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노력 했는데도 겨우겨우 인서울이나 하고 말이야.
다른 것에도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이 살아야 했다.
“인생 한 번이라도 노력 없이 성공하고 싶다.”
인생 진짜 우울한 건 하루종일 책상에만 앉아서 공부하느라 주변에 남는 친구도 없었다.
취직도 안되길래 공무원 준비를 했다.
처음보는 시험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지!
“재현 형, 합격 축하해요.”
“이거 다 운빨이지. 너도 다음번에는 합격해라.”
“에이··· 점수 턱걸이도 못 했는데, 그냥 삼수다 생각하고 공부하려고.”
“야. 내가 너처럼 공부했으면 9급이 아니라 7급 합격이다.”
뭐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사실 너 7급 시험 쳤는데 쪽팔려서 말 못하는 거지?”
“재현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니, 쟤처럼 공부했는데 9급 합격도 못하는 게 말이 되냐.”
“우리 시험 끝난 기념으로 모인거지, 스트레스 받으러 온 거 아니다.”
그래, 지는 아주 술 처먹고 놀면서 합격했다 이거냐.
시험 끝난 기념으로 나왔는데 기분만 더럽네.
누가 보면 자기 축하파티인 줄 알겠어.
“형, 나 간다.”
“에이··· 용완아. 그러지 말고 한 잔 들어.”
“됐어.”
애초에 민수 형은 자기들끼리 노는 자리에 나는 왜 부른거야?
“어휴··· 저러니깐 친구도 없고 합격도 못하고···”
“뭐라 했냐.”
“어쭈? 이젠 형도 안 붙이네. 아주 막 나간다?”
“지금 하는 말이 싸우자는 거 아냐?
“좋은 술자리에 싸움은 무슨, 재현이가 평소 말투가 좀 세잖아.”
“민수 너는 언제까지 저 놈 챙길거야?”
“야야, 아무래도 안되겠다. 용완이 너는 나중에 나랑 같이 마시자. 재현이 얘가 첫잔부터 취했나보다.”
민수 형이 있으니까 봐주지 아니었으면 이렇게 안 끝났을 거야. 안 그래도 거지 같은데 이딴 개 같은 상황으로 만들어서 기분만 더럽잖아.
“하. 찌질한 새끼. 꼬리 말고 깨갱하면서 집 가는 거 봐라”
참기는 무슨 이렇게 계속 참기만 해도 병이야.
너죽고 나 죽는 거다.
개호로새끼야.
이거 놔!
한 대만 때리자.
민수 형, 이것 좀 놔봐. 한 대만 때리자니깐.
이거! 놓으라고!
쟤가 먼저 쳤으니깐 이젠 정당방위야!
나도 한 대만 때려보자!
근데 씨발!
한 대도 못 치고 얻어 맞기만 하고!
쌍코피 줄줄 흘리면서 눈탱이 밤탱이 되면서!
저 새끼가 치사하게 눈부터 때려서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현상인거야!
이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눈물이라고!
공부머리라도 없으면 몸이라도 잘 쓰게 해줘야지.
싸움에도 재능이 없으면 어떻하자는 거야.
억울해서 못살겠다.
인생에 희망이라고는 보이지가 않아.
한 대라도 쳤으면 말을 안해.
합의는 무슨 합의야.
일방적으로 개쳐맞았는데.
경찰이 일 대충하는 거 봐.
이래서 공무원 시험에 인성평가도 넣어야 한다니깐.
그래야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지.
나 때린 저런 인성 박살난 놈도 불합격하지.
“지금 이렇게 망한 인생. 리셋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 대가리 잘 돌아가서 공부 걱정도 안하고 몸 좋고 얼굴도 잘 생겨서 어디가서 안 꿀리는 인생 맛이라도 보고싶다.”
[시스템 로딩 중···]
“눈이 맛이 가긴 갔다. 막 헛게 보이고.”
[시스템 로딩 완료.]
“형. 형도 저거 보여?”
“용완아. 취했다. 집 들어가자.”
“아닌데, 나 안 취했는데. 아직 취하려면 멀었어.”
“그래그래. 들어가자.”
“아직 안 취했다니깐. 근데 이상한 게 눈 앞에서 안 사라져.”
[희망 사항을 말씀해 주세요.]
“저것 좀 들어봐. 저게 말도 하네. 내 인생 같은 거 다시 시켜준데.”
“이미 니 인생도 충분히 부럽다.”
“공무원 준비만 하다가 끝날 거 같은 인생이?”
“그거 말고. 건물주 인생이.”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잖아.
내 주변 친척들을 보면 막 의사되고 대기업 취업하는 데.
나만 그거 건물 하나로 근근히 먹고 살잖아.
부모님 없이는 못 사는 인생이잖아, 이거.
“너가 아직 세상을 모르는거야.”
“세상까지 모르네. 내가 대체 아는 게 뭘까?”
[상태창 점검 중···]
[다시 시작하려는 뇌와 용량이 달라 일부 삭제가 필요합니다.]
“내 머리에 든 게 뭐가 있다고. 삭제를 한다고 그래?”
“용완아, 여기서 자학하고 있지 말고. 집 가서 푹 자기나 해.”
“택시!”
[다음과 같이 추천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0~ 13 살, 20~ 25 살]
[13~ 20 살, 25~ 27 살]
[어느 기억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뭐야. 저 두 기억이 같은 용량이라는 거야?
“얘네 집으로 가주세요. 용완아, 집 주소 불러.”
“어떤 걸로 골라야지?”
“고르긴 뭘 골라. 신분증 줘봐.”
삭제 한다면···
“지긋지긋한 공부 기억이나 지울까?”
그거 가지고 있는다고 해도 내 인생이 크게 바뀔 거 같지 않아.
아니, 다시 시작한다면 지금까지 공부한 건 남겨야지.
내 머리 용량이 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아직도 그 소리야? 다음 시험은 붙을 거야. 너무 그러진 말자.”
“형은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당연하지. 너처럼 공부하면 안되는 게 이상하지. 어서 들어가.”
형···
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는데 대학도 취업도 안된거야.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공부한 건 남겨두고 시작하는 편이 좋겠지?
[주어진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선택지를 드릴까요?]
“학생, 신분증에 적힌 주소가 맞지? 중간에 이사간 적은?”
“아니, 나는 첫 번째를 선택하겠어.”
“술 취해서 말이 꼬이나 보구만. 그럼 이렇게 간다.”
[말씀하신 첫 번째가 0~ 13 살, 20~ 25 살이 맞습니까?]
“네. 맞아요.”
“학생, 이쪽으로 돌아가는 거 맞지?”
[선택을 완료하였습니다. 인생 리셋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네. 돌아가고 싶어요. 다시 살고 싶어요.”
“거, 참. 대차게 취했구먼. 53600원 인데, 100원은 깍아줄 게.”
[재부팅을 시작합니다.]
[눈이 부실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추억이 사라지겠지만, 그런 것쯤이야.
지긋지긋한 공부, 이젠 공부 안하고도 대학 붙겠지.
그 시간에 공부 때문에 찾지 못했던 내 재능을 찾아볼 거야.
기껏해야 어릴 때이고 술 마시며 놀 던 대학시절인데.
그거 없이도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지도 않다.
오히려 어릴 적으로 다시 돌아가면 행복하지 않을까?
“학생, 학생? 지금 잠들면 안되요!”
“잠시 흔들지 말아주세요··· 윽···”
“내가 문 열어줄테니깐 잠시만 참아봐!”
속이 울렁거려···
눈 뜰 힘도 없다···
[시스템 실행 완료.]
[지나친 눈부심은 시력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눈이···
눈이 부신게 중요한 게 아니었잖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온 몸이 쥐어 짜듯이 눌려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특히 코랑 귀가 짓눌리는 게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아!
아무리 술을 마셨다지만 이런 고통은 처음이야!
이렇게 미칠 듯이 고통스러울 거라고 말 안했잖아.
누가 이렇게 날 감쌌는지 손도 엄청 불편해.
손이 명치를 누르고 있어서 아픈데 옴싹달싹 못 하겠다고!
다리도 펴지도 못하고 접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있어서 더 불편해.
윽.
눈부셔.
누가 내 눈에 형광등 켜 놓은거야.
눈 감아도 소용이 없잖아!
저리 치워.
여기 아무도 없어요?
저 좀 살려주세요!
이보세요!
“으으아아아아앙”
안 떨어지는 입을 겨우 벌렸더니, 제대로 된 말은 안 나온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마냥 울부짖을 수 밖에 없다.
내 입 밖으로 나온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있는 지 온 몸이 자꾸 흔들린다.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온 몸이 물에 젖었는지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바람이 춥다.
으윽.
민수 형, 나 이렇게 죽나봐.
살려줘.
형이 택시가 아니라 인신매매범한테 보냈나봐.
엄마···
아빠···
나 이렇게 가. 미안해.
그냥 엄마, 아빠 말대로 집에서 놀고 먹을 걸 그랬나봐.
그래도 나 천국으로 왔나봐.
방금 전까지 그렇게 추웠는데, 지금은 따뜻해.
온 몸이 노곤노곤한게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아.
여기가 천국이라면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사랑해.
[시스템이 비활성 모드로 전환됩니다.]
*****
“여보, 우리 아들 용완이 좀 봐.”
“손가락, 발가락 다 있어?”
“울음 소리 들었어? 아주 건강한 애야.”
“쭈굴쭈굴해.”
“금새 자는 거 보니깐 효자야.”
“그러게. 속눈썹 길어서 연애인 되겠네.”
아직도 온 몸이 쑤셔서 움직일 수가 없네.
지금까지 술 먹고 꾼 꿈 중에서 가장 최악이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어? 깼다.”
“세상에! 눈이 커서 얼굴 절반이 넘는 것 같아. 당신 말대로 진짜 연애인이나 시킬까?”
어? 엄마?
“내가 엄마인 걸 아나봐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랑 눈 마주쳤는데, 울려는 걸 뚝 그치고 저렇게 나만 바라보잖아요. 벌써 아기 낳는 고통을 잊은 거 같아요.”
목소리는 엄마, 아빠가 맞는 거 같은데···
앞이 뿌옇게 가려져서 보이지가 않아.
내 눈이 멀어버린거야?
엄마!
“으아아앙!”
아직도 말이 안 나오잖아!
뭐야.
어제 그게 꿈이 아니었어?
“용완아, 뚝.”
“쉬이, 우리 용완이 아빠 얼굴보고 놀랐어요?”
“여, 여보!”
“괜찮아. 괜찮아. 아빠에요. 아빠.”
나 이제 아기가 된 거야?
아기가 된 거야!
진짜 아기가 되었어!
엄마, 나 진짜 인생 제대로 살거야.
공부한다고 노력한 거 다 기억하고 있으니깐 공부 안해도 평균은 넘길 걸.
아빠도 항상 내 옆에서 응원해줘서 고마워.
코피 흘릴 때마다 건강 챙기라고 한약 달여 오는 거.
맛 없어서 못 먹었지만 대신 마음으로 마셨어.
“입술 오물 거리는 거 보세요.”
“쪼글쪼글한 것도 계속 보니깐 귀엽다.”
왜 한마디도 못하는 거지?
입 하나 벌리는 게 뭐라고 이렇게 힘이 든 거야!
어떻게 해야 말을 할 수 있는거야.
설마···?
내가 아기가 되는 걸 선택한 대신에 지운 기억 속에···!
그 기억 속에 내가 말 하는 방법이 담겨있는 거야?
그렇지만 내가 공부할 때 말했던 건?
그땐 방법을 알아서 말할 수 있는 거였어?
지금은 그 방법을 모르는 거고?
어제의 나···
일생일대의 선택을 너무 쉽게 해버린 거 아니야?
“아 맞다. 아직 30분 안지났죠?”
“어···? 어, 어서 먹여. 아직 안 넘었어.”
“이제보니 오물오물 거리는 게 배가 고파서 였을까?”
아니야, 엄마.
난 지금 심각한 고민 중이야.
잠시 혼자 있고 싶어.
“우리 첫 아들인데 힘들어도 모유수유 해야지.”
“양쪽 다 물려야 하나?”
“그래야겠지?”
혼자 있고 싶어.
온 몸이 쑤셔서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안는 거지? 불렀던 배가 줄어드니깐 걸칠 데가 없어서 팔이 아파요.”
“아까 의사선생님이 수유배게 가져온다 하셨어요. 내가 대신 들어줄까?”
“아기가 잘 먹나 보게 옆에 있어요.”
뱃속에 뭐가 들어가니깐 지금까지 했던 고민이 쓸데 없는 고민으로 느껴진다.
뿌옇게만 느껴졌던 시야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모유를 섭취합니다.]
[뇌 용량이 0만큼 성장합니다.]
[소수점 이하의 수는 반올림하여 표시합니다.]
얼마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뇌 용량도 성장하고, 아주 좋은 신호인걸.
역시 아기 인생이 최고라니깐.
- 작가의말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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