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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4.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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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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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폭격(Bombardment) (4-1)

DUMMY

-4-


악마 「발바토스」가 소환되고 53분 후인 1988년 4월 14일 목요일 00시 13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HQ.


발바토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누군가에게 시선을 빼앗긴 탓이었다.


안개가 걷히고 맑은 밤하늘이 드러났다. 달은 이미 지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췄지만, 도시가 내뿜는 빛은 허공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발바토스는 9국 HQ 주차장 입구에서 들어오는 그림자를 보며 긴장을 감추지 않았다. 아주 작고 작은 그림자가 그만큼의 위압을 주는 건, 옛날에도 없었고 향후에도 없을 일이었다.


/크르르르.../


발바토스는 짐승의 소리를 내며 양손의 손톱을 크게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 따위는 작은 그림자의 전진에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마침내 멀리 가로등이 만드는, 노란 조명에 채휘의 얼굴이 드러났다.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음에도 발바토스의 위협은 극에 달했다. 공기를 갈라놓을 정도의 울음소리가 귀를 쑤셨다.


“뭐야... 저건...”


이성진 대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훈련받은 전술 볼리셔니스트 셋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다룬 악마가, 9살의 작은 여자아이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저 이상한 장면 때문이었다. 그는 부상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애림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오다가 만났어요.”

“어떻게... 알고...”

“악마의 악취 나는 의지가 사방에 퍼졌어요. 지금 대천(서울 강북 의기력자 공동체)에서도 의기력자들이 준비 중이에요. 30분 내로는 올 거예요.”

“......”

“물어볼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지만, 일단은 지금 해결이 먼저에요. 일어설 수 있어요?”

“으윽...”


일어서기 위해 힘을 주자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특히 바스러진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문제였다. 가까스로 상체를 들어 올린 그가, 다문 입 사이로 고통스러운 숨을 거듭 내뱉었다. 그걸 본 지애림이 복부의 출혈부에 손을 얹었다. 고통이 줄어들면서 피가 멈춰갔다. 그녀는 이성진 대리와 채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채휘만으로는 안 돼요. 볼리셔니스트가 도와줘야 해요.”

“뭐... 뭘... 어떻게... 하겠다는 얘깁니까...”

“당연하잖아요. 「그릇」이 힘을 쓰려면, 「볼리셔니스트」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때였다. 발바토스가 채휘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손톱이 맹렬히 흔들리며 연약한 인간을 찢어놓기 위해 달려왔다. 그걸 본 채휘가 침착하게 오른손을 뻗었다. 그리고 발바토스의 공격에 맞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발바토스의 공격이 목표를 잃고 허우적거리듯 빗나갔다. 하지만 공격이 계속되자 그 간격이 점차 어긋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이성진 대리가 울부짖듯 물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서요! 그리고 채휘를 바라봐요!! 의지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요!!”


지옥 같은 고통을 이겨내며 이성진 대리가 몸을 바로 세웠다. 채휘를 향해 몸을 돌린 그가 허공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잠시 잊고 있던 분노가 다시 용솟음쳤다. 그의 포효에 발바토스가 움찔 놀라며 이성진 대리를 바라보았다. 이 장면을 보던 지애림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

“일단은 나중에 얘기해요. 채휘를 바라봐요, 지금!!”


그가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채휘에게 향한 그때였다. 일순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며, 오로지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만이 귀를 가득 채워갔다. 자신의 의지도달공간이 누군가의 거대한 손길에 부드럽게 흔들리며 움직였다.


“이건...!!!”


봄바람에 산들거리는 풀잎과도 같이, 여름 파도에 색이 변하는 모래사장과도 같이. 의지도달공간이 어떤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릇」이 녹여내는, 의지도달공간의 「합치合致」였다. ‘하나의 완전한 개인’을 상징하는 「의지도달공간」이, 이렇게나 쉽게 타인의 그것과 합쳐질 수 있는 걸까. 배타적인 성역Sanctuary이라고 배워왔던 지금까지의 상식이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크오오오오오오오!!!“


삽시간에 지애림과 이성진 대리, 두 개의 의지도달공간이 채휘의 손에 하나로 묶였다. 채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안에 법칙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대규모의 법칙이 움직이면서 사방의 공기가 떨렸다. 발바토스도 기다리지 않았다. 초음속의 손톱이 만든 소닉붐이 폭발음과 함께 흩어졌다. 이성진 대리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피, 피해-!!!”


그러나 채휘는 그저 선 자세 그대로 왼손만 앞으로 뻗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발바토스의 공격이 멈췄다. 무형의 벽에 막힌 손톱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했다. 단순한 피지컬 베리어였지만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충돌이 만든 충격파로 먼지구름 안에 재차 공동(空洞)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발바토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멈췄던 손톱이 부들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공간이 찌그러지면서 나는 기괴한 소리가 넘실거렸다. 힘과 힘이 부딪히며 만든 진동이 대지를 흔들었다. 그렇게 힘 싸움이 절정에 오를 무렵이었다. 채휘가 공격을 받은 자세 그대로 왼팔을 바깥쪽으로 펼쳤다.


/카아아아아아---!!/


닿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발바토스는 큰 충격을 받으며 HQ 잔해를 향해 날아갔다. 손으로 그은 것 같은 일직선이었다. 다시 작은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


충격적인 장면이 연이어졌다. 채휘가 칠판을 지우듯 손을 위로 휘두르자, 악마가 있던 자리의 「공간」이 지워졌다. 잔해를 머금은 공간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로켓 발사와 비슷한 연기가 생겨났다. 순간 잘라낸 공간에 발바토스의 어깨 껍질이 들어갔다. 그러자 마치 순두부를 잘라내듯, 껍질이 조각나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크어어어어!!!/


발바토스도 크게 놀란 것 같았다. 이제 악마는 반격이 아닌, 필사적으로 공격을 피할 뿐이었다. 그러나 움직임은 기민했다. 회피 속에서 반격을 노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러다... 당할...”


불안함을 감지한 건 두 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이성진 대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애림이 기습을 노리던 발바토스를 견제했다. 다시 한번 타이밍이 엇갈리면서 발바토스가 뒤로 물러났다. 채휘도 지친 듯 잠깐 손을 멈췄다.


/크으으.../


발바토스의 표정에 분노가 담겼다. 이제 승부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성진 대리는 피로 붉게 물들은 시야 속에서 채휘를 바라보았다. 불과 9살의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철렁해지는 악마를 앞에 두고도, 의연하게 공격을 이어갔다. 저런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더구나 압도적인 저 공격. 공간을 도려내는 저런 건 본 적도 없었다. 손짓 한 번에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공격이 거리와 관계없이 쏟아졌다. 저것이 그릇의 진정한 힘이란 말인가.


“저건... 도대체...”


갑자기 시선이 쓰러진 동료들에게 향했다. 어둠 속에서 낭자한 선혈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채휘가 일찍 올 수 있었다면... 두 사람의 희생도 없지 않았을까. 상실감, 슬픔이 급격히 몰려들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때 지애림이 비틀거리던 그를 부축했다. 그녀가 물었다.


“일단 한시름 놓긴 했는데... 동료들은 없어요?”


이성진 대리가 손을 들어 주차장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걸 본 지애림이 무겁게 시선을 내렸다.


“미안해요.”

“조금... 빨리... 왔으면...!”

“결계 때문에 진입이 불가능했어요. 이렇게까지 강력할 줄은...”


그녀의 말에 이성진 대리가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자신만이라도 목숨을 건진 것이 다행인 상황. 이때 결계라는 얘기에 그가 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그리고 박찬율 대리를 불렀다.


“찬율아...! 찬율아!!”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지애림이 비통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정면의 발바토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일단 악마부터 해결하죠.”


그녀의 말처럼 한시름 놓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채휘의 체력이었다. 멀리서 봐도 작은 어깨가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성진 대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요...”

“놈도 의기력자가 사방에서 몰려들 거라는 건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죠.”


한편, 평양 인근 사이트Site 역시 난리가 났다. 버건디는 발바토스가 「한정형태」로 변한 것을 느꼈다. 더구나 한정형태 변신에 게이트를 열고자 모아놓은 VP를 사용하고 말았다. 때문에 게이트 - 이곳과 서울을 연결하는 - 를 여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하 영어)‘제기랄...’/


뭔가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악마의 의지는 등불처럼 주변 예지가와 볼리셔니스트들을 자극할 것이 분명했고, 그 볼리셔니스트들 중에는 「그릇」도 있을 것이 자명했다. 물론 적들 입장 상 그릇 스스로가 현장에 나타날 확률은 낮았다. 만약 볼리셔니스트만이라면 한정형태가 아니더라도 충분하겠지.


문제는 발바토스가 한정형태로 변했다는 점이었다. 뭔가 불안했다. 마젠타와 마룬에게서 들어오는 정시보고가 현장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이것마저도 20분 전에 끊어진 상태.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애가 탔다.


/게이트를 빨리 열어!! 발바토스를 회수해야 해!!/


초조한 버건디의 닦달에, 애쉬가 난감한 듯 대답했다.


/가용한 VP가 없습니다. 최소 20분은 지나야.../

/젠장!!/


전투를 즐기고, 전공을 탐하고, 싸움을 피하지 않는 발바토스의 성정을 생각하면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터. 아마도 「그릇」의 등장까지 시간을 끌었겠지. 자신의 힘이라면 그릇까지 무력화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겠지만... 문제는 상대가 「벡터 변환」까지 다다른, 전설에나 나올 법한 전무후무한 그릇이라는 사실이었다. 버건디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애쉬가 말했다.


/최대한 빨리 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약이던 뭐든 먹여서 VP를 확보해!/


서울, 9국 HQ 앞에서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 발바토스는 지애림과 이성진 대리까지 공격범위를 넓혔다. 난투전이 벌어졌다. 발바토스는 공격 루트를 다양화하며 이쪽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전투 경험에서 오는 노련함이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사이사이 압도적인 방어력과 공격력을 보여주는 채휘였지만, 이러한 발바토스의 영악한 공격에 정신적인 피로는 착실하게 쌓여가는 중이었다. 발바토스의 공격을 한 차례 튕겨내며 공격 루트를 차단한 이성진 대리가 이를 깨물었다.


‘어떻게 하면...’


지애림의 말처럼 대천 소속의 볼리셔니스트들이 오는 걸 기다려야 하지만, 아무래도 그 전에 채휘가 지칠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그는 출혈이 멈춘 복부의 상처에서 손을 떼며 지애림에게 말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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