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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ak 님의 서재입니다.

특성으로 다시 사는 용병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Badak
작품등록일 :
2022.05.18 23:19
최근연재일 :
2022.07.27 22:34
연재수 :
94 회
조회수 :
170,015
추천수 :
4,978
글자수 :
645,824

작성
22.07.04 22:00
조회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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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
21쪽

그란 상단 쟁탈전 (1)

DUMMY

흑마법사 토벌에 관한 이야기는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우리가 서머스에 도착한 지 아직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서머스 내에서 라민 산맥에 나타난 리치에 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리치녀석이 얼마나 강했는지, 토벌대가 입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토벌대 내에서 가장 활약한 사람이 누구인지 등등에 관한 소문들이 떠돌아다녔다. 딱히 막을 만한 일도 아니어서, 영주성과 용병길드, 신전 모두 관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 용병대의 창설 건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가장 활약했다고 알려진 우리 일행이, 새롭게 용병대를 창설한다고 하니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나에 대한 소문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신성,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카리스마. 수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통자, 서머스의 후계자로 유력한 이오스와 협력 관계를 구축한 정치 용병 등등 좋은 소문, 나쁜 소문 가릴 것 없이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나는 이런 관심을 받아보는 것이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트레이스 지부장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된다면서 자신이 나쁜 소문이 도는 것 같으면 컨트롤 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용병 길드 차원에서 밀어주는 이유는, 가끔 이런 용병이 하나씩 튀어나와야 용병길드의 위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머스 뿐만이 아니라, 전 대륙적인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용병길드에서 이 정도의 신성이 나온 것은 오랜만이라나. 그래서 좀 써먹겠다고 당당하게 말해서 할 말을 잃었더랬다.


이오스는 약속을 지켰다. 용병 길드 근방에, 용병대 본부를 차릴 만한 부지를 대여해주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구성원도 다섯 명 뿐인 데다가 수련장과 식당, 침소만 있으면 충분한 우리 일행들은 감사하며 그 부지를 받았다.


현재는 건설 의뢰를 해 놓은 상태였는데, 용병 길드의 주선을 받아 꽤 신뢰할 만한 곳으로 골라 맡겼다. 트레이스 지부장의 특별 지시가 있었단다.


대금은 이번 의뢰 대금을 모아 얼추 해결할 수 있었다. 가외 수익으로 얻은 룩스 피어스나 드워프제 무구까지 팔면, 한동안 용병대 운용 자금이 모자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들을 모두 마친 후에, 나는 그란 상단을 찾았다. 한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서머스에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이곳을 찾을 수 있었다. 저번에는 소린을 만나지 못했지만, 오늘은 미리 약속을 잡아 놓고 온 것이라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멜 님? 확인되셨습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번에도 나를 알아봤던 문지기는, 오늘은 더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가면서 내게 예의를 표했다. 나와 클로에,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크렉, 아르문디, 레너드까지. 우리 용병대 인원 전원이 모여 걸어가는 걸 보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그란상단을 접수하러 왔느니, 그란 상단이 고용을 한 것 같다느니,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자기들 딴에는 나름 조용조용 자기들끼리만 이야기 한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익스퍼트 정도의 경지에 오르고 나니 들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이거 영, 마냥 좋은 건 아니네.”


클로에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사람들의 관심을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그녀조차 이 분위기가 적응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뭐, 우리가 유명인사가 된 것 같긴 해서 좋은데 뭐. 내가 줄 하나는 제대로 잡은 것 같기도 하고.”


크렉은 웃으면서 태연자약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저 아저씨도 담이 커서 다행이다.


아르문디는 별 생각 없어보였고, 레너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날아와 꽂힐 때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걸음걸이 하나마저 신경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설퍼..”


내 말을 들은 것인지, 레너드가 시무룩해졌다.


“그냥 평범하게 있으세요. 금방 잦아들 관심이니까.”


“과연 그럴까?”


클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쿡쿡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이 관심이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을 것 같거든. 관심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 이런 시선에 무덤덤해지는 걸 익히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가요..?”


“응. 소문은 이제 시작이야. 소문이라는 게 무서운 점이 뭔지 알아? 퍼질수록 살이 붙는다는 거야.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면, 니가 마스터에 근접한 괴물 신인이라는 소문으로까지 확장될 지도 몰라. 탈로스 용병단을 위협하는 새로운 신성으로.”


“어우, 듣기만 해도 어지러운데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 세상만사 항상 나쁜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더라.”


클로에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나도 정말 열심히 정진해서 마스터에 버금가는 실력자가 되어버리면 되는 일이다.


“그나저나 우리 용병대 신청은 언제 통과되는 거야?”


“용병대 본부가 완성되고, 점검을 나온 이후에 확정을 내려준다고 하네요. 그냥 적당히 용병대 등급을 받을 거면 지금이라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이왕이면 높은 등급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용병대도 다 같은 용병대는 아니었다. 소수의 친분 중심 용병대는 언제든지 등록할 수 있었다. 오러를 사용할 줄 아는 B급 이상의 용병이 하나 이상만 있으면 설립할 수 있는 용병대의 대표격으로 제레미 용병대가 있었다.


“아, 맞다. 그 아저씨 아직도 여기서 일하고 있으시려나?”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소린의 호위 역할을 맡겨놨으니까, 지금쯤 한창 소린 옆에서 졸음 쫓느라 고생하고 있으시겠네요.”


“그랬지. 그래, 그리고 나서 다른 등급들은 뭐가 있는데?”


“뭐 그 이후로 중견 용병대, 대형 용병대 같은 등급이 있는 것 같은데 숫자로 표현한다고 하더라구요. 제레미 용병대는 1급 용병대고, 용병단에 가까워질수록 숫자가 높아진대요. 그리고, 최고등급인 9등급에 도달하면 용병단 승격이 가능한 지 용병길드 차원에서 확인한대요.”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길드는 생각보다 체계적이었다. 언젠가 용병단으로 승격하려면, 일단 높은 등급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반 시설 같은 부분에서 가산점을 최대한 챙겨놓을 생각이었다.


“마법사도 하나 영입하면 참 좋을텐데. 그 누구였지.. 메를린? 마를린? 그 분은 어떻게 안 되려나?”


“메를린이요. 마법사 있으면 좋죠. 하지만 마법사가 웬만한 용병대에 들어오려고 하겠어요? 그 사람들도 눈이 있는데. 그리고 고급 인력이면 여기저기서 다 모셔가려고 하잖아요.”


“뭐 그냥 해 본 말이지. 그리고 우리가 뭐 어때서! 우리 정도면 괜찮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클로에는 딱히 기대는 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용병대 중에 마법사가 소속되어 있는 용병대는, 이제 곧 용병단으로 승격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 용병대 정도 밖에 없다는 건 클로에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익숙한 곳이 보이네요.”


클로에나 다른 대원들과 잡담을 하며 걷다 보니, 익숙한 풍경이 눈 앞에 나타났다. 내가 한동안 머물렀던 공간이자 소린과 마리아가 살고 있는 그란 상단의 외딴 건물이었다.


그 때는 정말 외딴 섬 같이 아무도 오지 않는 느낌이 났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상인들도 북적거리는 것 같고 오고 가는 사람도 많아 보이는 게 느낌이 참 이상했다.


낡아있던 건물도 개축을 한 건지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엔티크 양식으로 변모해있었다. 이제 저 건물을 보고 낡고 쓰러질 것 같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아보여 좋았다.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격세지감이 더욱 커졌다. 텅텅 비어있던 벽과 복도는 미술품들과 화려한 장식물들, 화초들로 가득 메워져있었는데 복도가 꽤 넓어졌음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 지 어깨를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


“와.. 그란 상단은 그란 상단이다. 서머스 전체를 꽉 잡고 있는 이유가 있구나. 대장, 어떻게 이런 곳 후계자랑 안면을 튼 거유?”


“아, 그냥 인연이 닿아서 알게 됐습니다. 참 귀여운 친구고, 착한 녀석이죠.”


크렉은 이제 나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이 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소린 님이 안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소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달려오고 있었는데.


뭔가


뭔가···?


“너 언제 이렇게 컸어?!”


내 말에 소린은 활짝 웃으면서 내 품에 안겼다. 내 가슴팍에도 겨우 닿던 녀석이, 이제는 거의 코까지 오는 키로 나를 맞았다. 아무리 성장기라도 그렇지, 너무 많이 자란 거 아니야?


“헤헤, 오셨어요? 저번에도 오셨었다고 들었어요. 그때는 제가 죄송해요.”


“아니야, 사정이 있었겠지. 내가 미리 약속을 잡고 왔어야 하는 일이고.”


나는 얼른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제레미 용병대원들을 찾는 시선이었다. 근데 이상했다.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소린의 성장에 한 눈이 팔려서, 그들의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누구 찾으세요?”


“네 호위.”


“아..”


소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역시,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일단 앉으세요.”


소린은 우리 일행에게 자리를 권했다. 넓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으니, 사용인이 차와 간단한 먹을 거리를 가져다줬다.


“드세요, 맛있을 거예요. 저 멀리 나단 왕국에서 구해온 차라구요.”


나단 왕국이라. 사막에 있는 곳이었다. 오아시스 주변에서 나는 차가 그렇게 일품이라지. 사막 하니 한 때 내가 영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았던 이민족 사크린이 떠올랐다. 그 치도 용병대를 꾸리면 영입해야 할 우선순위 용병인데. 이 일이 끝나면 근황을 알아봐야겠다.


“고맙다. 실례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었는 지에 대해서 좀 듣고 싶은데.”


소린의 얼굴에서 천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호위가 주변에 없는 상황이라. 좋은 일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들 감옥에 있어요.”


감옥?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엑? 제레미 아저씨는 절대로 어디 가서 죄 짓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하..”


소린은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면서 마른 세수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린 아이 같던 소린이, 이제 사회의 거친 파도에 맞서 싸우는 능숙한 선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짧은 시간 만에 소년을 청년으로 만들만큼, 커다란 세파였다는 뜻이겠지.


“서머스 영주가 상단주의 편으로 붙었습니다.”


엥? 영주가 상단의 이권 다툼에 끼어들었다고?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소린은 아득히 오랜 세월동안 상단주와 투쟁한 결과, 상단의 주요 인사들을 하나씩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서 야금야금 주도권을 챙겨나갔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거상이 되었지.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암살이 실패한 이후, 저는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제가 가진 것을 모두 활용하여 카멜 형님께 보탬이 되겠다는 마음 뿐이었지요. 상행은 연달아 성공했고, 새로운 물품들도 많이 유통시켰습니다. 상단의 규모는 커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저를 따르기 시작했죠.”


“대단하군. 짧은 시간만에 상단에 자신의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만들다니. 역시 소린인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소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까지 큰아버지는 저를 경쟁 상대로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자기 아들이 이 상단을 물려 받을 거라고 생각했고, 저는 머잖아 제거될 작은 걸림돌 정도로 생각했죠.”


“그래. 알고 있다.”


“카멜 형님이 떠난 이후로도 암살 시도가 두 번 정도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모두 견뎌내고, 상단의 절반이 저를 따르게 되자 그때부터 위기감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 본인이 실각하고 나면, 제가 큰아버지 일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공포감에 허우적 거리기 시작했다더군요.”


아··· 그러니까, 지금 소린이 의욕적으로 너무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니 그것에 두려움을 느낀 상단주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는 거지, 지금?


“그란 상단의 주도권 싸움에 외부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역사상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상인의 세계에서 부끄러운 일로 치부되거든요. 그런데, 큰아버지는 그런 것 까지 고려할 여유가 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영주를 끌어들였다?”


“예. 시작은 후계자 후보 중 하나인 차남, 맥시로스였습니다. 맥시로스에게 미인과 유흥 거리를 갖다 받치면서 환심을 사더니,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주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군요. 상단의 이익의 많은 부분을 투자할 정도로. 그리고 그 결과, 영주는 큰아버지의 편을 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저를 견제할 수는 없지만, 성문에서의 검문 시간을 하루, 이틀 늘려버린다던지 자주 세무조사를 나온다던지, 혹은 저희 쪽 인물들을 별 것 아닌 이유로 투옥시킨다던지 하면서 제 세력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치사한 수작을 대놓고 벌일 수 있는 거지?”


클로에가 발끈했다. 그녀는 제레미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제레미처럼 좋은 사람이 단순히 상단의 이권다툼에 휘말려 투옥되었다는 것은 꽤 짜증나는 일일 테다.


“손을 쓸 방도가 없습니다. 이미 큰아버지와 맥시로스간의 유대는 너무 두터워졌고, 저는 상인된 자로서 그렇게 많은 이문을 횡령해 맥시로스 같은 망나니의 입에 처넣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군. 그래서 천천히 밀리고 있는 건가.”


“네. 이런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제가 가지고 있는 세력의 일 할을 잃었습니다. 남아있는 이들도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는 모양이더군요. 제가 실각하고 나면, 본인들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소린은 담담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듯 했지만, 불끈 쥔 두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은 막지 못했다.


“저기, 근데 말이지 대장.”


크렉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끼어들어 내 시선을 끌었다.


“네, 말씀하세요.”


“무슨 일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용병이 영지를 가진 귀족과 드러나게 대립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야.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다음부터 귀족들은 해당 용병들을 사람 취급 안해준다고. 자신들은 일반 평민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되면..”


“이제 막 생긴 신생 용병대인 우리 용병대가 의뢰를 수주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겠군요.”


“그래. 우리가 이 암투에서 이기든, 지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될 테지.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이 세계에서, 용병을 찾아 고용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귀족들이었다. 그 귀족들이 우리를 보이콧 하기 시작하면, 일감을 찾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 불보듯 뻔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카멜 형님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제 싸움, 괜히 은인을 끌어들여서 흙탕물이 묻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소린은 결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키는 컸어도, 아직까지 얼굴은 앳된 소년이다. 그 얼굴로 저렇게 비장한 말을 해대니 어울리지 않아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형님..?”


“소린.”


나는 소린의 이름을 불렀다. 소린은 그 부름에서 뭔가를 깨달은 것인지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면서 나를 말리려 했다.


“아니,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제발 끼어들지 마세요.”


“미안하게도, 나는 너를 중심으로 세운 계획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아르문디를 위시한 엘프들과 거래를 터야했고, 톰이 발명한 약초탕과 지혈제, 약초 같은 각종 응급약품도 소린을 통해서 팔려고 했다. 그리고 만약 수인족과의 거래가 시작된다면, 그 거래를 이뤄줘야 할 사람도 소린이었다.


“내가 이번에 대륙전역에 팔 만한 상품들을 많이 구해왔거든. 지분은 어떻게 나눌까? 친분 생각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이야기 해봐.”


“아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저랑 엮이시면 안된다니까요. 차라리 지금 큰아버지를 찾아가서 그쪽과 거래를 트시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아니, 나는 네 재능이 그 썩어빠진 상단주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백만금을 벌어다 줄 사람을 내버려두고 왜 내 돈을 횡령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사람에게 가야하나?”


나는 태연하게 웃으면서 일행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들은 내 눈빛에서 내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가지각색의 반응으로 응답했다.


한숨을 쉬거나,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마를 짚거나.


“진짜 할 거야?”


클로에는 그 중에서 진지하게 내 의사를 들어줄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다.


“네. 할 겁니다.”


“어떻게? 계획은 있고?”


“이 싸움을 귀족대 귀족의 싸움으로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한 쪽 편을 들면 되는 거구요. 우리 편이 되어줄 사람과 얼마 전 까지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일행들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했다. 현재, 서머스의 유력한 후계자 후보이자 선정을 펼칠 것으로 기대되는 장남, 이오스.


“이오스 님 말하는 거야..?”


클로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멜 형님? 이오스 님을 알고 계십니까? 그 분과 연이 있으신 건가요?”


소린도 얼굴에 화색을 띄고 내게 물어왔다.


“그래. 인연을 맺었지. 나는 그 사람이 영주가 되는 게 서머스를 위해서라도 좋은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스토크 왕국 전체를 뒤져도, 그 사람보다 나은 귀족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거든.”


내 말에 소린은 박수를 쳤다.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 대신, 이건 의뢰다. 그냥 해주는 일이 아니야. 나 혼자였으면 그냥 해줬을 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뭐.. 딸린 식구들이 있어서.”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형님이 받지 않는다고 하셔도, 저는 당연히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뭘 줄 수 있는데?”


“형님이 상상하시는 그 무엇보다 큰 것을 드리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세한 것은 하나씩 맞춰가야겠지만, 새로운 의뢰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레너드, 이해했어?”


대충 결정이 난 것 같자, 클로에가 한 구석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말하는 사람을 따라 고개만 왔다갔다 거리고 있는 레너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억! 그렇게 막 찌르시지 말아주십쇼. 아픕니다.”


“그래서, 이해했냐고?”


“어.. 그러니까.. 이오스님하고 손을 잡고 반역을 저지른다?”


“바안역? 바아아아안여어어억?”


클로에는 꿈에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면서 레너드의 등짝을 후려쳐댔다. 귀족간의 후계 다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분. 반역 같은 물어뜯기 좋은 단어를 꺼낼거라면 차라리 입을 바늘로 꿰매버리고 다니는 게 낫다는 클로에의 말은 크게 틀린 부분은 없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소린.”


“네. 형님. 말씀하세요.”


“이 의뢰의 제한시간은 얼마나 되는 거냐? 세력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면서.”


“이오스 님은 만약 후계자가 되셔도, 맥시로스가 지금 큰아버지를 지원하고 있는 것처럼 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큰아버지를 압박하시지는 않으시겠죠?”


“그럴 거다. 그런 일은 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이 상황이 유지되면 최대 한 달입니다. 그 기간이 넘어가면, 반격하고 싶어도 남은 것이 없어 엄두도 못 낼 것 같아요. 제 세력의 팔 다리가 모두 잘리기 전, 그래도 휘두를 수 있는 무기는 남은 상태로 후계자 경쟁이 끝나야 합니다.”


한 달이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한 달 또 빠듯하게 살아야겠구만. 대장. 이 일 끝나면 진짜 우리 잠깐 쉬게 해주는 거 맞지?”


크렉이 나를 보면서 원망하듯 말했다. 하지만 말투와 달리,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크렉은 저번 의뢰에서 이오스를 꽤 마음에 들어했었고, 그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네, 그러시죠. 이 일 끝나면, 돈도 많이 생겼겠다 괜찮은 용병들을 탐색해서 영입할 계획이나 짜시죠.”


“크! 좋구만. 이제 우리 밑에도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온다는 말 아니야!”


나는 피식 웃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렉을 시작으로 다른 인원들도 시원시원하게 내 의견에 동의했다. 좋다. 그럼 이제 시작이다.


“소린. 내가 해결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 너는 네가 잘 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고, 나는 내가 잘 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니까.”


“···예. 형님. 이번에도 믿고 맡기겠습니다.”


소린은 손을 뻗어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는 말했다. 이 어린 거상을, 내 품으로 확실히 끌어안을 시간이었다.


“아, 맞다. 그런데 의뢰금은 정말 얼마 줄거냐?”


챙길 건 챙겨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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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5 막시무스루
    작성일
    22.07.06 21:11
    No. 1

    주인공 호구로 묘사되는데...
    재미 계속 반감 중.

    동료가 감방 수감중인데 느긋하네.
    화를 내야 하는거 아닌가?
    주인공에게 바로 얘기를 했어야 하는게 타당한데... 그냥 주인공 호구로 보는 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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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그란 상단 쟁탈전 (6) 22.07.09 763 23 14쪽
84 그란 상단 쟁탈전 (5) 22.07.08 849 27 14쪽
83 그란 상단 쟁탈전 (4) 22.07.07 888 28 11쪽
82 그란 상단 쟁탈전 (3) +1 22.07.06 914 33 12쪽
81 그란 상단 쟁탈전 (2) +2 22.07.05 938 31 15쪽
» 그란 상단 쟁탈전 (1) +1 22.07.04 1,032 29 21쪽
79 흑마법사 토벌작전 (11) +1 22.07.03 1,033 32 15쪽
78 흑마법사 토벌작전 (10) +1 22.07.02 1,019 35 15쪽
77 흑마법사 토벌작전 (9) +1 22.07.01 1,016 35 15쪽
76 흑마법사 토벌작전 (8) +1 22.06.30 1,007 34 15쪽
75 흑마법사 토벌작전 (7) +1 22.06.29 1,015 29 14쪽
74 흑마법사 토벌작전 (6) +2 22.06.29 981 30 13쪽
73 흑마법사 토벌작전 (5) +1 22.06.28 1,054 32 17쪽
72 흑마법사 토벌작전 (4) +1 22.06.28 1,069 31 17쪽
71 흑마법사 토벌작전 (3) 22.06.27 1,064 31 15쪽
70 흑마법사 토벌작전 (2) 22.06.27 1,046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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