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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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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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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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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오염

DUMMY


플레먼과 어니스트, 그리고 라이텔바흐라 불리는 헌터까지.

셋은 한 일행이 되어 혼란스러웠던 그 자리를 떠서 발걸음을 옮겼다.

헬게이트에 의해서 폐허가 된 도심 일대는 뒤에 내버려둔 채로.


본격적으로 떠나기 전 라이텔바흐가 한 가지를 지적하였다.


“잊기 전에 짚고 넘어가죠.”


“무엇을 말씀입니까?”


“아, 특별한 일은 아니고, 정결례(淨潔禮)를 거쳐야 해서 말이죠.”


정결례라고?

어니스트는 난감해하는 기색을 얼굴을 띄웠다.

마치 난생 처음 듣는 단어를 마주한다는 듯이.

당연히 낯선 단어는 아니긴 했다만 지금의 상황과 맥락에 대입이 잘 안 되었다.


“그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군.”


플레먼을 대할 때와 어니스트를 대할 때가 묘하게 다른 라이텔바흐.

전자를 향해서는 신사 대 신사로 예를 갖춘다면, 후자를 향해서는 애를 대하듯 하는 태도였다.

물론 무시한다기보다는 철부지 어린 아이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에 가까웠다.

그것이 다소 서운했는지 어니스트는 조금 주눅 든 표정이 되었다.


“하기야 호주에서는 헬게이트 발발이 적었으니 관련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했겠군요. 있더라도 어비씨언도 없고 지속적으로 남는 오염물도 적었겠죠.”


라이텔바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보듯 피식 웃었다.


“하지만 당신들이 북미나 유라시아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곤경에 처했을 겁니다.”


“저희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문제가 있는지요?”


플레먼이 약간의 우려가 섞인 어조로 물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의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라고 이해하시면 되겠군요.”


“정치적인 문제요?”


“격리 혹은 보안, 또는 보건이라는 미명 하에 당신들의 인권이 많은 부분 침탈되고 능욕되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라이텔바흐의 장난스러운 엄포에 두 사람은 긴장하여 얼굴이 빳빳이 굳었다.


“사실 헬게이트 덕에 역설적인 개선 효과가 생겼다지만, 통치자들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스템도 그러하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기본 디폴트 값인 이 시대.

이미 개인의 자유, 신에 의해 부여된 기본권이라는 개념은 삭제된 지 오래였다.

세계를 통일한 독재자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권이 항상 그래왔다.

헬게이트니 헌터니 하는 통제 불능의 요인에 의한 외압 때문에 견제를 받아 행동이 제약되었을 뿐, 그들의 태도는 항상 폭압, 압제, 무례함을 향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권자들의 태도는 그들이 구축해온 시스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전쟁 직후 발발한 다섯 차례의 팬데믹으로 인류 인구 4분의 1이 죽었던 그 시절에도 그러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을 명분 삼아 통제를 정당화했다.

실상 그 통제가 인류 보건에 도움을 준 지분은 없다시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당화는 정치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거세 당한 개처럼 정부에 고분고분 순종하였다.


보건이라는 명분으로 그간 얼마나 시민들이 수치와 모멸을 겪어왔던가.


이것은 팬데믹들의 시대가 종결되고 헬게이트가 재난의 주류가 된 지금도 동일하게 이어졌다.


헬게이트에서는 크게 세 종류의 오염력이 발생한다.

헬게이트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물리계의 분자 물질인 심연 독.

순수하게 헬게이트 너머에서 들어온 미지의 입자, 어비쓰론.

그리고 정체 불명의 파동, 흑파.


이들은 대체로 헬게이트의 영향권 안에서 힘을 발휘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들을 만든 헬게이트가 붕괴되거나 제거되면 일정 부분은 힘을 잃는다.

대체로는 자연적으로 붕괴되는 것이 일반이었다.

그리고 헬게이트로부터 멀리 옮겨지면 그 붕괴는 더욱 빨라졌다.


“오염 물질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일단 지상계의 물질이 아니다보니 통상의 물리 법칙도 적용되지 않을뿐더러, 행동의 일관성이 없다보니 그 규칙을 발견하기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라이텔바흐는 전문가답게 복잡한 뒷사정을 간략히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대체로는 헬게이트 없이는 자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흑파도, 어비쓰론도 종류가 각양각색이죠. 그리고 종류마다 안정성의 크기가, 유지되는 정도가, 그리고 인체나 생태계나 물질들에 미치는 화학적 영향력이 완전히 다릅니다.”


“알려진 패턴이나 분류법도 없단 말씀이신가요?”


“뭐, 분류를 하자면 천억 가지 정도는 족히 될 것입니다. 보통은 그런 걸 분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개체 하나하나를 새로운 카테고리로 만들어야 할 정도라면 아예 분류법을 포기하는 법이 유익일테니까요.”


여하튼 이러한 특성은 인류에게 있어서는 제법 큰 골칫거리였다.

위생학적으로, 보건학적으로 얼마나 큰 유해가 될지 모른다는 뜻이니까.

심지어 그 예후를 예측하거나 점 치는 일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주 절망적이지도 않았는데, 이는 팬데믹들에 비해서 헬게이트 부산물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이었다.

전쟁과 기근과 역병은 4분의 1을 앗아갔고, 헬게이트는 3분의 1을 앗아갔다.

그렇게 두 시리즈의 재난이 인류 인구를 반으로 줄이긴 했다만, 심연 독이나 어비쓰론이나 흑파는 아직 그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장기적으로 어떤 후유증과 여파를 낳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현재까지 드러난 부분만 보면 아주 절망적인 위해라고 보기는 애매했다.


그렇다. 말하자면 계륵과도 같은 재난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정부와 시민과의 관계에서는 정말 애매한 알력이 생겼다.

차라리 확실히 인류에게 위협이 될 재난이라면 명분이라도 될 텐데.

그렇지 못한, 그야말로 불안과 염려와 패닉의 근원이기만 할뿐인, 모호한 안개 같은 재난을 상대하려니 그야말로 그림자와 복싱을 하는 격이었다.


어쨌건 세계 정부는 그런 상황을 악랄하게 활용해왔다.

검역이라는 명분으로 헬게이트 권역 근처에 노출된 지역의 모든 것을 철저히 감시하고 자기 멋대로 여러 가지 처분을 행하였다.

사람들도, 물건들도, 건물들도 그 위생학적 처분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의 경우 기본적으로 모든 소지품을 박탈당한 채 맨몸으로 헐벗겨져 수치를 당하며 오랜 기간 감금을 당해야만 했다.

물건의 경우에는 파괴를, 건물이나 지대의 경우 폐기 처분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인권이니 뭐니 하는 개념은 그리 중요히 간주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적으로 위생을 위해 정부에서 시행되는 여러 수단들은 대체로 과학적인 근거가 부재했다.

일단 헬게이트 부산물들 자체가 자연계의 법칙을 따르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소독부터 투약까지, 거기에 각종 물리학적인 개입이 동원되었다.

빛이라던가 방사선이라던가 심지어는 극약까지도 사용되었다.


과학계도 합당한 반론을 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었다.

아니, 그 독재자의 시대 이후로 줄곧 정권의 개로 전락한 과학계였다.

그랬으니 지금도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고 비합리적인 통제를 반론할 용기조차도 내지 못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리라.


여하튼 치리자들의 각종 대처 중 얼마만큼이 유효하고 유의미한지는 미지수였다.

일각에서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고 일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헬게이트 노출자들 중에서 드물게 몇몇은 후유증을 겪었다.

패턴은 일정치 않았고 심각도도 제각기 다양했으며 잠복기도 들쭉날쭉이었다.

공중 보건 대처 중 어떤 것이 효과를 보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헬게이트 부산물의 여파로 생긴 후유증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검역 조치라고 행한 일들의 부작용인지도, 신 말고는 아무도 알 길 없었다.


이런 절망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행태가 자행되는 이 시대.

만약에 이곳이 행정력이 강력한 구대륙이었더라면 플레먼 일행처럼 직접 헬게이트에서 생환한 이들은 우스꽝스럽고 무례한 처우를 받았을 것이다.

이곳이 한지나 마찬가지인 오세아니아라는 점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지만 헌터라면 상황이 좋은 편이죠.”


라이텔바흐의 입가에 느긋함과 은근한 승리감이 섞인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어떤 헬게이트 오염물도 안티-게이팅 에너지로 분해할 수 있으니까요.”


“확실히 그렇겠군요.”


어니스트의 얼굴에도 부러워하는 표정이 걸렸다.


“아, 물론 우리라고 오염의 영향을 안 받는 건 아니야.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결례라는 과정을 따로 거치지.”


“아까는 분해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어니스트의 반문에 라이텔바흐가 피식 실소했다.


“일반인은 심연 독, 어비쓰론, 흑파로부터 육체와 정신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헌터는 달라.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대신 그 오염물들이 몸이나 몸 근처에 달라붙을 수는 있지.”


이에 플레먼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이해했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오염(汚染)과 감염(感染)은 개념이 다르다, 이 말씀이군요.”


“뭐, 정확한 비유로군요. 여하튼 우리 자신은 헬게이트 오염물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주변 사람에게 닿을 가능성은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매번 공략을 하고 나올 때마다 정결례를 치르는 편이죠.

게으른 녀석들은 귀찮아서 여러 번 공략을 하는 동안에도 안 하기도 하지만.”


사실 라이텔바흐의 뇌리는 지금 이 순간, 탐구심에 잠겨 있었다.

호기심의 대상은 바로 저 두 명의 면역자.


면역자는 기본적으로 다크포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크포스는 오염물이라기보다는 헬게이트의 기본 파장 그 자체.

그것은 자연계에 남지 않으며 오로지 인간의 신체와 정신 속에만 흡수된다.

헌터조차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오직 면역자들만은 예외이다.


그렇다면 면역자들은 세 종류의 ‘오염물’로부터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면역자는 신체적으로는 평범하다.

이번에 관찰한 결과를 보면 어비씨언들의 물리 공격에는 면역이 아닌 듯했다.

즉 오로지 다크포스의 영향에만 면제를 받는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다크포스와 어비씨언들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오염물은?


‘그 동안에는 실험적으로 입증해볼 방법이 없었지.’


일단 면역자의 수 자체가 적을뿐더러 그 발견도 쉽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 주변으로는 좀처럼 헬게이트가 나타나지 않는다.

플레먼과 어니스트가 휘말린 건 흔치 않은, 아니 사실상 처음 관찰된 일이었다.


‘오염물이 아예 안 닿으려나? 아니, 그건 아닌가?’


언뜻 감찰안으로 보면 두 사람의 몸과 옷에는 분명 어비쓰론이 묻어 있었다.

물론 헌터의 감찰안이란 게 현존 기구 가운데는 그나마 가장 정확하되 그럼에도 그 정확도가 극히 제한적인 관측기이므로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체내에는 흡수되는가? 호흡기 상피나 위장관 상피, 체표면에만 묻는 건가?’


직접 샅샅이 연구해보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안전을 위해 소독 차원에서 호흡 기관과 소화 기관 쪽으로 ‘그 약’을 뿌려 소독해줄 수는 있겠지.


‘설마 어비쓰론이나 흑파가 저들의 소지품에는 적게 유착되는 것은 아닌지?’


이것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당신들은 어쨌건 행운아로군요.”


라이텔바흐는 선심 쓰듯 말하며 손을 털어내는 시늉을 했다.


“첫째로는 그 무능한 작자들의 권력 행사가 적게 미치는 이곳에 살고 있다는 점이 행운이었고, 둘째는 대면한 상대가 이 몸이라는 점입니다.”


플레먼과 어니스트는 라이텔바흐가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원래 헌터들끼리만 독점하는 수혜이지만, 특별 혜택을 베풀죠.”


“혜택이라면?”


“굳이 세계 정부 당국의 비과학적인 검역 관리도 겪을 필요도 없이, 또 헬게이트 오염물에 대한 염려나 불안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이, 제 선에서 말끔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손에서 약품처럼 보이는 붉은 액체가 담긴 병을 꺼냈다.


“엘릭서의 일종입니다. 제가 직접 제작했고 이름은 ‘레드헤이퍼’입니다.”


“정결례라는 게 설마.”


어니스트의 짐작을 정확히 라이텔바흐가 밝혀주었다.


“사실 이름만 거창할 뿐 대단한 프로세스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몸을 씻는 행위일뿐. 다만 첨가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안도감과 함께 의문이 두 사람의 생각 속으로 섞여들었다.


라이텔바흐라는 저 사람.

뭔데 저렇게 선뜻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걸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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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정부군 대 헌터군 (2) 24.06.29 6 0 12쪽
36 정부군 대 헌터군 (1) 24.06.27 6 0 13쪽
35 뒷통수 24.06.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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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지하 던전 6층 24.06.19 7 0 13쪽
32 지하 던전 5층 (3) 24.06.17 7 0 12쪽
31 지하 던전 5층 (2) 24.06.16 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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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음모와 술수 24.06.13 5 0 16쪽
28 지하 던전 4층 (3) 24.06.12 9 0 12쪽
27 지하 던전 4층 (2) 24.06.11 5 0 13쪽
26 지하 던전 4층 (1) 24.06.10 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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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파올로 할아버지 24.06.06 8 0 12쪽
23 지하 던전 2층 (2) 24.06.05 6 0 15쪽
22 지하 던전 2층 (1) 24.06.04 5 0 12쪽
21 지하 던전 1층 24.06.03 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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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고난이도 미션 24.05.30 6 0 12쪽
18 카타콤 암호 체계 24.05.29 7 0 12쪽
17 안전 교육 24.05.27 5 0 12쪽
16 만능형 전략가 24.05.24 11 0 13쪽
15 친구 삼아도 될 이유 24.05.23 15 0 14쪽
14 티폰 학살자 24.05.22 21 0 13쪽
13 민간인 친구 24.05.21 2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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