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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삼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왕씨세가 초대가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구삼일생
작품등록일 :
2022.05.25 17:28
최근연재일 :
2022.07.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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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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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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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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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2 - 탈출(2)

DUMMY

“부인, 지금입니다.”


밖을 살펴보러 나간 하엽이 남궁세가 모두가 왕혁을 쫓아서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돌아왔다.


“어서 가시지요.”

“예, 하 총관님. 부탁드리겠습니다.”


뒷문을 통하여 빠져나온 하엽은 일부러 험한 산 쪽으로 길을 잡았다. 큰길을 통해 지나가다가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마주치는 것을 염려해서였다.


“도련님을 주시지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이미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 데, 그런 수고를 하게 만들 수 없지요.”


하엽이 지고 있는 봇짐에는 많은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전표들과 왕혁이 평소에 그의 어린 아들을 위해 구해 두었던 각종 영약들이 있었다.

서연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뒤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만에 하나 오라버니가 저들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나중에라도 우리를 찾으러 오실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엽은 울분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저들은 처음부터 국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작정하고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해서 왔을 테지요.”

“······.”

“아무리 검의 달인이신 국주님이라 할지라도······. 그나저나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부인.”

“예. 가시지요, 총관님.”


두 사람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


남궁세가의 포위망을 돌파한 왕혁과 표사들은 해왕표국의 장원에서 최대한 멀어지도록 전력을 향해 달렸고, 그 뒤를 남궁제와 추격대가 쫓았다.

한참을 달리던 왕혁이 발을 멈추고 그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이제 작별의 시간입니다. 다들 흩어져서 살길을 찾으세요.”

“국주님······.”

“굳이 저를 따라 개죽음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길을 막고 있는 동안 어서들 가세요.”


수하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나는 것을 확인한 왕혁은 길 한가운데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그를 향해 달려오는 남궁제를 맞이했다.


“어서 와라.”

“이제 쓸데없는 발악은 멈추고 순순히 나를 따라 무림맹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나.”

“그곳에서 죽으나 이곳에서 죽으나 매한가지다.”

“말했을 텐데. 순순히 무림맹으로 따라가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기껏해야 무공을 폐하는 정도겠지. 내가 네놈을 거두어 주마.”

“네놈의 노예로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왕혁은 검을 들었다.

남궁제가 주위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아무도 나서지 마라. 저놈은 내 손으로 잡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 날 이후에 언제라도 나에게 도전을 했으면 됐잖아. 하긴, 그럴 배짱이 있었으면 이런 같잖은 수작을 부리지도 않았겠지.”

“이놈이 끝까지 주제도 모르고 건방을 떠는구나. 내가 네놈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지. 정정당당하게 겨루어주마. 오너라.”

“한 수 가르침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고? 떼를 지어 몰려와 떨거지들을 뒤에 세워 놓고 정정당당한 대결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구나.”

“네놈은 결코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남궁제가 분노의 고함과 함께 남궁세가의 가전무공(家傳武功)인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의 초식을 펼치며 왕혁에게 달려들었다. 왕혁은 가볍게 뛰어올라 남궁제를 넘어 그의 뒤에 착지했다.

순식간에 뒤를 잡힌 남궁제는 급히 몸을 돌려 왕혁의 목을 향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왕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피하며 남궁제의 하반신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남궁제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난 후 검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검에서 분출된 검기는 눈 깜짝할 새 왕혁에게 거의 도달했다.

왕혁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가볍게 검을 휘둘러 검기를 맞받아쳤다.

남궁제는 다시 공간을 가르며 검기를 내뿜었다. 왕혁은 그저 차분한 눈빛을 하고 검기를 다시 받아쳤다. 왕혁은 그렇게 날아드는 몇 번의 검기를 받아칠 뿐, 공격을 하지 않았다.


‘소가주께서 승기를 잡으셨다.’

‘저놈이 소가주의 매서운 공격에 반격할 틈이 없는 게 틀림없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남궁제의 승리를 확신했다. 소가주께서 드디어 5년 전의 패배를 설욕하시는 거라고.

그러나 왕혁은 궁지에 몰린 게 아니었다. 왕혁은 그의 수하들이 도망간 시간을 벌고자 반격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남궁제 또한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심지어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막아내고 있는 왕혁을 본 남궁제는 결국 이성을 잃고 말았다.

남궁제가 분노의 고함과 함께 신형을 내던졌다.


“이놈! 끝까지 나를 가지고 놀려고 드는구나.”


흥분한 상태로 달려들며 검을 내지르는 남궁제의 동작이 커지면서 틈이 생겼다. 왕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남궁제의 옆으로 슬쩍 몸을 피한 후 남궁제의 검을 든 오른쪽 손목을 향해 검을 수직으로 갈랐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제의 오른손의 손목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베이고 그 충격으로 남궁제는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검을 떨어뜨리고 무방비 상태가 된 남궁제의 허벅지와 옆구리를 왕혁이 연달아 베었다.


“큭!”


짧은 신음과 함께 남궁제가 주저앉았고, 고개를 든 남궁제의 눈에 어느새 그의 목을 겨누고 있는 왕혁의 칼이 보였다.


“뒤에서 더러운 수작을 부릴 시간이 있으면 검을 더 연마하지 그랬나.”

“빌어먹을······.”


왕혁이 검을 들어 남궁제의 목을 내리치려는 순간, 어디선가 분출된 강렬한 검기가 왕혁을 덮쳤다. 왕혁이 급히 검에 내공을 실어 막았으나 기운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그 충격으로 왕혁의 신형이 튕겨 나갔다.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끝까지 저 녀석을 넘어서지 못하는구나.”

“······아버지.”


왕혁에게 검기를 분출한 사내가 남궁제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깔끔한 흰 무복에 금빛 털로 치장된 겉옷을 입고 있는 거구의 사내.

그는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 최고수 중 하나인 제왕검(帝王劍) 남궁박이었다. 뒤에서 몰래 아들의 승부를 지켜보던 그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쿨럭! 쿨럭!”


십여 장 밖으로 튕겨나가 쓰러진 왕혁이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반응이 늦어서 완벽하게 막지 못해 내상을 입은 탓이다.


“제왕검 정도 되시는 분께서 옆에서 기습이라니.”

“미안하군. 아들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네.”

“못난 아들을 대신하여 이제 아버지가 나서는 건가?”

“이미 깊은 내상을 입은 듯한데, 허세는 그만 부리고 그만 항복하는 게 어떻겠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이 남궁세가의 집안 내력인가 봅니다. 아들이나 아비나.”

“······.”

“나는 한 점 부끄럼이 없소이다. 그대들 무림맹이 날조한 죄를 인정할 생각은 없지. 나를 죽이러 온 것 아니었습니까? 들어오시죠.”

“정 그렇게 죽기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남궁박이 천천히 검을 뽑고 남궁세가의 가주들만이 익힐 수 있다는 남궁세가 최고의 검법인 제왕검형(帝王劍形)의 기수식을 취했다.


“아까의 기습을 사과하는 의미로 첫수는 내가 양보하지. 출수하게.”

“그럼 사양하지 않고 먼저 들어갑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남궁박을 향해 신형을 날린 왕혁의 매서운 검날이 남궁박의 목을 향했다. 남궁박이 검으로 그것을 튕겨 내면서 두 사람의 혈전이 시작됐다.

왕혁의 검을 튕겨 낸 남궁박이 검기를 분출했다. 왕혁이 그것을 슬쩍 피하고 뒤로 물러나면서 자세를 낮춰 남궁박의 하반신을 노렸다.

남궁박이 가볍게 뛰어올라 그것을 피하고 왕혁의 머리를 향해 검을 뻗었다. 분출된 검기가 왕혁의 뺨을 스치고 바닥에 처박혔다.


콰각!


남궁박이 펼치는 검은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왕혁도 남궁박의 검은 정면으로 받아치진 못하고 슬쩍 방향만 바꿔서 흘리기만 했다. 남궁박의 검에서 분출된 검기가 땅에 검흔을 남길 때마다 나는 지면이 갈라지는 소리에 지켜보는 이들의 귀가 멍할 지경이었다.

반면 왕혁이 펼치는 검은 남궁박의 검보다 위력은 약했으나 매우 빨랐다. 보통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속도로 움직여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의 급소를 효율적으로 공략했다.


채앵! 채앵! 채앵!


특성이 서로 다른 두 검이 부딪치기를 50여 차례. 모든 이가 숨을 죽이고 싸움을 지켜보았고 맹렬하게 싸우는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는 소리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승부가 나리라 생각하고 지켜보던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약관을 갓 넘긴 듯한 젊은 애송이가 백도의 최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그들의 가주와 대등한 승부를 펼치고 있었다.

세가의 무인들 틈에서 지켜보던 남궁제 또한 분노와 공포로 몸을 떨었다.


‘애초에 나는 저놈의 상대가 아니었구나······.’


남궁제의 꽉 쥔 주먹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용봉지회 이후 5년 동안 절치부심하여 칼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그러나 그 노력이 헛수고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놀란 것은 남궁박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덤벼드는 것이 죽기 전에 하는 마지막 발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를 금방 제압하리라 여겼던 그였다.

한편으로는 죽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를 품을 수만 있다면 남궁세가의 전력을 더 강하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검법을 남궁세가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왕혁의 검을 사이한 검으로 몰아간 것은 남궁세가였다.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자를 살려두면 장차 아들의 앞날에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터.

생각을 정리한 그는 이제 마무리를 짓기로 마음먹고 검에 최대한의 내공을 실었다.


“그만 끝을 내도록 하지.”


남궁박은 왕혁을 향해 연달아 검기를 분출했다. 그렇게 연달아 분출된 날카로운 검기가 몇 번이고 겹쳐지면서 만들어진 거대한 검벽(劍壁)이 왕혁을 덮쳤다.

왕혁은 마지막 남은 모든 내공을 검에 싣고 남궁박이 만들어낸 검벽의 중앙에 검을 박았다. 그는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검기의 벽 중앙을 찌르고 비틀며 검벽을 찢어발겼다.

그러나 찢어진 검벽에서 그를 향해 날아드는 검기의 파편들까지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모든 공력을 소진한 왕혁의 몸은 파편들에 난자당했고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털썩.


서 있을 기력조차 남지 않았던 왕혁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걸로 끝인가? 서연이는 무사히 빠져나갔겠지? 하 총관님, 부탁합니다.’


남궁박이 왕혁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는가?”


왕혁이 씁쓸한 표정을 하고 대꾸했다.


“그럼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협의를 위해, 천하만민을 위한다는 좋은 뜻을 가지고 모인 명문 정파들이 세웠다는 무림맹이 몇몇 특권을 가진 자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구려.”

“······.”

“힘을 가진 이들이 그 힘을 올바르게 쓰지 못하고 부패하게 되면 멸망의 길을 가게 마련이오. 지금의 대명국(大明國) 이전에 원(元)이 그랬고······”


내 나라 고려가 그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

왕혁이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부디 무림맹이 정신을 차리길 바랄 뿐이오.”

“충고 고맙네.”


왕혁이 힘겹게 일어나면서 말했다.


“몸이 온전한 상태에서 제대로 붙어보지 못한 게 아쉽구려.”

“나 역시 그렇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소만.”

“말하게.”


왕혁이 마지막 남은 기력을 쥐어짜며 검을 들었다.


“내가 마무리하게 해주시오.”

“그렇게 하게.”

“고맙소이다.”


왕혁은 두 손으로 움켜쥔 검을 자신의 가슴에 꽂았다. 망국의 왕자는 결국 머나먼 이국에서 자신의 일족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떠올린 사람은 그의 어린 아들, 왕운이었다.


‘자유롭게 살아라. 그리고 이런 놈들에게 지지 않도록 강해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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