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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별마당 도서관 앞에서...

저녁을 먹고 둘째 놈과 산책 겸 밖을 나섰다가 의도치 않게 코엑스를 들렀다.

주말에 찜질방에서 설문조사를 열심히 한 덕분에 얻은 기프티콘으로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나서는데, 아들놈이 맛이 궁금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 이거 먹어볼래."

아이들이 커피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키가 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말렸는데 기어코 맛을 보겠다는 것이었다. 고집이 제법 쎈 아이라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행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해질 것 같아서 한 번 쓴맛을 보라는 심정에서 맛을 보게 했다.

"엑!"

시럽을 넣지 않은 재떨이를 핥는 것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떫고 쓴맛이 둘째 놈의 혀를 강타한 모양이었다.


채 삼키기도 전에 뱉기부터 먼저 한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일회 용기와 트레이를 놓는 곳에 달린 음용수 꼭지에서 연신 물을 받아 마신다.

"엄청 쓰지?"

"어."

"인생도 쓰다 마."

"뭔 소리야?"

아이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커다랗게 떠있는 것이 보인다.

"별마당 도서관 가자."

내 손을 체중을 실어 강하게 잡아 이끈다.

책을 워낙 좋아하는 둘째 놈 덕에 다시 원치도 않게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창 붐빌 때에 비하면 코엑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편이었지만, 도서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낮에 비하면 은은하게 조명이 조절된 상태라 취침등 같아서 잠자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놈이 이 책 저 책 골라보며 독서삼매에 홀딱 빠져 정신없는 것이 보였다. 가자고 해도 요지부동이고, 늦었다고 엄마한테 혼난다고 해도 책을 붙잡고 꿈쩍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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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기둥 앞에 사각 나무 틀처럼 짜여있는 통에 앉았다.

바로 앞에는 'American Eagle Outfitters'라는 옷 가게가 있었는데, 시끌벅적한 음악이 가게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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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되어 있는 옷들은 후드티와 체크무늬 남방, 물 빠진 청바지, 벙거지 모자, 힙합이나 랩하는 사람들이 쓸법한 챙이 뻣뻣한 모자가 진열되어 있었다. 대충 보이는 옷들은 대체로 실용적이면서 젊은 사람들 취향의 스타일이었고, 클래식하고 정장스러운 그런 점잖은 스타일의 옷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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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왼편 쇼윈도 안에는 간판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커다란 철제로 된 독수리 모양에 파란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가게 안의 텔레비전에서는 진열된 옷들과 어울리는 뮤직비디오 따위들이 쉼 없이 재생되고 있었는데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구경하는 손님조차도 가게 안에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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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쓰고 있는 소설 스토리를 어떻게 전개할까. 어느 정도의 분량까지 써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둘째 놈이 내 손을 꼭 잡는다.

"다 봤어?"

"응."

"집에 갈까?"

"어. 그런데 책을 조금 밖에 볼 수 없어서 너무 별로였어."

"그래? 주말에 아침 일찍부터 와서 책을 오랫동안 볼까? 점심도 여기서 사 먹고?"

"좋아."

책이 좋다는 아이에게 타박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주말에 다시 별마당 도서관에 들러서 책과 친화력을 쌓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줘야겠다.

아메리칸 이글 아웃피터스 가게 세는 얼마나 될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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