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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ak 님의 서재입니다.

특성으로 다시 사는 용병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Badak
작품등록일 :
2022.05.18 23:19
최근연재일 :
2022.07.27 22:34
연재수 :
94 회
조회수 :
170,120
추천수 :
4,978
글자수 :
645,824

작성
22.07.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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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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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21쪽

그란 상단 쟁탈전 (11)

DUMMY

의식이 돌아왔다.


슬그머니 눈을 뜨니, 처음 보는 천장이 나를 반겼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나 또 기절했었구나.


“하..”


억지로 꿈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켜보려 했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기절 후 기상할 때 처음으로 느껴보는 무기력함이었다.


오러를 움직여 보려했지만, 오러도 잘 모이지 않았다. 몸이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다.


“이런.”


그래도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려다 피면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계속 누워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꽤 괜찮은 침대였다.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 주변을 둘러보니 평범한 가정집 같았다.


끼-익


문이 열리고, 톰의 어머니를 닮은 아주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편한 펑퍼짐한 옷에 평범한 얼굴, 그리고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쟁반 위의 음식들. 정말 가정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머, 일어나셨네요.”


그녀는 나를 보고서도 놀라지 않은 채, 쟁반 채로 음식들을 내 옆의 탁자위에 놓더니 웃으며 말을 걸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잠깐 계시면, 제가 당신을 여기로 데리고 온 분을 모셔올게요.”


“잠깐, 여기는 어딥니까? 당신은 누구시고요?”


갈라진 채로 간절하게 묻는 내 질문에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얕은 미소를 머금은 채 열었던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갈 뿐이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는 했다. 제국 부흥단의 인물인 것 같은 말이었는데..


“부흥단인가?”


그렇다면 설명이 됐다.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 지도, 그리고 누가 나를 구했는지도. 의문은 하나다. 어떻게 제국 부흥단의 상징을 도용한 것을 알아차렸냐는 것이다.


덜컥,


“몸은 좀 괜찮냐?”


안으로 들어온 얼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아니 왜 거기서 나오시는 겁니까..?


“얼굴 좀 봐라. 그렇게 얼빠진 얼굴은 또 처음보네. 고생했다.”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고 걸터앉는 인물은 내가 너무나도 익숙한 인물, 트레이스 지부장이었다. 그와 제국 부흥단 사이에 관계가 있었던가?


“궁금한게 많은 얼굴이다.”


“예, 뭐, 네.. 조금, 아니 사실 많이 궁금하기는 합니다.”


“너 새로운 대원 잘 뽑았더라. 모로스 아니었으면 너 이미 죽은 목숨이야.”


모로스? 모로스가 날 살렸다고?


“너 그 편지 땅바닥에 버리고 갔더라. 흘린 것 같기도 하고. 여튼, 그 편지를 들고 모로스가 감히 나를 찾아왔더라고. 하, 배짱도 좋지. 아니면 내가 너무 만만하던가.”


위협이 가득한 말투였지만 얼굴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모로스를 대견해 하는 표정.


“그럼..?”


“그래. 나는 얼추 그 문장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 모를 수가 없지 않느냐. 그래도 용병길드 핵심 인사인데. 그래서 연락을 넣어봤ㄷ. 혹시나 우리 용병길드 인재 빼가려고 하는 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여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용병 길드 인재를 빼가려는 수작이라면 당장 그만두라는 말 정말 했을까?


“그 연락을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기절한 널 데리고 부흥단 녀석들이 찾아왔더구나.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길래, 자세한 사정은 거기 기절한 놈이 잘 알거라고 이야기해줬지. 그래서 지금 너는 부흥단의 거점 중 하나에 있는거고.”


“그럼 지부장님은 왜 여기 계십니까?”


“그 놈들의 뭘 믿고 너를 혼자 내버려두겠나? 혹시 모르지, 후에 용병길드의 핵심 간부가 될 수도..”


“제가 말입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때때로 알 수 있는 일도 있지요.”


“아니, 모르는 거라고. 여튼 난 네 목숨을 살렸어.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보고 말 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네. 알겠습니다.”


입을 닫았다. 절대로 용병길드 직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여튼 간에 내 목숨을 살려준 트레이스 지부장의 말이다. 듣는 척이라도 해야지.


“그래서 아마, 부흥단 녀석들 중 이 일에 궁금증이 생긴 이들이 너를 찾아 올 거다. 딱 보니까 네 몸이 온전할 리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여기 있는 거고. 모로스도 남겠다고 했는데, 그 녀석이 남아있어봤자 도움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너희 숙소로 보내놨다.”


다행이다. 모로스가 남아있다면, 대충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전해줄 수 있겠지. 라민 산맥에서 돌아온 아르문디와 말론도 걱정 없이 하린과 함께 다음 일을 위해 떠날 수 있으리라.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배짱이 넘쳐도 너무 넘친단 말이지. 무슨 생각으로 그 위험한 곳을 혈혈단신으로 갈 생각을 다 했냐?”


“제국 부흥단이라면 이런 치졸한 짓거리는 안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사실.. 본인들의 상징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이 있는 단체이다 보니, 문장을 도용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도 하구요.”


“그래, 그렇긴 하더라. 나를 찾아왔을 때, 정말 화가 많이 난 얼굴이었거든. 어딜 감히 제국의 상징을 함부로 사용하느냐. 뭐 이런 얼굴?”


“그래서 제가 아직 살아있는 것이겠죠.”


“그래.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일단 죽을 뻔 하다 살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주는 게 맞겠지?”


“말씀이 좀 이상한데요.”


“허허, 착각이다.”


트레이스 지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오.”


나를 대신하 트레이스 지부장이 대답했고, 처음 보는 얼굴 하나가 뚜벅뚜벅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오러를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상태인데다가, 몸도 마음대로 거동할 수 없어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지만 몸이 멀쩡했다면 난 분명히 조치를 취해도 취했을 것이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이나 강함이 남달랐거든.


“환자 앞인데.”


하지만 그 기세는, 트레이스 지부장이 나서자마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트레이스 지부장이.. 저렇게나 강한 인물이었던가?


“제국의 행사요. 방해하지 마시오.”


“제국은 무슨. 아직 제국은 재건되지 않았소. 제국의 뜻을 이어가는 단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제국의 행사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겠군.”


“감히..”


“감히 뭐. 어쩌실건가?“


허공이 울룩불룩하게 부풀었다가 쪼그라들었다가를 반복했다. 저 기세싸움은 마치 이터니티와 드워프 간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트레이스 지부장의 진면목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


‘괜히 용병길드의 길드장이 된 건 아니었구나..’


강했다. 당연히 나보다 강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최소한 마스터다. 그것도 꽤 원숙한 마스터는 되어보이는 것 같았다.


“후, 그만하지.”


“시작은 자기가 해놓고 건방지군.”


“미안하오, 사과하지. 하지만 제국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해두고 싶군.”


“그건 이쪽도 알고 있지. 환자 앞이니, 행동에 조심해 주시길 바라오.”


이겼다. 트레이스 지부장이 이겼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평범하지는 않아보였다. 그런데 확실히 기세를 꺾어놓더니, 원하던 사과까지 받아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인데, 트레이스 지부장이 새삼스레 달리 보였다.


“하.. 알겠다.”


그는 기세를 거두고, 내게 걸어왔다. 기세는 뿜고 있지 않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에서 느껴지는 것인지 모를 연륜과 무게감이 느껴졌다.


“A급 용병, 카멜. 맞나?”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제국 정통 수호단, 사람들은 제국 부흥단이라고 부르는 단체의 제 5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크롯이다.”


크롯이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긴 내가 전생에 고위 인사들과 얼마나 관련이 있었겠어.


“그렇군요.”


“우리에 대해서 얼추 알고 있는 것 같더군. 신기한 일이지.”


제국 부흥단은 어둠 속에서 암약하고 있던 세력이었다. 바깥 활동을 할 때는 정체를 완벽하게 숨기고 움직였다. 별의 도시나 용병길드에서나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뿐, 일반인들은 그 정체조차 모르는 미지의 단체. 일개 용병이 알기에는 너무 단체의 수준이 높았다.


“우리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지.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여기 있는 트레이스 지부장을 통해 듣기도 했고, 별의 도시 쪽에서도 연락을 최근에 받았지.”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도 네가 언제 우리에게 접선해 올 것인지 기다리고 있었다. 궁금한 게 많았거든.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지는 몰랐지만.”


“저도 이런 식으로 만남이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당연히 그랬겠지. 우리가 가지 않았더라면, 너는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지도 못했을테니까.”


직설적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때 맞추어 나타난 그와 제국 부흥단이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제국의 인장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무리들이 있을 지는 생각 못했거든요. 그런 걸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 아닙니까. 부흥단은.”


“그렇지. 감히 함부로 제국의 인장을 사용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다.”


“예.”


그렇게 대화는 단절되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황이었기에 대화를 주도할 수 없었다.


“궁금한 게 있다.”


“예, 말씀하세요.”


“그들의 목적은 뭐지?”


“나단 왕국의 암살자들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어떻게 보면 뻔합니다.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는 것. 그리고 스토크 왕국이 붕괴되었을 때, 국토를 넓히고 그 세력권을 안정시키는 거죠.”


“역시 그랬나.”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혹시 우리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이 있나?”


“맥시로스는 쓰레기입니다. 제국의 혈통을 잇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지원하려 하지 마십시오.”


내 말에 크롯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맥시로스라는 자는 제국의 혈통을 잇고 있다고 알려진 자다. 제국의 이름을 수호하는 입장에서, 그를 두둔하지 않을 수는 없어.”


“제국을 다시 일으키고 싶으신 거 아니셨습니까?”


“당연하지.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지상과제다.”


“그럼, 당연히 제국의 마지막도 기억하시겠군요.”


그 말에 크롯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 진실의 미간.


“그래. 알고 있지. 어처구니 없었고, 어떻게 무너진 것인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제국의 멸망은 한 순간이었다. 부패한 귀족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지방 호족들, 여기저기서 궐기한 민란, 그리고 이종족들의 저항까지.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톱니바퀴를 짜맞춘 듯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제국은 통제권을 상실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저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았다. 제국은 그 모든 혼란을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부패했다 할지라도, 제국의 정예로 소문난 직속 변경군단들과 황도의 수도군단, 그리고 수도 기사단의 이름은 헛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수도군단과 기사단이 한순간에 증발해버렸다. 그것도 제국의 수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발생한 군사력의 공백기 속에서 잠재울 수 있을 줄 알았던 혼란의 씨앗들은 점점 더 커져버렸고, 결국 제국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뒤늦게 변경군단들이 힘을 합쳐 제국을 재건해보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힘을 합친 것은 북부군단과 서부군단 뿐. 남부와 동부 군단은 각각 자신들의 군단장을 왕으로 추대하고 왕국을 세워버렸다.


제국 부흥단은 북부군단과 서부군단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결과물로, 제국이 스러진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강대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헛된 노력이라며 탈주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세력들이 빠졌음에도 제국 부흥단은 여전히 강한 세력을 구가하고 있었다.


“제국의 이름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분명 많죠. 하지만 과연 그들이, 부패해버린 제국의 귀족들이 그대로 돌아온다면 반길까요?”


“···”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제국은, 철통 같은 군사력으로 도적과 몬스터, 이종족의 공격을 수비해내며 안정적인 평화를 이룩해냈던 강철의 제국입니다. 속에서부터 썩어문드러져버린 부패의 제국이 아니구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하지만 크롯님도 인정하고 계실 것 아닙니까.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 때 대다수의 제국 귀족들은 부패해있었고 그로 인해 제국이 무너지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 지방 영주들과 중앙 행정관료들만 정상이었다면 군사력에 공백이 생겼다고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지지는 않았겠지요.”


그 말에 크롯은 눈을 꼭 감았다.


“사실, 제국의 혈통을 찾는 것도 제게는 우습게 느껴집니다. 수많은 제국 출신 귀족들이 자신의 살길을 찾아 나라를 세우고,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제국의 귀족입니까, 아니면 배신자들입니까?”


“그만, 그만해라.”


“제 기준에서 제국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들은 단 하나, 제국 부흥단 뿐입니다. 새로운 제국의 귀족이 될 수 있는 이들을 선별하는 쪽이, 이미 육체도 정신도 떠나버린 이들을 잡는 것 보다 나은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도 있듯이 말입니다.”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나.”


크롯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위협적이었지만, 내 곁에 있는 트레이스 지부장을 믿고 나는 할 말을 끝까지 할 수 있었다. 이 정도 말은 해야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제국 부흥단은 제국의 정신을 계승하는 자들이지요. 왜 그랬을까, 라고 생각해봤더니 그럴 만 한 것 같았습니다. 정신과 신념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욕망을 추구하는 단체였으면,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이리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버틸 수 있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이제야 세상을 향해 웅비하려는 시점에서, 갑자기 구태의연한 태도로 혈통을 찾는다? 어울리지 않습니다. 혈통을 좇는 것은, 이미 황가의 핏줄이 모조리 끊겨버린 상황에서 제국 부흥단 쪽에서도 포기한 일이 아닙니까.”


“너는··· 정말 우리의 사정에 대해서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군. 화가 나는 건, 네가 하는 말 중에 틀린 부분이 많지 않다는 거다.”


“제국이 무너지고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동안 제국 재건의 기치를 내걸고 당대 뿐만 아니라 후손, 후손의 후손까지 부흥 운동에 뛰어드는 것은 보통의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당신들의 능력과 정신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는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단순히 의견을 제시할 뿐, 선택은 당신들의 몫이겠죠.”


“그래. 고맙군.”


나는 입을 닫았다. 크롯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맥시로스라는 녀석의 기행은 우리도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일 이전까지의 행동들은 어린 날의 치기로 넘어갈 수 있었지. 하지만 외세를 끌어들여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행동은, 우리의 행동방식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어린 날의 치기라구요? 그 정도가 아닐걸요. 이 쪽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나 봅니다.”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며 평민들을 대상으로 행패를 부리는 것 정도가 전부 아닌가.”


“네, 그리고 멀쩡한 상단의 소유권을 뺏기 위해 반대파를 억압하고, 피가 이어진 형을 죽이려 들었으며, 일반 백성 몇 정도야 죽어나가도 신경쓰지 않는 냉혈한이기도 하죠.”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군.”


“이해합니다. 여기보다 더 중요한 곳은 스토크 왕국의 왕실일테니까요. 안 그래도 이 점을 설득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중이었습니다.”


“···그런가. 그래. 우리는 너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없는 말을 지어내지는 않을 위인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네 행적과 트레이스 지부장의 증언, 그리고 주변의 평가를 들어봤을 때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더군.”


“감사합니다.”


“좋다. 맥시로스의 패악질에 관한 증거를 보여다오. 검증해 본 후, 네가 보여준 증거가 정말 모두 진실이라면 우리는 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


“네.”


“알았다. 좀 쉬어라. 몸이 많이 망가졌다.”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그에게 깊게 허리를 숙이면서 예의를 갖췄다.


“몸이 아직 온전치 않지 않나. 그냥 편히 누워있어라.”


“그건 그거고, 갖추어야 할 예의는 갖추어야지요. 당신과 제국 부흥단은 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제국 부흥단이 제게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목숨 빚을 구하기 위해 달려갈 겁니다.”


“···그런가.”


“기사도 아니고, 일개 용병일 뿐이지만 기본적인 도리라는 것은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래, 알았다. 네 말 잘 기억해두도록 하지.”


사실 크롯과의 대화는 조금 꾸며낸 부분이 있었다. 그와 대화를 할수록 느낀 것은, 그가 정치가 타입이라기 보다는 천생 기사라는 점이었다. 명예를 중시하고, 예의를 따지며 무엇보다 숨기는 것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마음에 들어할 만한 말들을 내뱉고,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하에 내가 할 말들을 모두 전했다. 그것도 직설적으로, 본론만.


“좀 쉬도록.”


“예. 아마 자료는 자일이라는 자가 가지고 올 겁니다.”


“···자일? 그 뒷골목 출신 양아치 말이냐?”


“마음에 차지 않으시나보군요.”


“그는 양민들을 괴롭히는 뒷골목 건달일 뿐이다. 왜 그런 자와 손을 잡은 거지?”


“크롯님. 크롯님께서는 정말 도시의 암흑가를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하.. 알았다. 이 판국에 그런 것을 따질 여유는 없겠지.”


“자일은 통제가 가능한 인간입니다.”


“알았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에는 들지 않는 듯 크롯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에 남은 것은 나와 트레이스 지부장 뿐.


“네가 클로에를 어떻게 구워삶았는 지 알겠구나. 레너드 녀석도 마찬가지고.”


“지금 머리가 아파서 머릿속에 있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내뱉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럼 네 머릿속이 얼마나 음흉한 지 이제야 알게 된 셈이군 그래.”


트레이스 지부장은 속셈이 있는 듯한 얼굴로 킬킬 대면서 웃더니 내게 다가왔다.


“몸은 좀 괜찮으냐? 처음 네 꼴을 봤을 때, 죽은 줄 알았다.”


“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위기 중에 가장 큰 위기였던 것은 확실한 것 같네요.”


“그래. 보통의 용병들은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지 못할 위기이기도 하겠지. 웬만하면 그런 위기를 겪기 전에 죽을테니까.”


자기의 농담이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거리면서 혼자 웃어대는 트레이스 지부장. 평소처럼 꼴 보기 싫은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공사다망한 와중에 제게 이렇게까지 신경써주실 줄은 몰랐어요.”


“말이 왜 이렇게 삐뚤어진 것 같지?”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감사합니다.”


“입으로 뭐든지 다 해결해 버리려고 하는 습성은 버려라, 인마.”


“아, 진짜. 그래도 제가 지부장님이 요청하시면 바로 달려가서 해결해오지 않았습니까. 너무 그러지 마십쇼.”


“큭큭, 그래.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회복에는 꽤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대충 몸 상태를 살펴봤는데, 안이고 겉이고 멀쩡한 구석이 없어. 나단 왕국 녀석들, 정말 지독하더구나. 솔직한 말로 나는 네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조차 모르겠다.”


“하하···”


“웃기는. 앞으로 조심해라. 너는 이제 한 단체의 장이다. 너를 믿고 따르는 녀석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그리고 용병길드의 간부진 입장에서도, 너는 용병 길드가 특별히 관리해야 하는 신성이 됐다. 너무 막 굴리지 말아라.”


“네.. 알겠습니다.”


“다행이다.”


트레이스 지부장은 일어나더니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어디로 떠날 것 같은 모양새였다.


“가시려구요?”


“그래, 가야지. 언제까지 여기 죽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나도 은근히 일이 많은 사람이다.”


“아.. 넵. 알겠습니다. 잘 추슬르고 나가서, 한 번 뵈러 가겠습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 저 녀석 조심해라. 함부로 사람을 해칠 작자로는 보이지 않는다만,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꾸벅 트레이스 지부장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어떻게든, 또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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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그란 상단 쟁탈전 (2) +2 22.07.05 939 31 15쪽
80 그란 상단 쟁탈전 (1) +1 22.07.04 1,032 29 21쪽
79 흑마법사 토벌작전 (11) +1 22.07.03 1,033 32 15쪽
78 흑마법사 토벌작전 (10) +1 22.07.02 1,020 35 15쪽
77 흑마법사 토벌작전 (9) +1 22.07.01 1,016 35 15쪽
76 흑마법사 토벌작전 (8) +1 22.06.30 1,008 34 15쪽
75 흑마법사 토벌작전 (7) +1 22.06.29 1,016 29 14쪽
74 흑마법사 토벌작전 (6) +2 22.06.29 981 30 13쪽
73 흑마법사 토벌작전 (5) +1 22.06.28 1,054 32 17쪽
72 흑마법사 토벌작전 (4) +1 22.06.28 1,070 31 17쪽
71 흑마법사 토벌작전 (3) 22.06.27 1,066 31 15쪽
70 흑마법사 토벌작전 (2) 22.06.27 1,047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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