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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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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로웰크란
작품등록일 :
2014.05.26 20:26
최근연재일 :
2014.07.04 22:42
연재수 :
1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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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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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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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5)

DUMMY

‘왼손한테 무지막지하게 강한 놈이니 오른손으로 던질 수밖에. 제길, 그래도 느낌이 썩 좋지는 않네. 지금은 괜찮지만 또 저리면 진짜 골치 아픈데.’

공격이 가능한 1회 말이 되어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니 다시 등판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자 마운드에 오른 이인은, 선두타자로 4번 타자인 류광호가 타석에 들어와 타격을 준비하자 공허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다가도 얼른 투구하는 손을 바꾸었다. 구체적으로 상태가 어떤지는 모른다지만 투구를 할 때 오른쪽 어깨가 간헐적으로 저리는 때가 있어 이인은 가급적이면 왼손 위주의 투구를 할 생각이었으나, 거기에 류광호는 전면적으로 예외로 삼을 심산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시영의 정보망에 따르면 좌타 킬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좌타자의 공을 기가 막히게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통산 좌타자 타율은 무려 4할. 거기에 자신이 쳐낸 대다수의 홈런은 전부 좌타자에게 쳐낸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고등학생이라고는 하나 파워를 갖추고 있었고 목동구장은 미국의 쿠어스필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홈런이 쉽게 생산되는 장소였으니 요주의가 필요했다.

이런데 어떻게 왼손으로 계속 승부를 갈 수 있겠는가. 양손투수인 이인 입장에서는 오른쪽어깨에 하자가 있더라도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오른손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류광호가 타석에 나오자 글러브를 왼손에 옮겨 낀 뒤 초구를 힘차게 던졌으나 볼이 되고 말았다. 어깨에 마비가 온 것은 아니지만 영점이 아직 안 잡힌 탓이었다. 규정에 따르면 투수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나서 한번 던지기 시작한 손으로 그 타자하고는 끝을 볼 때까지 던져야만 했다. 즉, 이인은 이제 류광호한테는 무조건 오른손으로만 던져야했다.

‘저 녀석은 거포답게 주로 당겨서 치는 스타일…… 오른쪽 위주의 수비는 아까 말해놨으니 됐고, 두 번째를 어찌 가느냐…….’

두 번째 공을 던지기에 앞서 신중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이인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강수에게 사인을 냈다. 그가 두 번째로 던지겠다고 마음을 먹은 공은 슬라이더였다. 당겨서 치는 게 주특기라면 우타자 기준으로 직구처럼 오다가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질 경우 거기에 속아 넘어갈 확률이 제법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인은 최강수에게 슬라이더를 받을 준비를 시킨 뒤 이내 투구에 나섰다. 곧 그의 손을 떠난 공은 빠르게 앞쪽으로 뿌려졌는데,

티익

류광호는 무려 그것조차도 걷어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겠지만 영락없이 헛스윙을 할 줄 알았거늘 방망이에 맞추기는 했으므로 걷어냈다고 보는 게 옳은 표현일 듯했다. 그의 방망이에 스친 공은 아쉽게도 관중석 쪽으로 날아가 야수들이 잡을 수가 없었다.

‘웬만한 공은 안 통한다는 것 같군. 흠…… 그래도 지금은 무조건 바깥쪽으로 승부를 보는 게 좋겠지. 이번에는 종으로 떨어지는 거로 가보자.’

류광호의 공기를 가르는 듯한 매서운 스윙을 보게 되자 이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한 후 이번에는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종으로 떨어지는 포크볼을 던지기로 정했다.

커브보다는 떨어지는 각이 좁지만 류광호는 선구안이 제법 좋은 편이었다. 그만큼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는 커브에는 속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으므로 포크볼을 고른 것이었는데, 그 선택은 아쉽게도 틀린 것이었다.

따악

‘……!’

공이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존에 걸쳐서 들어오자 류광호가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빠르게 방망이를 휘두른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도 라인을 벗어나는 파울이었는데, 제대로만 맞았으면 장타를 넘어 홈런으로 연결되었을 법했다. 투수인 이인 입장에서는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었다.

‘기계를 상대하는 느낌이네. 우타자 상대로도 3할은 거뜬히 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어렵구나.’

카운트는 1-2로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파울로 날아간 공들은 하나같이 심상치가 않은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인은 구심으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뒤 그것을 손에 쥔 채 계속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을 넘을 방도에 대해서 말이다.

‘우선 높은 공으로 스윙을 유도해볼까…….’

퍼억

1-2는 투수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카운트였던 터라 이인은 일부러 머리높이로 공을 던져보았으나 그 공은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리에 서 있는 최강수의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잘만 치면 장타로 만들 수 있는 높게 오는 공의 유혹은 참기가 어려울 터인데 참아낸 것으로 보아 류광호는 그 실력만큼이나 상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카운트는 2-2가 되었다. 이인으로써도 슬슬 승부를 봐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풀카운트만은 피하고 싶단 말이지……. 제발 좀 속아라!’

변화구로 솎아내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냥 힘으로 승부를 보는 쪽이 더 나았다. 그렇기에 이인은 그냥 직구를 최대한 낮게, 류광호의 기준으로 무릎 쪽에서 약간만 더 낮도록 조절하여 던졌다. 타자가 속을 수밖에 없도록 해서 말이다.

그러나……

퍼억

‘지긋지긋한 자식. 공 한번 더럽게 잘 보네.’

류광호의 방망이는 이번에도 가만히 있었다. 스트라이크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던진 만큼 잡아주면 좋았겠지만 이인의 다섯 번째 공은 볼로 판정이 되어 풀카운트가 되고 말았다.

류광호는 다른 것도 다른 거지만 선구안 하나만큼은 혈통의 힘인 것인지 류수호와 맞먹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의 친형인 류수호 역시 이번 리그에서 가장 많은 볼넷을 얻어낸 타자였는데, 피는 못 속이는 것인지 류광호의 눈도 그에 못지않은 듯했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모 아니면 도의 싸움이었다.

‘그냥 찌르자! 안타를 맞으면 맞았지, 볼넷만큼은 절대로 안 돼!’

1-2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3-2까지 몰리게 되자 이인은 마침내 정면승부를 결심했다.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도록 스트라이크존의 구석을 찌르는 바깥쪽으로 말이다.

최강수에게 사인을 보내어 코스를 알려준 이인은 왼발을 힘차게 드는 와인드업자세에서 잠시 멈춰 있다가 이윽고 그 발을 땅으로 내딛으며 공을 던지려고 했는데, 거기에는 이변이 존재했다.

‘이런, 어깨가……!’

여태까지 조용하던 오른쪽 어깨가 또 다시 저려온 것이다. 이로 인해 이인이 여섯 번째로 던진 공은 네 번째로 던진 공과 거의 흡사하게 머리높이로 날아갔다. 그것은 류광호가 가만히 서 있으면 볼넷을 얻어 1루로 걸어서 나갈 수 있는 공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인은 투구를 하게 됨과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는데,

따악

‘어…….’

거기에는 또 이변이 일어났다. 타석에 있던 류광호가 방망이를 휘둘러서 그 공을 쳐낸 것이다. 그가 친 공은 또 다시 파울이 되어 관중석 쪽으로 향했다.

류광호 정도의 타자가 방금 전의 공을 골라내지 못할 리가 없었던 터라 이인은 그 상황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곧 그는 알 수 있었다.

‘저게…… 볼넷은 자기도 용납할 수가 없다 이거구만. 어떻게든 승부를 보자는 거야.’

눈앞에 있는 류광호가 방망이를 아래로 내린 채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던 터라 이인은 피곤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행동은 자기 역시 똑같은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이인은 다시 한 번 투구를 위해 인터벌에 들어갔다.

‘조금 전에는 저 녀석 덕분에 살았다지만, 내가 불리하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야. 던질 곳이 없단 말이지……. 쓰읍, 그냥 고의사구로 내보낼까.’

도통 묘수가 떠오르지 않자 고의사구까지도 감안하여 머리를 굴리던 이인은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그에 관하여…… 류광호에 관하여, 정보원인 이시영이 말해주었던 모든 것들을 떠올려내기 위함이었다.

-류광호는 인이 너도 겪어봐서 알겠지만 그냥 괴물이야. 상성에 유리하다는 걸 행동으로 직접 말해주듯 우타자답게 좌완한테 4할로 무지막지하게 강해. 우완한테도 그보다는 아니지만 3할로 꽤나 강력하고. 그냥 신이 내려준 4번 타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거야. 맞닥뜨리게 되거든 꼼수 부리지 말고 맞는 게 나을지도 몰라. 아니면 고의사구로 거르거나…….

‘불여우 이건 누구 편이야…….’

어제 늦은 시각에 이시영으로부터 들은 류광호의 말은 하나같이 그를 칭찬하는 말로 일색이었던 터라 이인은 그것을 떠올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가도 그는 하나를 더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옛날 그리스의 영웅이라는 아킬레우스에게도 약점이 있듯 괴물인 류광호한테도 약점은 존재해. 그게 바로 언더핸드야. 언더핸드는 던지는 사람이 워낙 적어서인지, 아니면 거기에 무언가 대처가 어려운 것인지 2할대로 겨우 치더라고. 언더핸드로 던지면 효과 좀 볼 수 있을 거야.

‘언더핸드…… 그래. 그러고 보니…….’

그것은 바로 류광호가 언더핸드에 약하다는 말이었다. 이시영은 이러한 말을 뒤늦게 덧붙였던 터라 이인은 그제야 그걸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와 동시에 기억할 수 있었다.

그 기억은 여름방학에 류수호와의 대결이었다. 날카로운 스윙으로 공을 전부 파울로 만들던 그는 마지막 공은 언더핸드로 낮게 던지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둘은 포지션도 유격수로 비슷하고 선구안 역시 비슷했다. 그리고 이시영의 말에 따르면 류광호는 언더핸드에 2할대로 약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걸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일곱 개나 던지게 했으면 슬슬 끝장을 봐야지! 얼른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이 자식아!’

따라서 이인은 심판에게 경고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인터벌을 가져가다가도 이내 왼발을 힘차게 올려, 공을 쥐고 있는 오른팔을 거의 지면에 닿을 정도로 낮게 수평을 유지하여 뻗어다가 던졌다.

그것은 전형적인 언더핸드였다. 그리고 그 공은……

퍼억

-스트라이크아웃!

이인이 투구를 시도하기 전에 속으로 간절히 빌었던 삼진을 잡아내는 데에 일조를 해주었다. 지면을 타고서 낮게 오는 공에 류광호가 헛스윙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으로 완전히 끝은 아니라지만, 우선 첫 번째 만남에서는 이인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 타석부터는 볼넷으로 나갈 수 있으면 나가는 게 좋을 거다…….’

과감한 변칙투구를 통해 류광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데에 성공하자 이인은 주먹을 꽉 쥐어보이다가도 천천히 그 자신의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류광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첫 아웃카운트를 잡은 것이지만 그 무엇보다 큰 산을 넘은 셈이었기에 이인은 그 광경에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곧 그는 이어서 나온 두 타자들도 공 네 개를 던져 각각 땅볼을 유도, 깔끔하게 아웃카운트를 잡아 두 번째 이닝을 매조지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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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끝이 난 뒤에 (2) +3 14.07.03 1,361 17 13쪽
136 끝이 난 뒤에 (1) 14.07.02 1,088 14 8쪽
135 그들의 이야기 +1 14.07.01 1,201 13 14쪽
134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4) +1 14.06.30 1,145 20 22쪽
133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3) 14.06.29 879 11 12쪽
132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2) +2 14.06.28 975 13 9쪽
131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1) +2 14.06.27 1,125 12 9쪽
130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0) +2 14.06.26 1,110 9 9쪽
129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9) 14.06.25 935 8 9쪽
128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8) 14.06.25 943 10 15쪽
127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7) 14.06.24 979 10 6쪽
126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6) +4 14.06.23 983 8 11쪽
»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5) 14.06.23 936 7 11쪽
124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4) +4 14.06.22 947 9 10쪽
123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3) 14.06.21 960 11 8쪽
122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2) +2 14.06.20 964 10 14쪽
121 가을축제 친선야구경기 (1) 14.06.19 1,007 8 14쪽
120 준비 (3) 14.06.18 870 9 9쪽
119 준비 (2) +2 14.06.17 962 7 13쪽
118 준비 (1) 14.06.16 933 10 12쪽
117 가을축제에 (4) +2 14.06.15 933 10 15쪽
116 가을축제에 (3) 14.06.14 1,089 9 10쪽
115 가을축제에 (2) 14.06.13 977 11 9쪽
114 가을축제에 (1) +3 14.06.13 1,087 12 9쪽
113 암운이 드리워지다 (6) +2 14.06.12 1,020 10 8쪽
112 암운이 드리워지다 (5) 14.06.12 1,006 14 13쪽
111 암운이 드리워지다 (4) 14.06.11 1,104 9 10쪽
110 암운이 드리워지다 (3) 14.06.11 1,121 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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