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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취몽객
작품등록일 :
2013.06.06 06:25
최근연재일 :
2018.03.1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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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8.02.0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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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첫 임무

DUMMY

“오오. 이거 좀 쩌는 듯.”

평소 게으름 가득하던 준영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주위를 둘러보고 팔다리를 매만지고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면서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어때요? 알파 테스트 때랑은 다르죠?”

“응. 이거 진짜 같은데?”

양손으로 자기 볼을 쭉쭉 늘리던 준영의 감상에 운희는 엣헴 하며 양손을 허리에 얹고 코를 세웠다.

“그야 당연히 진짜니까 그렇죠.”

“우리는 복제가 안 된다고 그러지 않았어?”

“이건 클론이랑은 달라요. 자신이 가진 차원의 힘을 일부 소모시켜 이곳 차원의 법칙에 맞게 재구성시킨 신체거든요. 더 자세히 설명드릴 수는 있지만 전문 용어가 난무해요.”

그 말에 딱 관심을 끊은 준영은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운희를 바라보았다.

“넌 왜 요정이야?”

은빛 별가루가 떨어지는 두 장의 날개를 가진 작달만한 크기의 요정은, 준영의 말에 신나게 준영의 주위를 뾰로롱 날아다니며 말했다.

“튜토리얼 안내역을 요정이 맡기로 했잖아요. 그래서 저도 요정으로 변신해 봤답니다. 어때요? 어울리죠?”

뭔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들은 거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던 준영은 아무렴 어떠랴 싶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안 보이네?”

“그러게요. 다들 어디 갔지? 보나 마나 신기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나 봐요. 알아서 찾아오겠죠. 우리도 구경 가요.”

“나중에 가자. 이 몸으로 자면 시원하게 잘 수 있을 거 같아.”

“엥?”

운희가 당황한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볼 때 준영은 어디 쉴만한 곳이 없나 둘러보다 소로길 한쪽에 우뚝 서 있는 나무가 제공하는 시원한 그늘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좀 자면 되겠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럴 리 없는데? 잠깐만요. 오빠, 잠깐만!”

준영은 운희의 당황 섞인 외침을 자장가 삼아 양반다리를 한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 *


세상은 오랜 전란에 휩싸여 있었다. 이른바 100년 전쟁이라 칭하는 대륙을 지배하는 웨스테와 이스턴. 이 두 제국 간의 전쟁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격렬해지기만 했다.

제국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다시 마물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지만 위정자들은 오직 한줌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만 열중했다.

가혹한 세금과 기아, 죽음의 공포에 허덕이며 사람들은 구원을 바랐고, 응답받았다.

웨스테 제국의 가난한 남작가의 장녀로 태어났으나 강렬한 카리스마와 행동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웨스테 제국을 전복시키고 공화국의 시대를 연 총통 마드리드.

이스턴 제국의 제7황녀로 황위 계승권에서 가장 먼 위치였으나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옥좌에 오른 뒤 각지의 반란을 종식시킨 후 웨스테 제국과의 종전을 선포한 공포의 여제 알리아나.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고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의술과 약학을 전파해 성녀라 칭송받으며 따르는 이들만 모아도 나라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이름이 높은 성녀 큐이레.

대륙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세 여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훗날 운명의 1시간이라 불리게 될 세 여인의 극비 회담에 세상의 모든 시선이 쏠린 가운데 세 여인을 따라온 수행원들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 침묵을 유지하며 힐끗힐끗 세 여인이 모인 회담장을 훔쳐보았다.

저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앞으로 대륙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흘러나온 대화 한 줄기 들을 수 없을까 싶어 귀를 기울였지만 철저히 차단된 문 안쪽엔 인기척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어떤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어떤 조약을 만들려나 싶어 사람들이 저마다의 예측을 내놓으며 논의할 때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세 여인은 이런 대륙의 운명 따윈 관심 없었다.

“흠······ 이게 몇 년 만이지?”

“대충 한 3~4년 걸렸나?”

“더럽게 오래도 걸렸네.”

미텔이 투덜거리자 에스텔라와 당화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공포의 여제? 남자들한테만 그런 거 아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진한 얼굴로 잘도 죽여 대더라? 하긴 지금 생긴 건 순진무구랑은 거리가 멀지?”

그 말에 미텔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지들은! 뭐 총통? 밥통이겠지. 그리고 성녀? 웃기시네. 피부 갈았다고 못 알아볼 거 같아? 너 매부리코 보니까 마녀였지?”

미텔의 말에 에스텔라와 당화련도 발끈하며 소리쳤다.

“누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줄 알아! 물만 마셔도 살찐다고! 내가! 이 내가! 뚱땡이라니!”

“내가 처음에 이거 고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니들 마을에서 날아오는 돌멩이 맞아 봤어?”

고함을 꽥꽥 질러 대며 악을 썼지만 결국 결론은 마이너스 그룹 영업부장 운희는 죽일 년이라는 공통된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분명 우리가 뒤통수 맞은 거야.”

“어쩐지 순순히 우릴 끼워 주더라니 상공에게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여 주라고!”

“지금쯤 준영 씨랑 놀고 있을 게 분명해!”

한참을 씩씩거리며 운희를 씹어 대던 세 여인은 일단 공통의 적 앞에 단결하는 데 합의했다.

“좋아.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단 준영을 찾는 거야.”

수행원들이 들었다면 피눈물을 흘릴 만한 내용이지만 당화련과 미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야, 지도 가져와!”

에스텔라가 벌컥 회담장의 문을 열고 소리치자 깜짝 놀란 수행원들이 분분히 움직여 대륙의 모든 지도를 가져왔고, 곧 총통과 공포의 여제가 서로의 세력권을 확정지을 협상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 여인은 테이블에 죽 깔린 대륙전도를 심각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공화국엔 준영이 없어.”

“그걸 어떻게 장담해?”

에스텔라가 지도의 절반을 펜으로 죽죽 그으며 말하자 당화련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따졌고 에스텔라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공화국의 모토가 괜히 성실, 근면인 줄 알아? 내가 게으름을 죄악으로 여기도록 여론 조작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면 놀랄 거다.”

“제국도 마찬가지야. 국민 총동원령 내리면서 황족도 일하게 만들고 게으른 자는 전부 잡아들여 조사했지만 못 찾았어.”

미텔이 제국의 영역을 죽죽 그으며 말하나 대륙 전도에 남은 부분은 양 제국이 충돌하던 국경선만 남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대륙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소문을 수집했지만 비슷한 단서조차 못 찾았어.”

세 여인은 팔짱을 낀 채 지도를 노려보았다. 아직 차원의 힘에서 파생된 일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 초기 차원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다수의 힘을 빌리기 위해 권력을 차지했다.

이 세상을 움직일 힘만 차지하면 준영을 찾기란 쉬운 일이다. 게으르단 특징에 특히 여우 같은 운희 고년이 준영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뒤져 봐도 준영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고 더 넓은 지역을 수색하기 위해 더 큰 권력을 원하다 보니 어느새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의 주인이 돼 버렸다.

“확실히 이상해. 숨길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운희 고년이 얼마나 여우짓을 하건 준영이 휘둘릴 거 같지는 않단 말이야.”

에스텔라가 두툼한 턱살을 문지르며 중얼거리자 당화련과 미텔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년은 분명 상공을 꼬실려고 경국지색의 여인으로 예쁘게 단장했을 거야. 그런데 누구 그런 미녀에 대한 소문 들어 본 적 있어?”

“확실히 이곳의 미의식은 우리랑 비슷해. 그러니까 그년이 우리를 이 꼴로 만들었지.”

뿌드득!

세 여인은 동시에 분노를 곱씹었다.

에스텔라는 진짜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특수 체질로 모든 부분이 볼록했다.

당화련은 매부리코에 끔찍한 피부, 굽은 허리의 마녀 하면 떠오르는 고전 이미지 그대로였다.

미텔은 쭉 찢어진 눈에 들창코, 언청이에 주걱턱까지. 얼굴과 관련된 모든 외모 콤플렉스가 다 모여 있었다.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외모 지상주의는 여기도 똑같아서 초반엔 이가 갈릴 정도였다. 거창하거나 고귀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준영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만 가지고 지금의 결과를 이뤄 냈으니 능력 하나만은 인정할 만 했다. 물론 그런다고 고생한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제 와서 직접 찾겠다고 나설 수도 없고······.”

“그랬다간 다시 전쟁터로 변할걸?”

“어쩌면 이걸 노린 걸 수도 있어.”

이곳의 권력 따윈 동전 한 푼의 가치도 없기에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야 막 평화가 다가오고 있는데, 여기서 이 세상을 장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세 여인이 사라져 버리면 세상은 다시 전쟁터로 변해 버린다.

“아니, 그보다 우리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설마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 된다 그런 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 나 이제 한계야. 여기 계속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거 같아.”

“나 이거 반드시 마이너스 그룹 본사에다가 컴플레인 걸 거야.”

준영을 찾기 위한 일념으로 달려왔는데 단서도, 흔적도 찾을 수 없자 분노 뒤에 설움이 몰려왔다. 내가 이러려고 준영을 따라왔나 하는 자괴감과 자신을 찾지 않는 준영에 대한 서러움에 기분이 울적해지기까지 했다.

“기생체를 다 제거하면 끝나려나?”

“그보다 다시 전쟁하는 건 어때?”

“아예 세상이 망하게 만드는 거야. 기생체가 차원을 점령하면 튀어나오겠지.”

어둠의 길로 빠지려는 세 여인에 의해 남자 하나 찾겠다고 차원 하나가 멸망하기 직전 차원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할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테이블에 깔린 대륙 전도 한가운데서 솟구쳐 오른 빛무리에 놀라는 것도 잠시 모습을 드러낸 작은 사이즈에 요정의 날개가 달린 운희의 모습에 세 여인이 그간의 분노를 담아 달려들었다.

“······요정?”

“이 썩을 년!”

“저거 저거 여우같은 그년 맞지? 너 죽었어!”

홀로그램처럼 형체가 없는 운희는 세 여인의 거친 마수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고 천천히 눈 뒤집힌 세 여인을 바라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살려 줘······.”

그 말을 끝으로 운희의 모습이 사라지고 정신이 돌아온 세 여인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지? 위기 상황인가?”

“그게 가능해? 그보다 상공은?”

“설마! 준영 씨가 잡혀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준영을 잡아서 뭐 하게?”

“그건 그런데······ 도움을 요청할 정도면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닐까?”

“에잇! 이럴 때가 아냐! 일단 가 보자!”


* * *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 처음으로 새어 나온 소리가 세 여인의 화가 난 음성들이었다. 수행원들이 바짝 긴장한 채 회담장만 주시할 때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온 세 여인은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을 요구했다.

세 여인은 거추장스러운 수행원들을 이끌고 갈 생각이 없었지만, 끔찍할 정도로 열악한 도로 사정과 이동 수단, 그리고 허약한 신체 능력이 발목을 잡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헉헉대는 에스텔라와 삭신이 쑤시는 당화련, 균형 감각이 엉망으로 변한 미텔이 말을 타고 질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마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을 장악한 절대자 세 명이 굳은 표정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수행원들도 따라붙는다. 그것만 해도 대규모 무리다. 거기에 충성 경쟁이 일어나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지레 짐작으로 바리바리 병력을 이끌고 합류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거 어째 일이 커지는데?”

에스텔라는 마차의 창문을 열고 힐끗 주변을 바라보고는 골치 아프다는 듯 끙 하는 신음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권력자의 총애를 바라며 알아서 기는 건 인간의 특징 중 하나다.

거기에 같은 소속끼리의 경쟁은 물론이고 상대편과의 비교까지 해 버리니 저놈들보다 못할 순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어느새 세 여인은 연합군을 이끌고 이동하는 꼴이 돼 버렸다.

“가란다고 갈 리도 없고······.”

“저러다 다 죽어 나가면 잠자리가 불편한데······.”

준영을 찾으러 가는 거야 상관없지만 운희가 구원 요청을 보낸 이상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위험을 극복하는 데 이곳 차원의 군대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발목만 잡을 뿐이다.

“정체모를 누군가보다 우리 손에 죽어 나갈 확률이 더 높다는 게 문제지.”

에스텔라의 심각한 어조에 당화련과 미텔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첩보에 의하면 벌써 이 행렬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라든가 마물이라 부르는 차원 기생체를 전멸시키기 위한 원정군, 이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 모종의 세력을 처단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음모론 까지 별의별 소문이 다 퍼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소문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며 전설로 남을 이 위대한 행렬에 한 손이라도 보태겠다고 모여든다는 점이었다. 훈련받은 군대는 물론 용병과 사냥꾼, 경비대에 은혜를 갚겠다며 나선 일반인들까지.

‘어라?’ 하는 사이 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이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 결국 이 행렬의 목적이 남자 하나 구하기 위한 거였다는 게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따라온 사람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핵심 세력이야 심정이 어떻든 간에 일단 세 여인을 따를 테지만 차원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쪽수는 절대무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에스텔라와 당화련, 미텔에게 단 한 푼의 위협거리도 못된다.

안 써서 그렇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차원의 힘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다만 영향을 최소화해 볼 거라고 신체적 페널티를 가지고 지금까지 고생을 해 왔는데, 이제 와서 써 버리면 그간의 고생이 너무 허무할 거 같아 그걸 걱정할 뿐이었다.

“아 몰라! 운희 그년이 알아서 하겠지!”

“하긴. 뒷일까지 우리가 챙겨줘야 하는 건 아니니까.”

“여기서 더 발목 잡히면 앞으로 후계 문제까지 더해서 머리 아파질 게 뻔해.”

이것도 아마 운희의 큰 그림일 터였다. 운희 고년이 준영과 알콩 달콩 돌아다닐 동안 당장의 세력 판도와 분쟁, 후계 문제까지 발목을 잡아 준영의 곁에는 얼씬도 못 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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