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유나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연이틀 오랜 칩거를 깨고...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내게 무슨 복이 터졌는지 연이틀 약속이 잡혔다. 어제는 과거 직장 선후배들을 만났는데 내가 작년 7월에 문구점을 폐업한 사실을 연말이 되어 알게 된 그들이 서둘러 모임을 제안했고, 각자의 거처 근처에서 돌아가며 한 번씩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어제는 등 빨 좋은 동생의 집 근처인 까치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형님. 돼지갈비 죽입니다. 김치찌개 죽여줍니다."

옛 동료들이 감언이설에 기분 좋게 넘어가며, 술과 고기를 먹어가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다들 사십 대가 넘어가고 오십 대에 이르니 대화 주제가 무겁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많아 이야기의 폭이 좁아지고 점점 한정되었다. 나는 그때마다 농담으로 "글이나 써요." "글 써 봐요."라고 말하면서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환기시켰지만 대화의 방향성은 원점 회귀하듯 형상기억합금처럼 둔중한 주제로 거듭 되풀이해서 되돌아왔다.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주제가 많았다. 경제, 정치, 건강, 노후 대책이 네 가지 카테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랜 시간을 전환하고 맞물렸다. 오랜 시간 장시간 마라톤을 하듯 마시고 이야기하며 버텼지만 자정이 가까워져오자 내게도 체력의 한계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점은 모임의 주최자인 동생이 찍었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소주를 들이켜던 동생들 갑자기 온다 간 다 말도 없이 흔들흔들거리더니 푹 모로 쓰러져 잠들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백팔십에 육박하는 키에 백십여 킬로그램은 너끈히 넘어 보이는 동생을 옮길 괴력을 가진이도 없었거니와 그런 체력이 남은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좁은 마루였지만 하필 신발장 앞에 누운 탓에 베개만 머리 사이에 받쳐놓고 우리는 동생을 타넘어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와야만 했고, 넋두리처럼 혼절 비스름한 상태인 동생에게 말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타 넘고 가서 미안하다. 대신 식탁 치우고, 설거지는 해놓고 간다. 이해해다오."

전염병에 걸렸다고 해야 하나? 다음에는 인천에서 모임을 가져야 할 텐데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지 벌써부터 까마득한 생각이 든다...


댓글 2


댓글쓰기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39 내 일상 | 젊음 자체가 예쁜 거다. 19-07-10
38 내 일상 | 양치질 19-07-05
37 내 일상 | 지하철 19-06-21
36 내 일상 | 양말 *2 19-06-20
35 내 일상 | 간호사들 *4 19-06-19
34 내 일상 | 병원 풍경... 19-06-17
33 내 일상 | 19-06-15
32 내 일상 | 영화 기생충을 보고... *6 19-06-01
31 내 일상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중에서... 19-05-24
30 내 일상 | '악질 경찰'중에서... 19-05-23
29 내 일상 | 구급도장 *2 19-05-22
28 내 일상 | '중원 싹쓸이'중에서... *2 19-05-21
27 내 일상 | 재승박덕(才勝薄德) 19-05-19
26 내 일상 | 디자인의 발전 19-05-17
25 내 일상 | '경수산록'중에서... 19-05-17
24 내 일상 | '잔인하고 흉악하게'중에서... 19-05-16
23 내 일상 | 스탠바이 중인 서재 대문... 19-05-16
22 내 일상 | 나혼자 산다를 보고... 19-05-15
21 내 일상 | 삼중주차 19-05-14
20 내 일상 | 외출 19-05-09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