상태였다. 저 사람이라면 어쩌면 볼리셔니스트의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9국이 V처럼 몰락하지 않고, 「국가에 충성한 마법사의 말로」가 차환준 중사의 말처럼 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모두가 변화를 공감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단순히 볼리셔니스트가 만드는 의지의 합치Accordance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아 가는 한강진 국장의 의지에, 모두가 감화되고 있었다.


‘......’


정은정 과장은 조금씩 시선을 숨겨가며 그를 바라보았다. 커뮤니티도 정부 조직도 아닌, 볼리셔니스트의 새로운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 언젠가 취해가는 술자리에서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9국의 독립을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막연하기만 했던 그의 꿈은, 이번 일을 통해서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도 그만큼 커져갔다. 과연 변한 그곳에 자신의 자리가 남아 있을까. 물론 지금 이런 걱정을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뿐.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날이 ‘조만간’ 오리라는 것을.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지."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한강진 국장은 텅 빈 회의실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카드를 얘기하지 않은 건 역시 보안 때문이었다. 5월 초 있을 「해왕성」 작전Operation Neptune은 SOSS 내부에서도 몇몇만, 9국도 한강진 국장 자신과 염준철, 정은정 과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때 문이 열렸다. 정은정 과장이었다. 둘은 서글픈 웃음으로 서로를 맞이했다. 그녀가 말했다.


“팀장님.”

“정 과장.”

“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출발하시죠.”

“그러지.”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작년에 어떻게 연이 닿아 업무협약을 맺은 이후, 이곳은 9국에서 애용(?)하는 병원이 되어 있었다. 일본 볼리셔니스트뿐만 아니라 9국 부상자에 최근에는 수장까지 이곳에 입원 중이었다. 이제는 보안도 든든했고 업무도 원활히 흘러갈 정도가 되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서창민 대리의 병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한강진 국장을 본 서창민 대리가 놀란 듯 상체를 일으켰다.


“팀장님.”

“괜찮나?”

“이제 괜찮습니다. 내일부터 복귀하겠습니다.”


그가 보란 듯 손목을 빙빙 돌렸다. 한강진 국장이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그리고... 소식 들었나?”

“...... 네.”

“미안하네.”

“아닙니다. 팀장님이 왜...”

“그럼 몸조리 잘 하고. 조만감 봅세.”

“네. 감사합니다.”


과일봉투를 놓고 병실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가장 위 특실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강(江)의 수장인 「김지수」가 입원 중이었다.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지수와 지애림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수장. 좀 어떠십니까.”

“전 괜찮습니다.”

“좋아지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인사를 주고받은 한강진 국장이 지애림을 향해 인사했다.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군요. 그때 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약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 일이 날 뻔 했습니다.”

“아뇨.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인사를 마친 한강진 국장이 병실 한쪽에 있던 의자를 조심스럽게 끌어왔다. 지수도 그가 할 말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상체를 일으켜 자세를 잡았다.


“수장. 여쭤볼 게 있습니다.”

“홀리Holy 때문인가요?”

“네.”

“지연이를 통해 전달 드린 말에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물론... 그 시점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분이 정말 특별했다고 봐야겠죠.”

“......”


이성진 대리를 두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특별함도 이제는 세상에 없었다. 지수도 시선을 낮추면서 분위기를 살폈다. 한강진 국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기술처럼 「습득」 할 수 있는 건 아닙니까?”

“홀리는 기술이 아닙니다. 「악마」를 대하는 방법에 삶의 방식이 투영된, 그 정수를 모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죠.”

“삶의... 방식?”

“네. 표현드릴 말이 많지 않군요. 죄송합니다.”

“......”


뾰족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수장이 뭔가를 감춘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두 사람은 지수의 쾌차를 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장의 병실에 과일바구니를 놓고 몇 층을 내려온 그들이 향한 곳은 또 다른 병실이었다. 역시 1인실이었다. 앞에는 경비원이 서 있었다. 둘을 본 경비원이 손을 올리자 한강진 국장이 말했다.


“한강진입니다.”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비원이 자리를 비키자 둘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4인실이었지만 침상에는 단 한 명만이 누워 있었다. 지선후였다. 그는 하나 남은 오른팔로 엉거주춤 상체를 일으키려 노력했다. 한강진 국장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괜찮나?”

“보면 모르갔소?”

“그때 도와줘서 고맙네.”

“씨팔... 그 악마라는 건 당췌 뭐 하는 놈이라요?!!! 사람을 무슨 장난감으로 알고...”

“......”


분노를 토해내던 지선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눈을 피하며 말했다.


“미안하요. 죽은 사람들... 유감이라요.”

“고맙네.”

“내 당장 도와주고 싶지만, 몸이 이 꼴이라 힘들갔소.”

“괜찮네. 일단은 치료가 먼저니까. 그런데 하나 물어볼 게 있네. 같이 싸웠던 사람 중에 이성진에 대해서야.”

“...?”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을 기억하나?”


알 수 없는 물음에 지선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는 한강진 국장의 말에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약간 찜찜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악마새끼가 인간 흉내를 내고 있다고 역정을 냈소.”

“......”

“아마 그 직후 악마가 나와 함 동무를 찢었을 거라요.”


역시나 한강진 국장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는 지선후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자리에 일어났다.


“고맙네. 그럼 빨리 일어나게.”


* * * *


발바토스의 9국 HQ 습격부터 8일 후, 「히페리온Hyperion」 작전 당일인 1988년 4월 21일 목요일 00시 45분.

부산직할시 남구 O부두, 25,000DWT급 벌크선 아카기마루(赤城丸) 인근.


작가의말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잘 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ㅎㅎ;

회복 중이긴 합니다만, 쉽게 떨어지지는 않네요. 며칠 더 두고봐야 될 거 같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코로나 조심하시고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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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10화 : 폭격(Bombardment) (6-4) 22.06.04 37 0 11쪽
223 10화 : 폭격(Bombardment) (6-3) 22.05.29 38 0 11쪽
222 10화 : 폭격(Bombardment) (6-2) 22.05.15 41 0 12쪽
221 10화 : 폭격(Bombardment) (6-1) 22.05.01 35 0 11쪽
220 10화 : 폭격(Bombardment) (5-7) 22.05.01 4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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