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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객 님의 서재입니다.

금가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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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객
작품등록일 :
2008.10.10 03:18
최근연재일 :
2008.10.1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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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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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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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3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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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무적 26

DUMMY

야간 순찰이라고 해 봐야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저 거리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화재와 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담을 타넘는 도둑들과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강도들을 예방하는 정도의 일이 다였다.

동광시는 문기가 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하오배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가끔 등장하는 간덩이 부은 도둑들을 잡는 게 다였다. 살인이나 강도 같은 강력 사건은 문기의 취임 이후 단 한 건만 발생할 정도로 치안은 잘 잡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빙궁과 검각을 등에 업은 적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지라 야간 산책에 불과했다.

“흠흠, 동광로군…….”

뒷골목을 지나 동광시에서 제일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동광로가 나타나자 포두인 장 노인은 헛기침을 하며 야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동광로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그 유명한 조화원이 개원하는 날인지라 동광로에선 쉴 새 없이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여인들의 교성이 바람을 타고 들려와 가슴을 진탕시키고 있었다.

포졸들의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빨라지고 드디어 눈앞에 조화원이 나타나자 모두들 입을 헤 벌린 채 멍하니 조화원을 바라보았다. 사방에 환하게 붉을 밝힌 삼 층 누각의 창문에선 아리따운 여자들이 슬쩍슬쩍 속살이 드러나는 옷차림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우! 근무만 아니면 진짜!”

장 노인의 한탄에 적산은 어이없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 나이에 이런 데 오고 싶어요?”

“험험, 남자는 늙었어도 마음은 언제나 십 대인 법이라네. 자네도 늙어 보면 알아.”

장 노인은 다시 시선을 돌려 조화원의 아리따운 여인들을 보며 헤벌쭉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한 포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모님께 이를 겁니다.”

장 노인의 딸의 남편, 즉 사위이자 포졸에서 갓 포두로 승진한 정두만에게 장 노인은 벌컥 소리 질렀다.

“쓰읍! 사위! 내 사위를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는구만. 실로 오래간만에 안구에 영양을 좀 보충하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보기 싫은가?”

“장모님이 아시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자네는 저 천국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나?”

“흥! 전 우리 소소뿐이라구요.”

“늙어서도 그 소리 나오는가 보자.”

“그때 되면 이미 흙으로 변해 있을 텐데 어떻게 보려구요?”

“우와! 이제는 대놓고 죽으라고 악담을 하네?”

“듣기 싫으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천년만년 사시든가요.”

장 노인과 정두만의 투덕거림에 다른 이들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첫 만남부터 투덕거리던 두 사람이 사위와 장인의 관계가 된 건 정말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쩝, 그만 가죠? 아직 순찰 돌 곳도 남았는데.”

화린과 화연을 매일 보고 사느라 어느새 눈이 높아진 적산에게 조화원의 여인들은 그저 예쁘구나 하는 감상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장 노인은 두어 걸음도 채 옮기지 못하고 조화원의 건물 앞에 말뚝이라도 박힌 것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포졸들도 조화원의 화려한 건물과 아름다운 미녀들이 추파를 던지는데 가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인지라 정두만이 재촉하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적산은 지루한지 하품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다 거리를 가로지르며 길게 늘어뜨려 놓은 녹색의 띠를 발견했다.

“어라? 이건 뭐지?”

쭈그리고 앉아 집어 올려 살펴봤지만 평범한 녹색의 끈에 불과했다. 조화원의 정문 한가운데에서 길게 삐져나온 끈은 맞은편 담벼락까지 이어져 있었다.

“흐음? 뭔가 의미가 있는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적산은 일어서서 먹이를 바라는 새끼 새처럼 입을 헤 벌린 채 조화원을 구경하는 포졸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가죠?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고 근무 시간에 이러는 거 문기가 알면 난리 날 텐데요?”

적산에게서 문기의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포졸들은 흠칫 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최근 들어 문기가 많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시의 시장으로서 공과 사의 경계는 확실했다. 근무 중 한눈팔고 있는 걸 알게 된다면 당장에 달려와 호통을 칠 게 분명했다. 뭐, 호통쯤이야 눈 찔끔 감고 한번 들으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문기가 자신의 분이 풀릴 때까지 포졸들과 같이 순찰을 돈다는 점이었다.

시장이 포졸들과 같이 순찰을 돈다는 게 남들이 보기엔 아주 대단한 시장으로 보일지 모르나 당사자인 아랫사람들 입장으로선 윗사람이 붙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고역인 일이 또 없었다. 물론 적산은 예외였다. 워낙에 만만한 놈이다 보니 빙화와 검화의 남편이라도 별 실감이 없었다.

“험험, 그렇지.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니까 아쉽지만 이만 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쉬운지 연신 눈을 흘금거리는 장 노인의 모습에 적산은 피식 웃으며 한걸음을 내디뎠다. 적산의 발이 녹색 끈을 넘자마자 갑자기 ‘빠빠밤!’ 하는 축포와 함께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더니 조화원의 정문에서 수십여 명의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축하드립니다!”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 에?”

갑작스러운 일에 적산이 어리둥절해할 때 몰려나온 여인들은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꽃잎을 뿌리며 적산을 에워쌌다.

포졸들도 폭죽이 갑작스레 터지자 놀라다가 조화원에서 수십 명의 여인들이 쏟아져 나오자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레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적산이 두려움에 벌벌 떨 때 한 여인이 적산에게 다가갔다. 삼십 대 중반쯤으로 짐작되는 나이의 여인은 풍만한 몸매를 붉은색의 화려한 장미가 수놓인 비단옷으로 감싸고 눈웃음치며 말했다.

“호호, 저희 조화원의 개원 기념 특별 행사에 당첨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옵니다!”

“에?”

적산이 여전이 어리둥절해하자 여인은 적산에게 은은한 붉은빛이 감도는 배첩을 내밀며 말했다.

“저희 조화원은 이번 동광시에 지점을 낸 건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 행사로 이 녹색 선을 삼백칠십구 번째로 넘어서는 사람에게 특별 행운권을 증정하는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보통은 뒷자리수가 딱딱 끊기지 않나? 뭔가 묘하게 자세한데? 아니, 그보다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입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뽑는 거 아닌가?”

적산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든 말든 여인은 적산에게 배첩을 떠넘기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저희 조화원을 방문해 주셔서 이 배첩을 제시하시면 저희 조화원의 모든 시설을 이용하실 수 있으며 조화원 소속의 초특급 미녀들이 최선을 다해 모실 것을 약속드립니다. 물론 모든 비용은 무료입니다.”

여인의 말에 비명은 적산이 아닌 장 노인에게서 터져 나왔다.

“으아악! 말도 안 돼! 어째서 저놈이야! 야, 이 자식아! 왜 니가 먼저 간 거야! 순찰에는 포두가 선두에 선다는 거 몰라! 으아아! 이 빌어먹을 자식!”

처음에 앞으로 신분이 달라졌으니 어쩔 수 없다며 존대를 하던 장 노인은 어디 갔는지 그는 길길이 날뛰며 적산을 노려보면서 거품을 물었다. 하긴 억울할 만도 했다. 보통 순찰을 돌 때는 포두가 선두에 서고 그다음이 포졸들이다. 잡졸들은 그저 뒤에서 졸래졸래 따라만 다닐 뿐이다.

즉 적산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기다렸으면 행운의 주인공은 그렇게 조화원 조화원 노래를 부르는 장 노인이 될 뻔했던 것이다.

나이도 잊은 채 쌩 난리를 치는 장 노인을 바라보며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인 적산은 여인에게서 받은 배첩을 장 노인에게 내밀었다.

“그럼 나 대신 가요. 나야 뭐 어차피 우리 마누라 무서워서라도 이런 덴 못 가니까.”

“오오! 정말인가!”

노망난 것처럼 날뛰던 장 노인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오며 감격 어린 눈으로 적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적산에게 배첩을 건넸던 여인이 나서며 말했다.

“죄송하오나 배첩은 행사에 당첨된 본인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장 노인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어 갔고 눈에선 닭똥만 한 눈물이 맺혔다. 다 늙은 노인네가 눈물을 글썽이는 것처럼 꼴사나운 것도 없는지라 적산이 난감해할 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당첨자와 함께라면 함께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럼 기쁜 마음으로 왕림하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여인들은 순식간에 바구니에 남은 꽃잎을 죄다 뿌리고는 깔깔거리면서 사라졌다. 여인의 말을 들은 장 노인의 표정이 전투에 임하는 장수처럼 변하며 적산을 노려보았다.

“금가장주! 내 평소부터 장주를 존경하고 있었소이다! 우리 함께 풍류를 논하며 밤을 지새우는 게 어떻소!”

“저기…… 난 마누라 때문에…….”

“장주!”

마치 주군에게 목숨을 걸고 충언을 고하는 충신 같은 표정과 태도에 적산은 난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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