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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삼원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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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먼치킨 네크로맨서의 귀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대삼원.
작품등록일 :
2018.09.12 18:24
최근연재일 :
2018.10.07 17:32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28,218
추천수 :
713
글자수 :
79,320

작성
18.09.19 18:48
조회
1,359
추천
40
글자
9쪽

#2-너흰 필요없어(5)

DUMMY

#008


성 토라즈 병원. 국내에 몇 곳 없는 이계인 전문 종합병원 중 하나. 대족장 라-치크가 입원해 있는 곳도 이 성 토라즈 병원이었다.


“······여긴?”


오랜 잠에서 깨어난 라-치크는 낯선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근육들은 힘없이 축 쳐져있었고 눈에는 눈곱이 잔뜩 끼어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깡마른 손을 들어 눈을 비빈 라-치크는 그제야 자신이 병원에 있음을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기억까지 흐리기 그지없었다. 말라비틀어진 몸과 주름 가득한 얼굴. 누구도 그를 샤그람의 대족장 라-치크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몰골이었다. 하지만 그 눈만큼은 아직도 굳게 빛나고 있었다.


“606호 환자분이 링거랑, 온도조절이랑······.”


밖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라-치크는 그 소리를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몇 년 만에 마주한 햇살은 너무나도 밝아서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곧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간호사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분. 링거 갈아드릴······어?”

“좋은 아침이군.”


라-치크의 인사말에 간호사의 손에서 차트가 툭 떨어졌다. 아침햇살을 뒤로 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늙은 오크의 모습에 간호사가 복도를 지나는 의사를 향해 외쳤다.


“오, 오 선생님! 606호 환자분이 깨어나셨어요!”


*


“킁. 아버지. 정말 다행입니다.”

“라카쉬로구나. 이 아이는?”

“지영이입니다. 많이 컸죠?”

“그래. 아주 예쁘게 컸구나.”


라-치크가 지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영이 쑥스러운 듯 작게 웃었다. 귀여운 손녀의 모습에 라-치크 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들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의 삶과 부족과 세상에 대해서. 라-치크는 라카쉬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육신은 연약해졌지만 정신만큼은 날카로워져있었다. 그래서 라-치크는 라카쉬와 지영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눈치채었다.


“어째 걱정거리가 있는 표정이구나.”

“킁. 티 납니까?”

“아들의 걱정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늙지는 않았다. 나라도 괜찮으면 들어주마.”

“사실 제가 돌보아주던 아이가 있었는데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져서 말입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괜한 신경을 쓰시게 만들었군요.”

“아니. 괜찮다. 금방 일어날 거야.”


라-치크가 손을 내저었다.


“이만 가 보거라. 오랜만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더니 힘이 드는구나.”

“네. 또 찾아뵙겠습니다.”

“할아버지. 다음에 뵈요.”


라카쉬와 지영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문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닫히고 나서야 라-치크는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숨어있을 생각이시오?”

“그 꼴이 되어서도 감 하나는 날카롭군.”


병실 구석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한 명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소년을 보며 라-치크는 기시감을 느꼈다.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때. 몸은 좀 괜찮나?”

“······당신이 저주를 풀어준 것이오?”

“일단은 그렇지.”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당신 아들한테 빚이 있었다고 하지.”


라-치크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라카쉬가 돌봐준 소년이라는게 혹시······.”

“멋대로 생각해라. 이걸로 빚은 다 갚았다.”


소년이 몸을 돌려 창문턱에 발을 올렸다.


“잠깐! 이름이라도······.”


당장이라도 창문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소년의 모습에 라-치크가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하지만 기운이 없던 탓인가, 어깨를 잡으려던 손은 소년의 후드를 벗겨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후드 아래 가려진 얼굴을 알아보았다.


“······시온? 시온 폴링라이트?”

“젠장할.”

“이, 이 역병신 놈! 죽었다고 들었는데!”

“아쉽게도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지.”


라-치크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리며 치켜 올라갔다. 숨길 수 없는 분노가 그 눈에 깃들었다. 벽력과도 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 노옴!”

“이봐. 그래도 은인한테 놈은 좀 아니지 않아?”

“······설마 날 구해준게 정말 네놈이냐?”

“그렇다고 말했잖냐.”

“하. 정말로 오래 살고 볼일이군. 그 시온 폴링라이트가 날 살려줄 줄이야.”


그들은 적이었다. 서로의 동료를 셀 수도 없을 만큼 죽였다. 분노가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째서일까. 시온의 손에 동족들이 몰살당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이상하게 분노는 점점 식어갔다. 20년이라는 세월은 분노조차 무뎌지게 만든 것인가. 라-치크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좋아. 이번에는 신세를 졌구나.”

“링거막대라도 들고 덤빌 듯한 표정인데.”

“네놈 손에 죽은 아들만 셋이었으니. 아내 중 하나도 네놈의 광역주술에 당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지. 네놈을 향한 내 증오는 사라지지 않을 거다.”


쯧. 시온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아픈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그때야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학살을 자행했지만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밖에도 많은 동족들이 네놈의 손에 죽였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동족들이 말이야.”


라-치크의 얼굴에서 노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20년. 대부분 오십을 넘기지 못하는 오크에게 있어서는 정말이지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대족장 라-치크마저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나도 많은 인간들을 죽였지.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란 것쯤은 안다. 우리 모두 악마였어.”

“그래. 너도, 나도. 그때는 악마였었지.”

“피차 서로의 피로 손을 적신 처지에 과거의 은원은 밀어놓도록 하지. 샤그람의 오크들은 은혜를 갚을 줄 아니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시온은 꽤나 놀랐다. 기억 속의 라-치크는 지독할 만큼 패도적인 오크였다. 모든 문제를 피와 철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내였다. 그런데 그런 라-치크가 가족의 원수에게 손을 내밀 줄이야.


“네놈. 그런 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꽤나 약해졌군? 하지만 연합에는 입을 다물어주지.”

“그거 참 고맙군.”


시온은 진심이었다. 지금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연합이 그의 부활을 알아채는 것이었다. 시온이 부활했고 힘까지 약해진 것을 알게 된다면 연합은 당장 그를 죽이러 달려들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는 부족하겠지. 애초에 이번 일은 우리 부족 내부의 문제 때문에 생긴 거니까. 빚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두마.”

“꽤나 똑똑해졌어. 옛날 같았으면 은혜를 입었으니 고통 없이 죽여주겠다고 달려들었을 텐데.”

“클클. 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 기분이다.”


시온이 씨익 웃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럼 난 가보지. 네놈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나서 말이야.”

“킁.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나만 묻지.”

“또 뭘.”


라-치크가 시온을 바라보았다.


“너. 라카쉬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을 생각이냐?”

“알고 있잖아? 그 아저씨한테 나는 가족의 원수라는 거. 내가 죽인 놈의 가족한테 얹혀살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해.”

“시온 폴링라이트. 너는 내가 변했다고 했지.”


라-치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 목소리에는 힘이 있어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병실 전체를 울렸다. 시온은 늙은 오크에게서 전장을 호령하던 대족장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 나는 변했다. 우리 부족 대부분이 변했지. 그건 모두 라카쉬 덕분이었다. 녀석은 대단해. 내 아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

“네가 라카쉬를 조금 더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전쟁밖에 모르던 우리가 어떻게 이 사회를 살아가게 되었는지 보았으면 좋겠어.”

“하. 퍽도 재미없는 농담이로군. 역시 오크란 유머를 모른다니까.”


시온이 실소를 내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라-치크의 얼굴은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네놈도 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 사람 죽이는 재주밖에 없는 네놈이라도 이 평화로운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쳇. 그건 피차 매한가지 아닌가.”


시온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좋아. 당분간은 네 뜻대로 해주지. 하지만 라카쉬가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당장 떠날 거다.”

“그래. 그거면 됐다.”


라-치크의 클클 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온이 창턱에 발을 걸쳤다. 화려한 밤거리가, 놀랍도록 평화로운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의 인연을 뒤로하는 시온의 귓가에 라-치크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고맙다.”

“이봐. 우리 사이에 그런 건 안 어울려. 그냥 한바탕 욕설이나 쏟아내라고.”

“늙은이의 주책이라고 생각해라.”

“크크크······. 그래. 너도 늙은이가 되었군.”


휘익-! 시온의 자그마한 체구는 밤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라-치크는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고 살짝 눈을 감았다.


“세상은 변했다. 시온 폴링라이트. 너는, 인간의 영웅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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