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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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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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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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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폭격(Bombardment) (5-2)

DUMMY

그리고 같은 시간. 서울의 9국 회의실에서도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청소가 끝나 적당히 깔끔해진 회의실 안은, 부서진 탁자 대신에 새 탁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탁자 앞으로는 각 과의 과장들과 볼리셔니스트 전부가 모여 있었다. 한강진 국장은 깨진 창문을 막기 위해 임시로 붙여놓은 비닐을 바라보았다. 사실상 건물 전면부 유리 전체가 깨진 상황이라, 교체까지는 며칠이 더 걸릴 예정이었다.


“찬바람이 드는군.”


붙여놓은 비닐이 바람에 흔들렸다.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귀를 흔들었다. 염준철 과장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중으로는 수리될 겁니다.”

“다행이군요.”


회의는 최근 있었던 악마의 침입과, 그에 따른 진행 방향 등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한강진 국장이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느릿한 발걸음에는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분필을 든 그가 칠판 중앙에 「악마」라는 두 글자를 썼다.


“이틀 전이지. 이름 미상의 악마가 이곳을 침입했다. 목적은 이곳에 남은 볼리셔니스트를 살해하고, HQ 자체를 날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목적은 거의 성공했지.”


침묵이 흘렀다. 잠깐의 여백을 둔 한강진 국장이 분필을 반으로 꺾었다. 그리고 다시 판서를 시작했다. 딱딱거리는 분필 소리와 비닐 펄럭거림만이 대화 대신 회의실 안을 맴돌았다. 몇 개의 원과 항목을 써내려간 한강진 국장이 다시 말을 시작했다.


“자. 냉혹하게 상황을 한 번 보자고. 우리는 허리라고 할 수 있는, 볼리셔니스트 중진 셋을 한꺼번에 잃었지. 그야말로 엄청난 피해야. 거기에 HQ의 위치가 드러났고, 심지어 그릇까지 전투에 동원하는 꼴이 되고 말았어. 지금까지 숨겨왔던 정보들이 적들에게 일거에 드러나 버렸지. 이제 놈들은 잡다하게 다른 곳을 칠 필요도 없이, 이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게 분명해. 여기에만 집중하면 원하는 건 다 얻을 수 있거든. 우리에게 방어를 강요하고, 병력을 계속해서 소진시키고, 그러다가 그릇을 끌어내서 차지하는 거지. 게다가 악마의 압도적인 힘을 피로하고, 「결계」라는 새로운 물건의 실전 유용성을 입증했고, 표막을 뚫어내는 총까지 사용했어. 특히 결계는... 결과만 놓고 보면 인지구조 변화를 범위로 적용한다는 건데, 정말 듣도 보도 못한 기술력이야. 이건 뭐 거의 중세와 근세의 싸움 같군. 솔직히... 적이 여기까지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한강진 국장이 판서한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갔다. 확실히 적들은 이번 전투 한 번에 엄청난 이득을 얻어갔다. 그나마 우위에 있었던 개별 전투력을 지닌, 핵심 전투원을 다수 줄일 수 있었다. 여기에 신형 병기들을 투입해서 그 효과를 확인했다. 비록 장비가 파괴되긴 했지만, 어차피 온전하게 얻었더라도 대응책을 세울 수는 없었을 터였다. 한강진 국장이 정은정 과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물었다.


“「총」은 확인해 봤나?”

“네. 잔여 탄환 열 발 중 두 발을 사격해 봤습니다.”

“어땠지?”

“탄속만 보면 칼로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만... 난전 중에 이런 물건이 날아온다면, 분명히 피해가 있을 겁니다.”


정은정 과장이 꽤 덩치 큰 권총 한 정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묵직한 쇳덩이가 내는 소리에 시선이 모였다. 그녀가 탄환 한 발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분해했다. 이미 한 번 분해한 듯, 탄환은 금방 몇 조각으로 나뉘어갔다. 바늘과 그것을 감싸는 작은 원통 같은 것이 드러났다.


“탄두는 마치 바늘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발사 시에 분해되는 구조로 보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확인해 보니, 전차포탄과 같은 구조였습니다.”

“좋아. 여기에 대한 대응책은 고민해 주게.”

“네.”


한강진 국장의 분필이 움직이다 한 단어 위에서 멈췄다. 「결계」라는 단어였다.


“이건... 감식반 의견을 좀 듣고 싶군. 정유미 대리?”

“네. 팀장님.”


정유미 대리가 꾸벅 인사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원래 일본 내각정보조사실(内閣情報調査室) 소속 볼리셔니스트 - 그것도 「그릇」인 - 였다가, 금성 작전Operation Venus(봉산리 전투)에서 패해하고 「망명」을 통해 9국에 안착했다. 지금은 이름을 바꾸고 현장지원과 내 법칙 개발을 맡고 있었다. 그날은 따로 출근하지 않았기에 무사했다. 이번 사건 후에는 파괴된 지향성 결계생성장치 등 유류물을 분석하는 임무를 맡았다.


“본체는 폭발로 부서졌습니다. 하지만, 파편에서부터 정보를 얻었습니다.”


약간 어눌했지만 한국어에 꽤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가져온 서류를 바라보며 천천히 읽어나갔다.


“폭발은 자폭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장치는 완전히 기계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기계가 아니다?”

“네. 몇 개의 생체조직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기나 기름을 연료로 하지 않습니다. 볼리셔널 파워(VP)가 연료입니다. 또 장치의 일정 부분은 볼리셔널 파워를 담아두는, 축전지로 확인하였습니다.”

“그렇군...”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결계 생성장치는 단순히 기계가 아니었다. 이것은 생체조직을 가졌고 그 작동에 VP를 사용했다. 더구나 VP를 담아두고 배터리처럼 쓸 수 있는 물건까지 있었다. 정유미 대리가 말했다.


“생체조직 일부를 보존 중입니다. 작아도 파장을 내고 있으니, 법칙 일부를 재현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면 방어 방법도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래. 고생했네.”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는 기술력 차이였지만, 최소한의 대응책은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 상황을 타개해 나갈 방법도 고민해야 했다. 한강진 국장이 칠판 왼쪽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피해도 크고, 기술력 격차는 암담하지. 하지만 희생은 분명히 그만한 대가가 있었지.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던... 이 싸움의 향방을 갈랐으니까. 싸움은 크게 변화했어. 따라서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해.”


다시 한번 분필 딱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동식의 칠판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방어 속에서 공세를 찾는 것.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일단 들었겠지만, 공안 쪽에서 검은색 나무의 새로운 보급선을 특정했어. 공안은 이번 작전에 사용한 물자를 이 새로운 루트를 통해 조달했다고 생각하고 있지. 이 보급선의 핵심은 벌크선인데... 이놈이 다음 주 중에 부산에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는 이걸 칠 예정이고.”


「보급선 공략」이라는 단어 아래로 분필이 내려갔다. 그곳에는 「강(江)」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지애림씨가 이번 전투에서 큰 도움을 줬지. 지연양?”

“네. 말씀드리겠습니더.”


「강(江)」과의 연락책으로 9국에 있는 박지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 역시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는 자택에 있었기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한강진 국장이 손짓으로 그녀를 다시 앉게 만들었다. 박지연이 앉은 채로 말했다.


“그니까... 악마의 의지는 거진 100km 반경까지 퍼집니다. 그 범위 안에서는 에지간한 예지가라면 악마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또 소환되었던 악마에게는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죽이지는 못했지만, 당분간은 활동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강(江)은 각 지역 공동체와 함께 악마를 감지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어색한 표준말 악센트가 섞인, 긴장이 잔뜩 들어간 영남 말투였다. 그렇게 서류의 마지막을 잃던 박지연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자기가 제대로 읽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이성진이라는 분은, 그... 이 머꼬? 홀리Holy? 를 사용 하였습니다?”

“!!!”


악마와의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는, 모든 볼리셔니스트들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정은정 과장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박지연은 서류를 넘겨 뒷장을 펼치며 말을 이어갔다.


“요건 수장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홀리Holy는, 악마에 대한 강력한 정화의 감정과 분노에서 촉발되는 것이다. 때로는 분노와 감정에 모든 것을 맡기되, 다만 그것을 자신의 눈동자 안이 아닌,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박지연이 자리에 앉았다. 자신도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악마와 한 번이라도 부딪힌 적이 있는 볼리셔니스트들은 달랐다. 그들은 이러한 감정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하지만 그 뒤의 말도 당연히 알게 되었다. 그러한 감정들을 분리해서 바라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위기를 살피던 한강진 국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건... 좀 고민할 필요가 있겠군. 기술처럼 습득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깨달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지 말이야. 일단 지연씨,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의 인사에 박지연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한강진 국장이 이번에는 분필 지우개를 들었다. 오른쪽 부분을 지운 그가, 새로이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예지」라는 단어였다.


“슬픈 얘기지만... 이번 일에서 예지망만으로 적을 대응하는 건 쉽지 않음이 밝혀졌지. 민 대리, 너무 자책하지는 말게.”

“네......”


약간의 웃음 섞인 한강진 국장의 말에, 민혜림 대리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판서를 이어갔다. 「약」이라는 단어가 적혔다.


“약을 쓰는 인원수를 정확하게 세는 건 불가능하고, 악마가 게이트를 통해 온다면 예지로 대응하는 건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렇기에 집중해야 될 것이 있네.”

"네?“


침울함에 빠진 민혜림 대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한강진 국장은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악마의 모니터링이 최우선이라는 얘기지. 민 대리. 지금 악마가 어떤 상태이고, 얼마나 있지?”

“그건... 두 마리가 있고, 둘 다 부상이 심한 상태입니다. 차츰 회복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좋아. 임무를 줄인다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지금 놈들의 주력은 사실상 악마에게 집중되어 있고, 보통의 볼리셔니스트들은 약을 이용해 이동하고 있지. 따라서, 악마가 아닌 볼리셔니스트를 마크하는 건, 예지가 아닌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근할까 하네.”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몇 번의 작전을 통해 놈들이 사용하는 차량을 거의 특정했어. 조금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생각이야. 어차피 볼리셔니스트 능력을 쓰지 못하는 상태라면, 군경으로도 대응이 가능할 테니까.”


약물의 작동시간에는 볼리셔니스트가 아닌 일반인으로 기능한다는 걸 역이용한다는 뜻이었다. 보통의 정보조직으로도 추적이 가능하기에, 대놓고 마크하다가 볼리셔니스트로 돌아오는 순간 예지가가 맡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예지가는 약을 쓰는 볼리셔니스트가 아닌, 악마와 「약을 쓰지 않은」 볼리셔니스트에 집중한다는 얘기였다. 민혜림 대리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진 국장이 아래쪽으로 분필을 옮기면서 말했다.


“경찰 쪽과는 대략 얘기가 되었네. 타이밍이 조금만 빨랐다면... 좀 아쉽긴 하군. 그리고 다른 얘기를 좀 할까 하네. 모두의 의견을 묻고 싶어서 말이지.”


돌아선 그가 모두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풀린 얼굴이었다.


“정 과장은 알 거야. 강(江)이 볼리셔니스트 훈련장을 마련하고 그간 공동체 볼리셔니스트를 대상으로 훈련에 매진해 왔다는 걸.”

“아......”

“그 훈련생 1기가 나온다고 하는군. 2개월 코스라고 하니까 그리 강한 건 아닐 테지만... 정식으로 그들을 이번 전투에 참가시키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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