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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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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무상

"어구구구..."

어머니가 화단 앞에 쪼그려 앉으시는데 절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칠십이 넘으니 어느 관절이든 성한곳이 없다. 계단을 내려 오실때도 게가 걷듯 옆으로 어기적어기적 내려오신다. 어린 승한이가 빠르게 두칸 세칸을 건너 폴짝폴짝 뛰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운동회에 엄마들 달리기 시합에 나가셔서 상품을 타오실 정도로 애살 맞으셨었다. 그런데 간단한 수직하강운동 조차 버거워하시는 모습을보니 세월이 무상타 싶다.

"이 나무 이름이 뭐죠?"

"글쎄?"

"회양목인가요?"

"아 회양목인갑다."

"화단들에 흔하더라구요. 멋도 없고 꽃도 없는데 왜들 화단마다 잔뜩 심어 놓는지 모르겠어요."

"다듬어 놓고하면 볼만해."

"아..."

당장 단정하게 이발을 하지 않은 산발머리처럼 사방에 축 늘어진 회양목을 보고서 다듬어도 크게 나아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머니는 차 뒤트렁크에 늘 싣고 다니시는 파란 김장비닐에 말라비틀어진 잡풀들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야무지게 쓸어담았다. 죽은 잔나무가지는 뚝뚝 분질러서 찔어넣었다.

"사람손이 안 닿으면 다 엉망 되는 거야. 옆집 상구 아저씨네 봐. 엉망 진창이잖아."

관심을 받고 정성을 쏟으면 무엇이든 윤기가 나고 나아지는 것이 정상이다.

"야야. 걔는 앞에 전단지가 굴러 다녀도 안줍는 사람이야. 돈만 따박따박 들어오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거지. 사실 관리를 잘해서 돈을 생각을 해야지..."

아버지 말씀을 듣고보니 전혀 틀린 말씀이 없으시다. 참으로 개미같이 성실하고 부지런하시다라는 생각이들었다. 나도 나름 애는 쓰는데 죽었다 깨어나도 아버지의 근면함에는 발뒤꿈치도 따라가기 힘들듯 싶었다.

대전에서 오는 차안에서 두분의 희끄무레한 백발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세월은 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신기루처럼 흩어진다.

오늘도 나는 부모님 앞에서 한없이 오그락지처럼 오그라들고 죄송스런 불효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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