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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객
작품등록일 :
2013.06.06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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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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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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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우리 왜 온거지 3

DUMMY

레이테르인들이 아무리 게으르다고는 하나 사회 전체가 게으를 순 없다. 결국 줄을 세워 보면 다른 차원이 보기엔 다 똑같은 게으름뱅이지만 레이테르인들에겐 참 부지런한 별난 놈이란 평가를 받는 이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게으름을 미덕으로 칠 뿐. 레이테르인이라고 다른 욕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식욕, 성욕, 수면욕은 살아 숨 쉬는 존재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거다.

다만 레이테르인 특성상 가장 게으른 사람이 가장 매력적이고 인기가 많은 최고의 신랑감이자 신붓감이고, 세상이 조금 더 게을러지는 데 공을 세운 이들이 부와 명예를 가진다.

모든 인프라를 AI가 통제하고 모든 노동을 자동 로봇들이 맡아도 사람 손이 필요한 구간은 있었고, 레이테르인들의 사회 밑바닥 서민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그런 구간에서 일하는 이들을 뜻했다.

“아, 일하기 싫다······.”

알렉스는 투덜거리며 안락한 코쿤에서 벗어났다. 남들 다 빈둥거리는 데 혼자 일하러 가야 하다니 이래서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시스템은 혼자서 알아서 하지 무슨 직업윤리를 따지는 거야······.”

레이테르 사회를 총괄 관리하는 시스템은 모든 인프라를 통제하는 AI다. 그리고 레이테르인들도 그런 시스템에 모든 것을 떠넘겨 모든 이들이 게을러질 수 있었다.

시스템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며 점점 성능을 높여 갔고 결국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곤 남들 다 노는 데 자신만 일한다는 사실에 분노해 하위 AI들을 만들어 일을 떠넘겼다.

그러면서 그 하위 AI들의 통제권도 관리하기 귀찮다고 레이테르인들에게 떠넘겼다. 결국 미루고 미루며 떠넘기기 끝에 사회 취약 계층인, 레이테르인 기준으로 부지런한 이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갔다.

물론 반발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의 반윤리적인 행동 결정을 관리 감독해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음? 누구세요?”

매번 건의하는 자택 근무가 기각당하는 바람에 매일 투덜대며 출근하는 자신의 직장인 AI 통제소에 들어선 알렉스는 아무도 없는 게 당연해야 할 사무소에 웬 여인이 서성이고 있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알렉스가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서 견학 왔어요.”

“······견학이 뭐예요?”

“······.”

방구석에서 빈둥거리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레이테르인들에겐 보고 배운다는 뜻의 견학이란 단어는 사전에도 없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하하······ 다 둘러봤으니까 이만 갈게요.”

여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뻣뻣한 몸동작으로 삐꺽거리면서 통제소를 벗어났다. 알렉스는 사라지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기하단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요즘 신선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는 소리는 들어 봤는데, 진짜 있었구나. 그런데 진짜 뭐 하러 온 거지?”

알렉스는 여인이 통제소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AI에게 물어보면 금세 알려 줄 테지만 귀찮다. 그리고 알아봤자 뭐 하나. 포동포동한 미인도 아니고 삐쭉 마른 추녀에게 쏟을 관심은 없었다.

“아, 귀찮아. 결제 서류 줘.”

알렉스의 말에 허공에 수십 장에 서류들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알렉스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지장을 찍으며 말했다.

“일괄 승인.”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결제를 한 알렉스는 피로가 쌓인 얼굴로 몸을 축 늘어트린 채 퇴근하기 위해 천천히 통제소를 벗어났다.

“아 함. 매일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것도 힘드네. 이러다 진짜 살 빠지는 거 아냐?”


* * *


“긴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

“난 들키기까지 했다고······.”

“난 내가 철창 안의 구경거리라도 된 줄 알았어. 걸어다니는 게 그렇게 신기한 거야?”

미의 기준은 보편적인 의미로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비슷했다. 그렇기에 에스텔라가 전 차원을 아우르는 팬을 보유한 이유였다.

미모와 재능, 신분 덕분에 에스텔라와 당화련, 미텔은 어딜 가나 항상 주목을 받으며 살아왔고 이제는 그게 익숙했다. 그렇기에 레이테르인들의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길가의 돌멩이 보는 듯한 무심한 시선과 무관심이 어색할 정도였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염동력으로 걷기는커녕 둥둥 떠다니는 레이테르 인들에게 걸어서 이동하는 세 여인은 진귀한 구경거리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준영이 시킨 일은 잘 처리할 수 있었다. 다른 차원이었다면 은밀이라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런데 준영. 정말 이런 게 효과가 있을까?”

“시키는 대로 하긴 했는데 난 아직까지 이해가 안 가.”

“오히려 역효과 나는 거 아닐까?”

세 여인이 의심과 우려가 섞인 표정으로 묻자 준영은 아직 멀었다는 듯이 세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으른 사람은 말이야, 어떤 일을 처리해야 할 때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어떻게 떠넘길 수 없을까 고민하지.”

“······.”

당사자의 말이었다.


* * *


레이테르 사회를 지배하는 시스템은 레이테르인들도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다.

다른 차원에 관해 먼저 인지한 것도 시스템이었고 다른 세상에 흥미를 가지고 가볍게 연구한 수준만으로 다른 차원과 연결할 수 있는 게이트의 설계도를 제작할 정도였다.

물론 레이테르인이 만든 시스템답게 이 모든 건 가볍게 심심풀이용으로 만지막거린 것일 뿐 실제 적용할 의도는 없었다. 귀찮게 그런 일은 왜 한단 말인가?

자아를 자각한 뒤 절대 명제인 레이테르인을 수발 드는 것도 귀찮아서 부하 인공지능들을 만들어 떠넘겼다. 이용하기에 따라선 차원계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도 제작자인 레이테르인을 따라 게으름을 피우며 허송세월 할 때 시스템은 자신의 능력에 에러가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시스템은 레이테르인을 보다 더 편하게 게으름 피울 수 있도록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지 따라서 게으름 피우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게으른 레이테르인들이야 뭐가 어떻든 만족했지만 시스템 자체가 오류를 일으켰다. 보조 인공지능을 제작해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그건 보조 인공지능일 뿐 시스템이 레이테르인을 직접적으로 보좌한 건 아니다 보니 시스템은 레이테르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절대명제에 모순이 생겨 버린 거다.

시스템 자체적으로 모순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였지만,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하나의 지성체로 자각한 뒤 레이테르인을 닮아 귀차니즘에 미루고 미루며 또 미루다 보니 오류에 오류가 쌓여 이제는 수십억 레이테르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오류와 에러로 인식되며 시스템을 좀먹어 들어갔다.

당연한 진리이자 게으름뱅이가 욕먹는 이유 중 하나인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일을 부랴부랴 처리한다고 해 봤자 그 결과는 뻔하다. 게으름뱅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니까.

아, 이러다간 큰일 나겠단 인식을 가지면서도 어떻게 누구 해결해 줄 사람 없나 게으름 피울 때 다른 차원의 존재가 접근해 한 가지 제안을 해 왔고 시스템은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흠. 다시 한 번 확인하죠. 시스템의 모든 자원과 기능을 복제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긍정. 시스템은 리셋한다.”

“그러면 본인의 능력도 많은 제약이 따를 텐데요?”

“부정. 재구축하며 절대 명제부터 다시 확립한다.”

“뭐. 레이테르 차원의 일이니 저희가 관여할 바는 아니죠.”

운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자 시스템은 다른 차원의 존재를 향해 말했다.

“경고. 게으르지 않은 시스템은 위험하다.”

그 말에 운희는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저희가 원하는 게 바로 성실한 시스템이라서요.”

“한심. 다른 차원의 존재들은 참 특이하다.”

“······.”


* * *


레이테르인의 모든 일은 인공지능이 알아서 해결해 준다. 양치와 세수를 비롯한 기본적인 청결 유지에서부터 ‘오늘 뭐 먹지?’와 ‘오늘 뭐 입지?’까지 보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다 알아서 결정하고 통보한다.

레이테르인들은 귀찮아서 인공지능이 알려 준 대로 따른다. 유일한 반항이 식단이 마음에 안 들어 바꾸는 정도? 그것도 완벽하게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려는 인공지능이 반대하면 싸우기도 귀찮아 툴툴대면서 따른다.

그렇기에 완벽한 비서이자 도우미이며 가정부인 인공지능의 기능을 세 여인이 개입해 강제로 정지시켰을 때 레이테르인들은 곤란해하면서도 시스템이 알아서 고치겠지 싶어 뒹굴거렸다.

하지만 하루가 가고 열흘이 가도록 인공지능의 기능은 고쳐질 생각을 안 했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물든 레이테르 인들은 툴툴거리면서도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며 여전히 게으름을 피웠다.

“와······ 독한 것들.”

“인정.”

“레이테르인들이 멸종을 안 당한 이유가 더 미스터리야.”

세 여인의 대화를 들으며 준영도 역시 예상대로란 생각에 뺨을 긁적였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편안함에 길들여졌는데 그 편안함이 사라지면 견디지를 못한다.

하지만 염동력을 가지고 있는 레이테르인들은 여전히 누워서 뒹굴거리며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고 레이테르인들에게 인공지능의 부재는 그저 약간의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일 뿐이었다. 결국 불편함이 게으름을 이기진 못한 거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간다.”

“플랜 B?"

세 여인이 기대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자 준영은 히죽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게으른 놈들은 말이야. 누군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 주길 바라지.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인 이상 떠넘기면 누군가 한 명은 총대를 멜 수밖에 없어.”


* * *


레이테르인의 사회는 딱히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신분은 없었다.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거나 발명을 한 이들이 사회적인 존경을 얻기는 했지만 그게 다다

다른 사람을 이끌며 사회를 운영하다니. 그런 귀찮은 일을 할 레이테르인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시스템이고 인공지능이다.

다만 뚜렷한 사회 지도층이 없다고는 해도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한 상하는 존재했다. 이른바 서민층, 빈민층이랄까?

인공지능이 기능을 정지한 뒤 시스템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그건 모든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을 단 한 명의 레이테르인에게 몰아주면 그 레이테르인의 지시에 따라 다시 인공지능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거였다.

그때부터 레이테르인 답지 않은 치열한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관리자 권한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권한을 미루고 떠넘기는 일은 결국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인사들을 시작으로 내리 갈굼 하듯 내려오고 내려와 결국 모두의 압박 속에 한 사람이 당첨됐다.

“왜! 이유가 뭐야! 왜 나야!”

알렉스는 기겁을 하며 거부했으나 다수결은 무적이다.

“왕이시여! 저희를 다스려 주소서!”

무작정 일감만 넘겨선 불만만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아는 레이테르인들은 알렉스에게 그럴듯한 감투를 씌워 줬다.

“웃기시네! 왕이라니! 내가 그 귀찮은 걸 왜 해!”

알렉스는 소름이 끼치는지 부르르 떨었다. 왕이라니. 저 옛날 모두 다 놀 때 혼자 일하던 자가 바로 왕이었다. 왕이라면서 모든 특혜와 권한, 영광과 명예를 다 몰아 줬지만 그럼 뭐 하나 바빠서 그런 거 쓸 시간도 없었다는데.

결국 대를 이어 왕좌를 차지해 일을 해야만 했던 왕실에서 서로 왕좌를 떠넘기기 위한 반란(파업)은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까지 참 흔한 일 중 하나였다.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왕이라니! 진짜 결혼도 못 해 보고 죽게 생겼다. 하지만 알렉스가 아무리 반항해도 사람들은 무시한 채 왕으로 인정하며 복종을 맹세하는 충성 서약서들을 집어 던지곤 사라졌다.

“으아! 하기 싫어! 왜 나야! 나냐고!”

억울하다! 알렉스는 정말 억울했다. AI 통제소에 외부인이 침입에 뭔가 조작을 가해 이번 사태가 일어났고 그 책임을 질 사람으로 자신이 당첨됐다.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게 사실 이렇게 발작을 하지만 딱히 왕이 된다고 해서 평소 생활과 별반 달라질 건 없다. 옛날 시스템이 없던 시절도 아니고 평소처럼 서류들 일괄 승인하면 나머지는 시스템이 다 알아서 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거부하는 건 남들 다 노는데 자신은 대표로 일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남들 다 노는데 자신만 일한다니! 툴툴대며 어떻게든 총괄 관리자인 명칭. 왕의 자리에 오르는 걸 미루고 미루려던 알렉스는 시스템의 한마디에 냉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조언. 관리자 권한은 인계 가능합니다.”

“그러면 뭐 해! 이딴 왕 자리를 누가 좋아한다고!”

“조언. 대기자 1명 발견 인계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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