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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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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로웰크란
작품등록일 :
2014.05.26 20:26
최근연재일 :
2014.07.04 22: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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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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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22쪽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4)

DUMMY

‘쓰읍, 이거 진짜 느낌이 안 좋은데…….’

9회 초 2사 1루에서 류광호를 만나게 되자 이인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불현 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이 중학교 때의 추계야구대회와 동일하다는 것이 말이다.

1루에 주자를 내보내게 된 요인이 게 볼넷이 아닌 사구라는 걸 제외한다면 상황은 1:0의 스코어까지 해서 완전히 동일했다. 그때에도 타석에 류광호가 있었고, 그는 자신의 초구를 공략하여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연결을 시켜낸 바가 있었다.

불안하다……. 너무나도 불안하다.

하지만 절대로 그때처럼은 갈 수 없었다.


‘저 녀석하고는 쉽게 승부를 하면 안 돼……. 견제사 아웃을 노려보자.’

타석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방망이를 쥔 채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류광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던 이인은 문득 1루에 사구를 맞고 출루한 주자가 리드를 넓히고 있는 게 보이자 우선 그를 향해 가벼운 견제구를 던져 귀루를 시켰다. 그리고는 이내 류광호와의 승부를 최대한 자제하고 그를 아웃시켜 경기를 끝내는 데에 중점을 두기로 하였다.

따라서 이인은 류광호를 향해 초구는 결코 던지지 않고 주자를 향한 견제만을 반복했는데, 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던 송구에는 결국 문제가 터졌다.

‘……! 아, 이런!’

완전히 잡겠다는 심보로 어느 정도 텀을 두다가 1루에 계속 던지다 보니 공이 제법 빠른 편에 속하여 1루수가 그 공을 미처 잡아주지 못한 것이다. 끈질기게 리드를 하다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귀루를 하는 행동을 반복하던 1루 주자는 이인이 던진 공이 1루수의 글러브를 맞고 옆으로 튕겨지자 허겁지겁 일어나 2루까지 내달렸다. 1루수가 뒤늦게 빠진 공을 회수했을 때에는 이미 주자가 2루에 안착한 뒤였다.

‘제기랄…… 이건 승부를 볼 수밖에 없게 되었잖아.’

1루와 달리 2루는 견제가 아주 어려운 축에 속했다. 기본적으로 2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는 2루수와 유격수는 1루에 주자가 있는 때의 1루수와 달리 2루에 주자가 있다고 한들 수비를 해야 해서 2루 베이스에 붙어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투수는 2루에 등을 지고 있어 포수가 일종의 사인을 내면 2루수나 유격수 둘 중 한 명이 먼저 신속하게 베이스에 들어가고 이어서 포수가 공을 던져 견제를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도 간혹 송구미스가 일어나는 게 2루 견제이니만큼 초보자인 최강수에게 그러한 견제 사인을 내도록 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게다가 2사인 지금 타석에 전형적인 클러치히터인 류광호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루 주자가 3루까지의 도루를 감행할 확률은 무척 낮았다.

그렇기에 이인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견제를 통한 경기종료는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1루는 지금 비어있어……. 거기에 상대는 극강의 타자다. 이 감독님이 그때 내게 고의사구를 지시했듯…… 이런 상황에서는 피하는 게 정론이야.’

그것은 바로 현재 1루가 비었음을 이용하는 고의사구에 대한 생각이었다. 유존고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이니만큼 호락호락 당하려고 하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류광호와 정면승부를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기에, 결코 지금 상황에서 류광호를 고의사구로 거르는 게 비겁한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몇 번이고 타이른 이인은 이윽고 최강수에게 사인을 보내어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했다.

이러한 이인과 최강수 두 사람의 고의사구를 의미하는 행동에 관중석이 술렁이는 것은 당연했으나 그 누구도 야유는 보내지 않았다. 고의사구 역시 작전의 하나이고, 1루의 주자가 2루까지 진루한 지금 상황에서는 강타자인 류광호를 거르는 게 의당 당연한 행동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강수 역시 어깨너머로 야구를 배웠다지만 고의사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지금 상황이라면 이인이 그런 사인을 내리라고 예상했었는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류광호가 있는 방향의 반대쪽인 오른쪽으로 빠졌다. 그리고는 이인으로부터 날아올 볼을 받으려고 일어난 자세 그대로 글러브를 뻗었는데, 거기에는 또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부웅

‘……아, 아니?!’

고의사구로 인해 타격박스에 그냥 방망이를 든 채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던 류광호가 이인이 느리게 볼을 던지자 거기에 맞추어서 그냥 스윙을 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실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볼넷으로 걸어 나갈 타석에서 스윙을 해버린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또 정말로 치려고 한 것일 수도 있어 이인은 그걸 애써 무시한 채 다시 한 번 멀리 서 있는 최강수를 향해 느린 볼을 던졌는데,

부웅

-뭐야~!

-뭐하는 거야!

류광호는 거기에 또 스윙을 했다. 2-0이 될 상황이 0-2로 이제 스트라이크는 하나만이 남은 상태였다. 이러한 모습에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승부를 하자는 건가…….’

이인은 류광호가 또 다시 스윙을 시도함에 따라 그가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갈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 뜻에 쉬이 편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안타 하나만 맞아도 동점이고, 홈런을 맞으면 아무리 공격 기회가 있다고 해도 역전은 어려워. 앞서기만 하면 분명 총력전으로 막으려고 할 테니까……. 여기에서 내가 볼을 던져도 저 녀석은 필시 그냥 스윙을 해버릴 거야. 어떻게 하지?’

이인은 지금 류광호가 무얼 바라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의 행동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상대가 피한다면 얌전히 볼넷으로 나가 다음 타자가 부디 쳐주기를 바라야만 하는데 승부를 안 한다고 그냥 헛스윙 삼진으로 지겠다고 하는 거니 말이다.

그러나 류광호가 연거푸 두 번의 영혼이 없는 스윙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존고의 벤치가 조용한 것으로 보아 딱히 그러한 행동을 말리려는 의도는 없는 것 같았다. 뭐, 다음 타자가 왼손잡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리라. 슬슬 대타로 써먹을 수 있는 자원도 없을 터이니까.

승리를 위해서라면…… 이대로 서 있는 최강수를 향해 느린 볼 하나를 던지면 끝이었다. 그러면 정말로 모든 게 완벽하게 끝나는 셈이었다.

하지만, 정녕 그렇게 끝내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이긴다고 한들 내가 저 녀석을 완벽하게 꺾었다고 할 수는 없어. 이미 나는 한 번 진 적이 있다……. 그 빚을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여기까지 생각을 한 이인은 잠시 발을 푸는 동작을 보였다. 그리고는 연신 생각했다.

‘이렇게 이긴다면…… 나중에 저 녀석의 얼굴을 떳떳하게 볼 용기가 없어.’

이인의 길고 긴 갈등은 관중석에 8회부터 위치하게 된 송민희의 존재를 의미하는 팻말을 보는 순간 확고해졌다. 곧 그는 지금의 상황에 어리둥절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최강수를 향해 포수석에 앉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타석에 있는 류광호를 거르지 않고 그냥 승부를 보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와와~!

-이인 멋지다~!

-류광호! 류광호!

이인이 승부를 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관중석은 또 다시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고의사구에서 고의스윙이 나와 긴박하던 경기가 맥없이 끝나나 했거늘, 가만히 앉아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수인 이인이 승부를 보려고 해주니 조용히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일부는 승리가 코앞인데 뭐하는 짓이냐고 면박을 날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지금 장타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어. 2루 주자의 보살을 대비해야만 해…….’

결국 피하려고 했던 류광호와의 승부를 택하게 되자 이인은 신중하게 생각에 잠기다가도 다시 한 번 발을 풀며 수비수들의 위치를 변경시켰다. 외야수들은 거의 그대로 두었지만 내야수들은 전진수비를 시켰다. 류광호는 확실히 장타를 충분히 쳐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장타는 곧 홈런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것이었다. 만약 땅볼형태의 안타가 나온다면 즉각 캐치하여 홈까지 죽어라고 달릴 2루 주자를 보살시킬 것도 생각해두는 게 좋았다. 즉, 어디까지나 이번 회에 끝을 내겠다는 생각으로 한 수비시프트였다. 이인의 이러한 동작에서 그 의도를 읽은 것인지 동인고의 야수들은 하나같이 표정에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 표정만큼이나 집중력 역시 그 어떤 순간보다 최고조에 이른 상태일 듯했다.

마침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되자 이인은 천천히 인터벌을 가져갔다.

‘카운트는 저 녀석이 앞에서 삽질을 해준 덕분에 이쪽이 극히 유리하다. 우선 하나 빼볼까…….’

류광호와 승부를 보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 것까진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0-2가 되버린 카운트를 원래대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현재 카운트는 투수인 이인이 매우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인은 시각에 혼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류광호의 머리높이로 공을 하나 빠르게 던졌다.

퍼억

‘역시…… 속지 않는군.’

예상대로 류광호의 방망이는 돌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머리높이로 공이 날아오자 가만히 방망이를 쥔 채 자리에 서 있다가 최강수가 그 공을 안전하게 포구하자 타석에서 몇 발자국 물러나더니 무언가 큰 것을 노리듯 스스로의 방망이를 바라보며 이내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앞서 고의사구가 진행되는 타석에서 투수를 향해 승부를 요청하는 고의스윙을 했듯 쉽사리 물러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제길, 왼손으로도 사이드나 언더 던질 수 있게 연습 좀 해둘걸. 아니, 좌완 언더는 우타자에게 치기 좋은 공을 던져주는 셈이니 안하느니 만도 못하나…….’

류광호는 좀처럼 던질 곳이 안 보이는 타자였다. 그의 유일한 돌파구가 되어주었던 언더핸드는 오른손이 부상을 입는 바람에 던질 수가 없었는데, 이인은 안타깝게도 왼손은 오버핸드로밖에 던지는 방법을 몰랐다.

그러나 사실 좌완 언더핸드를 던질 수 있다고 해도 던지지 않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언더핸드는 그 특성상 공이 느린 편에 속했는데, 우타자 입장에서는 좌완투수의 공이 유독 잘 보였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더 느리게 던지는 것이다. 그건 거의 치라고 던지는 수준이었으니 아무리 류광호가 언더핸드에 약하다고 해도 왼손은 삼가는 게 좋을 듯했다. 괜히 좌완 상대로 타율이 4할이 넘는 게 아닐 터이니 말이다.

‘음…… 2루는 괜찮지만 3루는 못 보내. 어차피 안타 하나면 들어올 수 있을 테니 거기에서 얌전히 있어라.’

문득 이인은 2루에 있는 주자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자 그쪽을 향해 던지는 시늉을 하며 주자를 2루에 묶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류광호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결과 이인은 곧 정할 수 있었다.

‘바깥쪽으로 낮게 던져보자. 볼이 되어도 카운트는 아직 내가 유리한 편이니 한 번 더 떠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이인이 정한 코스는 바깥쪽으로 낮게 떨어지는 것이었다. 거기라면 웬만큼 잘 쳐내지 않는 한 타격을 당했을 때 거의 땅볼이 나오기 좋은 코스였으며 잘 치더라도 밀어서 치는 만큼 장타 역시 생산이 쉽지가 않은 코스였다.

때문에 이인은 신중하게 공을 쥐어 이내 던졌다. 그의 이번 공은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워낙 낮았기에 류광호가 거의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 계산하기도 한 공이었는데, 이러한 이인의 계산은 다소 틀린 감이 없지 않았다.

따악

‘켁, 저, 저걸 쳤어!?’

류광호가 거의 다운스윙을 하여 그 공에 반응을 한 것이다. 단순히 반응을 한 것이면 또 모르겠으나 그는 낮게 제구가 잘 된 체인지업을 거의 억지로 퍼서 올렸다.

절묘한 다운스윙에 맞은 공은 큰 궤도를 그리며 쭉쭉 뻗어갔다. 낮았던 터라 장타는 무리일 줄 알았건만 뻗어가던 그 공은 어느 샌가 담장 근처까지 도달했다. 향하는 지점이 파울 라인 근처였는데, 궤도로 보아 충분히 담장을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류광호에게 맞은 공이 담장까지 날아가자 이인은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여기에서 공이 담장을 넘어가 역전을 허용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전개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터엉

“휴우…….”

다행히 이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류광호의 타구가 최종적으로 낙하한 지점은 파울 라인 바깥쪽의 담장너머였다. 그러나 그 장소는 거의 라인 근처였던 터라 조금만 더 잘 맞았다면 영락없이 넘어가는 타구가 될 듯했다.

이러한 광경에 관중석이 웅성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야말로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양측의 희비가 교차되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단순하게 밀어서 저 낮은 걸 저기까지 퍼내다니…… 무슨 손목 힘이 저렇게 강하지?’

부웅

당사자인 류광호는 치는 순간부터 안타가 되지는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었는지 제자리에서 연습스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인은 그 모습에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에 낮게 떨어지는 공을 밀어 쳐서 파울 홈런이 나오는 걸 목격하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방망이의 끝에 맞았는데 그 정도였으니 정타로 맞으면 거의 장외로 나가는 홈런이 될 듯했다.

‘이건 진짜 어려운 놈이다…….’

이인은 한창 해가 떠 있는 시간이었고 거의 두 시간이 넘도록 그 아래에 있었다보니 흘린 땀이 어마어마했지만 긴장감을 느껴서 그런지 또 다시 이마에 땀이 흥건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왼팔을 들어다가 소매로 닦은 그는 다시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바깥쪽에만 강한 것일 수도 있어. 맞추게 되더라도 한번 몸 쪽 승부를 해보자.’

문득 이인은 앞선 타석에서 오른손 언더핸드로 던질 때 몸 쪽으로 바짝 붙인 공에 방망이가 쉽게 나가 느린 땅볼이 되어 그를 손쉽게 처리했던 일이 떠오르자 거기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고는 과감하게 몸 쪽으로의 승부를 택했다. 곧 그는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이인이 세 번째로 택한 공은 우타자 기준으로 거의 발쪽에 떨어지는 슬라이더였다. 설령 볼이 되더라도 아직 1-2이니 카운트에 여유는 있다고 판단하여 고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류광호에게는 여지없었다.

따악

몸 쪽으로 강하게 휘어들어오면서 뚝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타석에서 살짝 물러나면서 엉덩이를 뒤로 뺀 자세 그대로 강하게 타격한 것이다. 그것은 거의 일종의 재주라고 해도 될 듯했다.

‘페어……! 가 아니군, 휴우…….’

류광호의 몸 쪽으로 붙인 슬라이더가 맞아나가자 이인은 순간 놀라다가도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방망이에 당겨진 공이 3루 쪽 파울 라인 바깥으로 날카롭게 굴러가는 걸 보게 된 덕택이었다. 그것은 만약 페어가 된다면 2루 주자의 득점은 기본이고 류광호 본인도 능히 2루까지 갈 수 있는 타구였기에 이인은 또 다시 간담이 서늘해져야만 했다.

‘대략 이쯤 되면 한가운데로 과감하게 찔러볼 법도 하겠지만 이놈한테는 보나마나 투런으로 연결될 거야……. 카운트가 1-2인데도 내가 유리한 것 같지가 않네. 제기랄, 오른손으로 상대할 때하고는 완전 딴판이잖아.’

흔히들 카운트가 1-2일 경우 투수가 유리하다고들 말하지만 이인은 지금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곧 그는 연속으로 두 번의 안타에 가까운 파울을 쳐낸 류광호가 다시 준비를 마치고 타석에 대기하자 왼손에 송진가루를 묻힌 다음 머리의 모자를 매만진 뒤 계속 승부에 나섰다.

이인은 그 이후에 무려 10구를 류광호 한 명에게만 더 던져야했다.

‘이…… 저…… 진짜 악마 같은 놈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햇볕이 쨍쨍한 마운드 위에서 쉬지 않고 스무 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보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인이 쓰고 있는 모자에서는 챙을 타고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면에 떨어진 땀은 쨍쨍한 햇볕에 의해 금방 증발했으나 그 흔적은 여실히 남아있었다.

‘이렇게 던졌는데 안타를 맞지 않은 것도 용하지만 나도 이제 물러설 데가 없단 말이지. 여기까지 와서 그냥 볼넷을 주자니 더 힘들어지고…….’

1-2에서 10구를 더 던진 결과 현재 카운트는 3-2였다. 2루 주자는 류광호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그가 기어코 하나 쳐주리라고 믿고 있는 것인지 큰 움직임은 없었다. 이인이 이따금씩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그쪽을 향해 발을 풀면 슬라이딩을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10구중에 두 개는 손에서 빠지는 볼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커트를 당했다. 개중에는 손에서 빠진 공이 바운드가 되어서 갔는데 류광호가 또 그것을 쳐서(……) 파울이 된 적도 있었다. 그 중에 관중석으로 향하는 공은 다섯 개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전부 류광호의 뒤로 날아가는, 타이밍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공이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승부를 보겠다고 한들 그냥 볼넷을 주고 다음 타자를 노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으나 이인은 슬슬 한계가 온 상태였다. 제 아무리 다음 타자가 류광호보다 떨어진다고 해도 백지 상태에서 다시 승부를 해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승부를 보겠다고 한 주제에 힘이 들어 빠지는 것도 말이 안 되었고 말이다.

그러나 이인은 아직까지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던지는 것들은 모두 쳐내고 있어. 실투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그대로 지는 거다. 제기랄,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 거지……?’

이인은 류광호와의 승부에서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과 직접 맞닥뜨린 느낌을 받았다. 무슨 공을 던져도 다 커트가 되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바운드가 되어서 간 공도 맞은 마당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 사이에 나온 두 개의 볼은 손에서 완전히 빠져 거의 고의사구 급으로 날아가 커트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 여기까지인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슬슬 패색이 짙어지는 듯한 느낌도 적잖게 들고 있었다. 지나치게 길어진 수비로 인해 야수들 역시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류광호는 결코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더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장기전이 되면 맞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인은 거의 자포자기를 하는 듯한 심정을 느꼈는데,

‘……아니, 여기까지 와서 우는 소리를 낼 수는 없지. 저 녀석이 똑같은 사람인 이상 나라고 해서 이길 수 없다는 보장은 없어. 실제로 난 오늘 오른손으로 던질 때 세 번을 다 이겼잖아. 방법…… 분명히 방법이 있을 텐데…….’

곧 이인은 나약해진 스스로를 자책하고는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지금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 덕분일까?

‘류광호 저 녀석은 내가 던지는 모든 걸 다 치고 있어……. 그만큼 나에 대해 빠삭하게 조사를 했었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나조차도 모르는 공을 던져보면 어떨까?’

이인은 문득 이와 같은 기묘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앞선 대결에서 유일한 돌파구가 되어주었던 언더핸드에 대한 생각이었다. 우완으로 던질 때는 좋았으나 좌완으로 언더를 던지면 우타자에게 피안타를 당하게 될 확률이 높다지만 류광호는 여태까지 오로지 오버핸드로만 오는 공을 봤었다. 시선이 거기에 익숙해졌을 테니 이 정도라면 충분히 먹혀들 법도 하지 않을까?

‘게다가 던지는 방법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니잖아.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냥 해보자……. 그게 내가 저 녀석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승부야.’

왼손으로 사이드나 언더는 딱히 연마를 하지 않았다지만 지금은 모험을 해봐서 나쁠 게 없었다. 오버핸드로 가는 모든 공이 차단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인은 스스로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이윽고 자신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그립을 쥐고는 이내 와인드업을 통해 투구에 나섰다. 그것은 류광호 한 명에게만 열다섯 번째로 던지는 공이었다.


이인이 열다섯 번째로 던진 공은 류광호의 약점으로 노출이 되었던 언더핸드였다. 이인이 던진 공은 거의 지면을 타고 낮게 깔려 류광호를 향해 날아갔다.

류광호는 위에서 날아오던 공이 돌연 아래에서 오자 순간 움찔했으나, 이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것은 상대의 공이 언제 오는지를 알고서 한 완벽한 스윙이었다. 그대로 맞으면 맞는 순간 홈런이 직감될 정도로 좋은 스윙이었는데, 거기에는 또 다른 변수가 존재했다.

스윽

“……!”

낮게 깔려오던 이인의 공이 류광호의 방망이와 닿으려는 찰나에 아래로 확 꺾여서 떨어진 것이다. 그 공은 일반적인 체인지업과 달리 바깥쪽으로 꺾여서 가라앉는 서클체인지업이었다. 류광호는 공의 그러한 움직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순간적으로 움찔했으나, 이미 강한 힘이 담긴 방망이를 거기에서 멈추는 것은 무리였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이인과 류광호.

이 두 사람의 기나긴 대결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작가의말

+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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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0) +2 14.06.26 1,110 9 9쪽
129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9) 14.06.25 936 8 9쪽
128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8) 14.06.25 943 10 15쪽
127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7) 14.06.24 979 10 6쪽
126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6) +4 14.06.23 984 8 11쪽
125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5) 14.06.23 937 7 11쪽
124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4) +4 14.06.22 948 9 10쪽
123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3) 14.06.21 961 11 8쪽
122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2) +2 14.06.20 965 10 14쪽
121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 14.06.19 1,007 8 14쪽
120 준비 (3) 14.06.18 870 9 9쪽
119 준비 (2) +2 14.06.17 962 7 13쪽
118 준비 (1) 14.06.16 933 10 12쪽
117 가을축제에 (4) +2 14.06.15 934 10 15쪽
116 가을축제에 (3) 14.06.14 1,090 9 10쪽
115 가을축제에 (2) 14.06.13 977 11 9쪽
114 가을축제에 (1) +3 14.06.13 1,088 12 9쪽
113 암운이 드리워지다 (6) +2 14.06.12 1,020 10 8쪽
112 암운이 드리워지다 (5) 14.06.12 1,007 14 13쪽
111 암운이 드리워지다 (4) 14.06.11 1,104 9 10쪽
110 암운이 드리워지다 (3) 14.06.11 1,122 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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